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가 너무 궁금해지는 ‘3년 짝사랑’ 썰 (+후기 포함)

안녕. 나는 졸업 앞두고 취준하는 4학년인 사람이야.

요즘 취업 준비하느라 정신도 없고, 이래저래 피곤한 일이 많아서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데,

더 지치는 일이 생각나서 푸념이나 좀 해볼까 해.

필력도 노잼이고 썰 내용도 더더욱 그렇겠지만,

그런 필력에 그런 썰을 가진 사람도 가끔은 푸념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너그러이 용서해주길 바라.

나는 벌써 3년째 누군갈 짝사랑하고 있는 진성 모쏠이야.

복학하고 나서 같은 학년에 2살 어린 후배한테 반했는데,

그때 친구 아무도 없이 혼자 복학해버려서 학교 적응도 어려었고

또 성격도 소심한 편이라 걔한테 말도 잘 못 걸고 그랬지.

결국 아싸 생활만 하다가 한 학기가 지났어.

그러다가 2학기 때 내 친구들도 복학을 했는데, 한 친구가 걔가 맘에 든다고 막 찝적대더라.

나는 그제서야 내가 그 여자애한테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았어.

왜냐면 너무 불안했거든. 내 친구랑 잘 될까봐. 내 친구가 아니라 나랑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너무 샘솟더라.

그런데 내가 찜했다고 친구한테 말한 적도 없고, 건들지 말라고 으름장 놓는다고 내가 사귈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억장 무너지는 거 참아가면서 그냥 그땐 친구보고 잘 되보라고 응원해주고 그랬어. 억지웃음 지으면서.

물론 그 여자애는 나처럼 모쏠인데 철벽녀여서 친구는 몇 번 시도하다가 맘 접었고, 나중에 친구한테 내가 걔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놨긴 하지.

그 친구는 대학교에서 나랑 제일 친한 친구고, 그 뒤로도 아직도 잘 지내.

여튼 그런 일로 내가 진심으로 걔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았는데, 도저히 접점을 못 만들겠더라.

나는 복학 첫 학기 때 좀 많이 우울감에 젖어 있어서 그게 잘 회복도 안 됐고,

그래서 심리상담 받으러 다니고 이럴 때라 접점을 만들 용기도 안 났고.

그렇게 2학기도 허송세월 보내고, 심리상담 끝난 겨울방학 쯤 돼서야 겨우 용기 내서

같이 밥 먹자고 연락도 해봤지. 그땐 어색했는지 자기 친구를 데려왔던데

실망한 티 안 내고 그냥 “친구로 알아가는 게 먼저니까” 라는 생각으로 만났어.

그걸 시작으로 “친해지기”부터 해보자고 마음 먹었지.

그런데, 친해지는 게 너무 어렵더라.

친해지려고 노력하면서 내 짝녀가 처음 밥 먹었을 때 데려온 여자애랑도 친해졌거든?

짝녀랑 그 여자애랑 친하기도 했고, 좋아하는 애 친구들이랑 친해지면 좋지 뭐 그런 생각이었으니까.

실제로 두루두루 친해지다보니 짝녀랑 짝녀 친구들이랑 껴서 술자리도 종종 갖고

그러면서 조금씩 짝녀랑 친해지는 거 같더라.

그런데 딱 거기까지. 단둘이 있을 때는 걔가 어색한 표정을 잘 못 숨기더라.

그렇게 여럿이서 술자리 종종 가지고서 또 불쑥, 먼저 밥이나 한 끼 하자고 하면

엉겁결에 혼자서 나오긴 하는데 정말 그 표정은……아직도 상처일만큼 그런 표정이었어.

자격지심이려나? 그래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어. 얘 말고도 몇 번 까여봐서 느낌 아니까 ㅎㅎ…..

여튼 그런 식으로, 여럿일땐 친하지만 단둘일 땐 어색한, 그 즈음에서 3학년 1학기가 흘러가고 있었어.

방법이 없을까? 너무 고민됐어.

찔끔찔끔이라도 친해지기 시작하니까 도저히 마음을 못 접겠는거야.

그러다가 그 여자애가 3학년 2학기 여과대를 할 차례라는 걸 알게됐어.

옳거니 하고 나는 덥석 남과대 자리를 물었지.

아직도 학교에선 준아싸였는데, 진짜 나로썬 큰 용기였어.

왜 그런 용기를 냈냐면, 우리 학교는 3학년 여름방학 때 졸업 여행을 가.

그리고 3학년 1학기 중순 쯤에 3학년 2학기 과대를 뽑아서

그 졸업 여행 준비를 2학기 과대가 하는 식으로 돌아가거든.

그래서 걔랑 같이 여행 준비하면서 서로 동고동락하고, 고생도 좀 하고,

그러면서 또 친해지는 게 있겠지? 카톡도 자주 하고? ㅎㅎ…ㅎㅎㅎㅎ!!

