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을 함께 해서 할 말이 많은데, 작별인사 할 시간이 없었던 이별준비

와이프가 지난 8월 30일 저녁에 소천하였습니다.

아침부터 산소포화도가 90 80 70으로 떨어졌는데

산소호흡기 중 제일 쎈걸 최대로 했는데도

이렇게 떨어지는 경우에는

기도삽관 외에는 방법이 없다더라고요.

기도삽관을 하게 되면 기계로 숨을 쉬는거라

환자를 재워야 하는데

이러면 중환자실에서 잠든채로 돌아가실거라고

가능하면 하지 말걸 권했고요.

이게 그동안 인터넷으로나 보던

연명의료 치료 거부라는 거였어요.

70으로 떨어진 산소포화도는

지금 하는 항암이 효과가 있으면

다시 올라갈거니 두고보는 수밖에 없다 했었어요.

만약에 항암 효과가 없으면

그날 밤에도 많이 안 좋아질 수 있고요.

그런데 차마 와이프에게

이 말을 할 순 없어서,,,

지금 하는 항암 효과가 나면

숨쉬는 것도 괜찮아질거라고만 이야기 해줬어요.

와이프가 절망하는걸 볼 수가 없었어요.

거짓말도 잘해야하는데

이 말하면서 진짜 많이 울었어요.

와이프가 왜 우냐고 울지 말라고

절 위로하는 것도 너무 속상했어요.

수술과 항암, 암 통증

모두 참았던 와이프 인데

호흡이 달리니까 패닉이 왔어요.

숨이 안 쉬어진다고 눈이 땡그래져서

오빠 나 좀 살려달라고 하는데

해줄 수 있는게 없으니까 미치겠더라고요.

손을 잡아주는데

한달간 링겔로 영양섭취를 한 와이프 몸은

땡땡 부어서 손이 너무 차갑고

말로 표현못할 감정이 올라와요.

조금만 참자고,

지금 하는 항암만 들어가면 다시 좋아질 수 있다고,

우리 집에 가서 다시 행복하게 살자고

이야기 해줬어요.

그동안 못했던거 다 할 수 있고

먹고 싶던거 다시 먹을 수 있다고요.

와이프가 웃으면서 끄덕거리고는

잠시 뒤에 말이 없어졌어요.

의사 선생님이 잠들면 통증도 덜하고

힘들어하지 않으니까

그게 좋다고 해서 다행이다 싶어서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산소포화도가

70에서 60으로 떨어지더라고요.

너무 놀라서

간호사 선생님을 부르러 나갔다가 왔는데

그 짧은 시간에 산소포화도가 50이 됐어요.

간호사 선생님이 보시더니

임종 직전이신거 같다고

빨리 하시고 싶은 이야기 하시더라고요.

그날이 오늘이 될줄은 몰랐었어요.

다른 선생님들이 달려오셔서

처치실로 옮겨 가는데

와이프가 무서워 할거 같았어요.

그래서 간호사 선생님들 다 계시니까

걱정말라고 치료해주실거라고 이야기 했더니

와이프가 끄덕이더라고요.

그리고 처치실로 옮기는 그 사이에

와이프가 떠났어요.

드라마에서나 보던 맥박이

0이 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간호사 선생님들이

아직 뇌는 살아 있으니까

하시고 싶은 이야기 해주라 하시고는

자리를 피해주셨어요.

사랑한다고,

사귄 4년 결혼하고 같이한 4년 다 너무 좋았고

만나서 행운이었다고,

그간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고

다음에 만나서

우리 그간 못했던거 다 다시 하자고

이야기 해줬는데

잘 전달이 됐나 모르겠어요.

제가 교회를 다니는데요

그간 우리 와이프 치료해달라고

기도를 진짜 많이 했거든요.

그러다가 상태가 안 좋아지니까

혹시라도 데려가시려면

아프지만 않게 해달라고 했는데

두번째 기도만 들어주신거 같아요.

호스피스 전전 하며 심적으로 절망하고,

오랜시간 고생하다가 가진 않았으니까.

여기에 만족해야 할까요.

와이프가 입원해 있는 동안

퇴원하면 집에가는 길에

스타벅스 아이스 푸라푸치노가

꼭 먹고 싶다 했는데

마침 장례 이틀째가 와이프 생일이었어요.

케익과 같이 사와서

사진 앞에 놓았는데 꼭 먹었어야 하는데.

못 먹인게 너무 후회가 됐어요.

백개라도 사줄 수 있는데.

영안실과 장례식장 앞에 붙어 있는

와이프의 이름과 33살이라는 나이를 보는데

속상하다는 말로는 깊이가 표현이 안돼요.

어제는 삼우제를 지내고 왔어요.

날씨가 참 좋더라고요.

원래 이런거 잘 안 믿는데

장례첫날에는 비가 진짜 미친듯이 오다가

다음날 부터 장례기간 때에는 흐렸거든요.

삼우제때는 날이 맑으니

와이프가 우리를 보고 있는거 같았어요.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평범하게 애 하나 낳아서

세가족이 오순도순 사는게 목표였다가,

와이프 아픈 뒤로는

우리 둘이서만 오래오래 사는게 꿈이었는데

이제 혼자 남아서 삶에 방향이 안 잡혀요.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극복 되겠지만

그 시간이란게 얼마나 걸릴지,

혼자인게 무섭고 두렵네요.

요즘은 손에 잡히는 대로 하나씩 정리 중이에요.

옷과 악세사리들은 처가에 전달했고

신발들은 사이즈가 맞는 곳이 없어

와이프가 생전에 옷가지들을

기부하던 곳에 보냈습니다.

어릴적 사진들, 친구들과 다니던 여행사진들,

회사에서 찍은 사진들까지

너무 너무 밝은 모습인데

이젠 다시 볼 수가 없네요.

다이어리에 회사 일과

가끔쓰던 일기까지 깔끔하게 정리해놓고..

참 꿈이 많았었는데,

정말 열심히 살았었는데

이제 힘든 고비 넘겨서

먹고 살만해지니까 떠난게

너무 원통하고 속상해요.

와이프가 디자이너 였는데요,

핸드폰 사진첩을 보니

마지막 가기 전날까지

웹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면서

레퍼런스라고 캡쳐해놓은 페이지들이 있더라구요.

본인이 얼마나 안좋은 상태였는지 몰랐던거였겠죠.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준거 같아서

기특하고 대견하고 미안하고 그래요.

와이프 입원 중에 제가 허리를 다쳐서

119에 실려 응급실에 간적이 있는데요

119가 올때까지 제 걱정을 해주며

작은 손으로 제 어깨를 주무르며

선풍기 돌려주고

간병을 해주던게 많이 생각이 나요.

자기가 더 아프면서

내 걱정까지하게 만들고 했던게

너무 속상하더라구요.

오빠 우리 아프지 않기로 했잖아 라는 말이

너무 귀에 맴돌아요.

사별이라는 키워드로

여러가지를 검색하다보니까

저희와 비슷한 나이 또래 부부의

사연을 알게 됐는데요,

남편분이 결혼 1년차에 대장암에 걸리셨고

4년차에 돌아가셨더라구요.

그분이 남기신 글 중에

하나님이 남편이 떠날 것을

미리 계획하고 알고 계셨고,

하늘로 데려가시기 전에

큰 선물로 나를 보내셨다라는 글을 봤어요.

본인이 남편에게 하나님이 보내주신

마지막 선물이라고.

많은 위로의 말들 중에서

저에게 가장 위로가 되더라구요.

저와 함께 했던 시간이

우리 와이프에게 선물이였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