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전여친 생각이 나서 씀.
약 3년전, 전여친 부모님 집에 인사드리러 감.
서로 결혼할 마음 충만했고,
일도 사랑도 열정적인 모습에
미래를 맡겨도 믿음직하다 판단했었음.
근데 그 집은 증조모가 아직도 정정하셔서
4대가 함께사는 대가족 집이었음.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빠, 숙모 동생까지
한집에 총 7명 살고 있었음.
개찐따 출신 정상인 코스프레 중이던 나는
개쫄아서 밥을 처먹다가 사레 들려서
전여친 아빠 밥그릇 위에 기침까지 해버림.
그나마 이때까지는 괜찮았는데
밥 다먹고 청문회가 열려버림..
거실 한가운데 나를 두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 가족 얘기가 나옴.
슬프게도 내가 천애 고아인지라
연이라고는 파양했지만
교류는 자주하는 양부모님 밖에 없음.
암튼 얘기 나온 뒤로 분위기 살짝 곱창 났지만
별일 없이 그날은 그대로 집감.
그리고 그 다음주에 전여친 부모님이
할말이 있다고 다시 부름.
싱글벙글하면서 포도 한 상자 사서 갔는데,
집안 분위기 심상찮았음.
전여친 표정 개썪어 있고
할머니도 화난 것 같고..
아무튼 그랬음..
그리고 예상햇듯이
내가 고아인게 문제가 될 거라면서
결혼 허락 안된다는 얘기를 함.
솔직히 화나고 그냥 뛰쳐나가고 싶었는데
차마 못 그랬음.
아니 오히려 눈물날 것 같았는데 참고 있었음..
근데 전여친은 안 참았음..
평소에 화 한번 내는거 보여준적 없던 애가
자기 아빠한테 개쌍욕을 박음..
화낸거에도 놀랐지만
처음에는 내 편을 들어주다가
갑자기 맥락없이 쌍욕을 한게 더 놀랐음.
그리고 아버님도 맞받아쳐서 욕하기 시작해서 더 놀람.
갑자기 일어난 체험 패륜의 현장에 뇌정지가 왔음.
점점 내새끼, 내애비 말이 거칠어지고
나는 입벌리고 멍때리는데,
옆에서 가만히 앉아계시던 증조할머님이
지팡이로 내 다리를 툭툭 치심.
혼자 몇초동안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숨 꾹 참고
전여친 손모가지를 잡고 집밖으로 빤스런함.
전여친은 평소에는 땅속에 묻혀있다가
보병에는 반응 안하고
전차급에만 반응하는 대전차지뢰였던 거임.
저날 이후로 아직도 그녀가
화내거나 쌍욕하는 것을 다시 본적은 없지만..
언젠가 터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함.
그 사건 이후로 그대로 의절 선언하고
집에 안들어가고 있음.
집에 좀 갔으면 좋겠다.
오늘 장인어른 생신이라서 케익 사가는데
슬슬 화해했으면..
+추가
얼마 전에 대전차지뢰 와이프 썰 쓴 사람인데
그냥 그날 자세한 상황 적고 싶어서 다시 자세히 써봄
당시 인사 드리러 갈 때 상상은
장인어른: 어딜 고아놈이 우리딸을 넘봐! 결혼 허락 못한다!
와이프: 아빠..그게 왜 문제가 돼요..
장인어른: 못한다면 못한다는 줄 알아!
나: ..(손목 탁!) 자기야 나가자.
와이프: 어맛! 박력 넘쳐!
하지만 실제 상황은 이랬음..
장인어른: 거..이런말 하긴 좀 그렇긴 한데
자네 집안이 좀 그렇지 않나..
서로에 대해 조금 고민할 시간이..
아무래도 고아라는게 좀 그렇지 않은ㄱ..
와이프: 아니 아빠 말이 심하잖아
장인어른: 내가 틀린 말 했어!? 앉아!