뭐 이딴 생각에 차있었지.

결과적으로 연락은 자주 했어. 일이 많아서 연락을 자주 해야 했거든.

단체 숙소 찾으랴, 단체용 버스 예약하랴, 식당 예약하랴…..

진짜 난 죽을 뻔했는데 여자애한테 폐 끼치기 싫어서 이 악물고 일했지.

여자애랑 연락도 자주 하게 되니까 그 힘으로도 버티고.

그것 때문에 서로 만나는 일도 잦아지고, 연락도 자주 하고,

뭐 그러면서 지냈고, 여행도 결국 꽤 괜찮게 준비한대로 진행됐어.

그렇게 내 관계도, 잘만, 진행될 줄, 알았지.

근데 정말 인연이라는 게 있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친해지더라.

친함과 어색함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을 뿐, 여전히 친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어.

서로 가까워지고는 있지만 결국 평행선이 되어가는 것 같은,

어떠한 교점도 못 가질 거 같은, 그런 느낌을 자꾸만 받게 됐어.

그러면서 실망과 설렘의 반복에 지쳐서 자포자기 할 때도 많았고.

진짜 크게 낸 용기가 이런 식으로 무너지면서 조금씩 나도 어두워져갔어.

물론 그 와중에도 힘들게 얻은 사이니까 잃기 싫어서,

짝녀 친구들과 가끔 있는 술자리는 늘 나가서 웃고, 떠들고,

그 여자애 몰래 훔쳐보면서 괜히 가슴 졸이고, 뭐 그랬지.

그렇게 계속 감정 소모에 지쳐 떨어져 나가면서 4학년 1학기가 시작됐어.

4학년 1학기가 시작되니까 졸업시험이 기다리고 있어서 다들 공부에 집중하는 분위기였어. 나도 물론 마찬가지.

나랑 대학교에서 제일 친한 친구는 딱 2명 있는데, 걔네들은 전부 공부를 잘해.

나는 아싸 생활할 때 공부만 했고, 또 친구들 따라 잡으려고 영향을 받아서

개네보다는 아니지만 못하는 편도 아니야. 그냥 중상, 그럭저럭.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한테 질문 받고 가르쳐주는 일이 종종 생기는데,

그러면서 어느 날 내 친구(찝적댔다 까였던 애 말고 다른 친구)랑 짝녀가 점점 친해지고 있는 걸 보았어.

내 친구가 공부를 워낙 잘하다보니 걔한테 질문하는 애들이 많은데, 그 여자애도 그 중 한 명이었고

짝녀도 공부를 좀 하는 편이라 질문이 많았는지 자주 그러면서 서로 친해졌다고 하더라.

그렇게 나는 1년이 넘도록 고군분투해서야 얻은 사이를, 내 친구는 너무도 쉽게 얻는 걸 봤어.

내 친구가 쓰레기냐면, 그건 아니야. 내 친구는 지금 4년 넘게 만난 여자친구도 있고,

결혼까지 생각중인 친구야. 다만 여자친구가 사범대생인데 임용고시에서 2번 낙방을 했었어.

그때 2학년, 3학년이었던 내 친구는 여자친구를 너무 아끼는 나머지 심지어 시험 낙방한 거까지 다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해서

굉장히 우울해있던 아이였고, 올해 여자친구 임용되고 나서야 엄청 성격이 밝아졌어.

그러면서 주위 사람들도 잘 사귀고, 그 잘 사귄 사람 중 하나가 내 짝녀였던 거지.

정말 너무 친해보이더라. 벌써 걔랑은 말도 놓고, 장난도 스스럼 없고.

내가 가장 부러운 건, 내 친구는 사랑을 받아봐서 그런지

사람과 가까워지는 법이 몸에 배어있는 거 같았어.

1학기에 대형 강의실에서 학교 전체 학생들 대상으로 특강이 있었는데,

우연히 지금 말하고 있는 내 친구랑 내 짝녀랑 나랑, 셋이 나란히 앉게 됐어.

그런데 짝녀가 내 친구한테 재잘재잘 말하면 친구가 정말 반응을 잘 해주더라.

누가 봐도 기분 좋게, 적당히, 점점 친해질 수 있을 정도로 잘 받아주더라.

어떤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동물적인 감각인 거 같았어.

아니면 사랑 받아본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라던지.

정말 나랑 가장 친한 친구인데도 처음으로 증오스러울만큼 부러웠어.

물론 결국 나에 대한 증오지. 이정도 밖에 못하는 나. 결국 이정도인 나.

그렇지만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자애와 내 친구가 그렇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게

그런 이유라면, 노력해서 얻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

너무 육감적인 거라 따라할 수도 없을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정말 너무 우울해져. 매일 그 여자애의 반응에 따라 내 하루 기분이 다 결정 돼.

