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때 일이다.
우리 반에는 유독 왜소한 체격과
어눌한 말투의 H라는 녀석이 있었다.
이 친구는 굉장히 특이한 학교 생활을 했는데
점심만 먹고 오후수업은 제끼고
집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어눌한 말투, 친구는 하나도 없음.
성적은 최하위권, 취미,특기도 없음.
좋아하는 것도 없음. 게임도 안함.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부모님 중 한쪽이 안계시고
학교 나오는 이유도 집에 점심 차려줄 사람이 없어서
밥만 먹으러 나오는 거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H의 상황을 불문하고
가장 최악이었던 점은
이 친구가 일진들의 괴롭힘 대상이었던 것.
우리 반에는 일진이 3명이 있었는데
무지성으로 아무나 괴롭히는 B
덩치와 힘이 제일 큰 K
신기하게 공부는 반에서 1~2등인 J
B와 J는 나와 거의 접점이 없는 녀석들이었다.
그나마 B같은 경우
둘다 액션 만화를 좋아해서
가끔 만화 얘기를 하는 정도였는데
그들의 괴롭힘 대상에 다행히도 나는 없었기에
적당히 관심 끌지 않으며,
그렇게 대화만 하는 정도의 관계를 유지했다.
K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는데,
이 녀석은 평범한 애들은 괴롭히지 않는 녀석이었고
심지어 평범이들에게 무척 친절하고 유쾌했다.
하지만 H에게만 무서운 일진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런 H에게
선민의식인지, 소영웅주의에서 나온
알량한 동정심인지는 모르겠으나
친구 하나없이 점심만 먹고 귀가하는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먼저 다가가 내가 살테니 매점 같이 가자며
먼저 말을 걸었고
등교시간에 기다렸다가 같이 들어가고,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담임 선생님도 이를 어찌 알아차렸는지
나와 함께 다닌 후 H가 많이 밝아졌다며
내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난 이것이 정말 기뻤다.
정말 정말 뿌듯했다.
이대로 내 친구들과도
H가 친해질 수 있게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그렇게 대략 한달이 조금 못 지나서
어느날 담임이 날 교무실로 불렀다.
부르는 이유에 대해 짐작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H에게 잘해서 뭐라도 주는건가 싶었다.
근데 교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선생님이 짝 소리가 울릴 정도로 싸대기를 날리셨다.
무슨 일인지, 사고가 따라가지 못했다.
선생님은 음악시간에 쓰던 단소를 들었고
나는 겁먹고 일단은 시키는대로 했다.
그리곤 나에게
이새끼 착한 줄 알았는데
완전 구렁이 같은 새끼였다면서
네가 H을 여지껏 줘팼던거라며? 라고 하셨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나는 상황을 파악하지도,
어떤 일이 벌어진지 파악하기도 전에
우선 나를 변호하려고 했다.
가끔 툭툭 장난으로 어깨 건든건 말고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악수였던 것 같다.
아마도 담임은 내가 그를 때린 것을
축소해서 말하는 변명으로 들었던 것 같다.
(참고로 어깨조차 건든 적 없다.)
선생님은 내게
장난으로 건드렸는데 시퍼렇게 피멍이 들었냐며
자기가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없다고 했다.
나는 그날 기절 직전까지 맞았다.
사건의 개요는 이랬다.
H는 누군가에게 뒤지게 쳐맞았고
도저히 못버텼는지 담임에게 말을 했고
누가 그랬냐는 담임의 추궁에
범임의 보복이 두려워
가장 만만한 상대였던 나를 범인으로 지목.
애초에 이렇게 학폭 가해자를
즉각 데려와 단소로 패면,
H에게 어떤 보복이 가해질지 생각하지 못한,
아니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담임.
아니, 그걸 떠나서
여태 내가 얼마나 조용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지냈는지 알면서도
그저 H의 증언만 믿고,
누가 되었던 일단 없으면 범인을 만들어서라도
응징하는 담임이 너무 미웠다.
더 화가 나는건 학교 마칠때쯤
H가 나에게 “저기..OO아” 라며 말을 걸었다.
“말걸지마 X발 쓰레기새끼야
누구보다 잘해줬단 나를 팔어?”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H는 다시 왕따가 되었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뒤
난 내 고등학교 친구에게 점심을 쏘려 중국집에 갔는데
정말 우연찮게 K를 만났다.
알바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 같은 안부를 얘기하다
K가 담배 연기를 후 내뱉으며 내게 말을 했다.
“아 근데 중학교때 H 팬거 나였어 미안”
착하게 살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