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병아리 키웠더니 점점 “쌈닭”으로 자라기 시작한다..

어릴 때 시골 깡촌에서 자랐음

초등학교 과학시간이었는데

갑자기 오골계를 한마리씩 키우라고 나눠줌

백봉 오골계라고

털은 새하얀데 다리,몸통은 새까만 오골계였음

어디 농장에서 얻어왔다는데 난 그런건 잘 모르겠고

그저 귀여운 병아리를 키울 생각에 걍 신났었음

그렇게 선생님께서 병아리를

한마리씩 작은 종이박스에 나눠주시고

집까지 조심히 들고가라고 하셨음

그렇게 나는 내 첫번째이자 마지막 병아리인

삐약이를 들고 집까지 걸어갔음

병아리를 집까지 들고간 뒤

아버지한테 자초지종 설명을 하니

아버지는 그 병아리를 몇번 눈으로 훑어보심

그러다가 옷장에서 안쓰는 전기장판이랑

신문지를 꺼내오시더니 종이박스 밑에 깔아두셨음

아버지도 병아리가 마음에 드셨나봄

(토트넘 팬임)

그렇게 새로 들어온 우리집 식구를 위해

난 달걀 몇개를 꺼내서 삶은 후에

노른자만 물에 풀고

노른자죽을 만들어서 병뚜껑에 넣어줬었음

내가 직접 만든 노른자죽을 쪼아먹는 먹는 병아리를 보면서

얘는 꼭 멋진 닭이 될때까지 키우고 싶다는 꿈이 생김

내가 삐약이하고 만난지 3개월쯤 됐을 때

삐약이는 연약한 병아리에서 늠름한 청년닭이 됨

이때부터는 집도 좀더 큰 플라스틱 상자로 바꾸고 먹이도

쌀이나 좁살, 벌레같은 고형식으로 줬음

그런데 얘가 좁은 집에만 있다보니 좀 답답해보였음

그래서 저녁마다 삐약이를 내 품에 꼭 껴안고

집 주변에 있는 놀이터까지 걸어감

낮에 가면 애들이 너무 많아서

다들 삐약이를 한번씩 만져보려고 해서 밤에만 갔었음

놀이터에 가면 항상

모래사장에 삐약이를 놓고 천천히 구경했음

그러면 삐약이는 천천히 모래사장을 구경하다가

바닥에 있는 모래를 발로 차기도 하고

지나가는 개미,벌래를 잡아먹기도 하고

모래 위에서 몸을 흔들어서 모래 샤워를 하기도 했음

그렇게 1시간정도 삐약이랑 놀다가

다시 삐약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갔음

그러다가 옷에 닭똥이 묻을 때도 있어서 혼도 많이 났었음

그러다가 어느날 저녁에 삐약이랑 놀이터에서 노는데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이

진돗개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진돗개보단 작은 개를 끌고 놀이터로 산책을 옴

그때는 그냥 그런갑다 하고 다시 삐약이랑 노는데

갑자기 개가 삐약이 주변으로 다가온거임

개 입장에서는 생전 처음보는 동물일테니

신기해서 온거라고 생각하고 걍 냅뒀음

근데 삐약이가 그 개를 보고 놀랐는지

갑자기 발차기를 시전함

나랑 견주분도 너무 놀라서

삐약이랑 개를 서로 떨어뜨려놓을려고 했음

나는 견주분한테 바로 사과를 드렸고

견주분은 괜찮다고 하셨음

그렇게 나는 자기 몸에 네다섯배는 되는 동물한테

겁도없이 달려드는 삐약이를 보고

이때부터 “아 얘가 보통 닭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음

아님 그냥 삐약이 부모가 쌈닭이었거나.

그렇게 내가 삐약이와 만난지 반년이 지남.

삐약이는 무럭무럭 커서 어느새 늠름한 닭이 됨

다 키우고 나서야 삐약이가 암컷이었단는걸 알게 됐음

어렸을땐 벼슬이 작아도 어려서 그렇겠거니 했거든

아무튼 그렇게 커진 삐약이는

더 이상 집안에 들일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똥도 깃털도 전보다 많이 날리게 됐음

