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져도 생각나게 하는 남자

20살이었던 시절. 대학에 합격하고

과에서 친하게 지내던 여자애랑

같이 살았던 적이 있었다.

내가 여자다보니

대학가 근처에서 자취한다고 하니까

집에서 걱정이 많으셨다.

같이 살던 걔는 본가가 지방이라

방학때만 되면 15일, 20일씩 본가에 가서 오지 않았다.

나는 본가가 서울이라 주말마다 왔다갔다 했으니

방학이라고 뭐 더 가고 그런건 없어서 좀 심심하더라.

그러다 근처 살던 같은과 친구한테

“뭐해, 심심하다” 라고 연락한게 화근이었던 것 같다.

그 애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이 좀 가난해서 당장에 학비부터 벌어야했는데

나한테 대뜸 같이 알바를 하자고 하더라.

그렇게 피시방에서 알바사이트를 뒤적거리는데

걔는 무슨 OO바, 고소득, 이런것만 찾는 것이었다.

자긴 푼돈받고 힘든일 같은건 도저히 못하겠다며,

처음에는 뭐하는지도 모르고 나갔던거같다.

거기가 유흥주점이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옆에서 장단만 맞춰주면 된다는데

하나 주의할 점은 같이 일하는 다른 언니들한테

대학생이라고 말하지 말라더라.

다들 착한데 질투가 심해서

이게 본업이 아닌거 알면 괜히 더 텃세부린다고.

그때는 손님이 10만원을 내면

내가 5만원을 받고 가게 관계자들이

나머지를 나눠가졌던거 같다.

같은 소속? 언니들은 거의

20대 후반에서 서른 초였는데

스무살 애기들 들어왔다고 엄청 잘해주었다.

다들 이지역 사람들이 아닌

어디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었고

무엇보다 과거 얘기 같은걸 절대 하지 않았다.

난 방학때 잠깐 하자는게 맛이 들려서

5개월을 더 했다.

학교도 휴학해버리고.

언제쯤인지는 모르겠는데,

처음으로 거기서 내 또래 남자애를 만나게 되었다.

그 녀석은, 꼴에 자기가 전역 얼마 안남은 군인이라고.

휴가나와서 첨으로 한번 불러봤다는데

노래는 뒷전이고

소개팅 나온 것 마냥 맥주를 앞에 놓고

2시간동안 얘기만 하다가 나왔다.

내일 낮에 맛있는거 먹자고 약속까지 잡고..

그 다음날에도 만나서,

자기가 아직 군인이라 돈이 별로 없어서

비싼건 못 사줘서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나보다 2살 많은 오빠였다.

2달 뒤 전역이니까 나와서 진지하게 만나보자 하더라.

그때까지 다른 남자친구 사귀지말고

꼭 기다려달라고.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적이 없었던 때라

마냥 신기하고 좋고 설렜다.

중간에 한번 면회도 갔었다.

..그때는 모든게 신나고 재밌었던거 같다.

손잡고 길 돌아가는 것 조차도

왜 그렇게 행복했는지.

그렇게 2달이 흘렀고

자기가 뭘해서라도 먹여살릴테니까

거기는 그만두라 그래서 그 말 듣자마자 그만뒀다.

친구집에서 나오려했지만,

몇달 놀고 먹느라 돈도 거의 탕진해서

갈데가 없었는데 그 오빠가 기다려보라 하더니

바로 알바를 구해서 한달 뒤

보증금 100만원을 만들어서 가지고 오더라.

신혼부부처럼 방도 구했고

가구도 중고떨이 제품들을 사서 살림을 차렸다.

티비도 없었는데

오빠가 안 쓰는 티비가 있다고 해서

그 무거운 브라운관 티비를 낑낑대며 들고왔다.

오빠는 알바를 하고

나는 집에서 용돈을 받아서 생활했다.

월세도 오빠가 냈다.

집에서 티비보고 게임하면서 놀다가

오빠가 퇴근하면 저녁먹고 자고

주말에는 서울에 놀러가고.

나는 요리하는 것만 좋아했지

청소도 싫어하고 게을러서

청소빨래 같은 온갖 집안일은 오빠가 도맡아했다.

세탁기가 3만원 짜리다보니

금방 고장이 나버려서

언젠가부터 빨래도 화장실에서 손빨래로 했는데

퇴근하고 오면 오빠가

내 팬티랑 양말이랑 싹싹 빨아서 방안에 널어줬었다.

빨래하면 손목 아프니까 할 생각말고

그냥 구석에 잘 모아만 두라고..

알바하러 가기전에 오빠는

늘 따뜻한 국이랑 밥을 차려주고 나갔는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게 나중에 가니

고맙다는 생각도 안 들고

맛이 있니 없니 타박하게 되는 것이었다.

가진건 쥐뿔도 없었던 주제에.

한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오빠는 제대로 된 직장이 있어야 결혼한다고

학교에 복학한다는 말을 꺼냈다.

그 오빠 학교는 집에서 1시간 반거리였는데

공부 열심히해서 좋은 직장 잡아

나 호강시켜 주겠다고,

연구실에서 쪽잠만 자고 주말에만 집에 왔다.

항상 월요일 아침에 학교가면서

맛난거 사먹고 하라고 5만원도 주고갔다.

그때는 물가가 싸서 5만원이 안 부족했다.

내가 어딜 싸돌아다니는걸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 5만원으로 담배나 사서 피거나

장봐서 요리해먹고 살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자기가 용돈을 한달에 30을 받는데

아끼고 아껴서 나 준거더라.

그때쯤 나도,

월세는 내 손으로 내고 싶어서 알바를 시작했는데

손이 워낙 똥손에다 덤벙대고 눈치도 없어서

며칠을 못가고 짤리는게 다반사였다.

