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가 자주 먹는 ‘맥도날드’를 대기업으로 만든 사람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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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크록 (Ray Kroc)

이글에서는 크록이라고 부를게.

크록은 미국에서 전설적인 기업가로 칭송받는 인물임.

그가 어려운 상황을 이겨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특유의 결단력과 아이디어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음.

현재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롤모델로 뽑는 사람들 중 하나야.

일단 이사람은 맥도날드를 창업했으며 지금까지의 위치로 만든 인물임.

맥도날드야 누구나 알겠지만, 그래도 더 자세히 알아보자.

맥도날드(Mcdonald’s)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음식 체인점이자 패스트 푸드 업체.

규모만으로도 전 세계 최강. 매출로도 세계 최강.

2008년 기준 전 세계 종업원이 40만명.

(웬만한 도시하나 수준임ㄷㄷ)

하루에 약 5400만명의 고객이 몰려듬.

매해 약 226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진출해 있어서

세계 각국 물가를 비교하는 “빅맥 지수”가 있을 정도.

이게 맥도날드의 간략한 설명임.

세계 어딜 가든 맥도날드가 있기에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지.

암튼 이 정도 규모의 맥도날드를 만든 사람이 있어.

앞서 말한 맥도날드의 창업자이자 가장 큰 공헌을 한 “레이 크록.”

먼저 그의 어린시절부터 알아보자.

1902년 10월 5일,

미국 시카고의 외딴 곳에서 한 아이가 태어남.

아이의 부모님은 체코출신으로, 미국에 정착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바로 레이 크록.

크록은 공부를 잘하진 않았음.

그렇다고 운동이나 음악같은 다른 것들도 잘하긴 커녕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았지.

부모님은 그런 크록이 걱정됐음.

크록에게 여러 일들을 권유해보았지만 크록은 늘 시큰둥했음.

하지만 크록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게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공상.

책 읽는 것은 싫어했지만

사물을 보고 그 사물에 대해 생각하고,

스스로 어떤 상황을 만들어 놓고

상황을 해결할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음.

학창시절 학교에서 공부대신 많은 생각들을 했고

그 중에는 직접 실행에 옮긴 일도 꽤 있었음.

고등학교 때에는 레모네이드를 파는 생각을 계속 하다가.

실제로 집에 돌아와 혼자 구상을 한 뒤,

레모네이드 가판대를 설치하고 팔아서,

꽤 많은 양을 팔았다고 함.

또 그는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들을 설득하는 것을 좋아해서 논쟁을 즐기기도 했음.

조금 괴짜인 면이 없지않아 있지.

레모네이드를 판 이후로 자신감이 생겨서

시간이 남을 때는 늘 사업에 대해 구상하고,

고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행시켰음.

레모네이드 말고도 집집마다 커피를 팔기도 했고,

기념품같은 것들을 만들어 팔기도 했음.

이때부터 어린 크록에게는 기업가의 기질이 보인거지.

기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단력과 실천할 수 있는 용기임.

크록은 이를 가장 잘 타고난 것 같음.

아무튼 이렇게 남들과는 다른

어린시절을 보낸 크록에게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게 됨..

바로 1917년, 세계 1차대전의 발발.

한창 고딩시절을 열정으로 불태우던 크록에게,

이런 전쟁은 엄청난 충격이었음

크록은 고1때 일어난 전쟁을 보고 참전을 결심하게 됨.

당시 나이 15살 (미국나이라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있음.)

당연히 부모님은 완강히 반대했지..

20살도 안 된 좃고딩이 다른 전쟁도 아닌

세계전쟁에 참전하려 했으니 말야.

하지만 크록은 꼭 참전하고 싶어했고 부모님을 설득시킴.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입영신청을 하려 했지.

근데 이게 웬일?

크록은 미성년자라 나이가 안 돼서 입대가 안 된다는 거임.

하지만 크록의 의지는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음

크록은 나이를 속여서 운전병으로 입대하게 됨.

