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데 귀가 안 들리던 누나한테 스케치북으로 고백한 남자

군제대 하고나서 22살때였다.

학교 복학하기 전까지 3달정도 시간이 남아서

용돈도 벌겸 생산직 공장에 들어갔었다.

가니까 방진복이랑 마스크를 쓰고 들어가라 하더라.

입고 들어갔더니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내가 일하게 될 라인에 배치시켜주었고

맞은편에는 아주머니 한분,

그리고 내 옆에는 여자 한명이 있어서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아무말도 않고

날 보더니 눈웃음만 지었다.

순간 혹시 나에게 꼬릴 치는건가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던 찰나

“저기 학생, 그 누나 농아야. 말 못해.”

솔직히 정말 놀랬었다.

그 누나는 정말 미인이었으니까..

또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점심시간에 마스크와 방진복을 벗은 모습도 정말 예뻤다.

그렇게 한달정도 같은 라인에 일하면서

누나와 나는 서로 얘기할 때

종이에다 펜으로 적으면서 대화를 했었다.

별것 아닌 시시콜콜한 대화들이었지만

항상 설레였고

나는 누나에게 점점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누나에게

예쁘다는 말을 서슴없이 말하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누나는 쑥쓰러운듯

눈웃음만 짓곤 했다.

참고로 같이 일하는 누나의 친구분들도

전부 청각장애자들이신데,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작업이 끝난 후 모두들 청소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그 친구분들이 멀리서 나와

누나를 보곤 키득 키득 거리길래

내가 누날 좋아한다는걸 모두들 눈치 챘구나 싶었다.

결국 나는 누나에게 고백하기로 결심했다.

한달동안 벌었던 알바비로 향수도 샀었다.

좋은 예감이 들었고

꼭 성공할 것 같았다.

그리고 고백하기로 마음 먹은 날이 되었고

퇴근할때 누나를 불러

사람이 없는 좁은길로 데려갔다.

그리곤 스케치북에 글귀를 써서

한장씩 넘기는 고백을 준비했다.

원래 전날에 써놨어야 했는데,

깜빡 잊고 안쓰는 바람에

스케치북에 바로바로 적어서 누나에게 보여줬다.

고백 내용은 그닥 특별하지 않았다.

“누날 처음 본 날부터 반했습니다”

“누나 눈웃음이 너무 예뻐요”

“누나가 저를 행복하게 해줘요”

..등등의 내용이었다.

마침내

‘누나, 제 고백을 받아주세요’

라고 적은 장을 펼처보였다.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누나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내심 좋으면서 부끄러움을 참고 있을까..?’

라며 누나의 반응을 기대하며 살며시 쳐다보았다.

..누나는 당황스럽다는듯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윽고 누나는 스케치북을 가져가더니

천천히 글씨를 써내려갔다.

“나 결혼했는데?”

나는 너무 쪽팔려서

들고있던 향수 가방을 누나에게 건내준 뒤

도망치듯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누나의 얼굴을 볼 용기도 없었기에

생산직 공장도 담날부터 나가지 않았다.

다른 직원들이 나에게 왜 출근 안하냐며

찾는 연락이 많이 왔지만

누나의 연락은 오지 않고 있었고

그러던 중..

“내가 미리 말 안해줘서 미안..”

라며 누나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최대한 담담한척 하며 누나와 대화를 나눴다.

그제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누나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진수형과 결혼했다고 한다.

왜 나는 그렇게 자신만만 했던걸까?

무엇때문에 누나가 당연히 고백을 받을 거라 생각한걸까?

어쩌면 나는 누나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의 우위를 결정해

누나가 내 고백을 받아줄거라 생각한 것 같다.

나의 오만함을 부끄러워하기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