과거 PC방이 얼마나 재밌었는지 썰 좀 풀까함.
98~99년 당시로 기억함.
당시엔 PC방 관리프로그램이 나오기 전이라
장부에다가 시작시간, 종료시간
손수 적어가며 계산하던 시대였음.
손님오면 재떨이와 게임CD 주면서
“o번 PC로 가세요” 안내해줌.
게임 끝나서 카운터로 오면 “몇번 PC에요?”
물어보고 현금으로 요금 받음.
그러다보니 주야 상관없이
횡령이 거의 일상화였음.
횡령을 막을 방법이 도저히 없어서
사장이 결국 생각했던게
“아는 사람이면 양심상 덜 가져가겠지?” 하며
주로 지인을 채용했었는데,
수개월이상 얼굴도장 찍던 손님들도 그중 일부였음.
내가 다니던 PC방은
사장이 리니지에 미쳐있던 상태라
항상 손님중 5~7명은 혈원(길드원)이었음.
새벽되면 PC방에 우리밖에 없었음.
겜비도 없이 외상으로 게임하다가
득템하면 그거 팔아서
누적된 외상값 정산하고,
템 못먹어서 외상값 마지노선인
100만원을 넘기면
그때부터 알바생으로 전환됨.
그래봤자 혈원들 로테이션으로 돌아가기에
혈원 1~7명중에 1명이 알바생인거고,
사실상 알바생 7명이라봐도 무방함.
아침 8시 반되면 7명이 슬슬 일어나
각자 자판기 음료채우기,
라면국물버리기, 재활용품 내놓기,
키보드 담뱃재털기,
걸래로 책상 마우스닦기 등등
마치 고일대로 고인 내무실(생활관)분위기였음.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알아서 10분만에 다 해버림.
그리곤 인근 분식집에
순두부2 뚝불2 김치2 떡만두1 배달시키고
카운터앞 원탁테이블에 앉아서
아침을 때우고 하루를 마감함.
2.
구석쪽 사각지대에
일반인들에겐 잘 내주지않는 자리가 하나 있었음.
알바생들이 ㅈㄴ 극혐하던
동네 ㄸ잡이 아저씨 전용석.
사장말로는 새벽에 몇번 치다가 걸렸다던데
쫓아내려다가
조금만 있다가 갈거래서 걍 봐줬다함.
이용요금은 시간 상관없이 만원.
잠깐 있다가 가는데 만원내고 가니
사장 입장에선 나쁘지 않았음.
단, 그쪽라인에 손님 없는 시간에만 오는걸로
쇼부를 봤다고 함.
우리(혈원이자 알바)들은 사장한테 개난리침.
청소 우리가 해야되는데 더러워서 못한다고.
결국 휴지는 알아서 치우는걸로 합의봄.
이 아저씨는 항상
낡은 장부책 한권을 소중히 들고다녔는데
그 안에는 각종
ㅇㄷ 사이트 URL들이 정리되있었음.
지금이야 검색만 해도 무궁무진하지만
20여년 전엔 상당히 희귀..
우리는 당연히 그게 ㅈㄴ 궁금했고
아저씨 나가면 우르르 달려가서
방문기록을 따기시작.
그러던 어느날부턴가 이 아저씨가 보이질 않음.
나중에 듣기론
인근에 있는 버스터미널상가쪽에
성인PC방 창업했다고 함.
3.
당시 리니지는 서버가 4개 밖에 없던 초기시절이고
템시세가 정해져 있던게 없었음.
그야말로 부르는게 값..
특히 ‘변신조종반지’ (변반)이란 아이템은
서버에 2~3개밖에 없던 초희귀아이템.
당시 리니지는 변신을 하면
선공 몬스터들이 플레이어를 인식하지못함.
선공몹이 가득한 던전의 경우
경험치와 파밍이
다른곳들과 비교도 안되게 좋음.
변신을 하냐 안하냐에 격차가 ㅈㄴ 큼.
지속시간은 2시간.
PC방앞 입간판이나 현관문에
“oo서버 변반 보유중” 붙여놓으면
인근에서 택시타고 올정도로 호객효과가 쩔었음.
카운터에 있는 메인PC에는
변반 들고있는 사장 캐릭터가 항상 켜져있었고,
카운터 바로 앞인 1번 PC는 손님을 받지 않았음.
그리고 손님이 변신을 부탁할땐
계정+비번을 메모지에 적어서 주면
1번 PC에서 게임을 접속하고
사장 캐릭터와 만나
변반을 옮긴 후 변신을 시켜줌.
그리고 장부에 변신횟수를 별도로 기록함.
변신 요금은
2시간당 1회 무료. 추가시 회당 천원.
그렇게 손님이 몰리기 시작하고
승승장구 할 것만 같던 상황속에
변반을 갈취 당하는 사건이 발생.