나: (뭐지 왜 싸우지.. 난 왜 여기있지..?)
와이프: (아빠한테 하면 안되는 나쁜 말)
장인어른: (딸한테 그런 말을 해도 될까 싶은 나쁜 말)
증조할머니: (지팡이로 도망치라는 신호)
!!!!!?
그렇게 집에서 도망치고
술집가서 와이프가 소주 병나발 까는데
술 만취해서 말려지지도 않고..
와이프 (175cm) 나 (170cm)..
결국 우리끼리 신고만 하고
결혼식은 하지 않고 둘이 잘 사는 중임
명절이나 그럴 땐 와이프 없이
혼자 인사 드리러 가는데
아직 장인어른은 무뚝뚝하게 대하심..
그래도 나한텐 곧 친정이자 외가이자 본가라..
와이프랑 얼른 화해하면 좋겠음..
그리고 우리 양부모님이 파양했는데
왜 은인으로 모시고 교류하면서 사냐고 하던데
얘기가 좀 복잡함..
친부모님 생사 여부는 아예 모르고
내가 고아원에서 2살까지 살다가
첫번째 부모님을 만나게 됨.
당시 화목한 가족이었지만 IMF는 잔인했고
아버지는 홀로 집을 나가버림.
그래도 나를 사랑해주셔서
장난감을 매번 사서 보내주셨던게 기억남.
어머니는 혼자 어렵게 나를 키우다가 재혼을 했는데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던 나는
아버지가 생겨서 좋았지만
얼마 안가 어머니가 아프기 시작.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안 좋은 일도 많았지만
그때 어머니랑 병실에서 같이 잔 기억이
내 생에 제일 소중한 기억임.
5학년 때부터는 친할머니랑 같이 살게 됨.
아버지랑 얼굴도 못본지 오래됐고
솔직히 나를 키워주실 이유는 없었지만
할머니는 날 친손자 마냥 사랑해줬음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다시 고아원으로 갔을 거임.
그러다 중3이 됐는데
양아버지가 연락이 와서 나를 부름.
양아버지도 새로 재혼을 했다함.
할머니는 수입이 일정하지 않았고
나를 키우는 게 힘들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양아버지에게 가기로 선택.
양부모님이랑은 솔직히 좀 어색했지만
그래도 나한테 지원을 절대 아끼시지 않았고
내가 하고 싶은게 있으면 뭐든지 다 시켜줬음.
그러다 내가 성인이 됐는데
양아버지 회사 사정이 나빠졌고
양어머니도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심.
나한테도 복잡한 양육권과 가족관계증명 때문에
세금에 문제도 생김..
졸지에 체납자가 되었지만
아버지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어떻게든 벌어서 해결해야지란 생각이었는데
양아버지께서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큰 돈이 든 통장과 파양합의서를 건넴..
눈물부터 났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음
다시 천애고아로 돌아가면
그나마 집에 풀칠할 수 있는 지원금을 주니까.
양아버지도 연금을 다시 받을 수 있고
양어머니 간호에도 전념할 수 있으니까.
이대로 양부모님의 아들로 남으면
체납문제, 법적문제가 계속 아버지를 괴롭힐테니까
정말 어쩔 수가 없었음.
아버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고
친할머니도 돌아가셨음.
그래도 양어머니는 건강이 어느정도 회복되셨음.
저번 달에 양아버지에게
운동화 사드렸는데 좋아하셔서 나도 기분 좋음.
와이프는 이 얘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장인어른한테 저렇게까지 화를 낸 것 같음.
나한텐 가족이란 의미가 꽤 크기 때문에
그냥 얼른 화해하면 좋겠어서
작년에 화해하는게 어떻냐고 얘기 꺼냈는데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표정 본 이후로
아직까지 얘기조차 못 꺼냄..
그래도 내 편이 있다는게 너무 행복하고
와이프한테 잡혀사는 기분이지만 행복함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