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던 ‘엄친아’ 군대 선임 만난 남자

군대 선임 썰 한번 풀어보려 하는데

여름만 되면 이 선임이 종종 생각남.

그만큼 내 인생에 고마웠던 사람임.

나는 2000년대 초중반

더위가 끝나가던 시점에 육군으로 입대 했음

자대 배치는 충청도에 있는 모 부대로 받았었고..

특이한게 하나 있다면 헬기를 자주 타야 했던 부대임.

그거 빼면 지극히 평범한 부대 였음.

내가 처음 갔을 때 이 선임은 일병 6개월차였고

이 양반은 통칭 군대에서 에이스였음

나랑 같은 소대는 아니고 중대만 같았음.

우리는 중대단위로 움직였어서..

경상도 출신이고 학벌은 그냥

지방국립대 다니다 온 사람이었는데

(물론 그 시절엔 지방국립대가 지금보단 빡센 걸로 암)

고려대나 이런 출신들도 있었는데

그런사람들 제치고 행보관이 그 선임만 찾음

이유는 행보관이 당시 야간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한문학과)

이 선임이 행보관 레포트를

중간 기말마다 대신 써주고 있었음..

더 웃긴건 글씨를 기가막히게 잘 썼음.

한문도 많이 알아서 막사별 입구에 붙어있는

건물 현판을 이양반이 다 쓸 정도..

그리고 매번 행정병들이

서류에 모르는 한자 있으면 물어보러옴.

행정병도 아닌데 행정병 일도 다 도와주고..

게다가 당시 내 기준에서는 가장 충격적인게

100m를 11.9에 뛰었음.

물론 우리가 100미터 연병장에서 재고,

우리가 스톱워치로 찍은거라

명확한 기록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정도로 빨랐음.

농구랑 족구는 거의 신이었고, 축구도 잘했음.

다 잘했음. 다.

그런데 이 선임이 심각한 문제가 하나있었는데,

아재 군필자들은 알겠지만,

한총련이니 뭐니 학생운동이니 뭐니

이쪽 애들은 군대오면 진짜 반 죽었거든.

관심병사는 기본이고

휴가 갔다올 때 선동서적이니 뭐니

이런거 맨날 감시 당하고 그랬는데

이양반이 학생운동 하던 사람이었음.

한번은 정신교육 시간 때

한총련의 문제 이런거 하고 있었는데..

진행하던 정훈장교가

한총련의 입장 한번 들어보자 (장난식으로)고 함 ㅋㅋ

그러더니 그선임을 강단으로 불러냄..

근데 그선임이 그러더라.

저는 한총련 계열이 아니고 민주노총계열이고 어쩌고 저쩌고..

저는 단지 제가 졸업하면 노동자가 될거니까

저의 미래의 권리를 명확하게 알고

개선해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 뿐입니다

라고…..뭐 여튼..

그리고 내가 듣기로는

이 선임 아버지가 현역 군인이었다던데

행보관이 처음에 선임을 신병으로 받았을 때

행정병 시키려고 했는데 (감시하기 편하게)

본인이 하기 싫다고 했다함.

자기는 앉아있고 싶지 않다 했다함.

그래서 행보관이

너 문제 일으키면 죽인다고 강하게 얘기하니까

선임이 하는 말이 “저희 아버지도 부사관 생활 하고 계신데,

아버지께 민폐끼칠 일 없으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했다함

하지만 나는 적응 잘하는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음.

오히려 고문관 그 자체였음

솔직히 나는 맷집은 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일반적인 갈굼과 군대의 갈굼은 정말 극과 극이었음..

나도 축구는 자신 있는 편이라 그런 쪽으로는 괜찮았는데..

사고를 정말 많이 쳤음.. 실수도 자주 저지르고..

한번은 준비태세 때 고참이 준 p999k를 창고에 넣었다가

열쇠를 잃어버렸거든..

여단장이 와서 통신병 군장 까보라고 했는데..

