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집 나갔던 엄마가 다시 돌아왔는데 또 다시 집 나가버린 썰

때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먹었을 때였다.

아니 그전부터 우리 부모님들은 존나게 싸웠다.

드라마에나 나오는 그런 부부싸움이었고

맨날천날 싸우는 소리가 쩌렁쩌렁 온 집안을 가득 채웠고

내 장난감이든 가전제품이든

보이는건 다 집어던지고 진심 그냥 개판이었다.

어느새부턴가 싸우는 소리가 아침에는 내 알람이었고

저녁에는 내가 잠을 못자게 하는 주원인이었음

자다가도 둘이 쿵쾅대는 소리 때문에

깜짝 놀라서 깬게 아직도 기억난다.

뭐 때문에 그렇게 죽일듯이 싸웠는지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주된 키워드는 ‘교회’였다.

엄마년이 하나님의 교회라는 미친 사이비에 빠져가지고

맨날천날 토요일마다 안식일이라고

아침,점심,저녁 예배 드린다고

교회에서 하루종일 쳐박혀있고

새벽에 꿀잠 자는데 교회 가야 된다고 깨워서

비몽사몽 한 애들 데리고 예배하러 다니고

아버지는 이 꼴을 더 이상 못 보신 거지.

주말에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도 컸을 거고.

그렇게 서로 죽니 마니 하다가 어느날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보니

집에 맨날 있던 엄마가 없었다.

그때 직감했음. 엄마가 집을 나갔을 가능성도 있겠구나.

그리고 여기서 나는 엄마가 그냥 집을 잠시 나간건지

정말 아주 나간건지가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오면 바로 물어봐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퇴근하고 돌아오자마자

날 끌어안고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더라.

아버지는 미안하다고 하셨다.

뭐가 미안했는지 그때는 이해가 안됐음.

그때의 나는 그저 교회에 더 이상 안가도 된다는 것과

더이상 부부싸움을 안봐도 된다는게 기쁠 뿐이었다.

엄마에 대한 좋은 기억은 그때에도 없었나보다.

아버지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걍 그때는 그랬음.

우리가 삼형제였는데 그때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바로 밑 동생이 7살이고 막내동생은 4살이었다.

그때부터 2번인가 3번인가 새엄마들이 생겼다

안타깝게도 아수라백작 같은 새엄마는 없었고

그냥 다들 무난하게 밥 잘해줬고 우리에게 잘 대해줬고

그리고 소리없이들 사라졌다.

중간에 애딸린 새엄마도 있어서 잠깐 오형제가 된 적도 있었음.

몇 년은 할머니가 오셔서 우리를 키웠고

할머니 또한 이내 곧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여기까지 내 나이가 중1이었다.

이 때부터는 아버지가 그냥 우리 삼형제를 업어 키우셨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우리 셋을 모아놓고 분위기를 잡으셨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친엄마가 다시 온다면 어떻겠냐

하는 것이었다.

그 소릴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엄마’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고 살았었는데

갑자기 그런 말을 들으니까 어색했다고 해야하나..

반감 같은 것도 들었다.

지금처럼 엄청난 거부감 같은건 없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아들 셋을 버리고 나간 엄마’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년이니

인륜적인 괴리감은 떨쳐낼 수가 없었기에

나는 반대를 선언했다.

그런데.. 동생들은 너무나도 좋아하며 찬성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방방 뛰면서 엄마 좋다고. ㅅ1발..

난 엄마 이름도 까먹고 얼굴은 흐릿하게 기억나는데

이새끼들은 아마 얼굴도 하나도 기억도 안날거다.

막내는 특히나.

모성애가 그리웠던 걸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 눈빛이 너무 초롱초롱하고 기대감에 넘치는 눈빛이라

도저히 형으로서 못본 척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건 마치 소풍 전날의 아이의 모습과도 같았는데

지금 이 상황은 내가 그 아이에게 소풍 가지 말라는

서운한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버리고 마는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의 기대를 자기가 실망으로 바꾸는 짓에 대한 자책감과 자괴감은

그 때의 나로서는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나는 입장을 중립으로 바꾸었고

그렇게 그년은 다시 우리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첫 재회는 썩 나쁘지 않았다.

