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만 지내던 친구 사이에서 ‘평생 친구’가 되는 과정

2007년 10월

수학여행으로 해인사 불국사

석굴암 부곡하와이 등등

매우 교육적인 평범한 곳들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그중에서도 부곡하와이에서 있었던 일은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수학여행 두번째날

부곡하와이에서 식물원을 살짝 둘러보고

놀이기구를 타다 실내 워터파크를 갔다.

수영장을 가면 수영복을 입는건 당연지사.

수영복으로 갈아입었었다.

문제는 우리집이 형편이 그리 좋지않아

헐렁하고 삭은 수영복을 챙길 수 밖에 없었다.

(그마나 비슷한 당시 수영복 이미지)

그러거나 말거나 애들이랑 즐겁게 놀면서

그대로 멀리 헤엄쳐가고 있었다.

그런데 헤엄쳐가다가

아래가 허전해서 보니 수영복이 없어진 상태였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왔던 길을 돌아가며 수영복의 행방을 찾고 있는데

어떤 녀석이 풀장 밖으로 나오더니

워터 슬라이드 근처에서

찢어진 수영복을 건졌다고 외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영장에는 우리 중학교 2학년 애들이 대부분이라

‘용의자’는 우리 학교 애들로 좁혀질 수 밖에 없었고

애들은 웅성거리며 키득키득 거리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최대한 수심 깊은 곳으로 가서 앉아있었는데

다른반 애 하나가 갑자기

자기꺼라면서 물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나처럼 아무것도 입지않은 알몸으로.

그러더니 수영복을 들고 있는 녀석에가 가서는

‘오래 안 입고 대충 처박아둔거

이번에 한번 쓰고 버릴 생각으로 챙겨왔는데

이제 보내줄 때가 됐다,

이왕 다 벗은김에 목욕이나 하고 가야겠다’

라는 식으로 말을 하더니

수영모를 벗고 물에 풍덩 다이빙을 한 뒤

수영모로 거기를 가리고 수영복 대여소로 갔다.

나는 그 장면을 몰래 지켜보다가

애들 시선이 팔려있을 때

몰래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는데

계단에 웬 사각 수영복 하나가 걸쳐져 있는 것이었다.

누구껀진 모르겠지만 허겁지겁 입었다.

남의 물건이지만

어린 마음에 일단 내 코가 급해서.

그렇게 옷을 챙겨입고

은근슬쩍 애들 모여있는 곳으로 가서

아까 그 빨개벗은 미친놈이 누구냐 물어보니

(얼굴만 대충 알고 있었음)

8반 부반장 최oo이라고 했다.

걔랑 1학년때 같은반도 했던 애가

쟤 순둥순둥한 착한 애인 줄 알았는데

저러기도 하는 줄 몰랐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아무튼 그 부반장은

그날로 교내 ‘네임드’, 유명인이 됐다.

학교에서 똥을 싼다는 것만으로도

난리인 초딩 시절으로 부터 2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정도의 퍼포먼스였으니..

거기다 수학여행 마지막 날

장기자랑 타임에서 부반장이 나가더니

머리를 긁적이다가 진달래꽃,

사랑앓이,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 등

노래를 부르면서

이 친구의 똘끼는 더욱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마음속으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종례하고 8반으로 찾아가

부반장이 딴 친구랑 같이 집에 가려는걸 붙잡고

잠깐 운동장으로 가자고 한 뒤 데려갔다.

그리곤 운동장 구석에서

살짝 어리둥절한 부반장에게

저번에 수학여행 수영복 소동 때

수영복 주인은 나였다

나 대신 애들에게 놀림 받은거 미안하다 그러니까

부반장이 피식 웃더니

지금은 친구가 기다리고 있으니

내일 다시 얘기하자고 해서 그냥 갔다.

다음날 점심 시간에

부반장이 우리 5반에 와서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나는 그리 사교성이 있는 성격은 아니라

예전부터 알던 친구나

같은반이 아니면 같이 밥을 먹진 않았지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상대라

별말 없이 알겠다고 한 뒤 따라갔다.

급식실에 앉아 밥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는데

어제 사과는 받지 않겠다면서

자기 수영복 아닌거 당연히 알지만,

누군가는 수영복 잃어버린 상태일텐데

그 친구가 얼마나 부끄럽고 당황했겠냐며

그 친구의 부끄러움을 대신 받기 위해

자기가 나서서 애들 시선 집중시키고

관심을 끌었다고 했다.

풀장 밖으로 나가기 전에

입고있던 수영복을 벗어서 계단에 대충 고정시켜두고

자기가 관심을 끄는 틈에

잃어버린 친구가 그거라도 대신 입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그리곤 사실 수영복 빌려입고 돌아왔을때

수영복 벗겨진 애가 나라는 걸 금방 알아봤다고 했다.

자기 수영복을 내가 입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말하면 얼마나 민망할지 알아서

계속 말 안 하고 있었는데

니가 먼저 나한테 그 얘기를 하니

나도 털어놓는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고맙고 미안해서

보관하고 있는 부반장 수영복을

내일 당장 돌려주겠다고 하니까

돌려준다고만 하면 다냐

돈계산은 똑바로 해야지 그러면서

내 수영복은 남 주려고 버렸으니 0원,

니 수영복은 허락없이 버렸으니 1만원,

오히려 자기가 돈을 줘야한다는

이상한 계산을 했다.

