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한 운동 배우고 싶어서 초딩들 다니는 체육관 일시불로 긁은 아재..

내 나이 40 주짓수를 배우러 갔었다

격한 운동이 해보고 싶어서 골프는 미뤄두고

크로스핏이나 헬스를 찾아보다

유튜브로 주짓수를 보게 되었는데

평소 대충 뭔지는 알고 있었던게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는 법이고

힘보다 원리를 알아야 잘할 수 있으며

몸으로 하는 체스 등등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바로 동네에 주짓수 체육관을 찾아보니

딱 하나 나오더라

합기도와 주짓수를 함께 가르키며

마침 영어도 함께 배울 수 있는

잉글리쉬 줄넘기를 한다길래 더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전화해보니 관장님이 나보다 한살 많으신데

상당히 점잖은 분이더라

내심 나의 예상을 보기좋게 깨졌다

모든 운동 관장은 터프하고 거친 사람일 줄 알았었는데

단 몇마디 만으로도

메너가 굉장히 좋으신분이란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망설이지말고 냉큼 오시라길래

한걸음에 달려가 바로 등록하고

도복 까지 구입했다

성인 관원은 얼마나 됩니까 물었더니

아침에 많이 오시고 저녁엔 드문드문 오신다더라

그래서 그럼 난 아침은 안되니

저녁에 사람들 많이오는 타임 알려달랬더니

성인부는 일단 자기가 먼저 테스트를 하고

그뒤 통과된 소수정예만 배울 수 있다하더라

아무나 받지않는 참된 스승이라는 생각에

내적박수를 쳤으나

티는 내지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수련을 얼마정도하면 검은 띠가 됩니까 했더니

자기도 아직 블루라서

매일 수련을 하는중이고

대략 주짓수는 십년은 해야한다더라

내 나이 사십인데 오십까지 해야 검은 띠를 딴다니

뭔가 참으로 깊이가 있는 운동이랑 생각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더라

의대도 육년이면 의사를 만들어주는데

대체 이 주짓수라는 운동은 정체가 무어냐 이생각에

심연의 바다에 빠진듯한 망상을 거둘길이 없었다

여튼 도복값과 등록비 및 여섯달치 회비 이백만원을

카드 결제하려고 하니 쭈뼛거리며

카카오페이 안 쓰시냐고 묻더라

아 내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외마디 탄성과 함께

카카오페이로 바로 송금해드렸다

와이프 몰래 숨겨놨던 비상금이었는데

하지만 돈은 또 모으면 되는 법

병원비 싸게냈다 생각하고

이제 유튜브에서 본 외국의 주짓수 몸짱들처럼

거듭날 생각에 기분마저 뿌듯하더라

몸풀기를 십여분하고 기술연습을 일대일로 했다

온몸이 뻣뻣하고 맘대로 움직이지 않더라

관장님이 암바를 하시는데

너무 아파서 악 소리 질렀다

역시 보는것과 하는것은 다르구나 싶어서

이번엔 나도 암바를 했는데

관장님이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며

내 자세를 고쳐주길래

이때다 싶어 확 꺽어재꼈다

아까의 복수심보다는 짧은 틈에

관장이 팔을 뺄까 염려가 더 앞섰던 탓일까?

이번엔 관장이 악소리내며 살살하시라고 하더라

왠지 모르게 성공한 것 같은 마음에 기분은 좋더라

그렇게 연습을하고 스파링을 하는데

연속 탭을 치고나니

히야.. 왜 이런 촌구석에서

나같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운동을 가르치십니까

소리가 절로나오더라

세상에 ufc가셔야 하는거 아니냐고 하니

관장이 히죽 웃더라

그렇게 스파링을 진행하는데

오륙학년은 되보이는 아이들이

하나 둘 도복을 입고 들어오더라

아이들은 등에 크게 합기도라고 써있는데

난 등에 암것도 없어서

관장님한테 주짓수 오바로크 쳐달라고 하니까

여기는 그런데가 아니라고 하더라

그럼 어디가야 하냐고 하니까

자기도 주문하는거라 잘 모른다더라

스파링이 다 끝나고 나니 아이들이 구경거리가 났는지

모두 모여서 쳐다보더라

물론 나는 땀과 먼지로 엉망진창이 됐고

얼굴은 불그죽죽해서 그지꼴이었다

관장님에게 이제 가보겠다고 하니

어디가냐고 앉으라더라

그렇게 초등학생들과 나는 관장님 앞에

제자로써 다 같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관장님이 아까 나랑 둘이 있을 때는

참 매너있고 좋았는데

초딩들이 오니까 말투가 근엄해짐을 느꼈다

내 나이 사십에 무릎 꿇고

부모님에 대한 예와 효

나라를 지키신 호국영령들에 대해 묵념까지 한셋트로

십여분간 일장연설을 듣게 되었다

그러더니 관장님이 삥 돌면서

순서대로 오늘 부모님께 잘한일과

못한일을 말하라고 하시는데

세번째가 나였다

나이 사십까지 살면서

심장이 이렇게 떨릴 일이 최근에 있었나 싶고

주짓수란 이런것인가 하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운동 배우러와서 부모님한테 잘못한 일을

오늘 처음보는 초딩들 앞에서

고해성사 하기가 내심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다

제가 최근 잘한 일은 딱히없고

잘못한 일은 얼마전에

엄마가 와이프 흉볼때 맞장구를 쳤습니다

초등학생들도 모두 긴장하는 눈치였다

관장님은 조용히 들으시더니

오히려 그건 엄마한테는 잘하신일이고

와이프한테 잘못하신 일이라며

조목조목 짚어주셨다

주짓수를 배우는게 아니라

여기서 인생을 배우겠구나 싶어서

뭔가 아주 든든한 큰 산을 만난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바로 소비자 보호원에 전화걸어

육개월치 환불가능한지 물어보니 가능하다더라

체육관 주소와 관장이름 알려주고

며칠뒤 전액환불 받아서

오늘 기분 좋아서 글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