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사귄 여자친구를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 생기는 남자의 반응

32살 먹은 아저씬데 최근에 여자친구랑 헤어졌다

여자친구는 3살 어림 29살

군대전역하고 어학연수 1년 다녀왔다가

24살에 복학해서 처음 만나게 되었음

학번은 달라도 학년이 같아서 수업같이 듣다보니

친해져서 한 무리로 같이 다니다가

나랑 걔랑 다른 여자애 한명

이렇게 3명이 같이 호주에 워홀하러갔음

1년 외국생활 하다보니 서로 힘들 때마다

위로해주고 어쩌고 하다보니 사귀게됨

한국 돌아와서 다시 복학하고 계속 만나면서도

싸우거나 서로 안 좋은 적이 없었음

취미도 비슷하고 성격도 잘맞고 대화도 잘통했음

내가 흡연충이지만 담배피는 여자 안 좋아하는데

걔는 이상하게 담배펴도 나쁘지 않았음

그무렵에 아부지가 타고 다니시던 차

내가 타고 다니면서 놀러도 많이 다니고 함

그러다가 졸업할 때 쯤 여자친구는 공무원시험 합격하고

나는 운좋게 괜찮은 외국계 기업에 입사하게됨

그렇게 한 1년정도 지났나?

좀 막장드라마 같은데 여자친구가 암에 걸림

갑상선암

처음 얘기듣는데 가슴이 철렁하더라

일단 별거 아니라고 위로해주고 좀 찾아보니까

그나마 암중에 예후도 나쁘지 않고 생존률도 높고 하더라

우리 이모부가 빅5 병원중 한곳에서 의사하시다가 퇴임하셨는데

전화해서 손 좀 써달라 부탁드리니까

대학병원 암병동인데 한달도 안 기다리고

바로 입원해서 치료받는데 림프였나?

그쪽으로 전이가 돼서 수술하고 1년 정도 고생 많이 했음

그 뒤로 걔는 물론 나도 걔한테 나쁜 영향 줄까봐 담배도 끊었음

아무리 예후가 좋아도 암환자 주변에서 담배 피우고 할 수 없으니까

그러다가 수술도 잘되고 치료도 끝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는데

근데 어느날 냥카페에서 냥이들 구경중이었는데

웬 놈이 여자친구 종아리 쪽에 살짝 부딪혔는데

진짜 살짝 근데 종아리에 멍이 들더니

다음날이 돼도 안 없어지고 오히려 커지더라?

