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어서 까버린 ‘소개팅 남’이 2년 후에 훈남으로 나타나서 당황스러운 K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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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사람은 다시 만난다고 했던가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란 불조심 표어 같은 일이 제게 일어났습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퇴짜 놓은 남자 2년 뒤에 훈남이 되서 돌아온다.” 가 되겠네요.

한번 선 봤던 남자를 2년 후에 다시 만나서

결혼에 이르렀던 사연 한번 들어보실래요?

가끔 지하철 역이나 극장에서 ‘결혼 정보 회사’ 광고를 보면

선만 백번도 넘게 본 그 지옥에서 보낸

한철 같은 제 미스 시절이 떠올라 씁쓸해한답니다.

제 꿈은 대학졸업반이던 시절부터 “현모양처”였습니다.

물론 직장 생활을 계속 했지만 결혼을 좀 일찍 하고 싶었어요.

위로 언니들이 모두 만혼을 했고

결혼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봐왔기에

그 부작용으로 나는 속칭

‘한창 금값(?)일때 결혼해야지..’ 하고 맘을 굳게 먹었었습니다.

“장이나 오래묵혀야 맛이나지,

가스나 오래 묵혀봐야 하나도 좋을 거 읎다.”는

엄마의 말씀을 받자와 대학 졸업반 이던 시절부터

결혼 정보 회사에 회원으로 등록해놓고 계속 선을 봤어요.

일단 나이도 어리고 한창 제 리즈 시절이어서

선보는 사람들마다 저를 더 만나보자 했지만

썩 관심가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냥 호텔에서 제일 비싼 인삼쥬스 마시거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상대에게

밥을 얻어먹는 걸로 위안을 삼으며 한해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십대 중반이 넘어가자

슬슬 사귀던 사람들과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며

좀 위기의식이 들더군요.

그래서 좀 더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고

사람들을 다각적으로 보며 제 결혼 상대를 물색해 나갔습니다.

물론 한 결혼정보회사에만 회원등록을 한 건 아니었구요.

계속 다른 결혼 정보 업체를 바꾸어가며

제 결혼 상대를 탐색해 나갔습니다.

지금은 생각나지도 않는 사람들 투성이지만

정말 두번 다시 만나보고 싶지않은 매너 나쁜
남자들도 많이 봤구요.

자기 잘난 척하는 유형에서

당장 날잡자 하는 번개불에 콩궈먹으려는

성질 급한 분들도 봤지만 제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세월이 흘러 흘러

어느덧 저는 세번만 더 선을 보면 백번을 선보는 지경이 되었답니다.

집에서는 말할 것도 없구요.

저또한 제가 문제가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시기였답니다.

아무리 그래도 백명 가까이 선봤는데 제 상대가 없다는 것은

제 자존심도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 뒤론 선보는 자세도 많이 달라졌죠.

나이도 서른이 넘었고 눈가에 주름도 자글 거렸고

예전과 같은 금값이던 시절은

이제 지났구나 하고 좀 겸허해졌던거 같아요.

아무리 끔찍한 상대(?)가 나와도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해탈의 경지에 까지 도달했습니다.

구미호가 백일만 채우면 사람이 된다라는 것처럼

저도 백번을 채우면 드디어 내남자를 만날 수
있겠지

이 모든 시련도 다 지나가리라 하고

내심 백번째를 기다리며 인내했었습니다.

그러던 시절 만난 남자가 바로 이 남자입니다.

대부분은 호텔에서 선보는게 일반적인 만남이었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남자 굳이

전화로 인사동 화랑있는 찻집에서 보자는 겁니다.

처음엔 인사동 골목길을 헤매는 것도 좀 부담스러워

가까운데서 봤음 했지만 남자가 하도 우기는 바람에

그냥 인사동으로 약속 장소를 잡았답니다.

역시나 비좁은 골목길을 헤매다가 간신히 찾은

골목 끝에 있는 작은 찻집이었습니다.

초여름이었는데 한창 헤매다보니

원피스도 땀에 젖고 얼굴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휴지로 닦아내니 화장품이 묻어나는데

기분이 참 안 좋았었습니다.

게다가 약속 장소에 들어서니 남자 분 떡하니 앉아있는데

진짜 헐 하고 놀랬습니다.

