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한다는 고아원 출신 남자의 특별한 날

내가 19년을 고아원에서 지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자면,

몇 가지 기억들을 생각하며 고민하겠지만..

가장 잊혀지지 않는 행복한 순간은

단연코 딱 그 날일 것이다.

어느 해의 어린이날이었다.

우리 고아원에서도 어린이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전날부터 만국기를 붙인 운동장은

녹음과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우리는 새벽부터 설레어서

하얀 새벽녘이 밝아올 무렵이면

체육복을 입고 팔딱팔딱 뛰었다.

그렇게 오전 8시가 되면 어린이날 기념 운동회를 했는데,

전국에서 찾아주신 후원자분들이 있어서 그런지

전혀 쓸쓸하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장애물 달리기에서 밀가루를 듬뿍 뒤집어쓰고 달려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비록 참가상이었지만 수녀님들이 박수를 쳐주고,

어느 후원자께서 주신

3종 연필세트를 상으로 의기양양하게 들고오면,

점심으로는 호화스러운 돈가스가 차려져 있었다.

이 날엔 하루종일 여기저기서 동요가 흘러나오고

수녀님들은 그저 함박웃음을 지으며,

오리온 과자 선물세트를 우리에게 안겨주셨다.

너무도 기쁜 나머지,

어린 초등학생일 때, 나는 수녀님께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거라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까지

눈이 커져서 나를 바라보았는데,

나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더 흥분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는 우리나라고,

거기서 가장 행복한 도시는 이 도시고,

그 도시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나일거니까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그 이야기를 듣자

나보다 수녀님이 더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근처에서 듣고 있었던

흰 머리 희끗한 후원자분도 정말로 기뻐했던 것 같았다.

그 후원자 분은 나를 보더니

운동회 상품으로 주고 남은 사인펜 세트를 주면서

어쩜 그렇게 말을 이쁘게 하냐고,

본인이 다 기쁘다고 눈물까지 지으며 웃었다.

난 앞으로도 그 날이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행복한 날일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그 날을 생각하며

조금 부끄럽고 씁쓸한 추억을 맛 본다.

어째서 그렇게 행복할 수 있었을까?

더 커서는 그 때의 기쁨과 환희를

아무리 애를 써도 느낄 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그 때의 만국기와 노랫소리..

그리고 수녀님의 함박웃음이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