그러고는 갑자기 열이 엄청나고 애가 아파서 정신을 못 차리는데

빨리 차에 태워서 응급실로 데려감

일요일 저녁이었는데 걔네 집이 지방이라

걔네 부모님한테 연락드려서 걱정 마시라고 안심시켜드리고

내일 올라오시라고 말씀드리고

다음날 연차쓰고 옆에서 수발 들었음

무슨 검사 무슨 검사 하는데

이모부가 또 도와주셔서 검사도 빨리빨리 진행해주고 그랬다

어쨌든 걔네 부모님이 점심때쯤 도착하셔서

고생했다 해주시고 응급실에서 병실로 옮겨지고

밤이 되어서야 나는 걔네 부모님한테 걔를 맡겨두고 집에 돌아왔음

담날 출근해서도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계속 생각나는데

퇴근해서 가보니까 여전히 상태가 별로 안 좋아보이는데

걔네 어머니가 나한테 확실한건 아니지만

아까 의사가 회진 돌 때 많이 안 좋은 것 같다고 말씀해주심

시1발 아니나 다를까 급성 백혈병임

그때부터 기분이 몹시 우울해짐

항암치료 시작하고 애가 급격히 말수가 없어짐

나도 감당 못할 정도로 감정기복도 심해지고 힘들어함

그래도 친언니랑 골수가 맞아서 희망이 생김

골수이식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터짐으로 면회가 불가능해짐

원래도 무균실에서 있어야해서 보호자 1명만 면회가 가능했는데

그것마저 막혀버림

그래도 골수이식 결과가 좋고 항암도 잘 들어서

2달 정도 지난 뒤에 퇴원을 함

일주일에 한번씩 병원가서 검사받고

상태가 안 좋으면 재입원하고 계속 반복하기 시작함

그러다 1주에서 2주로

2주에서 한달에 한번 병원가는 것으로 바뀜

이식 1년이 지나고 이젠 조금씩 운동도 시작함

원래 여자친구가 162에 46정도였는데

처음 퇴원할때 36~7까지 빠진거보고 눈물나오는거 꾹 참았는데

여전히 말라서 힘들어 보이지만 40초반까진 몸무게도 늘어남

여전히 시간맞춰서 약 먹어야 하고 회 같은건 절대 먹으면 안되는데

그래도 많이 회복된거보니 마음이 많이 괜찮아짐

그맘때쯤 나도 집에서 슬슬 결혼 얘기가 나오기 시작함

솔직하게 말씀드림

아마 결혼을 해도 손자는 못 안겨드릴 거라고

자초지종 설명함

어머니 반대하심 왜 스스로 고통스럽게 살려고 하냐

다른 건강한 애들 많다하심

나도 알고있는데 진짜 좋은 사람이라고 함

집에서 반대도 많고 회사 근처에서 출퇴근 하고 싶어서 독립함

아버지는 내 의견 지지해주셔서 오피스텔 얻는거 도와주심

그러면서 여자친구도 같이 들어가게 됨

행복해짐 나는 재택근무 여자친구는 휴직중이라

집에서 자주 같이 있었는데

여자친구가 요리하는거 좋아해서 삼시세끼 잘챙겨줌

면역력이 낮아서 청소나 정리정돈도 잘해서 아주 좋았음

그러던 중 일이 터짐

재발함

근데 문제가 있음 저번에 골수 줬던 친언니가

임신중이라 애기 낳고 한달정도 더 지나서

골수이식 하는게 좋다고 하더라

그때 임신 9개월차였는데 2개월을 더 기다려야 하는거임

뭐 그동안 항암도 하고 약도 쓰면서 버텨보자 였음

그렇게 입원준비를 하는 중에 헤어지자고 하더라

왜 갑자기 그러냐니까

나한테 오빠 청춘이 너무 아까워 보인다고

나 때문에 사는게 너무 힘들 것 같다며 울더라

나도 울면서 그런 생각 하지말라고

나는 이렇게 조금이나마 힘들때 위로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니까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음

평소 같으면 그쯤하면 홧김에 말 꺼내서 미안하다고 했을텐데

걔는 내가 너무 안타까웠나봄

하긴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에 키스도 못하는게 얼마나 불쌍해 보일까

나 말고 더 어리고 더 예쁘고 더 건강한 사람 만나서 결혼해라

그게 내 소원이고 그래야 자기가 마음 편해져서

치료도 잘 받고 건강해질 것 같다더라

근데 내가 잡았다 그런말 하지말라고

너 아니면 누굴 만나도 행복하지 못할 거라고

치료 잘 받고 이식 잘 돼서 몸 다시 괜찮아지면 결혼하자 그랬음

갑자기 재발해서 타이밍 못 잡았는데

원래 프로포즈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다 낫고 다시 멋있게 할테니까 그런말 말고 조금만 기다려 달랬음

그제서야 알았다고 미안하다 하더라

그렇게 다시 입원해서 치료받기 시작했음

나날이 말라가고 창백해지는데 진짜 못 보겠더라

근데 백혈병 암세포가 골수이식까지 버티고 다시 살아난 새끼라

이제 약도 항암도 잘 안 듣는다고 의사가 그러더라

그때부터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음

온몸에 암덩어리가 퍼져서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면서

매일 울고 멍때리고 그랬음

일하는데 집중도 안되고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더라

종교는 안 믿는데 부처님이니 예수님이니

제발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고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싶었음