솔직히 별로 의욕도 없었고..

2번째 장학금을 타던 날,

오빠가 진지하게

너도 학교 복학하는게 어떻겠냐고 하더라.

꼭 취직하라는게 아니고

이왕 입학했으니 졸업은 하라고..

그때는 이미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다 졸업해버려서 복학이 마냥 두려웠다.

괜히 학교가기 싫어서 투정부리고 울고 그랬다.

결국 수강신청도, 학자금 신청도,

복학신청도 오빠가 다 해주고

시간표도 다 짜줬다.

아침 9시 수업이면 나 깨워서

책가방에 전공책이랑 필기도구 챙겨서

손잡고 학교 앞에 데려다주고,

다시 데리러오고 해줬다.

내가 애도 아닌데 계속 그러니까

조금 창피하긴 했지만 안 그럼 안나가니까.

결국 그것때문에 친구 하나 없이도

학교를 잘 다닐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은 때도 밀어줬다.

목욕탕 가는거 얼마 안하는데

그때는 돈 천원이 아쉬울 때라..

둘다 학생이라 돈이 부족해서,

새우깡에 소주 먹고 그랬다.

비싼 레스토랑 못가줘서 항상 미안하다고.

언젠가 취직해서 돈 많이 벌면 꼭 데려가겠다고.

오빠는 성적이 좋아 졸업과 동시에

서울 괜찮은 직장에 취직했다.

순식간에 엄청 바빠지더라 회식도 많고..

그래도 나 중간보사 본다하면

공부 열심히 하라고 용돈도 주고

가끔은 와서 밀린 집안일을 꼬박꼬박 해줬다.

그때가 우리가 사귄지 4년이 좀 안 됐을 때였는데

언제가부터 오빠가 직장에서 썸 같은 관계가 생겼는지

핸드폰을 잘 안 보여주려고 하더라.

어차피 나도 곧 졸업이고

졸업과 동시에 취직할 생각이라

솔직히 잘됐다 싶어서 더이상 묻지 않았다.

겉으론 말을 안했지만

나는 오빠랑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첫 남자친구랑 결혼하는 인생을 살긴 싫었다.

오빠랑은 2살차이 밖에 안났지만

나에게는 언제가부터

남자가 아닌 오빠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오빠네는 엄청 가난했는데다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장애가 있었고,

어머니는 이것저것 안가리고 일하시며

아픈 몸으로 아들 둘을 키워내셨다고 들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거 같은

조그마한 낡은 다세대집이었고

가구들도 하나같이 엄청 오래됐고.

싫었다.

돈이야 내가 벌면 되지만

오빠네의 가난이 나에게로 옮는 것은 싫었다.

가끔 오빠 어머니가 나한테

본가로 들어가는게 어떻겠냐고 하시던데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 아들 고생 좀 그만 시키라는 말을

돌려한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졸업 한달여를 앞두고.

썸타던 여자애랑 바람난게 아닌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핑계를 대고 학기를 마치자마자

본가로 도망치듯 나와버렸다.

헤어지자는 통보도 내가 하지 않았다.

“넌 X발 나쁜 새끼야”라고.

평소에 하지도 않은 쓰레기 같은 말들을 쏟아내고

오빠 입에서 직접 나에게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해주길 바랬다.

아니면 아플 정도로 내 뺨을 쎄게 때려주길 바랬다.

하지만 참 웃긴게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하더라.

본인이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그렇게 했는데도 나한테 화 한번 안내더라.

그때 이후로 어느날

비가 물 퍼붓듯이 쏟아지는 날이었는데

오빠한테 전화가 한통 온적이 있었다.

우리가 예전에 같이 살던 집앞에 와있는데

집이 반지하라 물에 잠길까

걱정돼서 와봤다고.

근데 거기에 내가 없어서 너무 슬프다고

세상이 무너진 사람처럼 울더라..

20대 통틀어 나랑 결혼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고 달려왔는데

이젠 목적이 없다고..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헤어질 수 있냐고

그렇게 한참을 울더라.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는데

결국 그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 후 나도 취직을 했고

운좋게 괜찮은 기업에 들어가게 되어

첫 월급으로 통장에 247만원이 찍혔는데

헤어지고 처음으로 소리내면서 울었다.

미안함이었을까,

아니면 고마움이었을까.

그냥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던거같다.

얼마간은 오빠가 술에 취해 울면서 전화가 오곤 했다.

나를 잊고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되는거 같아보였다.

그렇게 몇개월이 지나 남자친구가 생겼고

그 후로도 쭉 썸도 많이 타고,

여러 사람을 만나보며 살았다.

혹시라도 전화가 올까 번호도 바꿔버렸다.

그러다 작년에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했고

알바는 그렇게 짤리던 내가

직종이 잘 맞았는지 좋은 조건으로 이직도 하고

직급도 올라서 좋은 음식에

좋은거 입고 취미생활도 하러다니는데

가끔..대학 친구들 만나러

오빠랑 살던 그 동네에 가게 되면

추운날 손 호호 불어주면서

내 손잡고 학교 데려다주던 그 손의 온기가 생각나더라.

잘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니 그 사람에겐 항상 받기만 했고,

베풀어준게 하나도 없었다.

지금은 번호도 바뀌었고, 만날수도 없지만.

그렇게나 나를 챙겨주고 사랑해줬는데도

나는 해준게 아무것도 없다.

첫 월급 탔을 때 맛있는 밥이라도 사줄걸.

이런 생각을 해봐도

미한하고 고맙긴한데

솔직히 두번 다신 만나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