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한국인들이 ‘멘탈’ 미친듯이 셀 수밖에 없는 이유

과거에는 택배기사를 했고, 지금은 버스기사 하고 있는 젊은 청년임.

오늘 쉬는날인데 문득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떠올라서

택배랑 버스하면서 만난 사람들 얘기 좀 써본다.

1.버스에서 담배피는 할배

요즘 노인복지회관을 지날때면 꼭 버스에 타는 할배가 하나 있다.

그 할배가 다리가 안 좋은지 타는 것도 내리는 것도 느린데

문제는 뒷자리에 앉아서 담배를 태운다는 것이다.

우리 버스 노선은 그 지역에서도 족같기로 유명한데

배차시간이 짧아서 빨리 빨리 가지 않으면

뒷차가 금방 붙어서 전화를 해댄다.

“아니, 언제 출발했는데 아직도 여기 있어요? 한신호 잡아요?”

한신호 잡으면 3분이 지연되고,

뒤에 오던 버스들도 다 한신호를 잡아야 한다.

차고지에 들어가면 쉬는 시간이래봐야 5분 7분인데

나땜에 한신호를 잡으면 쉬는시간 3분이 날아가니

욕이 안 나올 수가 없음..

이 볼멘소리를 듣기 싫어서

웬만하면 그냥 가는데 버스안에서 담배라니..

버스를 세우고 쓰린 마음으로 할아버지한테 가서

“할아버지! 아니 왜 버스에서 담배를 피우세요?! 내리세요!”

이러면 “아니 사람도 없고 창문도 열어놨는데 뭐 어때!”

하면서 소리를 빽!! 하고 지른다.

“요즘에 버스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하면서 내리라고 해도 기필코 안내린다.

속이타고 시간은 가고

두신호를 잡히면 6분이 지연되고

그러면 버스 두대가 나를 넘어가야 하기에

울며겨자먹기로 다시 운행을 한다.

그럼 할아버지는 거봐라는듯이

‘아니 바쁜데 운전이나 혀~’ 하며 담배를 뻑뻑뻑 피운다.

우리 노선에서 유명한 양반이다.

하루는 같은 노인복지회관에서 나온듯한 다른 할아버지가

“아니? 어디서 불냄새가 나?” 이러며 두리번거리시더니

뒤에서 담배 피우는 할배를 발견하곤 소스라치듯 놀라서

“아니! 뭐하는거야! 이사람이! 뭔가했더니!!” 하며

뒤로 가셔서 한참을 싸우셨다.

나도 신이나서

“아! 그냥 내리세요! 버스에서 담배피우면 안되는거 모릅니까?”

하며 맞장구를 쳤고 뒤에 탄 아주머니도 코를 쥐어막으며

“아니 요즘 시상에..버스에서 담배푸는 사람이 워딧어요?”

하며 거들자 담배할배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아직 장초인데..” 하며 창밖으로 손을 내밀더니

버스 외부에 비벼끄곤 침을 탁 뱉고 내린다.

세번 정도 이런일을 겪고 난 이후론

그 할배가 버스 타려고 정거장에 서있으면

그대로 지나쳐간다.

2.버스 공짜로 타는 할배

항상 시장에서 버스를 타는 할배중

하나가 항상 카드를 가라로 찍고 탄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사람이 몰려 우르르 타면

그 틈에 섞여 카드를 찍는척 슬쩍 대기만 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워낙 바쁜 노선이고

사람이 많이 타면 그만큼 시간이 지체되어

얼른 신호를 넘어야 앞뒤 배차간격이 맞아지기 때문에

‘저사람 또 또 저거 안찍고 타네..’ 하며

다 알고 있었지만 뭐라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넘어갔었다.

그러던 하루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할배가 카드를 슬쩍 찍는척하며 또 탔다.

몇번해도 내가 별말 안하니

내 얼굴보고 또 봐주겠지. 하고 타는 것 같아서

이번엔 사이드 브레이크를 아예 걸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손님! 카드 안 찍혔으니 다시 한번 찍어주세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직시하며 말하니

할아버지가 크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할아버지 기색에

내가 다시한번 크게 “손님! 카드 안 찍혔으니 카드 찍어주세요.”

라고 말하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푹 숙이고

가라 카드만 만지작 만지작 거리고 앉아있다.

“할아버지~ 기사님이 카드 안 찍혔다고 카드 찍으시래요~”

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할아버지가 귀가 멀어서

못 듣는 줄 알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가 비척비척 거리며 다가와 카드를 찍는데

가라 카드라서 삑소리도, 다시 찍으란 소리도 아무소리도 안난다.

“할아버지. 다음에 또 이러시다가 걸리면 요금 20배 징수합니다.

내가 여러번 봐드렸는데 자꾸 이러셔서 경고하는겁니다. 내리세요.”

그 말에 할아버지는 축 쳐진 어깨를 하곤 버스를 내린다.

불쌍하긴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도 그럴게 저러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요즘 너무 많고

봐주다보면 소문이나서

내 버스에만 저런 사람이 계속 타기 때문이다.