그래도 어찌저찌 버티고 버텨서 골수이식을 다시 받게 되었는데

그게 작년 12월임

그리고 4개월이 지나고 폐렴+패혈증 걸림

그리고 이틀동안 뜬눈으로 지냄

4월 7일이 됨

오후 2시쯤 여자친구 어머니에게 전화가 옴

오늘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의사가 말했다고 함

급하게 병원으로 갔음

중환자실 앞에서 어찌저찌 사정해서 보러감

눈물이 계속 나서 앞이 잘 안보이는데 안우는 척함

내가 여자친구 부르니까 걔가 눈도 못 뜨면서 입가에 미소를 띔

진통제 때문인지 말투가 어눌하고

목소리도 작아서 말을 알아듣기가 힘들었음

최대한 눈물 참고 손을 꽉 잡아줬음

너무 손이 앙상해서 또 눈물이 남

울지말라고 천천히 말하는 목소리 듣고 홍수터짐

고마워 나처럼 고집세고 못된 사람 사랑해줘서

나같이 고생시키는 사람 말고 좋은 사람 만나서

오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난 가끔 아주 가끔만 생각해달라고 함

울먹이면서 너없이 못산다고 하니

내가 계속 볼테니까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나 없어도 담배도 계속 피지말고

술도 조금만 마시고 웃으면서 지내달라고 부탁한다고 함

그러더니 자기 말을 너무 많이해서 힘들다고

조금만 쉴게 하고는 말을 안함

계속 손잡고 울고있는데 손에 힘이 하나도 없음

10분 정도 지나니까 간호사가 시간 다 되었다고 나가라고 해서

나온 뒤에 여자친구 어머니랑 같이 부둥켜안고 서로 눈물흘림

그러는 사이 여자친구 아버님 급하게 서울 올라오셔서

우리 보고 그자리에서 조용히 눈물 흘리심

두시간 정도 지남 결국 여자친구는 거기까지였나봄

오후 5시 30분이었음

염을 하고 가발을 씌우고 화장도 하는데 실감이 하나도 안났음

그냥 뭐라해야되나 꿈같은 느낌이었음

허탈해 하시는 아버님과 어머님의 모습

울고불고 여자친구 이름을 부르던 언니와

언니를 부축해주는 언니의 남편

영정사진 속의 너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래 넌 웃는게 누구보다 예뻤다고 생각했음

처음 널 봤을 때

술취한 널 달래줄 때

귀엽게 웃는 널 보고 심장이 떨릴 때

처음 단 둘이 놀았을때 빨개진 얼굴

첫 키스를 했던 공원에서 그 공기 그 온도 그 날의 기억

아픈 너가 너무 힘들어 하면서 울고 괴로워할 때

마지막까지 날 너무 생각해주고 위할 때

너랑 만나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진짜 슬라이드쇼처럼 머릿속을 스쳐갔음

그때 연락받으신 아버지랑 어머니가 빈소에 찾아오심

양가 부모님께서 처음 만나신 자리가 여자친구 빈소임

멍하니 있다가 어머니께서 미안하다고 하는 말씀에 무너져버림

아버지가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여자친구 잘 보내려면 내가 힘을 내야 하는데