하필 초딩들 방학시즌이었고
카운터가 복잡한 틈을 타
변반이 넘어갈 타이밍에 다른 PC방에서
중복 로그인으로 손님 계정을 튕겨냄.
변신 의뢰한 손님은 이미 도망가고 없음.
그 변반은 반년 전쯤
새벽에 여수까지 내려가서
600만원인가 주고 사온거였음.
손익분기는 넘긴지 오래였으나
문제는 다시 구할 방법이 없었다는 거임..
변반 털렸다는 소식에
단골들은 하나둘씩 발길이 끊김.
캔맥 하나에 홍익인간되고
혀 꼬이던 알쓰 사장은
깡소주 3병을 깔 정도로 괴로워했음.
그 사건 이후 2주 정도 지났으려나..
아이템 복이 항상 더럽게 없던 막내혈원이
야심한 새벽에 비명을 지름.
깜짝 놀라서 가보니
이새끼 인벤 마우스커서에
“변신 조종 반지”이 찍혀있음.
그 소식들은 사장은
20분 거리에 살고 있었는데
거짓말 안하고 진짜 10분만에 나타났음.
바로 샷다 내리고
유일하게 24시간 하던 뼈해장국집가서 회식.
다음날 은행문 열자마자
만원권 5다발 찾아와선 빅딜이 성사됨.
4.
어느 여름밤 새벽1~2시무렵
적혈에서 현피가 왔음.
혈원중 하나가 적혈 꼬장가서는
“oo동 블루넷이니 찾아오던가” 하며
ㅈㄴ 어그로 끌었다고 함.
당시 PC방 손님은 6명에 알바 하나..
뭐 혈원 7명이란 소리.
키 175 남짓한놈 하나에
180쯤 되는 돼지 하나가
PC방 문을 발로차며 등장.
“oo섭 ooo 이새끼 어딨어??” 하며
모니터를 훑기 시작.
그때 PC방 반층 아래인 공용화장실에서
라면국물 버리던 알바(혈원1)가
큰소리에 곧장 올라왔고,
상황파악 하자마자
문 상단에 있던 잠금장치를 걸어버림.
그리고 112 신고함.
아무리 작정하고 쳐들어온 반건달이라도
20대 초반 겜방 백수들 7명을 상대할 수는 없었음.
그렇게 대치하다가
5분뒤 나타난 민중의 지팡이에 상황종료.
5.
리니지 모르는 사람들도
과거에 리니지에서 성 하나 차지하면
어지간한 사업 하나보다
수익이 좋다는 소리 들어본적 있을거임.
당시엔 성이
켄트성, 윈다우드성, 오크성
이렇게 3개였는데
윈다우스성과 오크성은
동네 하꼬방 매출수준이었고
오로지 ‘켄트성’이 갑오브갑이었음.
우리 혈이 켄트성을 차지하고 있었고
성주는 전주에서 생활하던 건달이었음.
윈다우드성과 오크성은
적혈이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 놀이터였음.
매일밤 꼬장가서
성문 때려부시고 경비병 죽임
(그럼 걷힌 세금이 수리비용으로 자동으로 빠져나감ㅋㅋ)
그러던 어느날 ‘기란성’이란게 업데이트 됨.
듣기로는
켄트성과 비슷한 수준의 세금이 들어온다함.
그렇게 서버를 장악하고 있던
우리혈에서 기란성을 먹기로 했음.
그리고 우리 PC방에 주기로 확약 받음.
우리는 공성전 준비로
사비(각자 50만원정도)털어서 약값을 준비함.
공성루트 모의연습하며
전략도 짜고 손발 맞춰가며 매일밤 연습.
공성은 성을 가지고 있는
혈(수성) vs 성을 빼았는혈(공성) 의 싸움인데
아주 단순함.
캐릭터 2명이 지나가는 길목을
수십 캐릭터로 2시간동안 막고 있으면 됨.
결국 공성에 성공하고 성을 획득함.
그런데 이 군주새끼가
갑자기 지 친동생을 기란성 성주에 앉힐거고
2일 뒤 윈다우드성을 칠테니
그걸 우리준다고 말바꾸며
뒷통수 제대로 쳐맞음.
케릭 죽어서 템날린 것보다 더 빡치는 상황..
2일뒤 본진에서 지원인력 반도 안옴.
당연히 윈다우드성 탈환에도 실패함.
빡이 돌대로 돈 우리는 빅엿을 준비함.
2일뒤 기란성 공성이 예정되있는데
이미 성을 먹은 상황이기에
성 문을 캐릭터로 겹겹이 막아
몸빵하며 수성(방어전)을 해야함.
같은 서버내의 적혈 군주에게 전화걸어서
쿠데타 의사를 슬쩍 흘림.