난 아들을 버리고 갔다 돌아온 년이라도

이젠 가족이니깐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남들은 모르겠지만 타지로 전학온 전학생 마냥

친해지려고 다가가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다.

다만 ‘엄마’라고 부르는 것은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새엄마들에게 엄마라고 하는건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는데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래도 난 그럴수록 더 열심히 노력했다.

일부러 쓸데없이 말도 걸고 장난도 치고,

그래 여기까진 괜찮았다.

내가 이년에게 최초로 인간적인 거부감을 느끼게 한건

우연히 듣게된 할머니와의 전화통화였다.

아니.. 사실은 우연이 아니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는 거실 식탁에서 기분좋게 뭔가를 먹고 있었고

전화벨이 울렸다. 분명 무선이었는데 그년은 그걸 받더니

내 옆으로 와서 전화를 받더라.

수화기에 내용까지 다 들렸다.

들려오는 내용은 애들한테 사과는 했냐,

애아빠한테는 했느냐, 반성은 하고 있느냐

이런 내용이었는데

그년이 거따 대고 ‘전 잘못한게 없는데 사과를 왜해요?

ㅋㅋ애아빠가 싹싹 빌어서 겨우 와준 거구만?’

이러는거다.

이 말 듣고 존나 컬쳐쇼크 느꼈다.

증오스러운 눈으로 엄마라는 년 쳐다보는데 꿈쩍도 안하더라.

그건 백퍼 나 들으라고 한소리였다.

‘아버지와 나의 상하관계가 내가 을인 줄 알았겠지만

보다시피 내가 갑이다’ 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투영된 행동이었다고 나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곧이어 수화기에서 봇물 터지듯 욕이 쏟아져 나왔는데

하나도 기죽지 않고 할머니와 ‘대등하게’

아가리 파이팅을 하는 엄마년이 정말이지.. 자랑스럽더라.

맹수 앞에서도 쫄지 않는 마사이족의 용맹함이 순간 오버랩되어

감탄마저 하게 되더라고. 씨1팔.

여담이지만 나중에 술자리에서 아버지에게 넌지시 물어봤는데

팩트라고 하더라.. 이유는 묻지 않았다.

다만 그 때 한 번 더 충격을 먹었었지.

부성애라는 것은 남자로서의 자존심마저

이렇게 쉽게 내팽개쳐지게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허탈감마저 들었었다.

그 이후부터는 그년을 인생에서의 적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말수도 확 줄었다.

이때까지의 노력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더욱 그런걸지도 모른다.

그년이 날 불러도 절반은 못 들은척 씹었다.

그렇게 한번 사람이 싫어지고 나니

그년이 하는 모든 짓이 맘에 안 들더라.

별 신경 안썼던 일들이 존나게 짜증나고 역겹게 느껴졌다.

9살까지 밖에 안 키우고 집나간 년이

니 키우는데 얼마나 힘들었니

니가 애기 때는 어땠니 우는소리 땜에 잠도 못잤니

뭐니 블라블라 하면서 존나 재고

나한테 와서 궁금하지도 않은 어떤 남자 작업문자 보여주면서

이거보라고 엄마는 아직도 먹히는 여자라고

니 아빠는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고 그러는데

그 자리에서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아들한테 도대체 그딴소리를 왜하냐.

그리고 개노답인게 처음에 집에 들어왔을 때도

이 개독년은 또다시 온 가족을 개독으로 만들라고

맨날 토요일마다 똥고집 피우면서 교회 데리고 가더라

나도 첨에는 시간 존나 아까워도 몇번 가줬는데

이일 있고나선 절대 안감. 진짜 가관이다

이거말고도 한두개가 아닌데

어쨌든 이렇게 서서히 그년과의 냉전체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허나 사실 내가 그년을 극도로 증오하게 된 사건은 따로 있다.

나는 이를 키보드 사건이라고 부르는데

우선 나는 그때 피아노에 관심이 많았는데

고딩이라서 야자 때문에 피아노를 평일에는 못치는게 매우 불만이었다.

그러다가 어쩌다 키보드라는 존재를 알게 되어

이걸 사면 평일에도 밤에 맘껏 피아노를 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해서

용돈을 모아서 키보드를 사기로 했다.