벌써 이러면 어떡하냐고 하심

멘탈 챙김

첫 날이 그렇게 지나감

여자친구 고향은 부산임

그래서 얘는 서울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음

대부분 대학 동기 선후배들이고

그 사람들은 나도 모두 같이 알고 있는 사람들임

다음 날이 되니까 조문객들이 점점 오기 시작했음

금요일 연차를 쓰거나 반차를 쓰거나 해서

빠른 시간부터 오는 사람들이 많았음

나는 상주는 아닐 뿐더러

법적으로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지만

손님 맞이에 분주했음

대부분이 내가 아는 사람들이라

아버님보단 내가 맞이 하는게 서로 편하다고 생각했음

여자친구의 평소 성격이 별로 나쁘진 않음

예의도 바르고 기본적으로 착함 다만 낯을 좀 가림

그래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오진 않았음

그들을 마주하니 다시 또 내 멘탈이 흔들렸음

특히 여자친구와 동기인 여자애들이 많이 흔들리게 했음

너무 많이 울고 또 여자친구와 동기니까 보고 있으면

옛날 건강했던 여자친구 생각이 나서 버티기가 힘들었음

저녁때쯤 내 친구가 찾아옴

이 친구가 날 식장 밖으로 불러냄

아무 말도 안하고 내 입에 담배를 물려줌

그리고 불을 붙여줌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심 담배에 불이 붙음

처음 담배를 피울 때처럼 머리가 몽롱해지고 시야가 흐려짐

담배 연기가 눈에 들어가서 눈이 매워졌음

그래서 눈물이 흘렀음 연달아 두까치를 더 피움

그리고 이렇게 말함 병1신같이

연희가 담배 피지 말랬는데

벌써 세까치나 피웠다 열받아서 돌아오겠네 라고

그리고 웃었는데 웃는데 눈물이 나와

친구가 한숨 짓더니

조금 뒤에 들어오라하고 빈소로 먼저 들어갔음

그리고 어떻게 그날이 마무리 된지 잘 모르겠음

발인날 4월 9일

새벽 5시에 출발한 버스는

병원 옆에 있는 모교를 20분간 한바퀴 돌았음

어딜 지날 때마다 예전의 추억이 생각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음

그렇게 캠퍼스를 한바퀴 돈 버스는

신촌을 지나 서강대교로 향함

여의도를 횡단하고 올림픽대로에 올라탄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수원에 도착함

버스 기사님이 길을 돌아간 것 같다고 느꼈는데

아마 벚꽃을 보고 싶어 했던 연희가 보여달라고 했지 않을까 싶음

지나는 길에 충분히 보이니까

그때쯤 이미 연희 부모님은 넋이 나가보였음

말을 걸어도 대화가 쉽지 않았음

수원의 화장터에 도착해서 화장을 시작했음

코로나로 인해 화장장이 포화상태라 어렵게 구했다고 들음

2~3시간정도 있었던 것 같음

오늘 처음으로 담배를 피움 4까치 정도

화장 절차가 끝나고 장지로 향하는 버스가 출발하기 시작함

중간에 휴게소 한번 들러 점심을 해결함

갑작스런 단체 손님에

휴게소 식당은 굉장히 긴장해 보였음

하지만 우리 일행중

맨정신에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음

그 먹을 수 있는 사람들 또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연희의 부모님 형제자매 친인척들과 함께

