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헤어진 엄마가 연락도 없이 갑자기 불쑥 나타난다..

나는 어렸을 때

그러니까 7살쯤에,

엄마가 아빠랑 나를 두고 떠났음.

한창 엄마의 사랑을 받아야 할 어린 나이에

떠난 엄마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컸던 거 같음.

그래서 어렸던 난

버거웠던 그 감정에 예민한 아이로 자랐고

정말 친한 친구 한 두명 말곤

세상과 벽을 세우며 살았음

나는 그럴 이유가 있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아빠가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해주려고 정말 많이 노력해줬지만

그럴 때마다 오히려 엄마가 생각나서

되려 아빠에게 화를 냈었던 적이 많았음.

나는 그럴 이유가 있었으니까.

한 번은 중학교 졸업식날

다른 엄마 아빠들은 졸업식에 많이 왔더라고

우리 아빠는 일 때문에 오진 못했지만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기특하게도 그깟 졸업식 아빠가 오지 못한다고

뭐 위축거린다거나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음.

나는 그럴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문뜩

졸업식 그 많은 가족들의 인파 속 복도에서

곁에 아무도 없이 집으로 가는 내 모습이

그땐 좀 부끄럽게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졸업생인 3학년 초록색 명찰을 떼버렸음.

내가 졸업생이 아니라

그냥 학교에 온 1,2학년 처럼 보이게.

근데 그냥 ㅂ신이었지.

내가 다니던 중학교 졸업식날엔

1,2학년이 없었거든.

아무도 오지 않던 중학교 졸업식날

그래도 당당하게 보이고 싶었던 하루가

결국 나의 자격지심으로 바보 같이 행동한게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서

현관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던 것 같음.

이게 다 엄마 때문이라고.

그래서 그 일이 있던 후로

나는 엄마를 그리워하는게 아니라

나를 그런 상황들에 자꾸 맞닥뜨리게 하는

원인이라 생각한 엄마를 오히려 미워하게 됐음.

나는 그럴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그저 그런 전문대에 입학 후 휴학을 한 뒤

군 입대를 앞둬

내 방을 정리하고 있던 중이었음.

그때 아빠도 같이 정리를 도와주고 있었는데

문뜩 아빠가 넌지시 나한테 물어보더라고

“엄마 한번 보러가지 않을래?”

뭐.. 머리가 커진 건지

이제 아픈 상처가

단단한 굳은 살로 되어진건진 모르겠지만

그런 아빠에 말에 예민하게 받아들이진 않았음.

그냥 됐다고.

뭐하러 가보냐고 말을 돌림.

사실 한번 미운 감정이 드니까

오기가 생겨서라도 끝까지 보고싶지가 않더라고.

그 후 군대에 들어가게 되고

진짜 별 일 없이 아주 아주

조용히 군생활을 하며

전역하기 며칠을 남겨놓은

일요일 어느 주말.

몽롱한 정신으로 아침 조례를 끝내고

다시 생활관으로 들어가서 자려고 했는데

웬 처음보는 간부가 나를 찾는거임.

왜 그러시냐고 하니까

“어머니 면회 오셨다.”

..

그 말을 듣고 그럴 수가 없었기에

이름 착각하신 거 아니냐고 물어보니

우리 엄마가 맞대.

항상 엄마라는 단어에 예민하던 나는

마치 바닥에서 중력이 생겨

당기는 듯한 기분에

머리가 멍해지고 심장소리가 귀에 덮여

아무것도 들리지가 않았음.

왜 왔는지, 아니 도대체 어떻게 찾아 왔단건지

평생을 미워하던 엄마였었지만,

참고로 포대에서 면회장까지

운동장을 지나 한참을 가야했었는데

전속력으로 질주하면서 뛰쳐갔음.

나는 그럴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마침내 면회실 앞에 도착해서

문을 열려고 하는데

전력질주로 호흡이 가빠진게 아니라

너무 떨려서, 호흡이 잘 쉬어지지 않았음.