여태까지 나의 노력으로 쌓아올린 친분, 그걸로 인해 내가 누릴 수 있는 대화보다

어쩌다 살다보니 얻게 된 친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 모습으로 대했을 때 나눌 수 있는 대화가

더 애틋하고, 설레고, 사랑스러워 보일 때마다

길거리 모든 게 가루처럼 부서져서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느낌을 받아.

늘 그런 먼지더미로 샤워를 하는 기분이야.

오늘 우연히 그 대형 강의실에 들리게 되었어.

거길 나오면서 지금까지 떠든 내 대학생활을 곱씹어보고 있는데 가로등에 나방이 달라붙어 있더라.

그 전등불에 결코 가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제 몸을 부딪히고 찢어발기고 있더라고.

저 불빛에 몸이 닿으면 날개가 떨어져 나갈텐데,

너만 힘들텐데, 왜 그러고 있냐고 묻고 싶어졌어.

너가 원하는 그 불빛을 어떤 사람은 주머니에서 라이터 꺼내듯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늘상 그래왔다는 듯, 그렇게 만들어내는데

넌 대체 뭐하고 있냐고.

내 얘기는 여기까지야.

혹시라도 다 읽어준 사람이 있다면 정말로 고마워.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안녕. 나는 예전에 여기에 3년동안 짝사랑한 썰이라고 주저리주저리 글을 썼던 대학생이었어.

지금은 얼떨결에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야.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교사라는 일에 뿌듯하기도 하지만

날이면 날마다 싸워대는 애들과 신규인데도 가차없이 쏟아지는 업무들에

퇴근하고 나면 마냥 침대에 널브러져 바닷가 물미역과 다를바 없이 3개월을 흘려보냈어.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다 보니 힘들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 때도 있더라.

그러다가 문득 예전에 끄적거렸던 내 옛날 이야기도 종종 떠오르더라고.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기억에서 지워지겠거니, 했는데

글로든 뭐든 뱉어내지 않으면 왠지 계속 떠오를 거 같길래

생각난 김에 그 뒷얘기나 끄적거려 보려고 해.

제목에서부터 적어놨지만

3년이나 한 여자애 때문에 마음앓이를 하고서도 나는 고백에 실패했어.

고백했다 까인 것도 아니고 시도조차 하지 못한거야.

고백할 결심도 못 내리고 포기했느냐, 하면 물론 그건 아니고.

대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굳은 결심을 내렸어.

고백하고 마무리 하자.

이제 대학을 떠나고 고향으로 내려가 직장을 얻으면 걔를 볼 일도 없으니까.

고백해도 안 받아줄 거 뻔히 알지만, 살면서 이따금씩 실패할 줄 알면서도 해아할 일이 있다고

그렇게 패전처리 투수같은 심정으로 결심을 했어.

내 보잘 것 없는 글솜씨에 많은 응원을 해주길래

편지지를 사다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한 번 쏟아보기도 했어.

사실 편지지에 바로 휘갈긴 것도 아니고

한글 오피스를 켜서 키보드로 몇 시간이고 두들기고, 수정하고, 글을 다듬고

내가 끙끙 앓았던 마음들을 통쾌하게 날려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다시 적었어.

그런 생각이 들고 나서야 모니터를 보면서 편지지에 글을 옮겨적었지.

그렇게 졸업식 날이 되었어.

학교에 도착해서는 가장 먼저 나와 제일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만났어.

내가 좋아하는 그 여자애랑, 나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친해져버린 그 친구랑.

너무 질투도 나고 꼴도 보기 싫었지만 결국 마지막엔 그 친구를 찾게 되더라.

그렇게 증오했으면서 왜 그 친구를 불러냈는지, 괜히 스스로에게 피식 웃음이 나왔어.

아무튼 그 친구랑 같이 졸업식장에 가보니 대학생활동안 같이 고생했던 친구들, 후배들이 모여서

다들 서로 축하하는 분위기로 들떠있었어.

나도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의 친구들이랑 사진도 찍고 했는데 그 여자애만 안 보이더라.

그래서 남몰래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걔는 뒤늦게 가족들과 졸업식장에 도착을 했어.

늦게 왔네, 라고 먼저 인사했지만 짧게 대답하고서 그 여자애는 친구들 틈 속으로 사라져버렸어.

“시험 붙은 거 축하해, 이제 선생님이네!”

오자마자 친구들 축하를 한 몸에 받으니 수줍게 손으로 입을 가리는 그 여자애를 보면서

난 안주머니에 넣은 편지봉투를 땀이 살짝 배인 손으로 괜히 만지작거릴 뿐이었어.

가족들이랑 사진 찍느라 신이 난 내 가장 친한 친구가 뭐라고 나한테 떠들어댈 때도

그냥 대충 지은 웃음으로 대꾸를 할 뿐이었고.