덩치는 작은 편에 속하는데 머리가 유난히 큰

뭐..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기암괴석 같이 생긴 남자분이 차를 앞에 두고

지긋이 눈감고 앉아계시는데 제가 인사하니까

눈꿈뻑 하시더니 다시 차를 한모금 마시며

찻집의 역사를 줄줄이 읊어대시는 겁니다.

저와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소개도 하기 전에 찻집 얘기며 여기 참 분위기 좋고

어쩌고 그런 얘기들을 한 삼십여분 얘기하면서

호텔에서 선보는 것보다 이런 곳이

분위기있고 운치 있지 않느냐

얼마나 탁트여진 공간이 자유롭느냐 하고

팔을 활짝 펴시는데

진짜 그 팔을 부러뜨리고 싶었습니다.

물론 찻집 역사 30분보다 못하게

자기 소개 10분 하고 한시간도 못되어

그 분과 헤어졌습니다.

헤어질 때 그분의 뒷모습을 보면서

‘으그 그렇게 자유롭고 확트인 공간이 좋으면

진작 출가해서 북한산이라도 들어가지 선은 왜 보러나와?

생긴 건 꼭 북한산 바위 같아가지구는..”

오면서 마음이 우울했지만

이제 삼일만 더 지나면 백번을 채운다는 구미호의 심정으로

이제 두번만 더 지나면 백번째

내 남자를 만날 수 있다라며 애써 맘을 다독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제 두번 만 하던 그 두번의 선을 채우기 위해서

저는 꼬박 일년을 더 보내야 했습니다.

이제 나이도 차고 더 이상

새로이 등록할 결혼 정보 회사도 고갈돼서

제 선보는 기회가 그야말로 바닥을 드러내는 지경에 이르러

잘 나가던 시절에 한달에 서너 번도 보던 선을

이제는 간신히 365일 동안

단 두번만 볼 수 있는 지경에 이르른 것입니다.

원통절통한 일이었지만

저는 백번째 남자를 위해서 꾸욱 참았습니다.

그리고 백번째 만날 남자를 간절히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한 해의 절반이 지나도

백번째 남잘 만날 기회가 오지 않더라구요.

주변에 소개팅 없냐하고 이리 저리 넘성(?)대봐도

들려오는 대답은 한결 같았습니다.

“언니 진짜 눈이 너무 높아서 안되겠어.”

후배들의 이런 대답에

‘아냐.. 나 눈 안 높아.. 눈이 배꼽까지 내려간걸..”

이렇게 말하고픈 맘이 간절해도

제 운명의 상대를 만나기 위해

구걸까진 하고 싶지 않아 참았습니다.

그러던중 한해가 끝나갈 무렵

거리에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제 마음에도 종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백번째 남자를 만나는 날이 다가왔던 것입니다.

퇴근 후 명동에 있는 호텔에서 보기로 약속했고

약속 장소를 가기 위해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머리에 쌓인 눈을 귀찮게 털어내고 있을 때

제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어요.

“저 눈도 내리는데 우리 운치있게 명동 성당 앞에서 보는거 어때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아직 만나지도 않은 남자분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그러자 했습니다.

서둘러 머리에 쌓인 눈을 털며

성당 앞으로 뛰어가자

인파 속에 서있던 남자 분이 다가왔습니다.

“많이 춥죠? 자 이거 받으세요.

추운 날 이거 만한게 없더라구요.”

미소를 지으며 남자분이 제게 건넨 것은

따뜻한 군밤이 들어있는 봉지였습니다.

우리는 처음 만난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군밤을 나눠 먹으며 명동 거리를 걸었습니다.

눈 얘기부터 시작해서

명동 거리 얘기 오가는 사람들 얘기

그냥 일상적인 얘기들 뿐이었지만

그 분과 저는 오래 만난 친구처럼

부담없이 서로 대화하면서

동시에 마음도 군밤처럼 훈훈해지기 시작했어요.

집에와서 남자가 너무 편하고 좋다며

호들갑을 떨어대는 저를 보며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남자 오래만나봐야 소용읎다.

포띠고 차띠고 더 긴말 할 거 없으니 일단 날부터 잡아.”

하시는데 저도 정말 그 분과 날부터 잡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올해 가지 전에 날 잡을 사람처럼

전 부지런히 그 분을 만났구요.

이제 그 분과 데이트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친해지게 되었답니다.

바로 그때 그 분은 자기가 좋아하는 곳이라며

저를 인사동의 찻집으로 안내했구요.