그 고참 군장이 지명돼서

밤새도록 창고에서 얻어맞았었음..

여튼 그런일 겪고 정말 힘들었는데

자대오고 한달쯤 됐나?

어느날 경계근무 순번이 그 선임과 내가 한조가 됨.

날 취침시간 전에 날 보더니 “라면먹을래?” 묻길래

“괜찮습니다” 했거든.

그때 내가 맨날 깨져서 항상 어두웠었던 시기임..

그리고 자다 일어나서 근무 투입됐는데..

그 선임이 갑자기 담배를 꺼내더라

고작 갓 일병말~갓 상병 단 사람이 ㅋㅋㅋㅋㅋㅋ

근데 불 붙이더니 날 주길래 괜찮다고 했는데 그냥 피래.

그러면서 나한테 위로의 말을 많이 해주더라.

군대 오고 싶어 온 사람 없고,

사명감 같은 것도 없고, 다들 똑같다.

그냥 열심히 나라에서 시키는 거 하고,

그외에 시간에는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자.

뭐 그런 얘기 들이었음. 정말 별거 아닌.

근데 내가 그때 매일 정말 개쌍욕 던 시절이라..

그말 한마디가 너무 고마웠음.

초소에서 눈물을 왈칵 쏟았음.

다 울고 나서 내가 담배를 탁탁 튀겨서 끄니까

선임이 나한테 야 인마 발로 비벼서 안 보이게 꺼야지.

그거 다 보이게 끄면 어떡하냐고 구박하더라 ㅋㅋ

여튼 그때 이후로도 모르는거 있으면 자주 도와주고

다른 소대였지만, 같이 공차고 하면서 점점 친해졌음.

물론 이 선임은 나 말고도 두루두루 다 친했고,

솔직히 이 양반 싫어하는 사람 아무도 없었을 거 같음.

누구한테도 화내는 거 못봤고..

시간 지나면서 이사람이

상병 3~4개월쯤? 분대장이 되었거든.

자기 분대원이 실수해서 간부한테 깨지고 와도

군말 안하고 나무라는 거 본적이 없음

물론 내 군생활은

이사람과 친해진 것 말고는 여전히 시궁창이었음.

힘듦을 나눌 수 있다는 정도였지만..

돌림 포상휴가 같은건 꿈도 못꾸고..

뭐 그런 존재였음..

그런데 우리 부대는 반기에 한번씩

축구,족구,농구,씨름,계주 해서

중대별 리그를 여단 단위로 1년에 두번 했거든

완전 전쟁이였음..

우승하면 참여자 전원 포상휴가 받았으니까.

나는 축구만 나가봤고, 나머지는 해당없었음..

이 선임은 축구, 족구, 농구, 계주까지

씨름 빼고 모두 다 항상 메인이었거든.

근데 이제 이 사람이 말년에 중대별 리그를 하게 됐음.

대대별로 예선 다 거쳐서

행사 당일 하루에 4강, 결승을 여단장 앞에서 했음

그날은 그냥 축제였던게

부사관 와이프들 와서 음식 준비하고,

장날이나 다름 없었거든.

병사들도 즐겨도 되고 (술만 빼고)

근데 그때 우리중대가

천하통일 (전종목 우승) 기회가 왔어.

전종목 4강을 다 나가게 된거지.

이 선임이 포함된 종목은 축구, 족구, 농구, 계주 였는데

이 양반이 9월초 전역이라

8월 말에 말년휴가를 나가게 됐어..

그리고 중대별리그 당일은 9월2일이었나 그랬음.

당연히 비상 떨어졌지..

중대장은 계속 휴가 중에 한번 들어오라고 꼬시고

(경상도에서 충청도를 그거땜에 어케 오냐..)

행보관도 전역증 안 준다고 협박하고ㅋㅋ

암튼 그 선임은 “싫어요~ 절대 안 올 거예요~

제 자유를 침해하지 마세요~” 하더니 휴가 감.. ㅋㅋㅋㅋ

그냥 뭐랄까..

