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잡히면 안 되는 추격전

2010년 여름쯤이었음

고등학생 1학년이었고

여느 때와 같이

새벽훈련 마치고 식사를 하고 있었음

당시 씨름부에는 당번이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그 당번이 청소, 빨래, 식사, 설거지, 심부름

등등 모든 것을 다 해야했는데

근데 전날 당번이 깜빡해서

마실 물을 30병 떠놔야 하는데 20병만 떠놨다고

밥먹다가 그대로 3학년들한테 맞음

(새벽,오전,오후,저녁 하루 총 4번 운동했고

30병씩 총 120병을 떠야함)

근데 3학년들한테 맞고 끝이 아닌게

그 다음 또 2학년들한테 야구빠따로 맞음

진짜 운동부 문화가 악질이었음

그때 했던 말이

“너희들은 청소,빨래,설거지 하려고 온거다.

절대 까먹지마라” 라고 말하더라

그 때 속마음으로 다 알겠으니까

그만 때리고 좀 쉬면 안되나 생각했었음

집합이 끝난 다음

내 동기 A가 ㅈ같다고 불만을 토로함

이날 새벽에도 이유도 모르고

그냥 아침에 지들 분 안 풀렸단 이유로

싸다구, 주먹, 발, 파이프, 빠따, 등등

진짜 여러가지 아이템으로 다 맞아본듯

그러다 A가 나한테 튀자고 하더라

그땐 거절했음

튀었다가 잡히면 죽도록 맞을 걸 알았거든

(과거에도 수많은 도망자들이 있었다는데

전국 각지로 도망가도

대부분 1달을 못 넘기고 잡혔다 하더라고)

그러다가 전국대회가 있었는데

대회가 끝난 후 운동부 단체로

포항에 있는 월포 해수욕장이라는 곳에 놀러를 감

1학년은 이런 곳에 와서도

심부름만 해야해서 제대로 놀지도 못했음

그러던 중 2학년 중에 한명이 놀고 있다가

지가 끼고 있던 금반지를 잃어버렸다고

흩어져서 전부 찾으라고 하더라고

찾아보라는 것도 아니고 찾아오라는 거였음

ㅅ발 하얀 백사장에서

그 쪼끔한 금반지를 찾는게 말이 되냐?

어차피 못 찾을 거 아니까

1학년끼리 모여서 대충 노가리나 까면서

하루종일 금반지 찾는 척만 하다가

결국 금반지는 못 찾았고

숙소에 돌아갔더니

1학년 한명당 15만원씩 거둬서 내라더라

지가 잃어버리긴 했는데

우리가 찾았으면 됐지 않냐고

못 찾았으니까 우리 잘못이라고 물리라는

기적의 논리였음

당시 부모님한테 매주 3~5만원 받는게 전부였는데

고등학생 1학년이 15만원이 어딨겠냐

그래서 5주일동안 갚겠다고 했더니

“왜 너네 엄마 돈 없어? 너네집 거지야?”

하더니 닥치고 돈 가져오라고 하더라

걍 이새기랑 대화도 안 통하고

상황 끝내고 싶어서 걍 알겠다고 했음

그러던 어느날

이새기한테 1학년들이 돈 갚고 있는 걸

3학년들한테 걸린거임.

그렇게 1학년 2학년 다 모이라고 해서 또 맞았음

진짜 열 받았던게

저 상황 끝나고 2학년들한테 1학년들 또 맞았음

진짜 하도 맞으니까

걍 맞아도 별 생각없고 ㅈ같단 생각밖에 안 들더라

그러다 걍 A한테

“야 도망갈래?” 했더니 바로 콜이라고 하더라

그렇게 얘랑 도망갈 계획을 짰음

약 2년간의 가출 스토리가 될 줄은 이땐 몰랐음

보통 밤 11시가 되면 숙소 소등을 하고 자거든

우리가 서로 2층침대 바로 옆자리라

누워서 자는 척하고 눈을 뜬 상태로

새벽 4시 30분까지 버티고 있다가

(새벽 6시부터 운동 시작이라 5시 30분에 전체 기상함)

4시 30분이 되자말자

화장실 가는 척 하면서 헬스장에 숨었고

15분 후에 A도 화장실 가는 척 하면서 합류함

(바로 따라나가면 안 자고 있는 애한테

걸릴까봐 시간차 좀 두고 나왔음)

암튼 A가 오자마자 같이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한번도 안 쉬고 산으로 달렸음

(맨날 훈련하던 산이라 길 다 암)