그리고 그때의 하나의 일화가 있는데,

크록이 배정받은 중대에는

크록처럼 나이를 속이고 들어온 사람이 있었는데,

크록과는 달리 내성적이어서 다른 중대원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구석에서 그림만 그렸었다고 함.

근데 알고보니 그 사람이 ‘월트 디즈니’였다고..

암튼 부모님의 우려와는 달리 전쟁에서 무사히 돌아온 크록은

인생에 대해 많은 것들을 깨달음

그리고 학교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고등학교를 바로 때려쳤어.

이 외에도 크록은 19살 때 (아직 미성년자)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부모님에게 떼를 쓰기도 했는데

처음엔 부모님이 반대했다고 함

고등학교를 중간에 때려친 크록은

결혼을 퇴짜맞고 아버지에게

안전한 직장을 얻어오면 승락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종이컵 영업사원이라는 직업을 얻었음.

그는 이에 대해서

“내가 당시 종이컵 영업사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은

내가 미국의 미래를 종이컵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종이컵은 혁신적인 물건이었다.

미국이 나아갈 미래는 종이컵에 있었다.”

라고 말했음.

종이컵 영업사원으로 취직한 크록은

특유의 입담과 그만의 사업수완으로

취직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가장 종이컵을 많이 파는 영업사원이 됨.

빠른 시간에 최고의 자리로 올랐던 거지.

그렇게 크록은 17년이라는 세월을

종이컵 영업사원으로 몸담으면서

회사는 물론 동종업계에서도 최고의 자리로 등극했음.

그가 어릴적부터 길러왔던 사업 수완.

그리고 그의 입담으로

크록은 영업사원으로는 딱 알맞은 사람이었지.

그러던 어느날,

그는 우연한 기회로 6개의 회전축이 달린,

신제품 믹서기를 보게 됨.

크록은 믹서기를 보고 “바로 이거다” 라고 생각했음.

기존에 없던 혁신적인 제품에다가

실용성 있어서 판매 수익도 괜찮은 제품.

그는 17년동안 해왔던 종이컵 영업을 그만두고,

이 믹서기 영업을 하기로 마음먹었음.

그가 35살이었을 때 였지.

하지만 그의 아내는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음.

“지금까지 잘 해온 걸 왜 그만두려 해요? 이제 당신 나이도 생각해요.

크록. 당신은 어린아이가 아니라구요.”

크록의 아내는 완강히 반대했음.

하지만 크록은 군에 입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밀어붙였지.

자신의 꿈에 대한 확신과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지.

아내와는 이 일 때문에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도 하더라.

아무튼 새로 믹서기 사업을 시작한 크록은

기존의 최고 자리를 벗고, 새로 땅바닥 부터 시작했음.

하지만 그의 사업 수완은 이마저도 다 극복해버림.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서서히 자리를 잡고,

업계에서 또 다시 인정받기 시작함.

그는 늘 “자신앞에 온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라고 말했었음

그의 결단력은 누구에게나 배울점이지.

그가 말하던 대로 믹서기 사업도 괜찮게 성장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인생을 제대로 바꾼 사건이 일어남.

그가 52살이 되던 해에,

여느날과 같이 믹서기를 구입하는 고객들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어떤 고객에게서 전화가 왔음.

“캘리포니아의 맥도날드 형제가 사용하는

믹서기와 똑같은 것을 사고싶은데요.

당신이 그 믹서기를 판매하나요?”

특별하지 않은 구입 문의였어.

하지만 크록은 문득 캘리포니아의

맥도날드 형제들이 누군지 궁금해짐.

‘왜 하필이면 맥도날드 형제일까?’와 같은 생각으로.

알고보니까 맥도날드 형제는

자신의 믹서기를 8대나 구입한 고객이었던거임.

크록은 더욱 궁금해져서

직접 맥도날드 형제가 운영하는 음식점을 찾아감.

그리고 맥도날드 형제가 왜 그렇게 많은

믹서기를 샀는지 단번에 이유를 알게 된거임.

음식점이 손님들로 꽉 차있었고,

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장사가 굉장히 잘 되던 음식점이었음.