그때 내 용돈이 일주일에 3만원이었는데

내가 아싸는 또 아니어서 친구들이랑 놀면서 쓸 돈도 감안하면

일주일에 만원 정도밖에 못 모으고

이렇게 되면 키보드는 고딩 졸업할 때까지 못사겠구나 라는 결론이 났다.

(그때 알아본바로 키보드는 60~80만원대였음)

그래서 아버지한테 일주일에 만원씩 할부방식으로 갚을테니

미리 키보드를 사주시는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사실 우리가족은 필요한게 있으면

이런식으로 산적이 한두번이 아니라서

언제나 그랬듯이 흔쾌히 승낙해주셨고

내일이라도 당장 알아보자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근데 그년이 다음날 갑자기 분위기 잡더니

나를 앉히더라. 난 무슨 내가 큰 잘못 한 줄 알았어

그래서 도대체 왜 불렀나 듣자하니

이 미친 년이 하는 소리가

키보드를 왜 우리가 사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니 아빠랑 무슨 얘길 했는진 관심없고

난 모르니깐 니껀 니가 알아서해라. 라는거다.

아니 기가 막히더라

그래서 내가 거저 사달란게 아니라 할부로 갚겠다는데

그 정도도 못해주냐고 우린 쭉 그렇게 해왔다고 그러니까

‘나는 늙어도 너 같은 애한텐 효도 같은거 안바라니까

난 너한테 아무것도 안 해줄거야~ 알아들었니?’

이러는거야.

와 존나 그런 기분 아냐? 가슴이 턱, 막혀서

아무말도 못하게 되는 충격

내 기준이지만 이건 크게 뭘 해주길 바라는 것도 아닐뿐더러

나 포함 9살 4살 자식 버리고 튀고선

철판때기 쓰고 돌아온 년이 할말인가 싶어서

진짜 아무말도 못하겠더라.

짧은 순간이었지만 충격 때문에 숨쉬기도 벅찼었다.

난 새엄마한테도 이런소리는 들은 적이 없었다.

난 말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랑은 언쟁하는걸 꺼려하는 성격이라

그냥 그자리에서 대답도 않고 묵묵히 집을 나가버렸다.

그때 당시 이게 내 최초의 가출이었다.

집을 나서니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내 몸을 사로 잡았다.

정말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걷기도 힘들었다.

휘청거리며 걷고 소리지르고

주먹으로 벽을 쳐대면서 몇십 분을 정처없이 헤맸다.

그러다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부1랄친구 만나서 놀다가 집에서 같이잤다.

오늘은 내가쏜다!! 이지랄 하면서

키보드 사려고 모았던돈 12만원 정도로 치킨 피자 이런거 다 시켜먹고

존나 남기고 그때 기준에선 개 사치부렸었다

아무튼 그렇게 놀고 다음날 학교갔는데

점심시간쯤부터 그년한테 전화가 존나왔다.

난 당연히 안 받았지.

그래도 ‘오..그래도 꼴에 엄마라고 아들 걱정은 하나?’

라는 기대감 엇비슷한 감정이 깔려있었다.

그런데 4시쯤 마지막 수업시간에 갑자기 그년이 교실문을 열어재끼더니

내 손목을 잡고 교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여기서 선생님 존나 벙찜)

그때 나한테 잘못했다고 사과했다면,

아니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차라리 왜 집을 나갔느냐고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느냐고

혼쭐이라도 냈더라면 친어미 같기라도 했을텐데

나한테 갑자기 다짜고짜 내 지갑 어딨냐고

그 돈 어디다 썼냐고 존나 따지면서 노발대발을 하는거다.

ㅆ1발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어제 돈을 흥청망청 쓰긴했지만

그건 엄연히 내 돈이었고, 지갑을 훔친다?

그런건 상상도 못해봤다는 이유로 우선적으로 어이가 털렸고,

사실 그보다는 아들이 집나갔는데 애타게 찾던게

아들이 아니라 지갑쪽이었다는 것에 대해서 아들로써의 배신감을 느꼈다.

나에 대해 걱정했으리라는 본능적인 기대감이 있었기에

나에게 다가오는 충격은 더욱 컸다.

그리고 그 감정이 그년에 대한 분노로 바뀌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년이 날 1층까지 끌고 내려가더니

차 갖고 올테니 기다리라고 하길래 난 걍 무시했는데

그년은 그걸 무언의 긍정으로 받아들였나 보다.

