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대학교 2학년이었다
여자랑 말도 못 섞어봤던 내가
대학을 가면서 과팅을 하게 됐는데
거기서 첫 여자친구가 생겼다.
처음엔 내가 얘를 너무 좋아해서
잘해주고 더 열심히 했더니
오히려 날 하대하는 듯한 태도와
툭하면 나한테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데이트코스는 당연하게 항상 내가 정해왔고
혹시라도 코스가 맘에 들지 않으면
무슨 앱에 후기 남기는 것 마냥
이게 아쉬웠다, 다음엔 더 분발해라 이랬는데
난 이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이렇게 멍청한 연애를 하고 있던 어느날
여느 데이트처럼 주말에 만난 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미리 알아둔 밥집으로 갔는데
재료소진이라 입장이 불가능했었다.
그래서 내가 다른곳 갈까?
지금 더 맛있는 곳으로 알아볼게! 했더니
“아 미리 잘 좀 알아보지 이게 뭐야 힘들게;”
라고 하였고
여기서 그냥 딱 혼이 나가버렸다.
그동안 뭐에 홀려있던 것들이 다 벗겨지고
그자리에서 그냥 그만하자고 하고 집 와버렸다.
집에 오는길 내내 오는 연락 다 씹고
한 삼일 방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아..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하면서 학교를 갔다.
전공 두개 끝나고 나가려니까 교실 문앞에 서있더라.
그리고 잠깐 얘기 좀 하자길래
뒤쪽 뜰에 가서 얘기했다.
근데 나는 얘가 사과할 줄 알아서 간거였는데
처음에만 사과하는 척 하더니
한 5분 정도 뒤에
오히려 내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몰아가길래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나왔다.
그러자마자 노발대발 화내면서
지금 나한테 욕한 거냐고 하더라.
그자리에서 그냥 시원하게
맞다 욕한거 개년아
꺼져라 뭣같은련아 하고
걍 집가려고 버스정류장에 앉아있었는데
버스가 오든 말든 멍때리면서
한시간을 가까이 앉아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어깨를 톡톡치길래
뒤로 쳐다봤더니 같은 과 여자애가 서있더라.
여기서 뭐하냐고 물어보길래
차마 헤어졌다고 말은 못하겠어서
그냥 앉아있다고 하니까
한 10초? 정도 있다가
수업쨌냐? 밥먹었냐? 하더니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하더라.
근데 골 때리는건
노예의 습관마냥 반사적으로
얘가 뭘 좋아할지 고민을 하고있더라 ㅋㅋ
등쉰같은넘..
그래서 근처에 파스타 먹으러 갈까 물어보니
그런 건 비싸서 안 먹는다고 국밥이나 먹자고 하더라.
엥 국밥 좋아하냐고.
국밥으로 괜찮냐고 물으니까
자기 국밥 좋아한다고 국밥 먹자고 하더라.
거기서 오케이 국밥이나 먹고
할 거 없어서 피시방에서
오버워치를 같이 3시간인가 했는데
내가 대학교 들어오고나서
그때만큼 편하고 심적으로 안정된 적이 없더라.
그동안 여자를 만나기 위해선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준비를 하고
항상 노력을 해야된다 생각했는데
진짜 너무 감동을 받고
진짜 가슴에서 우러러 나오는
뜨거운 뭔가를 꾹 삼키면서 고맙다고 하니까
그럼 술이나 먹으러 가자고 하더라.
그래서 둘이서 술집가서 술 퍼마시는데
여자애 동아리 친구들 테이블 있길래
자연스럽게 우리 테이블과 합석하게 됐고
합석하고 옆자리 여자애랑 눈 맞아서
번호교환하고 사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