이게 뭔 개소린가 싶었지만

이상하게 설득 당해 거절하지 못하고

정 그러면 5천원은 현금,

남은 5천원은 매점에서 먹을거나 사달라고 했다.

부반장은 씩 웃으며 그러겠다고 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궁금해서

만약 내가 니(부반장) 수영복을 발견 못했으면

난 어찌되는거였냐 물어보니

살짝 웃으면서

그럼 너도 미친놈2 되는거지

근데 니가 나하고 동급으로 관심 받는건 싫다

미친놈 원조는 나다, 쟤는 짭이다

그런 식으로 말을 했을거고

체육시간에 다른 사건을 만들어내서

너에 대한건 애들이 기억이 옅어지게 했을거다

라고 그랬다.

솔직히 이날 부반장에게 반해버렸고

너무 마음에 들고 친구하고 싶어서

학교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지만

굳이 휴대폰 번호를 물어보고

부반장도 내 번호를 저장하게 되었다.

그 뒤로 부반장이랑

뜬금없이 맺어진 인연치고는

종종 같이 급식도 먹고, 밥에서 밥도 먹고,

등산도 가고, 목욕도 가고,

볼링도 치고, 서면 쪽에 게임방도 가고

영화도 보고, 야구도 보고,

방학때는 애기소 경주월드 통도환타지아도 가고

이런저런거 하면서 야무지게 놀고

이야기도 많이 하며 시간을 보냈음.

부반장 에피소드를 몇개 더 적어보자면

-2학년 겨울방학때

길에서 다 죽어가는 고양이를 발견하고

동물병원 데러갔는데

결국 못 살려내고 죽음.

같이 묻어주면서 하는 말이

사실 살아나기 힘든거 알고 있었지만

차가운 곳에 죽게하기 싫어서

그나마 걱정해주는 사람들 속에서

따뜻하게 숨 거두게 하고 싶었다 함.

-3학년때 좁은 급식실 길목에서

1학년 애가 다른 3학년 교복에

급식 받은거 와락 쏟았는데

빡친 3학년이 쌍욕을 쏟아내기 시작하니까

부반장이 달려가서 자기 교복 마이로

걔 교복 닦아주고 휴지로 닦아주고

3학년한테 즉석으로 세탁비 만원을 줌.

딴건 그렇다쳐도

교복 마이로 굳이 닦아줄거 있냐고 했더니

내 옷에 누가 음식 쏟아도

화내지 않았을거라는거 보여주고 싶었고

나도 어차피 입다보면 더러워질건데

그냥 내 얼굴봐서 봐달라는 의미였다고 함

-만날 때마다 밥 먹듯이 약속시간 어김

식당에서 가끔 내 바지에 생수 쏟음

그럴 때마다 늦은 벌칙이나

사과라면서 자기가 밥사고 게임비 내고

이상하게 항상 돈 썼음

근데 영화 시간이나 시외버스 시간 같이

꼭 지켜줘야 하는건

자기가 약속시간보다 1~20분은 일찍 나와있었음

그때도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든

자기가 뭐라도 사주려함

참다참다 내가 입고 다니는 바지는

물 쏟아도 상관없다고 해도 막무가내였음

한번은 체육복만 입고 다니는거 지겹다면서

자기가 롯백 데려가서 옷 사줌

근데 즉석에서 입고가지는 못하게 함

집 가는 길에 카페에서 음료수 하나씩 사들고 가는데

걔 음료수 출렁거리다가

내 운동화에 조금 흘림

그리곤 미안하다고 음료수값 그대로 주고

새 운동화 하나 사줌

이 기행(?)의 이유는 물어보진 않았지만

형편 안 좋은거 알고 챙겨준다고 하면

내가 동정심에 불쌍해서 사준다는 마음이 생겨

자존심에 상처 입을까봐

살짝 어설픈 갖다붙이기용 명분을 만들어낸거 같음.

암튼 그렇게 고등학교까지 찐하게 있다가

대학교 가니까

부산이랑 대전이랑 물리적 구역거리가 나뉘어서

그전보다 자주 보진 못했지만

만날 때마다 이전처럼 허물없이 지냄.

군대가서도 편지질 하고 면회가고

걔 전역 다음주에 만나서

드디어 8년만에 삼다수 1L 준비해서

부반장 얼굴에 콸콸 붓고

엔화 봉투째로 내밀고 일본여행 계획짜고 다녀왔다가

대학교 졸업함.

그러다가

작년 2018년 마지막 만남이 되었음.

비행기 바깥

그 너머 필리핀 산간 소수민족 부족들 상대로

작년부터 1년 넘게 대학원 가는거 미루고

교육 봉사 (교회쪽 말로는 사역) 하러감.

아직까지는 작년에 만난게 마지막 맞음ㅇㅇ

사람 참 안 변함.

2007년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