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12살 많은 친누나가 있다는 걸 성인이 되고 알게 된 남자

고등학생 때부터 자다보면

항상 비슷한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내가 방문 앞에 서있고

방에서 누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음

문 열고 들어가보면

그 사람이 교복을 입고 있을 때도 있고

그냥 사복을 입고 있을 때도 있고

얼굴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데 많이 젊은건 기억남

지금 내 또래거나 한두살 어리다는 느낌.

암튼 내가 뒤에 숨어서 보다가

그 여자랑 눈이 마주치면

여자가 나한테 이리 오라고 했는데

내가 좋아서 여자 무릎 위에 올라간 뒤에

앉아있다가 꿈깨고 일어나고 그랬음..

매번 똑같은 꿈인데 약간씩 달랐음

그러다 가끔 식당을 가거나

티비를 볼때 피아노 소리가 들리면

매번 꾸던 꿈이 떠오르면서

좀 묘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땐 걍 같은 꿈을 너무 자주 꿔서 그런가 싶고

어릴때 만화나 영화를 많이 봐서

기억은 안나지만 감명 깊었던 장면의

그때 그 감정이 올라오는건가 싶어서 그냥 넘김

친구들이랑 있을때도 가끔 그러면

친구들한테 어라? 왜 눈물이? 하면서

드립치면서 장난치고 그랬음

그 후로 취업하느라 바쁘고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그 꿈이나 묘한 느낌은 점점 줄어듬

근데 최근에 퇴근하고 집에 가다가

그 장면이 또 떠오르는데

이번엔 진짜 너무 우울하고 슬퍼서

차 잠깐 세워놓고 한 삼십분은 울다가 퇴근함

이번엔 꿈도 아니었고

그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생각나고

그 여자랑 대화도 나눈게 기억나는데

내가 누나 누나 하고 부르던게 생각이 남

그동안 괜찮다가 갑자기 왜이러나 싶어서

그날은 하루종일 멍 때리고 보냈다가

어제 엄마랑 통화 하는데

그냥 평소에도 ‘엄마 나 사실 어디 부잣집 아들이지?’

이런 장난을 자주 하던 편이라

그날도 장난으로

‘엄마 나한테 누나 있지?’ 하니까

엄마가 엄청 놀래시면서 기억 나냐고 그러심

난 엄마도 장난 치는 줄 알았는데

그 장면에 대해서 설명해주니까

엄마가 엄청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면서

집으로 와서 얘기하자 해서 집으로 감

엄마랑 아빠 얘기를 들어보니까

나는 그냥 단순히 내가 늦둥이 인줄 알았는데

내 위로 12살 많은 누나가 있었다

너희 누나가 피아노도 잘 쳤고

내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라

우리 엄마보다 날 더 이뻐해주고 그랬다함

내가 꿈에서 봤던 그 장면이

우리집이고 누나 방이었고

당시 엄마 아빠가 맞벌이 하셔서

어릴 때부터 내가 누나랑 계속 붙어있다 보니

나도 누나를 너무 잘 따르고 좋아했다고 하더라

그러다 내가 초등학교때

누나가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갔는데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함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아서 울다가 기절하고

일어나서 또 누나 찾으면서 울다가 기절하고

며칠을 그렇게 반복하다가

내가 충격을 못견딘건지

누나에 대해서 기억 자체를 못했다고 하더라고

의사가 심인성 기억상실이랬는데

내가 기억상실 증상이 회복되는게

오히려 더 안 좋을 수도 있다고 해서

이사를 갔고 누나 사진도 다 숨겼고

나를 위해서 누나 흔적을 전부 숨겼다고 하시더라

어느날 기억을 하다가도

다시 재발해서 기억 못하고 그랬다함

그 얘기 들으니까

어릴 때 진짜 갑자기 뜬금없이 이사간 것도

집에 내 어릴적 사진이 몇개 없던 것

티비에 피아노만 나오면

니 아빠는 피아노 싫어한다면서 채널 돌리고

외식 할때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은

절대 안가신다던 어머니 행동이 이해가 되더라.

솔직히 너무 갑작스러운 얘기라 당황스럽고

드라마에서 볼법한 얘기라 얼탄다.

그래서 오늘 연차내고 걍 쉬었는데

진짜 지금도 기억 하나도 안남.

영화에서 기억상실 걸린 사람이

번쩍하고 전부 다 기억났다 그러는데

난 걍 꿈에서 본 장면만 기억남

누나가 있었다는 자체는 기억이 나는데

누나 얼굴, 목소리,

나한테 하던 행동들은 하나도 기억 안남

내가 누나를 많이 좋아했던 감정만 기억나고

누나 무릎 위에 앉는게 좋았고

누나가 내 머리 쓰다듬어 주는게 좋았던 것만 기억남

누나한테 너무 미안하다.

내가 그렇게 좋아했고

날 그렇게 좋아해준 누나를 여태까지 기억 못했고

이제와서 기억을 하려 해도 떠올리질 못한다는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번이고 누나를 잃어버리고 그랬다는 사실이

그냥 너무 미안하다

지금 기억하는 것도 나중에 기억 못할까봐

기록 해둘 겸 적어본다

여기 말고도 메모장이나

어디에다가도 적어놓으려고..

내가 다시 누나를 잃을 순 있어도

지금 나는 누나를 너무 그리워 하고 있다고.

미안하고 보고싶다

누나 내가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