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2년 만난 여자친구랑 결혼 준비하느라
막 날아다닐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여자친구가 잘못한건 아니지만 파혼하게 됐다
좀 복잡한데 어떻게 된거냐면
지난주에 상견례 자리에
집에만 있는 동생한테 같이 가자고 말은 꺼냈는데
힘들거 같다고 미안하다 해서
우리 쪽은 엄마, 아빠 이렇게 3명에서 갔고
여친 쪽은 오빠, 동생, 엄마, 아빠
이렇게 총 5명이서 왔는데
처남 될 사람은 사석에서 둘이 술도 몇번 마셨고
어느정도 안면은 튼사이였지만
처제 될 사람은 호주에서 워홀 하던 중이라
들어온지 얼마 안돼서 그 자리가 처음 보는 거였다
암튼 우리가 먼저 도착해서 앉아있다가
여친네 오는거 보고 맞이하러 갔는데
처제 될 사람이 사진으로 봤을 땐 몰랐는데
실물 보니까 뭔가 어디서 본 느낌이 들어서
어디서 봤더라 생각하고 있는데
여친이 여동생 소개 해주면서
이름 얘기해주니까 딱 누군지 알겠더라
내 동생 학폭 피해자였다
동생 고등학교 가자마자 이유도 없이
2년동안 집요하게 괴롭히기 시작하고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낼 때까지
다른 동급생 애들한테도 동생 왕따 시키도록
아주 열심히 주도 했던 년이었다
동생 책상에 줄로 묶어놓고 때리고
화장실에 세시간 넘게 가둬두고
돈 뜯어가고
지들 아는 오빠 불러서
성적으로 수치심 주고 괴롭히고
우리 엄마한테 친구인척 돈 받아가고
어느날 학교 가는데 사복 입고 가려고 하길래
내가 교복 어디갔냐고 물어보다가
잃어버렸다고 그러길래
쭈뼛주뼛 있는거 보고 내가 눈치챘었다
아무리 우리 사는 동네가 좁다지만
진짜 상견례 자리에서
이년을 다시 만나게 되니까
세상 더럽게 좁다고 느껴지더라
동생이 원래 소심하긴 해도
밝고 말도 잘하고 애교도 많은 애였는데
학폭 당하고 난 후부터
전학간 학교에서도 적응 못하고 자퇴하고
말도 없어지고 친구 없는건 물론
가족이랑도 잘 안 어울리고
정신과 치료 받으면서
방에서 취미로 그림 그리면서 사는 중인데
가해자는 웃으면서 대학 다니다가
아무렇지 않게 워홀 다녀왔을거 생각하니까
표정관리 자체가 그냥 되질 않더라
주변 둘러보니까
엄마는 이미 대충 눈치 채신 것 같았고
아빠는 아예 모르는 거 같았음
진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이 자리 빨리 끝나길 기다리다가
집으로 오는 차에서
엄마가 아빠한테 쟤 그애라고 말하니까
아빠 한숨 푹 쉬시고
셋이 아무말도 안하고 집으로 왔다
이때부터 암묵적으로 결혼은 없던 일 된 것 같음.
집에 도착하고 여친 연락 왔는데 그냥 씹고
혼자 생각을 깊게 해봤는데
내가 아무리 여친을 사랑해도
결혼은 도저히 못할 것 같더라
솔직히 여자친구 사랑하는 마음보다
여동생 때문에 우리 가족 운 날 생각하면
여동생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컸고
동생 자퇴한 후로 집 밖으로 잘 못나가고
여러번 나쁜 판단 했다가
언제 한번은 새벽에
방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길래
그날 내가 방문 안 열어봤으면
그대로 죽었을 내 동생 생각하니까
옛날 생각 다시 나면서
화가나서 미쳐버릴 것 같더라
당시에 우리집 초토화 되고
6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힘들어하다가
요즘은 많이 괜찮아져서
집주변 산책하고 취미 생활도 하는 정도가 됐는데
동생한테 내 와이프 될 사람이
너 괴롭힌년 언니라고 말하면
동생이 무슨 충격을 받을지
어떤 생각을 할지 도저히 상상도 안가고
생각 정리도 안되고 그냥 답은 하나밖에 없더라
어제 반차내고 여친 만나서
우리 결혼 힘들거 같다고 말하니까
도대체 왜 그러냐고 이유라도 말을 하라길래
동생 어릴 때 괴롭힘 심하게 당해서
아직도 힘들어 하는데
니 여동생이 가해자라고
니 동생이랑 같은 학교였다고 말했더니
그게 무슨 소리냐면서 끊더라
그리고 오늘 연차쓰고
하루종일 잠만 처 자다가
방금 일어나니까 전화와서 받았는데
동생 어디 아픈거냐고
지금은 괜찮냐고 자기가 미안하다고 하길래
아니라고 하고 진짜 미안하다고 하고 끊고
내 동생 불쌍한 마음이랑
사랑하는 여자친구랑
결혼 파혼 됐단 생각이 겹쳐서 화장실가서 울었다
방금 핸드폰 키니까 부재중 전화 존나 와있고
그냥 소주 까고 있는데
그냥 세상이 너무 좁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