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아니면 화장실에 가지않는 친구와 여행 갔다가 생긴 일

언제나 시련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찾아오기 마련이다.

신은 언제나 감내할 수 있을 정도의 시련만 준다고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어느 태양이 뜨겁던 여름날,

그에게 일어난 변은 잘못된 장소에서 보여져서는 안되는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그에게 있어 신은 죽었다.

친구가 자전거를 샀다.

그 친구는 무슨 일이건 간에 흥미가 생기면 금방 꽂혀버리는 성격이었는데

이번엔 또 어디서 뭘 보고 온건지 MTB 자전거를 덜컥 사버리고 만 것이다.

쉽게 빠지는 성격탓에 취미도 많았고 모으는 것도 많았지만

쉽게 빠지는 만큼 흥미를 잃는 것도 빨랐다.

달궈졌다 식는게 양은냄비 못지않아 이번엔 과연 얼마나 갈까 지켜보고 있는데

그래도 이번엔 제법 오래 가는것 같았다.

혼자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다니더니

우리들에게 자기 친척네 시골동네로 자전거 하이킹을 가자는 것이었다.

하이킹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한가지 걱정되는 건 날씨였다.

항상 우리가 여름에 어디론가 놀러가면 그날은 꼭 비가왔다.

몇 년 동안을 같이 놀러다녀봤지만 비가 오지 않은적이 한번도 없었을 정도였다.

“괜찮을까? 비오는거 아냐?”

“아니야. 이번엔 안올거야. 일기예보 다 확인해봤어.”

친구는 이미 사전조사까지 마쳤는지 자신감 있게 얘기했다.

“가자. 거기 되게 좋아. 산길도 있고 자갈길도 있고 재밌을거야.”

결국 우리는 친구의 꾀임에 넘어갔고 그 주 주말 설레임 반 불안함 반을 안고 시골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친구는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친구네 친척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점심을 먹고나서 우리는 바로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다.

확실히 오랜만에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면서 맑은 공기를 맡으니

나도 조금씩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웬일로 날씨도 우리를 돕는지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였다.

마을을 벗어나니 점점 인적도 줄어들었고 앞에 보이는 것은 숲과 들 그리고 산뿐이었다.

얼마나 산길을 달렸을까.

친구에게 문제가 생겼다.

맑은 하늘과는 달리 친구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지고 점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가끔 주변을 보면 유별나게 생리현상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

밖에 있을때에도 굳이 볼일을 보기위해 집에 들어간다던지

화장실이 지저분하면 일을 못본다던지 하는 사람들..

그 친구가 그런 케이스였다.

익숙한 장소에서 마음의 평화가 항문에까지

전달이 되야만 일을 볼 수 있는건지

장소불문하고 휴지만 있다면 언제나 쾌변하는 나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그 친구는 그랬다.

적어도 지붕이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게 그 친구가 일을 볼 때 따지는 최소한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직장인이었다.

식도에서 항문까지 직선코스로 하이패스가 개통되어 있는지 밥을 먹고나면

아무리 오래 걸려도

30분이면 화장실에 가야하는 그런 놈이었다.

그리고 집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지붕이 있는 장소여야 한다는게 그 놈이

일을 볼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들뜬 나머지 화장실에 다녀와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만 것이었다.

평소에 동네에서 술을 마시다가도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집으로 향하는 녀석을 보고

저러다 한번 바지에 질펀하게 싸질러봐야 정신을 차리지 라고 말했던게 생각났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인것 같았다.

친구의 안색은 점점 더 안좋아졌다.

“큰거냐?”

“… 둘다..”

“그냥 아무데나 들어가서 싸! 어차피 사람도 없는데 뭘 참고있냐.”

하지만 친구의 의지는 완고했다.

화장실이 나올때까지 참으면서 강행돌파 하겠다는 친구의 단호한 모습에

진정한 프로대변인의 모습을 발견한 나는 그만 감탄하고 말았다.

그렇게 아픈배를 쥐어잡고 친구는 달리기 시작했다.

속도는 점점 빨라져 어느새 우리들 중 선두로 치고나갔고

언덕길을 평지처럼 달리는 모습을 보며

저게 진짜 지조있는 X신이구나. 라고 다시금 깨달았다.

뒤따라가는게 벅찰 정도였다.

마침내 우리는 산길을 벗어났고 속도는 더더욱 빨라졌다.

미친듯이 치고나가는 친구를 보며 저놈이 드디어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친구가 갑자기 멈춰섰다.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다행히 친구에게선 아무런 육신의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고 냄새도 나지 않았다.

