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지낸지 20년이 훨 넘은 여사친과의 ‘지옥 같은 하룻밤’ ㄷㄷ

나는 뇌 용량이 없을 때부터 친구였던

여사친이 한명 있다.

부모님끼리도 이미 20년이 훨 넘은 친구였기 때문에

합치면 벌써 우정으로만 50년 가까이 된 사이다.

떡볶이를 먹으면 항상 나는 어묵

항상 얘는 떡만 먹었었다.

때는 10년 전,

내 전역과 이 친구의 취업이 맞아떨어졌다.

시골 촌놈년들이

근 4년만에 서울에서 재회하게 된 것이다.

취업턱을 내겠다며

자취방 근처 파전집으로 나를 불렀고

빗물에 정수리가 뚫릴듯한 날씨였지만,

방금 제대한 군인은

꽁술을 버릴만큼 돈이 많지 않았다.

오랜만에 본 여사친은 조금 차분해져 있었다.

원래 3대 지랄견 같았다면,

그날은 산책 3시간 하고 온 지랄견 같았다.

이 미세한 차이를 발견한 내가 대견해

그대로 말해줬더니

“이빨 뽑아다 실로폰 만들어줄까?”

라고 하는 말에

지랄 같은 성격은 안 변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4년간 있던 얘기를 많이 나눴다.

나눴다기 보단 일방적인 대화의 연속이었다.

내 질문은 기억나는데

상대방 대답은 기억 안난다.

지랄맞은 술자리였다.

그렇게 비운 술병이 시킬 술병보다 많아질쯤

지랄견이 담배를 한대 태우자 그랬고,

ㅇㅋ하고 따라가다

계산대에 있던 박하사탕 하나 뜯어먹고 돌아서니

지랄견이 보이질 않았다.

도대체 어디간건가 도리질을 해보니,

문을 열고 나가다가

웰시코기만한 다리를 접질러,

역류한 하수도 위 고인 물에 넘어져있었다.

진짜 지랄맞은 술자리였다.

지랄견은

“ㅇㅑ 역ㅣ 숭영장도 잇스엌ㅋㅋ

앜ㅋ 어푸 빨리 너도 들어와”하며

스스로 동네 망신을 시키고 있었다.

그 장면을 조용히 폰으로 찍은 나는

가게로 들어가 계산을 하고

냄새마저 지랄 맞아진 지랄견을

부축해 큰길로 나갔다.

그러다 가방을 놓고 온 것이 생각났지만

말할 힘이 없었던 건지

열 발자국 갈 때마다 파전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헨젤과 그레텔이었다.

아니 헨지럴과 그애팰이었다.

아쉽게도 헨지럴의 파전은

전부 빗물에 씻겨 나갔다.

헨지럴을 태우려는 택시는 없었다.

운수업은 냉담했다.

주소를 물어도 우웩,

달래봐도 우웩

쏟아내는 파전에 지랄견은

전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했고

동이 트는 모습을 보며

결국 우리는 근처 모텔로 달려갔다.

모텔주인은 경찰을 부를까 고민하던 것 같았다.

시체로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듯

지랄견은 로비에도 파전을 부쳤다.

방에 들어가 신발을 벗기고 있으니

갑자기 지랄견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날만은 광장시장 할머니들보다

얘가 더 많이 파전 많이 부쳤을 거다.

나오길 기다리며 바닥에 앉아있는데

소리가 멎은지 십수분이 지나도

인기척이 없다.

문득 다음날 뉴스 1면에,

동창생 살해범 A씨로

내 셀카가 걸릴 것 같았다.

문을 열어보니 지랄견은

비워내던 변기에 머리를 쳐박고

변기물로 머리를 감고 있었다.

난감했다.

저걸 어떻게 해야하지.

옷은 입고 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증거를 남기기 시작했다.

“지랄아? 지랄아!” 하며

뒷통수를 후려도 일어나질 않자

결국 고민하다 옷을 벗기고,

세신에 들어갔다.

다행인건 우리집 개가 중형견이었고

씻길 때부터 옷도 모두 손으로 빨고,

가운을 입히고

모든 과정을 행여 몰라 녹음해놨다.

라면에 계란 넣지 말라며 소리치는 것도

전남친 이름을 부르며 우는 것도

물 온도 뜨겁다고 지랄하는 것도 모두 녹음됐다.

지랄맞은게 아니라 그냥 인간 자체가 지랄이었다.

뒤늦게 나도 씻고 옷을 빤 뒤

바닥에 잠깐 누워있었던 것 같은데

퇴실 시간 안내 전화가 왔다.

벌써 세시간이 지나있었다.

전화를 끊고 다시 누우려는데

지랄견과 눈이 마주쳤다.

지랄견의 비명소리는 내 잠을 깨우기에 충분했고

멘탈을 다잡고 핸드폰을 켠 뒤

모든 사진과 녹음을 들려줬다.

지랄견은 중간중간

“미친 아 헐 아 시발”

같은 소리를 냈다.

그러고선

“야 너는 옆에 여자가 벗고 있는데 그걸 가만두냐?”

같은 개소릴했다.

우리집 개도 집에선 늘 벗고있다 라고 했더니

싸늘하게 재떨이가 날아와 머리에 명중했고

우린 또 그렇게 개판 싸웠다.

진짜 지랄 맞은 새끼였다.

결국 세시간 연장하고

냉면 시켜서 해장한 뒤

밖에 나와

오늘 있었던 일은 절대 비밀로 해야된다.

나는 너를 믿는다.

아니면 강제로 입막음 할 수 밖에 없다며

주먹을 쥐길래

모든 파일을 지우고 인사를 건넸다.

그 후 몇번의 만남 중 개소리를 할때마다

아 이새끼 안달린거 봤는데 존나 달린거 같애;

라고 하면

그때마다 뭔가 날아와 꽂혔다.

맞는게 재밌는건지 놀리는게 재밌는건지

내 성향에 의구심이 들던 도중

지랄견은 그 이후로도 나를 만날 때마다

여자가 벗고 있는데 가만히 두는거 보니

이새끼는 고자새끼가 확실하다며

매번 나를 놀렸고

나는 일자 몸매에는 흥미가 없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다 지랄견의 자취방에서

술이 만취가 될 때까지 마시다가

서로를 매번 놀리는 말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확인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지랄견과 나,

그리고 우리 애까지

3인 가족이 되었다.

서로의 부모님들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면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과는 달리

부모님들은 “안 그러는게 더 이상하지~오호홍”

하며 매우 기뻐하셨고

이 일로 인해 나는 술을 끊게 되었다.

가끔 살다가 지친날 내게 다가와

“서방~ 비도 오는데 소주 한잔?” 라고 할 때

백업해뒀던 엔드라이브를 꺼내 보여주면

시끄럽던 우리집엔

조용한 침묵만 흘러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