그날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는데

등산로에 도착해서 나무 밑에 숨어있다가

해가 뜨자마자 택시타고 동대구역으로 갔고

거기서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역으로 ㄱㄱ

당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입석이었는데

몸이 다 젖어서

서울까지 가는동안 기차에서 옷 말림

서울역에 도착해서

택시타고 근처 PC방으로 가서

진짜 몇년만에 자유를 누볐음

당시 돈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밥은 편의점에서 컵라면 사서 먹고

잠은 어느 건물 계단 같은 곳에서 잤음

샤워는 1~3일에 한번 목욕탕에서 했는데

이렇게 살다보니 돈이 다 떨어져서

먹고 살려면 알바를 구해야했음

그러나 신원이 불문명한 고등학생을

고용해주는 곳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쉽지가 않더라고

그러다 드디어 알바를 하나 구했는데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 있는

마로니 공원에서 연극 티켓팔이 알바를 하게 됨

연극이 뭔지도 모르는 애들이

지나가는 커플, 행인들 붙잡아서 티켓 파는거였는데

솔직히 팔면서 양심에 가책을 느낀게

이 연극이 ㅈㄴ 재미없어보였는데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한테도 팔았음

재미도 없는데 언어도 못 알아 듣는 그 사람들이

내 욕을 얼마나 했을지 상상이 안됨..

암튼 이때가 여름이라 심하게 더웠는데

알바하다가 목 마르면

근처에 있는 햄버거집 가서 음료수 하나 사고

하루종일 리필해서 마셨음

그렇게 알바 좀 하다보니

일하는 형들이랑 친해지고 돈도 좀 생김

특히 친했던 형 한명이

충무로역에 있는 모텔에서 월세내며 살았는데

거기서 같이 지내거나

마로니 주변에 있던 호프집에서

알바하던 누나 집에서 지냈음

(나이 20살이라 했는데 믿더라..

그 누나가 나 마음에 든다고 며칠동안 지내라고 하더라)

그러던 어느날

알바 끝나고 모텔 앞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난 안 피고 A가 핌)

아줌마 둘이서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

목소리가 커서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출에 코치가 뭐 어떻고 뭐라뭐라 하길래

놀래서 아줌마들한테 무슨 일이에요? 하니까

자기가 숙박업을 하고 있는데

대구에서 운동부 2명이 가출했다고

코치가 잡으러 왔다고 하더라고.

원래 우리 학교 전통이

운동부가 도망가면 그 애가 어느 지역으로 갔는지

특정한 후에 운동부 약 40명을 데리고

그 지역을 샅샅히 뒤진다는건 알고 있었는데

근데 나는 아무런 흔적도 안 남겼고

우리를 절대 못 잡을 거라 생각했는데

도대체 어케 안건지 감이 안오더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들 발 밑까지 쫓아왔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었음

A랑 부들부들 떨면서 담날도 알바하고 있는데

마칠 때쯤 되니까 알바하는 곳에 코치가 찾아옴

코치는 나를 못봤고

나는 코치를 본 상황이었는데

진짜 개무서워서 아무 생각도 안나더라

근데 신기하게 몸이 바로 반응해서

1초도 안 망설이고 같이 가출했던 A를 데리러감

너무 큰 공포심을 느끼기도 했고

급해서 A한테 코치!! 코치!!! 라고 대충 설명하고

택시타고 거주하고 있던 모텔로 갔음

도착해서 짐을 챙기고 있었는데

A가 상황파악이 제대로 안 되는지

닝기적 닝기적 짐 챙기길래

정신 차리라고 욕 까지 박았음

그러다 갑자기 누군가가 모텔 방문을 두드리더라

그 순간 오만 생각이 다 들면서

A랑 눈 마추치고 얼어붙어서 가만히 있다가

모텔이 2층이라 뛰어내릴 생각하고 있었는데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길래

엥 갔나? 싶어서 짐 챙겨서 다시 나가려니까

아랫층에서 누군가가 이야기 하면서 올라오고 있길래

그 순간 소리 안나게 문 열어서

발소리도 안 내고 A데리고 3층으로 올라갔음

숨 죽이고 들어보니

우리랑 같이 일하던 형이랑 코치였음

코치가 형한테 온갖 욕을 하면서

애들 안 데려오면 너부터 죽는다고 하는데

형이 코치한테 맞고 온건지

진짜 겁 잔뜩 먹어서

애들 반드시 데려오겠다고 대답하고 있더라

코치가 주변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진짜 무섭고

한 끗 차이로

목숨을 부지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음

아무튼 나는 바로 A를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간 후에

지붕을 뛰어 넘어 옆 건물로 갔음

그리고 1시간 정도 숨어서 모텔 입구 쪽 보고있다가

건물을 내려와서 택시타고

강남에 있는 고속버스 터미널로 도망을 감

밤에 고속버스터미널 가니까

택시 기사들이 어디어디 간다고 사람 모집 하고 있던데

너무 비싸서 못 타고

아침까지 숨어있다가 새벽에 첫차를 타고 광주로 튀었음

광주 도착해선 전단지 알바를 구했음

광주터미널 근처에

7층짜리 찜질방이 있었는데

2층은 남탕이고 3층은 PC방이고

7층이 찜질방이었던 걸로 기억함

여기서 2주일 정도 생활하다가

뭔가 계속 불안해서 또 대전으로 갔음

고속버스 타고 대전에 도착하니까

터미널도 아니고 무슨 주유소에 내려주더라

대전에서는 PC에서만 지냈는데

A가 구직활동을 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음

돈도 별로 없는데 담배는 매일 한갑씩 피고

밥도 비싼 거 먹고

그래서 얘랑 있으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길래

은행동에 있는 사우나에서 같이 자는 척하다가

돈이랑 짐 다 들고 A버리고 부산으로 도망 옴

또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로 감

해운대에서는 제법 큰 찜질방 (14층?)