우리를 돌아보는 친구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인간의 얼굴이 저렇게 순식간에 노래질수도 있구나.

친구는 세상의 모든 고통과 번뇌를 끌어안은 표정이었다.

얼굴은 노래지다 못해 심슨 실사판을 보는듯 한 느낌이었다.

얼굴만 놓고 봤을땐 친구는 금방이라도 무지개다리를 건널 것만 같았다.

“뭐야? 왜 멈춰?”

친구는 대답없이 슬픈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친구쪽으로 다가가서 앞을 보니 출발하기 전 친구가 했던말이 떠올랐다.

‘거기 되게 좋아. 산길도 있고 자갈길도 있고… 자갈길도 있고..’

자갈길이었다.

겨우 도착한 평지는 온통 자갈밭이었다.

자전거의 성능이 아무리 좋다한들 저런 자갈밭을 아무런 충격없이 지나가기란 불가능했다.

멀쩡한 상태에서 건너더라도

진동을 통해 항문으로 전해지는 충격이 만만치 않을것처럼 보였다.

하물며 지금처럼 몸속에 시한폭탄을 안고있는 상태라면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 불보듯 뻔해보였다.

게다가 이미 녀석은 한계에 다다른것 처럼 보였다.

녀석의 작은 감나무에서는 묽디 묽은 홍시가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우리는 이건 진짜 무리라며 차라리 그냥 지금이라도

어디 숲속으로 들어가 거사를 치루고 나오는게 낫지 않겠냐. 라고 친구를 설득했다.

하지만 친구는 결심을 굳힌듯 그대로 몸을 돌려 자갈밭을 향해 돌진했다.

남자다.

이놈은 진짜 남자였다.

친구로써 우리가 해줄수 있는 유일한 일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친구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마침내 자갈밭을 건넌 친구는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친구를 보고 우리는 당황했다.

그리고 뒤늦게 친구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자 친구의 자전거가 보였다.

친구는 온데간데 없고 자전거만 길바닥에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그리고 옆 수풀에 급하게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평소에 애지중지하던 자전거를

저렇게 아무렇게나 내팽개 쳐놓은걸 보니 급하긴 급한 모양이었다.

친구의 자전거가 점점 가까워지는데 바닥에 이상한 흔적이 보였다.

비가 오지도 않았는데 땅이 젖어있었다.

왠지 그 젖은자국에서 옅은 암모니아 향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설마?

그럼 친구가 한게 분노의 질주가 아니라 분뇨의 질주였단 말인가?

우리는 충격에 빠졌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우리는 보험조사원이라도 된것처럼 사고현장을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젖은 자국은 자전거에서부터 수풀까지 이어져 있었다.

현장검증을 마친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달리던 친구는 더이상 참지못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작은 수도꼭지를 열게 되었고 한번 터져나오기

시작한 수도꼭지에선 겉잡을수 없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을 것이다.

앞문이 열리니 자연스럽게 뒷문도 열리게 될것이고 차마

그 상황까지 가게 만들 순 없었던 친구는 자전거를 내팽개친채 그대로 수풀로 달려갔다.

그게 지금까지 살펴본 정황으로 내린 우리의 결론이었다.

오줌으로 스키드마크를 그릴정도면 그 때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친구가 다시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친구는 더이상 힘겹지도 괴롭지도 않아보였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친구의 바짓가랑이는 흠뻑 젖어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외쳤다.

“오줌싸개다!”

“예비군 4년차가 바지에 오줌을 쌌다!”

친구는 당황한 얼굴로 오줌이 아니라 물병이 터져서 물이 샌거라도 변명했지만 이미 우리에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사실 친구가 들고있던 물병이 터진걸로 봐선 친구의 말이 맞았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미 친구의 바지는 젖어있었고

그 광경을 우리에게 들킨 이상 단지 오줌싸개일 뿐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친구를 놀리고 있는데 문득 초등학교때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화장실에서 똥을 싸고 나오던 친구를 놀리던 그때의 기억이 오버랩됐다.

친구에겐 그때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던 걸까.

그래서 지금까지도 굳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집으로 가는걸까.

어쩌면 지금 친구를 오줌싸개로 만든건 과거의 어렸던 우리일지도 몰랐다.

괜시리 마음이 짠해졌다.

우락부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이렇게 마음도 항문도 약한 친구일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우리는 그 후 한동안 금요일만 되면 친구를 찾아가 오늘은 요실금요일이라며 친구를 놀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