저는 골목 골목 그 분을 따라가며

왠지 낯선 곳이 아닌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찻집에 들어가서 그 분이 자리 잡고 앉는데

역시나 바로 예전 그 기암괴석 왕재수와 왔던 찻집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앉아계신 그 분도

그 전까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일반인들 보단 머리가 좀 크신 편이었어요.

‘아냐.. 그 왕재수는 안경을 썼잖아.. 아닐 꺼야..’

애써 저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맘을 다잡았지만

마음 속에 혹시나 하는 불안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차를 마시다가 그 분이 갑자기

가방을 뒤적이더니 뭔가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저 안경쓰는 줄 몰랐죠? 2년 전 까지 쓰다가

불편해서 렌즈끼기 시작했는데 눈 병이 나서

그만 다시 안경으로 돌아갔어요. 어때요?

안경쓰니까 좀 달라보여요?”

“아니요. 괜찮아요.. 괜찮으신데요.. 뭐..”

이러면서 저는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쒯.. 2년 전 그 기암괴석 왕재수가

바로 제 눈 앞에 환한 얼굴로 미소를 잔뜩 머금고 있는데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을 이가 어디있을까요?

그날 저는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웠습니다.

악몽에 시달리면서 끙끙 앓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 운명의 상대인 백번째 남자가 아무리

그 기암괴석 왕재수 97번째 남자와 동일 인물이라도

저는 그를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는 것과

그가 아는 척하지 않는데

제가 먼저 예전에 선 본 여자라고 말하는 것도

상황이 웃길거 같아 그냥 모른척 하자고..

이 비밀은 무덤까지 갖고 가자.. 라며 독한 마음을 먹었습니다.

다행히 그 분은 저를 알아보시지 못했지만

간혹 그분이 저를 보다가

“잠깐..혹시..” 이런 말만 꺼내기만 하면

그자리에서 진저리를 쳐대기도 했지만

어느덧 시간은 흘러 이런 제 증상도 사라지고

우리는 양가 상견례까지 마치고

결혼날짜까지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제 마음 속에서는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이남자가 나랑 예전에 만났던 사실을 모르는 걸까?

아님 모른 척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점점 더 고갤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결혼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용기를 내어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기야.. 우리 전에 만난 거 알아..? 왜 인사동 찻집에서..”

여차 여차해서 이야기를 풀어놓으니

그가 놀라며 말하더군요.

“어 정말.. 언제? 그러고 보니 거기서 선 본것도 같다..

근데 여자 얼굴도 생각 안나고….” 그러더니

나의 백번째이자 97번째 남자인 그가

깨는 말 한마디를 내 뱉는 것이었습니다.

“아 그 파란 땡땡이 원피스 입은 뚱땡이가 바로 너였단 말야?”

저요.. 이년 전에 딱 2킬로 더 나갔어요.

2년 동안 사람만나며 맘고생 하느라

저절로 2킬로 감량했습니다.

여튼 백번째 남자인 그와 저는 무사히 결혼에 골인 했구요.

북한산 근방에 터를 잡고 산에도 부지런히 오르며

이제는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서

알콩달콩 잘 살아가고 있답니다.

가끔씩 선보거나 소개팅에 나가는 후배를 보면

옛생각에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이건 아니고..

“내가 퇴짜 놓은 남자 2년 뒤에 훈남으로 돌아온다.”

라고 얘기해줘요.

사람은 다각적으로 봐야 하는거 같아요.

일단, 선을 보러 나간 시점에서는

상대에게 애정을 가지고 약간의 인내심도 가지고

끈질기게 상대방의 장점을 보려는 노력도 필요한 거 같습니다.

우리도 두번째 만날 때는 눈이 내려서

약간의 분위기를 띄워 주긴 했지만

상대에게 애정을 갖고

서로의 얘길 들어주려고 노력했던 듯 싶고

그게 서로에 대한 호감으로 다가왔던 거 같거든요,

팔까지 부러뜨리고 싶었던 기암괴석 왕재수가

나의 백번째 왕자님으로 등극한 사연 어떠신가요

눈물없인 들을 수 없는 제 결혼 사연 속에 주인공은

단연코 제 97번째이자 100번째 남자인 우리 남편이지요.

같은 남자와 두번 선보고 결혼한..

이렇게 징한 인연도 아마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