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없어서 7년 동안 노숙생활 했다는 26살 여자의 ‘생존 방법’..

난 흙수저 금수저 이런 거에 끼지도 못함

애초에 집이 없었으니

그냥 수저 자체가 없었음.

가끔 흙수저 글이나 기초수급자 글을 보는데

나만큼 최악의 경우는 못 본 것 같다.

다들 힘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부모님이 경제활동을 하셔서

결국 차츰 나아졌는 식의 전개가 나한테는 없더라.

뭐 내가 유일하게 제일 힘들었어! 이건 아니고

그냥 이런 애도 있구나 하고 봐주삼.

“아프리카 사는 애들은 너보다 더 힘들어”

이러면 내가 거기서 안 살아봐서 모르겠음

다음 회차 때 살아보고 비교 후기를 가져올게.

나는 10살 때부터 17살까지

세 식구가 집이 없어서

찜질방, PC방에서 잠을 청했고

돈이 없을 땐 병원이나 교회 의자에서 자다가

쫓겨난 적도 엄청 많다.

그때 당시에는 이마트나 홈플러스가 24시간이라

그런 곳에서 날밤 새운 적도 간혹 있음.

한 번은 자다가 머리에 이상한 감촉이 들어서 보니까

새벽에 교회 경비원이 열쇠 꾸러미로

내 머리를 툭툭 치더라

나가라고.

당시 내 나이 14살.

찜질방은 목욕을 해야 하니 2-3일에 한번 갔고

PC방에서는 새벽시간에 가서 2,3시간을 하고

의자에서 잠을 잤다.

피방비 대부분 5-600원 하던 시절임.

사담이지만

정말 찜질방이란 찜질방은 다 돌아다닌 것 같다

늦게 들어가서 자고 이틀 있었던 적도 많고

걸리면 사정사정해서

이튿날 아침 일찍 나가는 걸로 봐준 곳도 있고

돈 한명이라도 추가금 냈던 적도 있고

그마저도 돈이 없으면 병원, 교회로 갔다.

당시에 세안이나 양치, 발을 닦는 등의 행위는

지하철,교회,도서관 등

공공장소 화장실을 주로 썼는데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쪽팔리더라.

물론 그 모습을 본 시민들에겐 아직도 미안함..

그때 당시엔 당연히 미안한 감정은 없었음.

1.살림살이 가방이나 짐들은 어찌했는가?

가구나 식기는 아예 존재하질 않았고

끽해야 옷 가방들인데 교회 창고에서 맡아줬음.

교회 창고를 매번 갈 순 없어서

짐을 좀 많이 들고 다녔는데

대형마트 100원 넣고 보관하는 물품 보관함에 맡기고

그날그날 찾고 하는 식으로 살았음.

이것도 가끔 에피소드가 있긴 한데

영양가 없어서 패스함.

2.아니 그럼 빨래는 어찌하는가?

짐작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빨래방가서 했음.

코인 빨래방 가면 500원 주고 사는 대형 봉투 큰 거 있지?

거기에 빨래 두 봉지 모아서 가서 빨고 했음.

한 번에 많은 양을 넣다보니 잘 안 마름.

돈 더 넣긴 그렇고.

번외로 10대 초반에 빨래 봉지 들고

버스 타거나 할 때 좀 많이 창피했음

3.음식은 어떻게 해결했는가?

수급자나 어려운 사람들 밥이나 뭐 그런 거

지원해 주는 게 있긴 한데

주거시설 집이 없으니 아예 못 받음.

나는 무료급식소가

노인분들만 가는 거라 안 가는 줄 알았는데

그냥 어머니가 그런 곳은 일부러 안 가신듯

대형마트 알뜰코너 삼각김밥 먹거나

식당 가서 찌개 하나 시키고

밥 세 공기 이런 식으로 먹거나

물론 안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진상 of 진상.

사담인데 카페라는 곳을

내가 일 시작하고 첫 월급 받고 처음 가봄

어떤 글에서 마냥

뭐 시킬지 몰라서 에스프레소 시킬 뻔하진 않고

가기 전에 미리 엄청 검색해보고 갔음.

4.왜 그런 생활을 했느냐?

‘돈이라도 빌려서 원룸이라도 얻지 그랬냐’ 라고 한다면

친정은 이혼한 상태니 아예 의미가 없고

어머니가 5형제인데 외가 쪽에서도

보증금 100만원 조차 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다들 사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뭐.

한 번은 영구임대 아파트 순번이

우리한테 들어와서 어머니가 진짜 수소문해서

300만 원 빌려보려 했는데 안돼서 그냥 나가리 됨.

순번 온 거 넘김..

그이고 외할머니 집에 가끔 갔는데

어느날부터는 문 안 열어주고 쫓아내더라.

시설에 들어가는 방법도 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안 됐던 걸로 알음.