당시 미국에는 ‘드라이브 인(Drive in)’이라는

새로운 음식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었는데

차를 타고 주문해서 음식을 테이크 아웃 해가는 시스템인데.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그거임.

맥도날드 형제들 역시

드라이브 인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다른 음식점들과는 달랐음.

깔끔한 분위기에다가 음식도 맛이 있었고.

꽤 큰 규모이기도 했거든.

또한 이때의 미국은 패스트푸드 음식이

빠르게 유행하고 있던 시절이기도 했음.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제대로 된 음식도

아깝다는 분위기가 생겨났기 때문에.

맥도날드 형제들은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햄버거와 프라이 류 음식, 음료등을 판매했던거임.

미국 유행에 맞춰서 서빙도 없앴고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식탁등도 최소한으로 배치했음.

그래서 유행에 딱 맞았던

맥도날드 형제의 음식점은 대박을 치고 있었음.

입소문이 퍼져서 하루가 멀다하고 고객들이 늘어갔음.

이를 본 크록은 대박의 예감을 받게 됨.

그리고 맥도날드 형제에게, 음식점을 방문한 첫날 제안함.

“제가 본 어떤 음식점도 이렇게 뛰어나고 가능성이 크진 않았습니다.

저와 함께 사업하실 생각 없으신가요?”

방문 첫날 깜짝 제안을 한 크록.

맥도날드 형제들은 잠시 고민하지만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음.

그리고 이번엔 반대로 크록에게 제안하지.

“좋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가게의 이름과 구조, 방식, 디자인등을 그대로 썼으면 합니다.”

크록은 그 정도 쯤이야. 하면서 제안을 받아들였음.

(그래서 지금까지도 맥도날드란 이름이 이어져오고 있는거임.)

맥도날드 형제에 대해 짤막한 설명을 더 하자면,

‘모리스 맥도날드’와 ‘리차드 맥도날드’ 여서 맥도날드 형제이고.

1937년에 첫 식당을 차린 후에

1948년에는 서빙을 없애고 드라이브 인 시스템을 수용하는 등,

진정한 맥도날드의 기원을 만든 사람들임.

아무튼 이렇게 맥도날드와 크록의 거래는 성사된거임.

그리고 1954년.

53세의 나이로 크록은 맥도날드 1호점을 1954년 5월에 열게 됨.

굉장히 늦은 나이였지만 크록은 그렇게 생각치 않고,

내 인생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음.

하지만 안타깝게도 맥도날드 1호점이 바로 성공했던 건 아님

기존에는 없던 신개념 음식점이었기에

안정적 수입을 얻기에는 1년이라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음

당연히 1년동안은 적자였고, 크록 사비로 이를 매꿔갔음

암튼 크록은 맥도날드를 시작하고 굉장히 열심히 일했음

자신의 모든 것이 걸린만큼 최선을 다했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매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청소를 시작했고,

매장의 외관은 물론 하루에 쓸 재료까지 모두 체크했음

그는 매장의 오너임에도 결코 자만해하지 않았음

그의 또다른 성공비결이지.

또한 처음에는 음식의 맛 때문에 고생도 했었는데,

맥도날드 형제들이 사용하던 조리법을

그대로 베껴왔음에도 똑같은 맛이 나질 않는거임.

여러사람들에게 조언도 구하고 직접 조리도 해보고..

그래도 오랜 시간 끝에 똑같은 맛을 재현해냈음

이런 고생을 겪은 후에 맥도날드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갈 즈음.

크록은 체인점을 최대한 유치하려고 노력한 반면

맥도날드 형제는 소극적이었음.

크록은 그때 깨달았지.

“이사람들은 사업에 대한 열정이 없구나.”

크록은 빨리 맥도날드 형제들과의 관계를 끊기로 결심한 뒤,

270만달러를 지불하고 그들의 지분을 모두 구입했음.

여담이지만 맥도날드 형제는

그 돈을 자본으로 새로운 음식점을 개업하는데,

그 음식점 바로앞에 자신들이 운영했던

맥도날드의 체인점이 하나 생겼고,

새로 낸 음식점은 바로 망했다고 함.

