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에게 절대 꼰대는 되기 싫은 ‘인셉션 복학생’

『복학생』

복학을 하면서, 나는 남들같은 꼰대복학생이 되지 않기위해 노력중이다.

군대에서부터 신입생 여자후배들의 술자리를 꿈꿔왔지만,

어설프게 끼어들면 흔히 말하는 꼰대복학생이 될까봐

‘내가 끼어들면 민폐지.

화석은 조용히 다녀야지.’

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주제를 잘 아는 멋진복학생의 풍모를 보여왔다.

하지만 이런 체면치례도 오늘로 끝이다.

후배들을 배려하는 멋진 모습을 꾸준히 보여왔으니, 오늘은 자연스러운 술자리합석을 시도할 것이다.

헛기침을 몇번 하고 남자후배 태영이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어쩐일로 전화주셨어요?”

“내일 수업때문에 뭐 물어볼게 있어서. 다름이 아니라…”

좋았다. 자연스럽다.

“알려줘서 고맙다 태영아. 근데 뭐하는중이야?”

“형 저 신입생 애들이랑 탁사발에서 술 마시고 있어요!”

사실 알고 전화했다.

가천관 복도에서 오늘 신입생들과 술을 마실거라는 대화를 들었다.

하지만 티를 내서는 안된다.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아 그래? 나 근처인데… 잠깐 얼굴이나 볼까?”

“진짜요? 형! 그럼 탁사발 오세요! 애들 소개시켜드릴게요!”

“음… 그럴까? 대신 잠깐이다. 내가 있으면 애들 불편하니까.”
성공이다.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꼰대느낌없이 술자리에 합석하기로 했다.

이게 바로 뭣도모르는 꼰대복학생들과 나의 차이다.

재빠르게 외관을 점검해본다.

유행했던 지드래곤 스타일의 처피뱅.

아직 밤에는 약간 쌀쌀하지만

군시절 작업으로 다져놓은 굵은 팔을 자연스레 보여주기 위해

흰색 지오다노 반팔티를 골라입어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아이돌 룩을 완성했다.

만족스럽다.

탁사발에 들어가 태영이녀석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태영이가 내 소개를 하는동안 슬쩍 안경을 밀어올리는데, 앞에 앉은 후배와 눈이 마주쳤다.

트와이스의 다현을 닮아 웃는게 매력적이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17학번 김민지입니다!”

그 순간, 나는 사랑이 시작됐다는걸 느꼈다.

술이 몇 순배 돌았을 무렵, 자리는 시끄러워졌지만 나는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말많고 어줍잖게 웃기려 하는 사람보다 과묵하게 앉아있는 진중한 남자가 더욱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페이스북에서 읽어두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생각없이 군대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바로 페북에서 말하던 꼰대복학생으로 낙인이 찍힐터이다.

몇명이 화장실을 가고 자리가 어수선해진 순간. 나는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긴장되지만 전역전날부터 이미지 트레이닝 해온대로 슬쩍 일어선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온 컨디션을 주머니에서 꺼내 민지 손에 쥐어준다.

그리고 스무스한 동작으로 핸드폰을 내밀어 연락처를 받는다.

민지가 머뭇거리며 번호를 찍는 동안, 옆의 후배들이 민지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질투의 시선이 틀림없다.

나는 번호를 받고 자연스럽게 일어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성공적이다. 임팩트있는 첫인상이었을 것이다.

나오는 동안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후배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배려심있고 진중한 선배에 대한 흠모의 시선이었으리라.
그 뒤로 나는 민지와 매일 연락을 했다.

다영이는 카톡 답장할 시간조차 내기 힘들정도로 바빠보였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락을 지속해왔다.

그리고 결국 한달만에 둘만의 술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드디어 고백의 기회가 온 것이다.

대망의 약속날, 나는 어린애들이나 입는 보세셔츠가 아닌, 남자의 상징 정장용 와이셔츠를 입음으로써 어른스러운 멋짐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바지로는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슬렉스를 입었다.

허벅지가 약간 끼는 것 같지만, 이건 단순한 살이 아닌 행군과 작업으로 단련된 다리니까 오히려 남자다움을 보여줄 수 있을거라는 계산이다.

민지를 만나서 바인하우스에 들어갔다.

사장님이 메뉴판을 건내주려 했지만, 나는 곧바로 군대후임에게 배워온 멘트를 던졌다.

“여성분은 술을 잘 못마시니까 상큼한 준벅으로, 저는 칵테일의 왕 마티니 한잔. 보드카 베이스로.”

호스트바 출신이라던 후임의 설명으로는 한번의 멘트안에 여성에 대한 배려심, 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 거침없는 결단력이라는

세가지를 삼위일체처럼 골고루 담아낸 것이라고 했다.

효과가 있었던 듯, 민지는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선배님, 말씀드릴…”

하지만 고백은 남자가 해야지.

“민지야. 오빠라고 부르라니까? 그리고 무슨말 하려는지 알겠는데, 그래도 고백은 남자가 해야지?”

“네?”

“남자인 내가 고백할게. 민지야 우리 사귀…”

“선배님 그말이 아니에요. 앞으로 저한테 연락 안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죄송하지만 선배님 연락하시는거 너무 부담스러워요. 이 말 하려고 온거에요. 저 이제 가볼게요.”

…방금 잘못들은건가?

씁쓸하다. 배려심과 남자다움, 진중한 모습까지 보여줬지만,

그런 매력들보다도 복학생이라는 신분 자체가 주는 부담감이 더 큰 모양이다.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복학생은 복학생이
라는건가… 이 모든건 군대 때문이다.

어쨌든 앞으로는 신입생들이 부담스러워 할것같으니, 아쉽지만 술자리도 나가지 말아야겠다.

씁쓸한 생각들을 곱씹으며 걷고있는데,

누군가 인사를 한다. 1학년때 같은 동아리였던 후배녀석이다.

“형! 복학하셨어요? 저 재민이요 형!”

“어? 어…”

“왜 복학하셨는데 동아리 안오세요?”

“이제 화석이니까 가면 민폐지.”

“그런게 어디있어요! 형 지금 야작에 동아리 사람들 있는데 같이가서 마셔요. 지연이누나랑 연희있고 신입생들도 있어요!”

신입생…?

“…그럴까? 대신 잠깐이다. 내가 있으면 애들 불편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