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5년 만에 이혼하게 됐는데 기분이 너무 좋다는 아재..

결혼생활을 되돌아보니

이런 여자와 어떻게 살아왔는진 모르겠지만

요약 먼저 하자면 결혼 생활 하다가

우울증 걸려서 죽을 것 같다가

순간 깨달음을 얻고

이혼까지 총 15년이 걸렸습니다.

1.결혼 전

당시 제가 자존감이 너무 낮아져있던 상태에서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직원에게

대시를 받아 만나게 되었습니다.

술도 잘 마시고, 맛집 탐방도 좋아하고

모텔도 종종 가고 그랬습니다.

결혼까지는 좀 애매하다 싶었는데..

결혼 적령기 여성분이라 그런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무섭게 밀어 붙이더라구요

정신 차려보니 드레스 고르고 있었습니다.

2.결혼 초기

맞벌이라 집안일도 제가 거진 다하고

음식도 제가 거진 다 했습니다.

(애초에 할 줄 아는게 전혀 없었음)

신혼 초기에는 다들 불 탄다는데

부부관계를 갖고 싶어도 거부하기 시작했고

매번 오늘 기분 별론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그 뒤 회사 마치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샤워하고

분위기 만들어가는데 저한테 하는 말이

‘화장실 청소까지 했으면 한번 하려고 했는데 아쉽네’

라고 했고

무슨 몸 파는 여자랑 결혼 한건가 싶기도 하고

당연한게 아니라

댓가성 부부관계라는 정립에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여행을 가도 계획도 내가 세우고

운전도 내가 하고 갔는데

힘들다고 건들지 말라고 징징거리고

본인은 몸이 약해서 힘들다고 했는데..

어거지로 우겨서 부부관계를 가졌더니

임신이 되었습니다.

임신이 되면서 예민했던 성격이 극에 달하게 됩니다.

제가 자다가 뒤척였는데..

새벽 3시에 저를 깨우면서

왜 본인을 깨웠냐고 화를 냅니다.

‘니 숨소리가 너무 커서 잘 수가 없다’ 라며

결혼 4개월만에 각방에 접어 들게 됩니다.

되게 슬프게도 이게 마지막 잠자리였고

12년간 리스로 살게 됩니다.

(이 이후로 부부관계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

이쯤되니 저도 너무 지쳐갔습니다.

토요일 좀 늦게까지 자고 있는데

자꾸 깨우면서 뭐라하길래

‘야! 잠 좀 자자!’ 라고 소리쳤다가

장모님과 처형이 집에 왔습니다.

그리곤 ‘이서방 야 라고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라며 주말 내내 혼이 났습니다.

3.육아시기

산후우울증이 왔다, 죽을 것 같다 라며

장모님, 처남, 처형 등이 돌아가면서 집에 왔고

집에 있어도 쉬는게 아니였습니다.

어느날 회사 모임이 오후 6시에 있어서

좀 늦을 거라고 미리 말하니

4시부터 언제 오냐며 카톡을 하고

6시인데 아직 안 끝났냐고 톡을 해서

아직 시작도 안했다며

6시 시작인데 어떻게 지금 끝나냐고

무슨일이 생긴건지 걱정이 되어 집에 갔더니

배달 음식 시켜먹고 있더라구요.

그 날 아기 목욕 시키고

분유타서 먹이고 업고 재우고 있는데

전 부인은 누워서 폰만 만지작 거렸고

회사 일이고 뭐고

집에와서 애나 보라는 말이었는지 그때 알았습니다.

다른 날에도 회사 모임이 있어서 갔는데

부재중 전화가 30분도 안되는 시간에

20통이 넘게 와있었습니다.

이날도 미리 이야길 했었고

임원분들과 함께 있는 자리였는데

임원분이 ‘넌 그만 집에 가라’고 했습니다.

집에 가니 말 한마디 못하는 아이랑

하루 종일 있는데 어떤 기분인지 아냐고

애를 침대에 던져버립니다.

그 말 한마디 못하는 아이가

태어난지 200일 정도 된 제 아이고,

던젼 년은 애 엄마 입니다.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하자

니 정신이 더 문제라면서 싸웠습니다.

(이때라도 이혼 했었어야 했습니다.)