아마 후에 땅을 치고 후회했을 테지

아무튼 크록은 이렇게 성장하는 맥도날드를 그냥 음식점으로만 두지 않았어.

천부적인 기획가이기도 했던 그는

맥도날드를 단순히 음식 체인점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자본 시스템으로 구축했음.

그 누구도 맥도날드를 운영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자는 목표로,

최고의 음식과 재료는 물론, 운영 시스템과

디자인 및 청결까지 신경써서 하나로 통일시켰음.

또한 크록은 직원 교육을 굉장히 엄격하게 시켰음

맥도날드 초기 시절, 손님이 갑자기 몰려들어

직원들이 매장 밖의 쓰레기를 치우지 못했는데,

이를 본 크록은 직원들을 모두 모아놓고 크게 호통을 쳤다고 함

이렇게 엄격하게 직원 교육을 했기에

직원들의 서비스 품질은 날이 갈수록 좋아질 수 밖에 없었고,

맥도날드를 운영하려는 체인점 점장들은

꼭 신원이 확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만을 뽑았지.

단 하나의 햄버거일 뿐이지만 완벽을 추구했음.

그는 맥도날드 직원들과 점장들에게

QSC&V를 중시하라고 말했어.

Quality 품질
Service 서비스
Cleanliness 청결
Value 가치

이는 크록이 가장 즐겨쓰는 말이자 가장 강조하는 맥도날드의 철학이거든.

이런 크록의 신념은 빠르게 반응했는지,

첫 매장이 시작한지 7년만에

미국내에 200개의 맥도날드 매장이 생겼고.

1966년에는 주식을 상장했는데,

상장한 지 한달도 안 돼서 엄청난 주가를 기록하게 됨.

그리고 캐나다를 시작으로

해외에도 맥도날드 매장이 생기기 시작했음.

우리나라에도 1988년 첫 매장이 생겼지.

1976년, 맥도날드 시작 20년 만에

총 수입이 10억 달러를 넘어섰음.

작은 음식점으로 시작한 거대한 자본 체인 맥도날드는

이때 점점 재계의 역사를 새로 써가게 된거임.

이 당시에는 22개국에 4천여개의 매장을 보유했었고,

1980년대로 접어들자 1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

더불어 전 세계 만여개의 매장을 유치했음.

1976년에 자서전을 쓰고 온 세간의 존경을 받던 크록은,

1984년. 향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해.

크록은 죽었지만,

크록이 남긴 맥도날드는 그대로 살아있었음.

계속해서 발전해가면서 현재와 같은 위상을 유지하고 있고.

현재에도 계속 커져가고 있음.

그는 말년에 성공한 기업가이자

뛰어난 기업가로 많은 존경을 받았음

오죽하면,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를 만들었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는데,

거기서 했던 인상적인 말이 있음

“이따금 다른 가게가 우리 가게로 스파이를 보낸 적도 있었다.

스파이는 아마 우리의 메뉴를 모두 채갔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스템을 채가는 일은 절대 없다.”

그가 얼마나 시스템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

하지만 그가 이렇게 존경만 받았던 건 아님.

잘 알다시피 최근에 맥도날드는 욕을 엄청 먹고 있음

미국이 비만국가가 된 가장 큰 이유가 맥도날드잖아?

그만큼 부정적인 결과도 많이 낳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재평가를 받기도 함.

마지막으로 크록이 했던 말을 남김.

“세상 사람들은 내가 53세라는 나이에 맥도날드를 창업해,

하루아침에 이와 같은 성공을 이루었다고 놀라워 한다.

하지만 나는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노력하다가,

좋은 기회가 왔을때 비로소 그 기회를 잡은 것일 뿐이다.

내가 하루아침에 이런 성공을 이룬건 사실이지만,

그 아침이 오기 전까지 30년이란 밤이 있었음을 잊지 말라.”

  • 레이 크록. 맥도날드 창업자.

세줄 요약
1.영업사원으로 잘나가다가 맥도날드 창업 시작.

2.존나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존나 대단한 맥도날드를 이룸.

3.사업 준비하는 애들이면 쳐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