한 번은 시설에 이틀간 잠깐 있었던 적이 있는데

가출 청소년? 모르겠고 아무튼

그런 애들만 모아놓은 곳인데

’존나 무섭다‘ 라기보단

비행청소년 진짜 제대로 경험했음

잃을 게 없는 사람이 뭘 말하는 건지 간접 체험함

그러다 17살 때 노숙자 생활을

드디어 끝낼 수 있는 에피소드가 생겼는데

작은 외숙모가 100만 원 보증금 빌려줘서

원룸 얻고 이제 주거시설 생겼으니

동사무소에서 쌀도 살 수 있고 김치도 보내주고

정신과 의사 선생님도 와서 상담해주고

뭐 그랬음.

여러 곳에서 반찬도 보내주고.

그때부터 사람 답게 살기 시작한 거 같음.

지금 현재도 상황은 그닥 차이는 없지만

집은 LH전세에서 2년 계약 연장하면서 살고 있음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도 등급이 있는데

그때 3급인가 4급이었어서

한 달에 10만원 나왔나 그럴 거임

참고로 1급이어도 세 식구 주거급여랑

다 합쳐서 100-110 받았음.

3년 전에 난 세대분리해서 2인 80.

세대분리 한 지 3년 지나서

뭐 기생수 법이 어찌 바뀌었는가 난 모르겠다.

그리고 웃긴 게 일을 최대한 빨리하려고

알아보기도 많이 알아보고

구청이나 동사무소 가서 물어보기도 했는데

수급자인 상태에서 일을 하려면

안 좋은 점들이 정말 많았음.

일정 수준 이상을 벌면 수급비 환급을 해야 한다거나

수급자 등급이 내려간다거나

내려가면 병원비 혜택이 줄어듦.

그래서 내가 직장 구해서 23살에 나갔는데

갈 때 세대분리하고 감.

수급비는 2인 가정이 돼서 줄어들지만

내가 소득활동을 한다고 해서

불이익이 되는 건 없어지니까.

내 10대 시절은 정말 무지했고

옆에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진짜 하나 없었다.

뭐 폰도 내가 직장 잡고

23살에 첫 휴대폰이 생겼으니..

21세기에 인터넷도 제대로 못한 환경인 거지.

아 컴은 있었음.

외할머니가 집 얹혀살면서

초등학교 잠깐 다닐 때 가난하다고 쓰던 컴 줬었는데

그걸로 중졸 고졸 검정고시 준비하면서

가끔 게임하고 그랬음 ㅎㅎ

그래봐야 17살 때 집 생기고 나서 가져왔지만.

카트라이더 진짜 많이 했었는데 없어졌더라.

10-17살 때는 가끔 백화점이나

영화관 가면 공용 컴퓨터 있는데

그걸로 플래시 게임 하고 놀았음 ㅎㅎ

이것도 이젠 없어졌더라.

아무튼 지식을 습득할만한 환경이 아니라

아는 정보가 정말 하나도 없었다.

외할머니 집에서 쫓겨나고 나서는

당연히 학교도 못 갔고

친구도 없이 인생을 살아온,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결과는

매달 집에 생활비를 보내고

3년 동안 일을 하며

돈을 벌지만 친구는 커녕

무엇 하나 남지도 바뀌지도 않은 환경.

배운 게 없으니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의미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최종학력은 고졸 검정고시.

내 나이 26살.

가족관계 인적 사항을 앞에 먼저 쓰면

글이 재미가 없을까봐 이쯤에 적는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이혼했고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나이에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우리 집이 확 기운듯.

어머니는 60대 중반이시고

내 피붙이 한 명은 올해 32살이다.

어머니가 몸이 많이 아프셔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셨고

피붙이는 장애인이다.

32살이 될 때까지 직접 10원 한장 벌어본 적이 없음

신체적 장애는 없는데

정신상태도 일반인과 다르지 않은데도

아무것도 안 한다.

피붙이는 앞으로 거머리라고 할게.

딱 하나 하는거 있다.

다한증이라 땀이 잘나고

엄청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대인기피증이 있다

우울증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음

풍족한 집안이 아닌데도

저 나이 먹도록 아무것도 안 하고

걱정 없이 사는 걸 보면 없는 듯.

근데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이런 성격도

당연히 나도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으니 똑같았는데

직장 다니면서 욕 처먹고 하니까 다 고쳐지더라

성격이 그냥 아예 바뀌어버림 ㅎㅎ

그리고 내가 살아오면서

제대로 누릴 것을 못 누려서 그런가

어머니한테 과소비를 엄청 한다.

뭐 내가 비싼 걸 사거나 하는 건 아니고

나 자신한테 쓰는 돈은

식비랑 월세 교통비 다 합쳐서 70도 안 되는데

혼자서 취미로 나가는 돈도 일절 없고

살면서 해외여행은 커녕 바다도 못 가보고

비행기도 못 타보고 제주도도 못 가봤는데

저번 달 5월 휴가철에 어머니 모시고

거머리랑 난생 비행기도 처음 타보고

진짜로 탈 때 신발이랑 양말 벗고

가져온 슬리퍼 갈아 신음.