하루에 승객을 1200명정도 태우는데

그중 최소 20명은 가짜로 카드를 찍고 탄다.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보고있다.

3.매일 반품하는 아가씨

택배할때 하루에 하나 두개꼴로 물건을 반품하는 아가씨가 있었다.

원룸에 사는데 옷이나 신발류를 자주 구매했고

하루에 한번꼴로 가다보니

아예 현관 비밀번호를 나에게 알려주어

현관에 두고 가게할 정도였다.

반품도 가지러가서 비밀번호를 치고 문을 연뒤

신발장 위에 올려둔 옷을 수거해 갈정도로 자주 들렀는데,

문제는 반품을 너무 자주..

아니 하루에 하나꼴로 시킨다는 점이었다.

하도 이상해서 다른 택배기사와 마주쳤을때 물어보았더니

“아! 그여자 반품러에요 반품러!” 라면서 설명을 해주길

의류사이트에서 옷을 주문한 뒤 하루이틀 입고 반품.

그런식으로 매일 새옷을 돌려가며 입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일 새옷이 택배로 오고 반품하는 옷이 나간다는 말.

쿠팡, 롯데, 한진, 옐로우, 대한통운 할거없이

옷이 매일 현관에 쌓여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옷을 주문하고 반품하는지 알길이 없었다.

참 별 희안한 사람도 다 있구나 싶었다.

4.매일 아들을 기다리는 할머니

택배를 할때 항상 대문앞에 앉아 있는 할머니들이 자주 보였다.

날이 밝고 햇볕이 들기 시작하면 대문 앞에 소파나

의자를 두고 앉아 지나가는 차를 하루종일 바라보는 것이

할머니들의 하루 일과였다.

하루는 도대체 뭘 하시는건가? 궁금해서

할머니들께 이분저분 말을 걸어보았는데

“할배가 먼저 죽고.. 나만 남았는데 할게 없어서.. 죽을날 기다리는거지”

라는 대답이 제일 많았고 그중 기억에 남는 분은

“아들 기다려! 아들!” 이라고 대답한분이었다.

치매를 앓고 계시는 할머니였는데

집에서 밥먹고 나면 하루종일 대문 앞에 앉아서

아들을 기다리시는 것.

할머니 말로는 군인들이 아들을 데리고 전쟁터로 갔는데

얼마있음 온대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었다.

나중에 주변 가게 아저씨께 더 들어보니

할매가 치매에 걸렸는데

그거 때문에 전쟁나가서 죽은 아들이

얼마있음 돌아올거라 생각하는지

밥만 먹고나면 대문앞에 나와서 아들 기다린다며

뙤약볕 아래에서도 하루종일 기다린다는 것.

심지어 할머니가 과거 살던집은 수원이고

지금은 대구에 사는데도

그저 대문 앞에서 죽은 아들을 기다리신다는 모양이었다.

안타까워서 종종 지나가는 길에

초코파이나 요구르트를 드리고 가기도 했다.

5.생수폭탄녀

엘레베이터도 없는 원룸의 4층 5층이

배달하기 제일 힘들고 짜증나는 곳인데,

그래도 일이니 어쩌겠는가?

불평불만없이 잘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다보니 5층의 오래된 전세에 살면서

한달에 한번 몰아서 생수를 시키는 여자가 있었다.

76년에 완공된 오래되고 허름한 아파트였는데

때문에 입구도 좁고 주차장도 없었다.

거주자는 많은데 주차장이 없다보니

불법주차가 빽빽하여 택배차가 들어갈 수 없고,

때문에 생수 5~6박스를 매번 몸으로 날라야했다.

그냥 5층까지 걸어 올라가는 것도 힘든데

생수를 두박스씩 메고 200미터를 걸어온 뒤

한숨 돌리고 다시 박스를 메고 5층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제발 시키지 말라고 돈을 주고 부탁을 하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

하루는 너무너무 힘이들어서 도저히 못하겠다 싶은 생각에

에라~ 모르겠다 하며 경비실에 맡기고 갔는데

저녁에 부리나케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여자가 그걸 어케 옮기냐며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나도 미안하다면서도 상황설명을 하며 하소연을 했더니

여자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결국엔 알겠다며 앞으론 쿠팡에서 시켜먹겠다고 했고

그뒤론 그집에는 책이나 옷가지만 배달하게 되었다.

쿠팡 기사에겐 참 미안하다..

6.버스비 창조경제

버스기사를 할 때 종종 위조지폐를 돈통에 넣거나

지폐를 찢어 넣는 경우가 있었다.

천원짜리 지폐를 반으로 찢어

갈때한번 올때 한번 넣는 것이다.

이게 돈통에서 나오면

기사가 대신 돈을 충당해야하고 시말서도 써야한다.

제대로 돈통을 관리감독 하지 않아서

위폐가 들어가거나 훼손지폐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아무튼 그걸 몇번 당하고 나니

눈에 불을켜고 돈통을 지켜보게 되었다.