그 사람이 없는것 만으로도 사기가 많이 떨어졌음.

덕배 잃은 맨시티 동료들의 마음 같겠지..

그렇게 중대별리그 행사 전날 밤이 되었는데..

우리 부대는 그때 휴가자 복귀를 6시 이후에 하면

탈영 발생 한 것 처럼 난리가 났었는데

위병소에서 9시에 복귀원 있는데

맞냐고 물어보러 전화가 온거임

그때 당직 사관이 그 선임의 소대장이었는데

맞다고 맞다고 차타고 찾으러 간다고

방방 뛰고 그랬음 ㅋㅋ

그렇게 행사 전날 밤에 그 양반이 다시 왔음.

더러운 군대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면서..

휴가중에 이게 뭐냐고 노동착취라고 막 그랬음 ㅋㅋ

그리고 당일..

이양반은 여전히 잘했고,

우린 축구 준우승.. 씨름은 4강에서 떨어졌고,

나머지는 다 우승함.

천하통일은 아쉽게 못했고..

축구에만 참여했던 나는 휴가를 못 받았음..

그래도 3종목 우승했으니 분위기는 좋았

(휴가 못받은 나만 침울),

그 선임은 바로 집에 가려고 짐쌌음

근데 후임들이 이제 곧 가실건데

같이 놀다 가자고(잔치날이니까) 꼬셔서

결국 하루 더 자고 그담날 아침에 감.

가기 전에 자기가 받은 포상휴가 3개 중에

2개는 자기 소대원들 중에 포상 못가본 2명한테 주고

나한테 오더니 남은 하나를 나한테 줌..

내가 벙쪄 있으니까

너 중대에서 포상휴가 못 가본 애들 중에 가장 고참 아니냐고

그러면서 어깨 툭툭치면서 가더라..

그리고 이 선임 말년 휴가도 끝나고

복귀해서 전역 전날이 됐음

돌면서 하나하나 인사하고, 다들 따뜻한 말하고 했음.

그 흔한 모포말이나 물고문도 없이.

보통 소대내에서 회식하고 가는데,

행보관이 취사반장 꼬셔서

취사장 열어서 중대원 전체가 같이 회식했음.

간부들에게나 병사들에게나

모두 의미가 큰 사람이었음.

회식자리가 끝날때 쯤

마지막으로 중대장이 한마디 하라고 하니까

안 오겠다는 사람을 그렇게 그렇게 부르더니

차비 한푼 안주고 충청도와 경상도를

왕복시킬 줄 몰랐습니다 그러더라 ㅋㅋ

그러니까 중대장이 미안하다면서 깜빡했다면서

바로 10만원 (당시에는 큰돈임) 꺼내 주더라

그 선임이 답하길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됐습니다.

대신에 라면 10만원치 애들한테 나눠주십시오. 하더라.

그리고는 자기는 군인인 아버지한테 부끄럽지 않게

정말 열심히 군생활 했다고..

후임들한테 화날 때도 많았고,

자기가 잘하는건지 의문도 많았는데..

지금 회식 때 여러분들께 제가 당당하게 고갤 들 수 있는걸 보니

잘한거 맞는 것 같다고 하더라.

전역날 아침에 도열하려고 모두 서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나더라..

그냥 내 군생활에 처음으로 따뜻한 말 해준 사람이

이제 간다하니 뭐랄까..

내 군생활에 동력이 되어준 사람이 없어지는..

묘한 감정이 들고 그랬다..

그 선임이 나한테 오더니,

포상 휴가 한장 값 치고는

너무 격하게 울어주는거 아니냐며 안아주더라.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도 전역을 하고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도

더운 여름에는 꼭 이 양반이 종종 생각남.

마지막 중대리그 기억도 같이 나면서.

한두살 많은 비슷한 또래였지만 뭐랄까,

경외감이 드는? 존경심이 생기는 그런 좋은사람이었음

이사람과 같이 군생활 했던게

지금 돌이켜보면 축복이라고 생각이 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