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안 사주는 부모님한테 정 떨어져서 손절하고 사는 사람

내가 어릴 때부터 제일 좋아하던 음식이

바로 후라이드 치킨이었음

옛날에는 치킨집 오픈하면 학교 앞에 와서

종이컵에 치킨 나눠주면서 홍보하고 그랬거든.

그날 학교 마치고 동생 데리고 집가려다가

학교 앞에서 후라이드 치킨을 처음 먹게 되었는데

정말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미치게 맛있었던거임.

눅눅하고 비린 시골 바닥에 팔던

시장통닭이라는 비교 자체가 안되더라.

근데 우리집은 잘 사는 집이 아니었음.

치킨 맛을 알고 난 뒤로

가끔 부모님한테 치킨 먹고싶다고 말하면

몇천원 차이도 안나는데

굳이 시장닭만 사주면서 생색이란 생색은 다 냈었음.

대부분 가난하다, 돈이 없다는게 이유였고

한창 자라고 먹을 나이인 나와 동생이 있는데도

고작 한마리 어쩌다가 시켜서

다리나 날개 같은 맛있는 부위는 부모님이 먹고

나랑 동생은 퍽퍽살이나 목뼈를 먹었는데

그마저도 그만 먹으라고 눈치를 엄청 줬었음.

살찐다, 몸에 안 좋다 하면서 부모님만 먹고

우리는 콜라도 입에 댈 수가 없었음.

그때부터 내 소원이

혼자 치킨 한마리를 다 먹어보는 것이었음.

그 후 어쩌다 치킨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오면

그날은 내가 부모님에게 효를 다하는 날이었는데

빨래, 청소, 집안일은 물론

아버지 구두를 닦아야 겨우 얻어먹을 수 있었고

그마저도 갑자기 말 바꾼다던가

돈 없다고 못 먹는 날이 더 많았음.

그러던 어느날 주말이었나

진짜 미친듯이 치킨이 먹고 싶은 날이 있었는데

그날 진짜 부모님한테

평생 생일선물 안 받을테니

오늘 치킨 먹으면 안되냐고 간절하게 말했더니

그동안 시켜주지 않던 치킨을

그날은 이상하게 바로 알겠다고 시켜준거임.

나랑 동생은 진짜 너무 좋아서

배달이 오는동안 미친듯이 설레하고 있었는데

막상 배달이 오니까 아버지가

자긴 돈이 없으니 우리 아들 데려가라고,

가서 일 시키는 걸로 치킨값 퉁치자고 한거.

농담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아버지랑 친분이 있는 치킨집이었고

진짜로 나를 치킨집에다 팔아버린거.

진짜 그땐 아버지가 돈이 없으니까

내가 가서 치킨값 벌어오면 좋아하시겠지?

하면서 싱글벙글 따라간 것 같음.

나 덕분에 모처럼 가족이 치킨을 먹게 되었으니까.

솔직히 난 집에 오면 내 몫의 치킨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치킨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잡일을 했었음.

테이블 닦고, 쓰레기 치우고, 포장도 하고.

혹시나 사장님이 나를 좋게 봐주셔서

치킨 한마리를 공짜로 더 주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에

더 열심히 일했는데 내 착각이더라.

그때가 내 나이 12살이었음.

치킨집이 우리집이랑 한참을 떨어진 거리에 있었는데

치킨 먹을 생각에 혼자 걸어서 집으로 왔더니

몇조각 남겨뒀을 줄 알았던 치킨이

이미 다 먹고 없다고 하더라.

물론 동생은 퍽퍽살 두조각 주고

그만 먹으라고 혼까지 냈다고 하고.

진짜 사람이 미친듯이 서러우면

눈물도 안 나온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음.

먹는거 가지고 서럽게 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새끼라는 걸 12살에 깨달은거.

그때부터 부모님한테 치킨 얘기 꺼낸 적 단 한번도 없었음

어쩌다 부모님이 치킨 시키면

쳐다도 안 보고 관심도 안 가지니까

먹으란 소리도 없이 자기들만 먹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나고

동생도 내가 관심을 꺼버리니까 덩달아 관심을 접어버림.

가끔 저녁에 동생이랑 나만 집에 있고

부모님이 밖에 나갔다오시면

고기 냄새나 치킨냄새 풀풀 내면서 들어오는 일도 많았음.

그러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부모님에 대한 정이라고 해야하나?

그딴거 전혀 없었고

빨리 이 집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고

학교 마치고 알바하면서 모은 돈으로

혼자 나가서 살기 시작했음.

부모님 연락 안 받기 시작한게 아마 이쯤이었을 거임.

당연히 돈 없어서 대학은 못갔고

군대갈 때까지 집에 간적 단 한번도 없었고

집에 가야할 일 생기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죽어도 안 가고 버텼음.

군대갈 때도 부모님한테 당연히 말 안했고

친구들이 같이 가주고, 수료식도 친구들만 왔음.

그러다 전역을 한 뒤

서울에 가서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다가

집에서 나온 후 처음으로 부모님이랑 밥을 먹게 됐는데

서울 가봤자 개고생만 한다고

그냥 여기 고향에서 가족끼리 살면 좋지 않냐고 하길래

듣는 시늉만 하면서 흘려듣고 있는데

갑자기 돈 얼마나 모았냐는 미친 소리를 하시길래

그동안 쌓인 감정들 다 꾹 눌러담고

긴말 안하겠다고,

앞으로 부모님 뵐일 죽어도 없으니까

연락도 하지말고 찾지도 말라하고

그 자리 박차고 나왔음.

그렇게 시골 바닥을 떠나서

연락처도 바꾸고 혼자 서울에서 지낸지 7년이 지남.

중간에 다른 번호로 연락 몇번 왔는데

계속 차단하니까 그 뒤로는 연락 안 오더라.

동생도 어릴 때만 친했지

커가면서 말도 안하던 사이라

연락 안한지 꽤 오래 됐는데

얘도 부모님이랑 연 끊고 산다고 들었음.

그냥 오늘 일 마치고 집에와서

치킨 한마리에 소주 한잔 하는데

닭다리건 닭날개건 혼자 먹다보니

자식한테 주는게 그렇게까지 아까웠을까 생각도 들고

도대체 왜 그렇게 까지 했나 싶을 정도로

허탈하고 또 허탈한 기분임.

부모님한테 사과 받을 생각도 없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됨.

난 화난거 이제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