에서 지냈고 밥은

거기 주변에 쇠고기 국밥집이 하나 있었는데

3500원 밖에 안해서 거기서만 먹음

그렇게 생활하다가

A한테 미안해지기도 했고

코치가 또 잡으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대전으로 이동했음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아무리 찾아도 A가 어디있는지 알 수가 없더라

대전에서는 또 다시 위 사우나에서 생활했고

제대로 된 일을 해야겠단 생각에 택배 물류센터에 지원했음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신원확인을 제대로 안 해서

나이 속이고 그냥 일 할 수가 있었거든

업체 이름이 “야베스”라는 곳이었는데

“태산”이라는 인력회사 밑에 있는 업체였음

아무튼 대흥동에 있는 그 업체를 통해서

옥천 KGB에 매일 같이 출근했다.

당시 상하차를 했는데

10시간 넘게 일하고도 일급 5만원 받았고

원래부터 씨름을 했던 몸이라 그런지

별로 힘들지는 않았음

그냥 밥 먹을 수 있고

잠만 잘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음

토요일 빼고

월, 화, 수, 목, 금, 일 매월 풀로 만근을 했고

하다 보니 노하우도 쌓여서

중분류, 대분류까지 올라가서

나중에는 일급 7만원을 받게 됨.

약 1달 일하니까 돈이 80만원 가까이 쌓이더라

그 돈을 가지고

은행동에 있는 드림 모텔이라는 곳에서 살다가

한 달 후에는 대흥동에 있는

아마존 모텔에 월 40만원 주고 들어감

그러다 모텔에서 밥 해먹는 거 걸렸는데

주인 할머니가 나가 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주변에 있는 다른 모텔에서

다시 한 달 살다가

제대로 된 집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일할 때 친해진 아저씨 도움으로

한남대학교 북문에 있는 원룸을 구했음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25만원이었는데

4층이고 생각보다 넓어서 마음에 딱 들더라

좀 멀긴 하지만

용전동이라는 곳에 홈플러스도 있고 살만 했음

당시 옆집에 예쁜 여대생 누나가 살았는데

고1인데도 불구하고 별 생각 안 들더라

가끔 공용 세탁기 쓰려고 열어보면

누나가 깜박하고 속옷 안 널고 외출하면

그거 꺼내서 남들이 못 보게 가려놓고 내 옷 돌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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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렇게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는데

서울에 놀러 갔다가

영등포에서 코치한테 잡혔음.

1년 6개월이면 잊을 법도 한데 진짜 끈질기더라

그자리에서 바로 대구에 숙소로 끌려갔고

양손목과 양발목을 밧줄에 묶인 후

애들 시켜서 4방향에서 잡아 당기게 하더라

진짜 미친놈이었음

나는 공중에 떴고 살려고 발버둥 쳤다.

근데 코치는 당기고 있는 애들한테

놓치는 새끼는 같이 뒤진다. 라고 경고했고

운동하는 애들이 당기니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 날 수 없더라

나는 그 상태로 쉬지 않고

삽자루로 250대를 맞았음

이후 싸다구를 처맞고 발로 까이고

넘어진 상태에서 싸커킥을 처맞고

야구방망이로 진짜 개처럼 맞았음

뭐가 그리 화가 난건지

미친듯이 화풀이를 하는데

그 날은 밤 11시부터 맞기 시작해서

새벽 3시까지 처맞다가

코치도 지쳤는지

새벽 7시까지 대가리 박기 시키고

7시 30분에 옷 갈아 입고 감독한테 끌려 감

그리고 감독한테도 또 맞았음

그리고 집으로 보내졌는데

약 2년만에 집에 돌아 가니까

살던 집이 아니고 이사를 했더라

한가지 충격적이었던건

할아버지가 1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고

가출했던게 처음 후회가 됐음

아빠랑 엄마는 이제 운동 안 시킬테니까

도망 가지 말라고 눈물을 흘리셨고

나는 그동안 힘들었다고

운동 안 해도 열심히 살테니까

믿어달라고 그날 우리집은 눈물바다가 됨

(근데 약 1달 후에 엄마랑 싸웠다가

엄마가 코치한테 데려가라고 해가지고

다시 운동부 들어가서 또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