하여튼 그년이 차를 가지러 가는동안 난 당연히 튀었다.

어휴; 그리고 그날밤도 당연히 그 친구집에서 자려고

친구한테 연락을 하고 갔는데

갑자기 그 친구 어머니가 날 보시더니

정색을 하곤 나보고 빨리 집으로 가라고 하는거다.

지갑 훔치고 가출한거 다 들었다면서.

와 시1발 이건 또 뭔 개소리냐.. 라고 뇌속에서 울부짖었다.

와 존나 번호는 또 어떻게 알아가지고

이친구 집에서 잘건 또 어떻게 알았고

존나 소름돋는 년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이건 아직까지도 미스테리.

내가 여기서 개 빡친건 친구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 때문이었다.

그건 분명 실망과 경멸감이 가득찬 눈빛이었다.

이 친구를 몇년 동안이나 보면서 어머니에게 쌓아놓은 이미지가

한순간에 그년 때문에 다 무너져버린 것에 대한 허탈감이 너무 컸다.

난 벙쪄가지고 아…아..네 안녕히 계세요 하고

바로 집을 뛰쳐나와버렸고

그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라 잘 곳이 없었다.

몇십분을 고민하다가 그냥 집에 들어가서

그년이랑 쌩을 까자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년이랑 일체의 말도 섞지 않았다.

아니 그새끼도 나한테 말을 안 걸었다.

이때부터 리얼리티 냉전체제가 시작되었다.

내 쪽에서도 그년을 없는 사람처럼 굴었고

이년 또한 내 동생들한테는 갑자기 유난히 존나 잘해주고

용돈 같은 것도 챙겨주고 이름도 불러주면서

나한테는 없는 사람처럼 대하고

정말 부득이하게 나를 불러야 할 때는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불렀다.

물론 난 이마저도 씹었다.

이상태로 몇개월을 살았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어릴 적의 데자뷰를 보여주듯

부부싸움은 또 시작됐다.

존나 쿵쾅거리고 물건들은 다 쏟아지고

내동댕이쳐지고 아주 그냥 개판으로 싸우더라.

근데 어느날은 내가 좀 심하다 싶어서

뒤에서 지켜봤는데 그년이 존나 씩씩대면서

집 나간다고 캐리어에 짐을 싸고 있더라

그래서 아버지가 집이 무슨 니 여관방이냐고

니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는 거냐고

존나 뭐라하면서 밀치니깐

그년이 무슨 프로축구선수처럼 개오바 떨면서 넘어지더니

이딴 폭력적인 남편이랑 어떻게 사냐고

존나 소리 지르면서 경찰 부르겠다고 그러더라

아버지는 존나 얼탱이없어서 헛웃음 치다가

캐리어 뒤집어서 거기에 든 짐 다 떨구고

캐리어 던져버리면서 부를 수 있으면 불러보라니까

그년이 곧장 핸드폰 들고 진짜 전화해가지고

네 여기 폭력사건이 있어서 전화드렸는데요~

해가지고 내가 이러다가 큰일 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난입해서 핸드폰 잡고 그년한테

뭐 하는 거예요 진짜? 하고 전화 끊었음

근데 그러니까 아버지가 도리어 핸드폰 다시 들고 오더니

부르라고 하라고 괜찮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결국 진짜 경찰왔는데 의외로

부부끼리 싸우지들 마세요 ㅎㅎ 하고 30분도 안되서 가더라

난 무슨 별거 다 상상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이일있고 다음날 그년 지 혼자 짐싸서 나갔더라

행복해서 집에 아무도 없을 때 굴러다니면서

예에에에에에에아아아아아!!!!! 하고 존나 소리쳤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연락도 없었고

들리는 소문은 무슨 교회에서 만난 남자랑 재혼해서 살고 있다던데

아버지도 이제 어떻게 살던 말던 관심 없으시고

동생들도 초반에 잠깐 찾다가

지금은 아버지랑 내 눈치를 보는건지 더 이상 찾지 않는다.

어차피 있어도 없어도 존재감 없었던 사람이라

우리 가족 잘 살고 있지만

가끔은 진짜 우리 엄마 라는 사람이 보고싶어서 미치도록 힘들 때도 있다.

세줄요약

1.엄마집 나감

2.다시 돌아와서 지랄함

3.또 나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