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선 넘자마자 다이렉트로 ‘이혼 절차’ 밟아버린 남자

전처와 나는 캠퍼스 커플로

졸업하고 취업한지 1년만에 바로 결혼했다.

당시만해도 내 여친은 완벽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결혼 전에 이미 전처는 우리 어머니 상태를 알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난 교통사고로 인해

지적장애 3급이 되셨다.

지능지수 검사 결과 50후반.

평소엔 그냥 사고 전 어머니와 다를 바 없지만

조금만 몸이 힘들거나 투정 부릴 일이 생기면

초등학교 어린 아이마냥 칭얼거리고 보채는 정도.

그렇게 결혼하고 3개월이 채 안 되었을 때,

전처는 장모님과 제주도 여행을 간다고 했다.

결혼 후 일을 그만두고 집에만 있기에

적적할 수 있으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라고 흔쾌히 가는 것을 반겼다.

전처가 여행을 간 사이 나는 며칠 본가에 들렸다.

그리고 혼자 계시는 어머니가 무엇을 하는지 보았다.

어머니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고집을 부려서

어쩔 수 없이 데려온 유기견 강아지가 있었는데,

하루종일 강아지를 아기처럼 안고 강아지만 돌보고 계셨다.

문득, 어머니와 나는

단 둘이 여행을 갔던 적이 없구나 생각이 들었다.

쇼파에 앉아 가만이 강아지를 내려다보며

하염없이 강아지를 쓰다듬는 어머니를 보자

왈칵 눈물이 났다.

우리 어머니는 나도 그렇게 정성스레 키우셨으리라.

그리고 아버지와 나를 위해

장을 보고 돌아오시는 길에 난 사고로

이제는 그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구나.

우리 어머니가 그 강아지 같았다.

어딘가를 가자고 하지도 못하고

그저 본인을 좋아해주는 존재만 있다면

그저 행복한 강아지.

본가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미친듯이 눈물을 흘렸다.

전처가 돌아오고 나서

아내에게 연차와 주말을 이용해

어머니와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넌지시 이야기했다.

그러자 돌아온 말은

왜 자신은 놔두고 어머니와 여행을 가냐는

짜증섞인 힐난이었다.

적잖이 당황했고, 또 황당했다.

너무나도 이기적인 모습에 현실을 부정하며,

그럴 수 있다. 생각하려 했다.

타초경사하여 혹여나 그런 모습에 내가 반응해

더 큰 일로 이어지지 않을까 오히려 내가 걱정했다.

며칠 동안 토라진 전처를 달래며,

다시 한번 어머니와의 여행을 이야기 했을때,

전처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될 말이 나왔다.

‘니네 엄마 어차피 좋은데 데려가도 뭔지도 모르잖아.’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눈가에 눈물이 핑 도는건 순식간이었다.

그 눈물은 곧바로 분노로 바뀌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화가나서 몸이 떨린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렇게 붉게 물든 내 두눈을 외면한채,

전처는 계속해서 어머니에 대한 흉을 이어갔다.

그리고 전처에 대한 내 감정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무색이 되었다.

전처의 뺨을 치고 겨우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나가’

긴 연애와 결혼 생활간, 단 한번도 나는

전처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놀란 전처는 얼른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갔다.

그뒤로 나는 전처와 단 한번도 만나지 않았고

모든 대화와 만남을 거부했다.

가정법원에서의 두 번이 전처와 마주 본 것이 전부였다.

전처는 가정법원 앞에서 나를 보았을 때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냐고 말하며 귀찮은 일이라는듯,

하찮은 일에 왜 이렇게까지 반응하냐는 행동을 보였다.

아마도 결혼 전 무언가를 잘못하면

항상 용서하고 웃어 보였던 나를 떠올려서였을까.

나는 죽을 때까지 전처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하였어도

사람 속을 알진 못하는거구나 깨달았다.

이혼 후, 나는 한달에 적게는 두번 많게는 세번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캠핑이나 여행을 간다.

캠핑장에서 뛰어다니는 강아지를 쪼르르 따르며

어린 아이처럼 웃고 뛰는 어머니를 보면

아직도 가슴이 미어지고

답답함에 울컥울컥 호흡이 가빠진다.

고기라도 먹게 되면 잘 구워진 고기를 호호 불어

아기에게 먹이듯 강아지에게 먹이는 어머니를

차마 볼 수 없어,

그릴의 열기와 연기 사이로 얼굴을 숨긴다.

내가 하는 유일한 후회는

더 빨리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지금의 행복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읽는 모두 행복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