하루는 학생들이 학원을 마치고

우르르 나오는 10시 좀 넘어서였는데

돈통에 접은 지폐를 넣는게 보여

돈통 전원 케이블을 바로 뽑고

“학생 잠깐만. 방금 접은 지폐 넣었지?” 하며 앞문을 닫아버렸다.

그러자 오갈수 없게 된 학생이 “아..네..”

하며 당황해 하길래

“학생 혹시 돈 찢어 넣은건 아니지?”

하며 돈통을 열고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찢어서 접은 돈이었다.

학생이 봐달라며 사정을 하는데

나도 당한게 있어 도저히 봐줄 수 없었고

무전으로 뒷차들에게 넘어가라고 한뒤

근처 파출소로 버스를 몰고가 학생을 인수인계하였다.

속이 다 시원했다.

또 한번은 찢은 지폐를 넣기도 전에 잡은 일도 있었다.

지폐를 넣으려는 손을 보니 지폐가 뭔가 이상해서

바로 앞문을 닫고 내놓으라고 해서 보니

이번엔 반도 아니고 1/4로 찢은 지폐가 나왔다.

천원짜리 하나로 버스를 네번 타려고 했던 것이다.

참으로 기가막힌 일이었다.

곧장 노선 중간에 있는 파출소로 가서 학생을 인수인계했다.

사람 상대하는 일이라 그런지 온갖일이 다 있다.

7.알몸녀

택배를 하다보면 고객의 과반수가 여성이란걸 알 수 있었다.

택배를 뭐 남자가 많이 시키느냐

여자가 많이 시키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만,

희안하게도 택배를 돌리다보면

우리구역만 그런진 모르겠지만 70%가 여성고객이었다.

그러다보니 다들 얼굴을 안 마주치고 앞에 두고 가라거나

경비실에 맡겨달라는 식으로 신변에 주의를 하는 편이었는데

반대로 너무나 개방된 자세로,

아무 거리낌없이 문도 열고

사람을 대하는 여성고객도 다수 있었다.

특히 루머로만 들은 알몸녀가 있었는데,

처음 봤을 땐 “어? 택배기사님 바뀌셨어요?” 하고

며칠간 경계를 하더니

내가 꾸준히 3개월 넘게 다니자 경계심을 풀었는지

서스름없이 문도 열어주고,

고맙다며 레츠비를 건내주기도 했는데

문제는 항상 알몸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심할 때는 팬티만 입고 나오기도 했는데

처음엔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점점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되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이런 일이 소문이 나지 않을리가 없어서

택배기사들 사이에선 알몸녀라 불렸는데

비하의 의미는 없고

단순히 알몸으로 자주 나와서 그렇게 불렸다.

실제로 택배기사들한테 과일이나 음료를 곧잘 건내주곤해서

평판이 좋았고 때문에 그집으로 가는 물건이 있으면

혹시 파손이라도 되었는지 한번더 살펴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고마운 고객이었다.

  1. 동료의식 강한 배달대행

택배를 하다보면 맨날 같은 동네만 돌다보니

마주치는 사람은 또 마주치게 된다.

하루는 택배차에 앉아 창문을 열고 송장정리를 하는데

첨보는 사람이 오더니 옥수수 수염차를 건내는게 아닌가?

“아 고맙습니다. 근데 왜 주세요?”

하고 물으니 웃으면서

“같은 운송업계 종사자 아닙니까? 서로 고생하는데 힘내시라고!”

하면서 웃으며 떠나갔다.

그뒤로도 자주 만났는데

볼때마다 사탕이니 음료수를 건내줘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하루는 인터넷에서 음료수를 한박스 사다가

택배차에 두고 그 아저씨가 보이면 쪼르르 달려가서

“음료수 하나 드세요” 하고 건내주곤 했다.

이러다보니 배달대행뿐만 아니라

우체국 아저씨, 쿠팡아저씨등

좀 친한 경비아저씨나 기사들에겐 한번씩 다 주게 되었는데

이게 이러다보니 다들 친해지게 됐고

일하기가 진짜 수월해지고 정보가 많이 들어오게 되었다.

‘아~ 이래서 그 아저씨가 그랬구나.’

하고 깨달은건 뒤의 일이었다.

10.치이면 죽지 할매

시장앞을 지날 때면 항상 무단횡단 하는 노인들이 많아 긴장해야했다.

버스는 승객들이 타고있고,

안전벨트도 하지 않기 때문에 급정거가 불가능하다.

급정거를 하면 공기압식이라 금방 설수는 있는데

문제는 승객들이 다 날아가기 때문이다..

암튼 그렇게 조심해서 시장통을 지나다보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보란듯이

4차선을 가로지르는 할머니가 있다.

큰차에 막혀 못보고 그 할매를 밟을뻔한게 한두번이 아니라

하루는 내려서

왜 도대체 그렇게 무단횡단을 자주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들도 죽구..영감도 죽구.. 나만 살아서 뭘해..죽고싶어..”

라며 “칠래믄 쳐” 라며 갈길을 가셨다.

그제서야 영감 할매들이 왜 명줄 내놓고 무단횡단을 하는지

조금 이해가 되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