연희와 가장 가까웠던 나와 연희의 대학 동기들의

혼이 빠진 모습을 보고 몇 술 뜨지 못함

그곳에서 한시간정도 있었음

휴게소 포함 5~6시간쯤 걸려 드디어 부산에 도착함

장지는 절에서 운영하는 납골당이었음

차마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음

이제 끝이구나 이제 더 이상 못 보는구나

더 이상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구나 연희야

너가 했던말 벌써 두개는 어겼어

담배 피우지 말라고 했던거 또 너 가끔씩만 생각하라고 했던거

아 하나 더 어겼네 나 행복할 수가 없어

도저히 너 볼 자신이 없네 지금은

아 그리고 또 펑펑 울었음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인가 싶더라

지난 며칠동안 내가 흘린 눈물들이

내 몸에 있는 피보다 많은 것 같았음

모든게 끝남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앞에서

연희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붙잡고 우시더라

고맙다고 너무 고마운데 미안하다고

아뇨 괜찮습니다 저도 연희 만나서 행복했고

앞으로도 행복할 거예요

제가 살면서 가장 큰 행복이 연희랑 있어서 느껴졌습니다

미안해 하실 필요 없어요 저 너무 행복했어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옴

현관문 비번을 치고 들어오니 냉장고에 붙어있는 사진들은

나랑 연희가 제주도 일본 유럽 태국 등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이었고

화장실에 있는 연희의 칫솔은 아직도 그 자리에 걸려있었음

집안 곳곳 어느곳 하나 흔적이 없는 곳이 없었음

누구도 해결해 주지 못할 압도적인 슬픔에

몸이 그대로 힘을 잃어서 그 자리에 주저앉음

이대로는 너무 무서웠음

그 뿐 아니라 잠도 오지 않고 계속 생각이 나더라

다음날 출근해서 미친듯이 일을 했음

근데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을 잘 때까지 계속 생각이 남

일주일쯤 지났음

하루에 두시간도 잠을 못 잠

182cm 77kg였는데

몇 주 운동 안해서인지 일주일만에 4kg이 빠짐

다크서클이 계속 내려오고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피곤함

매니저가 날 부름 괜찮냐고 물어봄 난 괜찮다고 대답함

매니저는 한숨을 내쉼

그렇게 다시 일주일이 지남

아직도 헬스장을 나가지 못함 여전히 의욕이 하나도 없음

점심 시간에도 혼자 밥을 먹지 않고

회사 밖을 돌아 다니다가 벤치에 앉아 그냥 가만히 앉아있음

그러던 중 동기를 만남

내가 많이 힘들어 보인다고 함

잠시 내려놓고 쉬는 것도 괜찮다고 이야기함

오후 내내 업무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사직서를 작성함

다음날 매니저에게 면담을 신청하고 사직서를 드림

대충 이대로는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괜히 일하면서 회사에 피해를 입힐 바에는

저는 없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 팀원들에게 피해를 입히며 일 할 자신이 없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음

사직서 내고 오후 3시에 회사를 나와 집으로 감

갑자기 연희 생각이 나서 한강으로 가서

예전에 있었던 일들을 곱씹음

다음 날 매니저에게 연락이 옴

당신이 어떤 생각인지 알고 있다

내가 헤아려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당신은 알지 모르지만 당신 꽤나 유능하다

이 사직서는 내 선에서 잠시 반려하고

병가처리 할테니 2달 정도 쉬고 다시 돌아와 달라

시간을 많이 못줘 미안하다

나는 조금 감동함

아직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음

그렇게 두달을 쉬기로 함

갑자기 이런 일을 쓰는 이유는 이거임

5월 25일이 여자친구 49재임

어젠 또 새벽같이 달려갔음

이제 좀 실감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래도 아무 말도 못함

속으로만 생각하고 속으로만 말하면서 겉으로는 눈물 흘림

회사를 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 생각조차 못하고 너만 생각하는데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도 오지 않고

술을 마셔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아서

정신과에 다녀왔어

불면증이랑 우울증 의심증상이라더라

그래서 약도 먹고 하고 있어

너 아직도 너무 많이 보고싶고

아직도 거짓말 같아

잠을 자면 꿈속에서 널 만날 것 같은데

일어나면 온통 거품 속에 들어간 솜사탕 같이 몸이 녹아내려

어쩌지 내가 너 없이 살 수 있을까

어쩌지 안될 것 같은데

미안해 내가 너랑 한 약속들 지켜야 하는데

너 웃는거 보면 지킬 수 있을 것같은데

한번만 보여주면 안될까

아 그리고 오늘도 술을 먹었어

방금은 누구 보라고 쓴 글이 아님

내 여자친구 연희한테 하고싶은 말이거든

비록 헤어졌지만

너네 모두 마음의 상처 가득하겠지만

너희는 모두 마음만 먹으면 다시 얼굴 볼 수 있잖아

난 안되거든

그래서 난 너희들 너무 부러움

난 더이상 새로운 사람 못 만날 것 같거든

개틀딱이라고 욕해도 좋은데

그래도 부러운건 부러운거임

아 이것도 이별은 이별 맞지?

나 두고 먼저 떠났으니까 내가 차였음

근데 하나도 안 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