더이상 집에서 키울 수 없는 상황이라

인터넷에서 꽤 큼직한 철장 케이지를 산뒤

내 방 창문에 방범 쇠창살에다가

케이블 타이로 묶어뒀음

그렇게 내 방 창문만 열면 삐약이랑 같이 만날 수 있고

집안에서 키울 수 없었던 문제도 해결됐음

전부 우리 아버지 아이디어였음

다 큰 삐약이는 발도 내 손바닥만해졌었고

먹이도 예전보다 훨씬 크고 딱딱한 것들을 먹고

가끔씩 꼬끼오 하고 울때마다

귀청이 울릴 정도로 크게 울었음

그러니 아무리 몸집이 커졌어도

삐약이 여전히 삐약이었고

나는 항상 밤마다 삐약이를 데리고 놀이터로 갔었음

삐약이가 이렇게 커졌을 무렵에는

내가 굳이 삐약이를 안고 가지 않아도

삐약이가 강아치처럼 스스로 나를 따라다녔었음

이때 엄청 뿌듯했음

그러던 어느 날이었음

가족끼리 다 같이 놀이공원으로 놀라가게 됨

집에서 떠나기 전에 철창에 있는 삐약이 밥그릇에

모이랑 물도 챙겨주고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한 뒤 케이지 문을 닫았음

그렇게 놀이동산에서 신나게 논 뒤

밥먹고 저녁 7시쯤에 집에 가던 도중

어느순간 삐약이 이야기가 오갔고

운전하시던 아버지는 대뜸 나한테

“삐약이 철창 문은 잘 잠궜니?” 라고 물어보셨음

“아 ㅆ발 까먹었어요”

생각해보니까

난 케이지 문을 ‘닫기’만 했지 ‘잠구지’는 않았던거임

케이지 문은 잠구지 않으면

새끼 손톱으로 살짝만 밀어도

자동문 마냥 손쉽게 열려서

삐약이가 탈출할 수도 있었음

내가 케이지를 잠구지 않았다는 소리를 들으신 아버지는

갑자기 풀악셀을 밟으시더니

집으로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음

달려가는 차 안에서 진짜 오만 개 잡생각이 다 들었음..

“삐약이가 도망갔으면 어떡하지”

“삐약이가 설마 차에 치이진 않았겠지”

“우리집 주변에 길고양이들 많은데 어떡하지”

“설마 잡혀서 유기견 보호소에 있지는 않겠지”

“근데 오골계도 실종신고 할 수 있나?”

“실종 전단지 붙일 때 포상금을 얼마로 하지?”

그렇게 밤 8시쯤

집 주변에 도착한 나는 바로 벨트부터 풀고

잽싸게 삐약이가 있는 철창까지 달려갔음

근데 ㅅ발 철창 주변에서

발정기 온 고양이 새끼들이

존나 불길하게 야옹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니까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함

삐약이가 있는 철창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나는

그곳에서 상상도 못한 광경을 목격함

삐약이가 길고양이들을 상대로

혼자 5:1 무쌍을 찍고있었던거임

밤마다 집 주변에서 야옹거리며

호시탐탐 삐약이를 노리던

발정난 길고양이 새끼들을 상대로

삐약이는 전혀 꿀리지 않고

오히려 다수의 고양이들을 상대로

혼자서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음

심지어 고양이 한놈은 얼굴에서 피를 흘리던데

자세히 보니

눈 한쪽이 삐약이 발톱에 찔려서 피를 흘리던 거였음

눈에서 피를 흘리는 고양이 주변에서

다른 고양이들은 삐약이한테 어쩌지도 못하고

그냥 옆에서 하악질만 할뿐이었음

그러나 삐약이는 전혀 쫄질 않았고

오히려 하악질하는 고양이들을 향해

날개를 펄럭이면서 위협을 가했음

그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일단 손짓 발작으로 고양이들을 내쫓은 후

삐약이의 상태를 살펴봤음

놀랍게도 삐약이는 상처 하나 없었고

발톱에 고양이 피가 조금 묻어있을 뿐이었음

심지어 삐약이는 가소롭다는듯이 고개를 치켜세우더니

내 품에서 뛰어나오고는

자기가 알아서 자기 철창까지 들어감

이후에 도착한 가족들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하고

하마터면 삐약이에게 큰일날뻔 했다면서

다음부턴 주의하라고 혼났었음

(삐약이가 큰일 낼뻔한 것 같은데..)

그리고 다음날 나때문에 고생한 삐약이한테

냉동고에 있던 냉동망고랑

삶은 노른자 다져서 특식으로 줬음

싸운고 난 뒤라 맛있게 잘먹더라

그렇게 약 5~6달쯤이 지남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보니

케이지 통째로 삐약이가 없어짐

아버지한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삐약이가 새벽마다 너무 크게 우니까

주변 사람들이 전부 다 잠에서 깬다는 민원이 들어와서

집 주변에 있는 식당 주인 아주머니 지인이 운영하는

닭 농장에 보내버렸다고 함

나는 나한테 말도 안하고 삐약이를

쌩판 모르는 사람한테 보내버렸다는게

너무 화가나고 속상했음

아침에 일어나서 삐약이한테 했던 아침인사가

마지막 작별인사가 될 줄은 몰랐음

그렇게 거의 한달 넘게 계속 침울해져있었음

이렇게 허무하게 해어질 줄 알았으면

마지막으로 한번 꼭 안아주는거였는데..

내 인생 첫번째 병아리이자 마지막 닭이었던 삐약이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났음

10년도 더 넘은 이야기니까

평균 수명이 5~10년인 삐약이는 아마 이세상에 없을거임

1년 하고도 몇달 조금 넘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직도 가끔씩 삐약이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