조건은 기란성 넘겨주면
우리 7명 다른서버로 가서
정착할 템지원+착수금1500이었음.
오래 고민할 거 없이 바로 승낙.
그렇게 D day-2 두둥..
드디어 공성 당일..
우리는 본진 PC방이 아닌
옆동네 PC방에서 모였음.
성문 앞에 캐릭터 바리게이트를 서있는데
적혈 본진 캐릭들이 몰려오기 시작함.
치고받고 1시간 40여분째..
수성에 성공하나 싶을 5분 남짓 남을 무렵에
미리 혈에 심어둔 마법사 캐릭터를 접속.
투명망토를 입고
바리 선봉의 캐릭터들을
매스(캐릭터 주위1셀의 혈원들을
모두 다 텔리포트시키는 마법)로 날려버림.
바리게이트가 사라져버리니
적혈 캐릭들이 우르르 들어오고
성을 장악해버림.
잠시후 공성종료 시스템 메세지가 뜨고
우린 미리 겜방 앞에 대기시켜둔
콜택시 3대에 2/2/3 나눠타고
정동진으로 튐.
정동진부터 망상 옥계 대진 등등..
7번국도 따라
이름난 해수욕장 하루씩 묵으며 내려옴.
부어라 마셔라 흥청망청 즐김.
착수금 1500..
1주일은 충분할거라 생각했으나
5일만에 탕진함.
서울 올라갈 차비 정도만 남음.
하루만 더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결국 마당에 평상있는
허름한 민박집 큰방하나 싸게 얻음.
방값 내고 남은돈 쥐어짜내니
소주한짝 살돈 겨우 나옴.
안주가 없어서 주인집에 부탁해서
들통 하나 버너 하나 빌림.
그리곤 뉘엿뉘엿 해가지는 해변으로 나가서
조개를 캐기시작.
1시간 정도 캐니
들통 가득차고 삶아서 소주 한짝 비움.
다음날 담배 살돈도 없이
완전히 개그지된 상태로 민박집 나와
2개조로 나눠서 서울에서 보자 하고 헤어짐.
영화나 드라마에서보면
히치하이킹으로 잘만 타고 다니던데
ㅅ1발 우리가 너무 순수했었나봄.
몇시간째 국도변에서 쇼를 해도
단 한대도 서기는 커녕
차선 꺽어서 풀악셀로 피해감.
먹은거라곤 조개+소주라
술기운 올라오고 지칠대로 지쳐버린 상황.
택시가 지나가길래 우선 잡아탔음.
서울가서 택시비 준다고 사정을 얘기했더니
꺼지라함.
결국 인근시내로 가서
은행에 숨겨뒀던 내 돈 찾아옴.
ㅅ1발 내 돈 15만원..
그렇게 살아 돌아옴.
6.
그렇게 리니지를 접나 싶었으나
PC방을 가도 스타말고는 할게 없다보니
결국 다시 리니지 시작.
오를대로 올라버린 아이템값에
복귀하는건 너무 막연한 상황..
멤버 7명중 4명이 남았는데
그 4명이서 법피를 해보자는 제안이 옴.
(법피: 마법사+PK의 준말.
여러명의 마법사가 ㅈㄴ 쎈 마법으로
한명을 한방에 죽인다음 아이템 먹는거.)
이게 돈이 되겠나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의외로 괜찮았음.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사실상 사이버 강도짓이다보니
현피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는거..
당시엔 워낙 법피가 많다보니
서버내 전체 채팅창엔
하루에도 몇번씩
“ooo법피단 PC방 위치 제보바람.
현금10만원 사례함”
이런식으로 현상수배가 뜨기때문에
PC방에서 자리잡고 하기엔 매우 위험했음.
3일정도 PC방을 옮겨가며
법피를 돌려보고 계산기 두둘겨보며
수익성을 확인한 끝에
4명이서 십시일반 모아 반지하방을 하나 얻고,
중고PC 4대를 맞춘후
당시 초고속 인터넷인 두루넷을 끌어왔음.
그렇게 시작한 리니지 작업장.
처음엔 ㅈㄴ 잘됐음.
정산하니 4명이서 하루 각자 50~70만원?
돈 쓸어담는 현실에 또 흥청망청..
2달쯤 됐을려나..
정당방위 시스템이 기습 업데이트됨.
쌍방 공격시 자동결투가 인정되서 아이템드랍x.
이미 버는 족족 써버린터라
투자금 회수도 못하고 그렇게 망함.
빡쳐서 자원입대 신청했는데 3달뒤 영장나옴.
그렇게 입대하고 군대 잘 다녀옴.
내일이 없던
아련한 20대 초반의 추억.. 그립긴 한데
지금은 게임 접고 열심히 사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