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자고 일어났더니 집에 물이 차고 있었던 반지하 거주인..

반지하에서 혼자 자취하던 중이었음.

우리 동네가 침수지역이긴 했는데

설마 물에 잠기겠나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살고 있었음

당시 비가 엄청 온다길래

약속 취소하고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뭔가 축축한 느낌이 들어서 보니까

침대 밑까지 물이 가득 차있음;

그래서 허겁지겁 문쪽으로 가서 탈출하려 했는데

키 185에 몸무게 100인 내가

아무리 힘으로 밀어도 문이 안 열림;

그래서 방범창 사이로 키우던 댕댕이 먼저 올려주고

나는 어떻게 탈출해야 될지 너무 막막했음

물은 이미 무릎 아래까지 차있고

문 밖은 이미 물이 가득 차있는 것 같더라

문틈 사이로 물이 계속 들어오고 있고

그냥 아무 생각도 안 들고 뇌가 정지해버림

‘아 ㅆ바 여기서 뒤지는건가?’

‘빠루라도 있으면 문 딸 수 있으려나?’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가구 직접 DIY 한다고

깝치다가 샀었던 그라인더가 있단걸 기억해냄

그래서 호다닥 달려가서

주방 찬장에 있던 그라인더로 방범창 갈아버림.

문제는 방치해뒀던거라 배터리가 얼마 없었고

뚫린 구멍이 내가 통과하기가 애매했음

그래서 아 이렇게 발악을 해도 죽는구나 싶어서

유서라도 쓰자 하고 포기하려던 순간

고기에 불맛 낼려고 샀던 터보 토치가 생각나서

다시 호다닥 달려간 다음

방범창에 불쏘고

뺀치로 잡가서 휘어가지고 겨우 탈출했음.

그때 물 높이가

내 가슴이랑 쇄골? 사이까지 찼었음.

그리고 밖에 탈출해서 내 방안을 들여다 봤는데

물이 가득차서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

가구 같은거라던지 그런 것들 하나도 안보임..

누전차단기는 진작에 작동해서

전기 안 올라서 다행이었던 것 같고

그냥 땅바닥에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엄청 나오더라

일단 부모님 집으로 가야하긴 했는데

지갑도 없고 폰도 없고.

가진거라곤 물 가득 머금은 가스 토치 하나랑

한손에 들려있는 댕댕이 뿐이라

울면서 아무집 초인종 눌러서 2만원만 달라함..

여기 밑에 반지하 살던 사람인데

방금 죽을뻔하다가 겨우 탈출했다고

돈 좀 빌려줄 수 있냐도 아니고

돈 좀 빌려달라고 했는데

그냥 안 갚아도 된다면서 선뜻 주시더라.

그리고 집에 가려니까

그 돈 빌려주신 아저씨가 뛰쳐나오시더니

내 몰골 보고는 옷 줄테니까

그 손에 든 가스토치 버리고

손도 좀 그만 떨고

들어와서 씻고 옷 갈아입고

날씨 잠잠해지면 가라고 말리시더라.

그래서 아저씨 폰으로 부모님한테 전화했더니

당장 오겠다고 하셔서

아저씨 집에서 좀 있다가 부모님 차타고 집에 왔음..

그리고 아버지는 거기 물 빠지면

건질거 다 건지고 본가로 다시 오라고 해서

지금은 다시 본가 들어와서 사는 중임..

주저리 주저리 말이 길어졌는데..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반지하 사는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갑자기 침수될지 진짜 모르니까

항상 배터리형 그라인더랑

가스토치 뺀치나 바이스 플라이어?

그런거 집에 두고 살아라..

무조건 탈출 도구는 냉장고 위나

천장 쪽에 두는거 잊지말고..

장마철 되면 꼭 배터리 충전도 가끔 해주고..

아마 내 생에 두번 다신 반지하에 사는 일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