그후 승진도 안되고

회사에서도 안 좋은 이미지만 쌓고..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처의 의견을 수용하여 처가 근처로 이사를 갑니다.

출퇴근 시간은 편도 40분에서

2시간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처가 식구들한테 도움도 받겠지 라는

어리석은 마음도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퇴근하고 집에와서

밥솥 눌러놓고 반찬 마련하고

빨래 돌리고 밥 먹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고 빨래 널고

본인이 산후통으로 몸이 좋지 않으니

마사지를 좀 해달라고 하여

핸드크림을 이용하여 정성스럽게 마사지를 해줬습니다.

40분 넘어가니 압이 쎄다며

저리 꺼지라고 발로 찹니다.

인질 잡듯이 애기하고 같이 자며 저는 혼자 잡니다.

번아웃이 이럴 때 쓰는 말인지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보니 아무런 힘도 없었습니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6시 전에 출근해서 집에 오면 7시인데

온갖 집안일을 내가 하는데

주말이면 분유랑 분유통이랑

귀저기 등 챙겨서 애기 카시트에 태워서 혼자 본가 가고

‘나 없으면 목욕도 혼자 못 시키는 X가..’ 라던지

‘외벌이라 독박육아다’ 라던지

회식 때문에 소주 3병을 마시고 들어가도

애 목욕 시키고 분유 먹이고

트름 시켜서 포대기 해서 밖에 나가서 재우고 했는데..

‘독박육아의 힘듬을 니가 알긴하냐’

‘왜 아이 성은 니 성을 따라야 하냐’

‘내 성을 따라야 한다 같이 넣자’ 등

(이때라도 상식 밖의 이야기를 할때

눈치를 채고 이혼했어야 했는데 싶습니다.)

제가 인싸는 아니지만 찐친이 4명 정도 되는데

이 친구들과 연결을 끊어버리고

정말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어디에 가지도 못하게 합니다.

처가가 가까우니 어머님께 맡기고

우리도 숨 좀 돌리자 하니

우리 엄마가 애보는 시녀처럼 보이냐고

우리 엄마 바쁘고 애 봐줄 시간 없으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말라고,

난 머리털 나고 티비나

교과서에서만 보던 지역에 와서 살고 있는데..

나는 임신 시켜 애를 낳게 한 죄로

이렇게 살고 있고,

그 피해는 전처가 고스란히 받고 있다는.

지금 생각하면 말인지 방구인지 하는

논리를 매일 들이대고 세뇌시켰습니다.

그러다 확실하게 승진할 거라 믿었는데

미끄러진 적이 있습니다.

너무 힘이 들고 술 한잔 할 사람도 없고

방구석에서 앉아서 울먹거리고 있는데

‘니가 그따위로 사니까 승진을 못하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 ㅂ신아..’

라는 워딩을 하고 문을 닫았고

방구석에 불도 안 켜고 앉아만 있었는데

승진도 못하고 와이프는 저주를 내뱉고

새벽 3시가 지나도 잠이 안와서

19층에서 떨어지면 아플까?

많이 아프지 않을까?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생각만 한게 다행이었죠..

이 시기부터 무력감으로 인해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말도 안하고

집안일도 안하고 애도 안 보게 됩니다.

4.지금 돌이켜보며 우울증이 왔던 시기

리스가 3년 정도 지나자 미칠 것 같았습니다.

내가 발정난 개도 아니고

힘은 뻗는데 쓸데가 없으니 사람 환장하겠더라고요

회사 생활은 그냥 저냥 하고 있었고

웃기는 하는데 화내는 법을 잃어버려서

종일 웃고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집에 오면 아무말도 안하고

그냥 멍하니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가가 싫었고

여기가 처가 근처라 부를 친구도 없고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에

소주 하나 먹고 차에서 자다가 늦게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부부상담을 제안해서 갔습니다.

그것도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한

자녀 상담이라 뻥치고 다녀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했냐,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떠냐 등등

교수는 말도 안되는 소리만 하더라고요.

따박따박 대답하고 이렇다 저렇다.