그 날따라, 여자애가 너무 예뻐보였어.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라 괜히 내 기억이 그 모습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건지는 몰라도

걔를 알고 지냈던 모습 중에는 가장 예쁘더라.

졸업이라며 다들 힘주어 화장한 여자애들 사이에서도

평소와 같이 수수한 정도로 꾸민 그 모습이 얼마나 매력있어 보이던지.

하지만 그 자태는 멀찍이서 자기 친구들과 재잘거리는 모습으로만 기억에 남아 있어.

우리 과 친구들과 학사모를 던지며 단체 사진을 찍고

남자들끼리 사진 한 방 찍자! 하는 인싸 친구의 외침에 또 쪼르르 달려가서 사진 찍고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과 사진을 찍을 동안

여자애들은 자기들끼리 못다한 이야기로 바쁘게 수다를 떨었고

그 여자애는 그 속에서 무척이나 즐거워보였어.

그 주위에 나는 없었어서, 그냥 멀찍이서 본 게 내 기억의 전부야.

그냥 다가가면 됐을텐데, 왜 다가가지 못했냐면

지금도 이해가 안 되지만, 그 즐거워하는 모습이 왜 그렇게나 서러웠을까.

멀리서 그 여자애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한참이나 보고 있는데

인정하기 싫은 믿음이 마음 속에서 꿈틀댔어.

저 여자애가 즐거워하는 모습 속에 나란 사람은 없어도 된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은 확신이 됐어.

여자애가 친구랑 웃고 떠들다가 갑자기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누군가를 찾는거야.

과연 누굴 찾는 걸까, 되지도 않는 기대를 하면서 그 모습을 힐끗 봤는데

자기가 찾던 사람을 발견하고는 쪼르르 달려가더라.

내 가장 친한 친구였어.

오빠, 마지막인데 사진 찍자

하는 여자애의 목소리가 멀리서도 느껴졌어.

내 친구 쪽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면서 브이 포즈를 하고

여자애 아버지가 하나, 둘, 셋! 하는 소리를 듣는데 확신이 생겼어.

오늘같이 특별한 날에도, 나는 저 여자애한테 전혀 생각나지 않는 사람일 뿐이구나.

그렇게 끝까지 그 여자애는 나를 찾지 않았어.

참 스스로에게 미안하더라.

너를 생각도 않는 사람에게 3년이나 쏟아붓다니.

이제 더 이상 너 스스로가 비참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렇게 다독이면서, 수트 안에 넣어준 편지는 그냥 꺼내지 않기로 했어.

나는 KTX까지 타고 이 먼 곳까지 따라와준 부모님한테 미안해서

부모님하고 학교 구경하고 다시 돌아왔고

돌아왔을 때 내 친구와 그 여자애는 둘이서 학사모 반납하러 과 사무실로 같이 올라가고 있더라.

갑자기 그 모습에 혼자 울컥하길래

겨울 바람 맞으면서 건물 주위만 빙빙 돌다가

사람 없을 때 나도 학사모 반납하러 건물 들어갔는데

내 친구랑 여자애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버렸어.

어색한 인사로 웃음을 주고 받은 게 그 여자애에 관한 마지막 기억이야.

내가 학사모를 과 사무실에 주고 내려왔을 땐 여자애가 가족들이랑 차에 올라타고 있었어.

친구들한테 손을 막 흔들면서 다들 잘 살아! 하며 막 웃고, 내 친구한테도 따로 인삿말을 건네더라.

내 한 번 뿐인 졸업식은 그렇게 끝났어.

열심히 써둔 편지는 내 정리 안 된 책장 어느 한 구석에 처박혀있을텐데

다시 책장을 정리할 용기는 아직 안 나고.

같이 선생님이 된 내 가장 친한 친구랑은 가끔씩 전화해서 각자 자기 학교 얘기나 하며 낄낄대는데

끊고나면 참 허전해. 일도 힘들고 마음도 헛헛하고.

학교에서도 아직 동료 선생님들하고 못 친해지고 겉도는 거보면

내가 사람 만날 용기를 잃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이전에 글을 썼을 때 내가 나방 얘기를 했었더라.

강의실을 나오는데 갖지도 못할 가로등 불빛에 제 몸을 찢어발기던 나방 말이야.

남들은 라이터에서 불 꺼내면 금방 얻는 그 불빛에 몸을 던져대는 나방.

이제 그 불빛은 꺼진 듯해.

그래서 당분간은 무모하게 어딘가에 부딪히진 않겠지.

그저 불빛이 보일 때까지 날아보겠지만

이미 다친 날개로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 겁이 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또 불빛을 볼 수 있긴 할까.

오늘도 얘기가 길어진 듯하네.

이번 글마저도 읽어준 사람이 있다면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너희들은 좋은 일만 있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