잠시후, 면회실 문을 열고

엄마를 만났음.

15년만에 만난 엄마의 모습

기억이 가물했지만,

엄마의 모습은 나를 떠난 그때 모습이랑 똑같아보였음.

엄마를 언젠가 만날거란 그런 생각조차 안했던 나라서

일단 화를 내야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뭘 물어봐야할지

존댓말을 해야할지

반말을 해야할지

엄마라고 불러야할지

어머니라고 해야나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그냥 가만히 앉아있었음.

그렇게 서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있다가 엄마가 처음으로 말을 꺼냈음.

밥 잘 먹냐고.

그래서 잘 먹는다고 퍽퍽하게 대답했음.

아픈덴 없냐고도 물어보길래

그래서 아픈데 없다고 퍽퍽하게 대답했음.

아빠 안부도 물어보더라

그래서 아빠도 잘 지낸다고 퍽퍽하게 대답했음.

다시 침묵이 이어지고

의외로 덤덤하게 받기만 하는

일방통행인듯한 대화에

나는 무엇을 물어볼까 잠깐 생각했음.

엄마는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볼까

아, 초등학교 때 정신나간 새끼가

가족기록부 보고 엄마 무한 회출중이라 놀려서

싸우다가 눈에 흉터 생겼다고 말할까

중학교 졸업식 날부터

엄마가 미워졌었다고 말할까.

음. 그건 너무 미안하라고 하는 말 같으니까

아빠 음식 너무 못한다고

지금도 여전히 못해서 맛 없다고 말해줄까

아니 역시 내가 엄마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왜 이제서야 나타났냐고

내가 엄마란 말을 들으면

발작 하는 것 마냥 예민해졌다고

이게 다 엄마 탓이라고

나는 역시 여전히 엄마가 너무 밉다고.

너무 너무 너무 미워서

지금 아니면 영영 말하지 못할 거 같아서

“보고싶었어요”

보고싶었다고 말함.

퍽퍽하게 대답하고

퍽퍽하게 건넨 나의 말에

엄마는 아무 말도 못하더니

눈물을 끝내 참다가

엉엉 울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거임

그래, 엄마도 알겠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을지.

그래도 너무 울면서 계속 미안하다는 엄마의 말에

당황해버린 나는

괜찮다고 그게 왜 엄마 잘못이겠냐고 말해줌.

그리고 나 꽤 씩씩하게 살았다고도.

그러니, 그러니까

다음에 만나면 꼭 그땐 잘해달라 했음.

그렇게 엄마가 떠나고 며칠 뒤.

길고 길었던 전역날이 다가옴

동기들과 후임들이랑 인사를 나누고

ktx를 타기 위해 역으로 가던 중

아빠에게 전화가 옴.

“여보세요 어 아빠”

“나 이제 ktx 타러 서울역 가는 중”

“먹고 싶은거? 으음.”

“해물찜 먹고 싶네 응 해물찜.”

“응 알았어.”

“아 아빠. 근데 나”

“엄마 만나고 갈게.”

내가 7살 때 돌아가신 날 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꿈에서조차 보지 못했던 엄마는

아들 군대 전역하기 전에 찾아와주셨음.

사실은 너무 그리워서

그런 꿈을 꾸었던 건지

진짜로 엄마가 먼 곳에서 날 찾아와 준건지 모르지만

전역 전 엄마랑 만난 꿈 이후로

그리움을 미움으로 참아왔던 감정이 사라졌음.

이제 엄마란 단어에 예민하게 굴지도 않아졌고

이제 엄마가 없어서 이렇게 됐다는

자격지심도 사라졌음.

7살 아들이랑 남편을 두고

아주 멀리 갈 수 밖에 없었던 엄마가

마지막 순간에도 얼마나 미안했을지 이젠 잘 알았으니까.

나는 이제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