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 가자마자 서울 여학생과 사귀게 된 시골 촌티 남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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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때였나.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로 전학을 갔다.

원래 서울 태생이긴 했지만

경기도 시골 촌구석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다보니

온 몸에 소똥 비료 포대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확실히 서울 애들은

시골 순수 청년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어린 나이에도 인간관계에

계산을 하는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생경한 분위기는 점차 날 위축되게 만들었다.

소심한 시골 촌놈은

그렇게 학교에서 외톨이가 되었다.

우리반에는 좀 논다는 여자 애들 무리가 있었다.

내 기억에 네 명 정도가 그 멤버였는데

그 중에서 제일 약자 포지션인 애가 있었다.

이유라.

그리고 그룹의 나머지 애들은

유라를 내 여자친구로 만들어주었다.

말도 없고 친구도 없던 나는

먹잇감으로 삼기 딱 좋은 애였다.

유라는 처음엔 인상을 쓰며

싫은 티를 낼 뿐이었지만

아이들의 놀림이 계속되자 반응이 점점 격화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학교에 와서 하루종일 엎드려 잠을 자다가

집으로 돌아갈 뿐이었지만,

유라에겐 그런 나의 존재 자체가 악몽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는 한 달이 넘게 이어졌다.

나는 애써 그들의 행동을 신경 쓰지 않는 척 했지만

언제부턴가 나도 즐기기 시작했고

유라의 찡그리는 얼굴을 보길 기대하며

학교에 가는 날이 많아졌다.

그들은 몰랐지만

나도 놀이에 참여하고 있던 것이었다.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매점에 갔다가 반에 돌아왔는데

어김없이 아이들의 놀이가 시작되었다.

“야 유라야 니 남자친구 왔다.”

“너 주려고 햄버거 사왔나봐 좋겠다야”

유라는 친구들의 시덥지 않은 놀림을 들으며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난 배고파서 매점을 갔다왔을 뿐인데.

갑자기 욱하는 마음이 생겨

유라를 혼내주고만 싶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는 햄버거를 들고 일어나 유라에게 갔다.

유라는 눈이 동그래져서 날 바라봤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아무 반응이 없던 내가

갑자기 먼저 다가오니 놀랄만 했을 것이다.

심장이 뛰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햄버거를 들어 유라의 손에 쥐어주고는

“먹어”

라고 한마디 했다.

딱 그 한마디.

순간 교실에는 깊은 정적이 돌았다.

나는 뭔가 잘못 된 걸 느꼈지만

그게 정확히 뭔질 몰랐다.

아무일 없다는 듯 조용히 자리로 돌아와

다음 수업시간을 준비했다.

교실 뒤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교실 한 켠에서

유라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고 있었다.

사람 눈에서 그렇게 많은 눈물이 나올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유라는 그렇게 오열을 하며

누군가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고

그 대상은 틀림없이 나인 것 같았다.

나는 어찌할 줄 몰라 책을 보는 척 했다.

여자애들이 다독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유라는 한참을 흐느꼈다.

침이 바짝 마르고 두통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오늘이 내 학교생활의 마지막 장임을.

유라가 울음을 그치자

그녀의 친구들은 내 책상 앞으로 몰려왔다.

사과를 하라고 소리치며

내 책가방을 발로 걷어 찼다.

여자 애들 뒤엔 덩치큰 남자친구들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대로 세상에서 사라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지옥 같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주문을 외듯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 반복했다.

아이들은 유라한테 가서 직접 하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자리에 엎드려 씩씩 거리고 있는 유라에게

다가가 똑같이 주문을 외웠다.

“미안해 미안해 잘못했어 미안해”

유라는 한참을 엎드려 있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주먹으로 내 명치를 정말 강하게 때렸다.

내 기억으로

“이 X발놈아!” 라고 외치며 주먹질을 했던 것 같다.

나는 그대로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여자의 주먹이었지만

무방비 상태에서 명치를 맞으니

정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무바닥에 고꾸라져

끄윽끄윽 소리를 내는 나의 모습을 본 아이들은

웃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내 인생 최악의 하루.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내 인생 최악의 하루.

나는 그 일로

‘이유라의 전남친’ 이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중학교 3년 내내 그 누구와도 말해보지 못하고

투명인간으로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것은

내 인생 첫 연애이자 마지막 연애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