제주도 가서 비싼 호텔 가서 돈도 펑펑 썼음.

욜로족이라고 해야 되나?

다만 다른 점은

목적이 내 행복이 아니라 고생하신 어머니가 목적이라

내가 주말마다 3년 동안 빠짐없이 어머니 보러 가는데

갈 때마다 인원이 세명이고 하다 보니

뭐 영화를 보든 밥을 먹든

뭘 하든 3인분이 나가고

나 혼자서 금액을 내다보니 돈을 정말 많이 쓰게 되더라고

그래서 모은 돈이 100만 원이 안 됨.

뭐 이거 보고 ‘너처럼 할거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는데

낭비 개쩐다‘ 라고 말하면 할 말 없네 ㅜ

사실 이건 뭐 내 환경에서 로또나

정말 대박 나는 성공 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이 없는 한

결혼이나 서울 집 사는건 모아봤자 꿈도 못 꾸는 거라

돈을 못 모아서 걱정이야 라는 요지의 글은 아님..

문제는 한 3년 이짓거리 하니까

내가 최근 들어서 약간 회의감 든다는 거임

주말에 공부를 할 수도 있고

뭐 다른 걸 해도 나만의 시간이 생기는 건데

그러질 못하니까..

그리고 난 거머리를 엄청 싫어함.

만날 때마다 X신 새끼니 뭐니

왜 그렇게 사냐 하면서 욕함.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으면서

요리도 할 줄 모르고 심지어 빨래도 안 하고

다 된 빨래를 개지도 않음

당연히 청소도 안 함.

왜 이런 일기장에 써도 시원찮을

자기 치부를 밝히는 글을 쓰냐고 한다면

어차피 누군지 알아볼 사람도 없고

오히려 알아봐주면 고맙겠고 해서

새벽 감수성 젖었을 때 작성해둔 글임.

이런 뻘글이나 쓰는 불효 자식이니

효도 한번 해봤냐 라는 말이 나올 것 같은데

첫 알바 월급으로 냉장고 사드리고

알바 때려치우고 남은 돈 가지고

바로 상경해서 취직했는데

이제 햇수로 3년 차다.

매달 100만 원씩 드리다 지금은 70 50씩 좀 줄었는데

매주 토요일 2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어머니 뵈러 가서 맛있는 거 사드리고

카페랑 영화관 가고 그랬음.

최근에는 용돈 아예 안 드리고

살면서 어머니도 나도 부산이랑 제주도를 안 가봐가지고

난생 처음 비행기도 타보고 그랬다

물론 모든 경비나 비용은 전부 내가 부담함.

어머니 폰도 플립 사드렸고

매달 어머니랑 거머리 폰비 내가 부담하고

어머니 댁이 아파트인데 LH라서

주위에 편의점이 없는 탓에

물 편의점에서 사다 드시고 계시길래

일 시작한지 한 달만에 호구 자청하고

정수기 렌탈 3년 해가지고 내가 비용 부담 중임.

용돈 줄인 건 여행비 때문에

돈 다 써서 카드값 오버해서 그럼..

이제 부산이랑 제주도 가봤으니

한동안은 여행 같은 건 생각도 말아야지.

세 명분에다가 호텔 밥값 기차 다 혼자 부담이니

4-500 그냥 써지더라.

결과적으로 3년 일했는데

수중에 돈 오십만 원 밖에 없다.

네가 선택한 결과니까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고?

맞지.

회사 사람들부터 주변 사람들이

‘집이랑 연 끊고 살아야 돈 모을 수 있다’

그런 말 굳이 듣지 않아도

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음.

난 커뮤니티에 흙수저 관련 글 올라오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눌러본다.

‘네가 나보다 불행해?’

이런 X신 같은 마인드 장착하고

난 한동안,

‘아니 왜 고작 이런 거 가지고 흙수저 타령이야?’

이랬었는데

알고 보니 난 수저 자체가 없는 삶이었더라고ㅋㅋㅋ

유튜브 보면 학교생활이나

친구들과 어디 놀러 가는 영상들을 자주 보는데

볼 때마다 그냥 존나 미치도록 부럽고

진심으로 그냥 다시 태어나고 싶은 생각을 매번 함.

그냥 아예 다른 세계인 것 같더라고

뭐 돈 존나 생각없이 쓰면서 어쩌라는 거냐

그래서 넌 이런 원망할 시간에,

가정환경이 어쨌네 할 시간에,

노력이라도 했냐 동정 받고 싶은거냐?

그렇게 말한다면

네 동정 해주세요..

그냥 객관적으로 봐도 내 인생이 너무 불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