편도 두시간 출근 거리로 이사왔는데

정작 처가에서는 1도 도움을 안준다고 하고

전처가 가자고 해서 이사온건데

옆에서 제가 우겨서 이리 이사 왔다고 하길래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냐고 되물으니

교수가 말 끊으면서

그동안 너무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고

고생했다고 위로해주고

부부상담 후 문제가 조금 더 있어보이는 사람은

남아서 따로 상담을 하는데

다음부터는 전처가 남게 될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부부 상담 후 전처가 한 말이

‘말 잘하더라’ 이 한마디가 끝이었습니다

5.이혼 결심

둘이 있는게 너무 어색했고

아이 교육에 안 좋을 것 같아서

여행을 많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전 여럿이서 가면 좋겠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불편하다고

3명이서만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장모님, 처남, 처형네 등

자연스럽게 같이 가는 일도 생겼는데

그런데 우리 부모님하고는 불편해서 같이 가기 힘들다고

정확한 워딩으로는

‘내가 니 부모님하고 갈 수 있는 여행은

1박 2일이 한계야 알아들었지?’ 라고 말할 때

아.. 우리 엄마 아빠가 너한텐 그런 존재였구나.

그럼 니네 가족과 같이 여행 다녔던 나는 뭐지?

숙소 예약해, 운전해, 식당 알아봐,

처가 식구들 픽업해, 돈도 내 카드로 해

아 호구 잡혔구나.

우리 엄마 아빠가 너한테 이런 대접 받는 줄 모르실텐데

이사하고 며느리 불편할까봐

7년동안 딱 1번 오셔서 식사하시고

과일 먹고 그냥 가신게 끝인데

이때부터 정신이 확 들더라구요.

이 사람과 살면 지금은 그냥저냥 버니까 괜찮아도

노년에는 개밥 신세도 못 면하겠구나.

아들은 친구와 친구 부모님이 있는 가운데

우리집은 아빠가 돈을 못 벌어서 가난하단 소리를 하고

한번 안아주려고 가면

싫다고 아빠 저리 가라고 하고

‘그따위로 사니까 승진을 못하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 ㅂ신아‘가 머리속에 맴돌고

나이 마흔 넘어서 몽정이나 할 줄이야.

그렇게 이혼 고민을 하고 있던 도중

5시 반에 일어나서 출근하는데

아침 먹고 가야겠다 싶어

밥솥에서 밥푸고 고추장에 참기름 넣어 비벼먹었더니

‘비비는 달그락 소리가 너무 큰거 아니냐’

‘온 아파트에 너 출근하는 거 알리려고 그러냐’

‘사람이 상식이 없냐 왜 그 따위로 사냐..’

등등 말하더니 그날 소리 안나는

실리콘 수저를 사다 뒀더라구요.

이것도 치욕이지만

‘그릇을 물에 담가두지 않아서

고추장, 참기름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

하루종일 머리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했다

일부러 그러는 거냐 뭐냐’ 해서

물 틀으면 시끄러울까봐

조용히 싱크대에 내려만 놓았다

라고 대답을 했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치욕스러운건지

아침에 내가 깨워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밥을 차리란 것도 아니고

서러움이 미친듯이 폭팔하더니

“아. 이제 그만 하자” 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이혼 결심을 하고

이혼까지 총 3년이 걸렸습니다.

아이 생각하니 정말 쉽지가 않더라구요.

전처는 아직도 제가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면 같이 살아 줄 의향이 있다네요.

혼자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찍 퇴근해서 집 청소 같이 하고

(말은 같이지만 제가 다 합니다 늘상 그랬으니)

설거지하고 아이와 놀아주고

아이 공부도 봐주고

아이 목욕도 시키고 (이건 지금도 하는 일입니다)

그럼 같이 살아주겠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년아 내가 싫다.

작년 10월 협의이혼 마치고

이제 조정기간도 마쳐서

법적으로 총각으로 돌아왔습니다.

15년의 결혼생활이 이렇게 파국을 맞아서

너무 가슴 아프고 그런데..

자꾸 웃음만 납니다.

올 여름엔 강원도, 서해, 제주도 등

아들 데리고 여행도 다녀올 예정이고..

결혼도 쉽지 않은데

이혼은 백배는 더 힘이 드네요.

나이에 맞춰서 이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결혼을 한 제가 후회스럽고

유일하게 후회하는게 있다면

더 일찍 이혼하지 못한게 한입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아있기에

잘 헤어진 것 같다고 어머님이 응원해주시네요.

형님들은 항상 행복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