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히키코모리로 살던 ’31살’ 남자가 밖으로 나가서 일을 시작한 이유

나 흙수저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탓 집안탓 하지말라는데

탓이아니고 그냥 흙수저 맞음 팩트다.

우리집 자가가 있긴한데, 그거밖에 없음

진짜 11평짜리 물새는 노후연립이다.

지방에 있어서 값어치도 없고 그냥 개미굴같음.

거기서 부모랑 나랑 세가족이 평생을 살고 있다.

부모님 두분다 선천적으로 다리가 불편하다

그래서 부업방에서 부업하거나

복지사업 일자리 같은거나 공공근로만 함

거기에 각종 지원금들 자잘자잘 하게 받는다

그걸로 먹고삼

선천장애 부모로부터 나온 나는

다행히 사지는 멀쩡했는데

능지도 딸리고 몸도 존나 약한 멸치로 태어났음

키는 173정도라 평균인데 멸치 그자체다

머리가 안좋았고, 기흉이랑 천식도 심해서

네블라이저 달고 살고있음 지금 이순간까지도.

그래서 초중고 내내 왕따는 기본이였음

초중고 왕따로 살면…당해본 애들은 안다

사람 대하는 것도 무섭고,

저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존나 비웃겠지? 하는 생각도 들고

사람을 대할 때마다

저사람이 갑자기 나를 곤란하게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에 온몸이 얼어버린다.

난 누가 말걸면 검지손톱으로 엄지손톱 뿌리를

쥐어뜯어대는 버릇도 있고

가슴팍이랑 등에 땀이 줄줄나면서 긴장한다.

누구랑 말하고나면 등 근육이 굳어서 담이 걸려서

어깨죽지가 아플정도로 긴장한다.

대인기피증 심각했다.

근데 가족이랑 있을 때는 말 잘했지만

남들 앞에만서면 발가락 끝까지 얼어서

말 한 문장을 제대로 못 말할 정도였는데

돈이 없어서 정신병원을 못갔다

나 딱 20살때부터 딱 30살때까지

장장 11년간 그렇게 반장애인으로 사람구실 못하고 살았다.

20대를 통째로 반 X신새끼로 날렸다.

알바 한번을 안하고 집에서만 살았다.

가끔 엄마 몸불편해서 장볼때

짐꾼으로 밖에 나가는거 빼곤 안나갔다

근데 집에서 부모님은 아무말 안하고

맨날 부업방 가시고 복지급여 타오시고

나 먹으라고 밥해주고 라면사오고

청소빨래 해주고 다해줬다.

나 발 X신 아닌 것만 해도 축복이라고

맨날 말하면서 잘될거라고 해줬다.

부모는 몸불편해도 열심히 근로해서 나 먹여살리고

복지급여 받은걸로 먹고살고

집 같지도 않은 개미굴 집이라도 있어서

나를 항상 보살펴줬다.

근데 나는 1,2년도 아니고

11년을 인간쓰레기 벌레처럼 살면서 20대 날렸다.

그 긴시간동안 남탓만 늘고

나 왕따당한거 생각하면서 혼자 화내고.

그러다가 게임만 해대고

인터넷 판타지소설 읽어대고.

근데 그러다가 31살에서 32살되는 겨울날

사건이 하나 터졌다.

내가 기흉이랑 천식 심하댔잖아.

집에서 자다가 폐쪽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서

응급실을 갔는데 기흉증상인거다.

수술을 해야하는데 돈이 없었음

응급실비용 정도는 낼 수 있었는데

수술비용은 못냈다.

내려면 몇푼하지도 않는 이 낡은 집까지 팔고 해야됐다.

부모님은 나 기흉에 천식도 있어서

나 죽을까봐 무조건 수술하라고 했는데

나는 그순간 너무 비참하고, 내자신이 싫고

진짜 내 자신을 죽이고 싶을만큼 몸이떨렸음

그래서 수술안하고 그냥 그 추운 새벽에

집까지 이악물고 뛰어왔다.

걸어서 20분 거리를

얼어뒤질꺼면 뒤져버리자는 마음으로
뛰어서 집까지왔다.

밤새서 집에서 부모님이랑 입씨름 하다가

결국 수술 안 받기로 했다.

부모님이 울었고, 너 잘못되면 우린 사는 의미가 없다고 했다.

우린 너 하나 때문에 일하고 돈벌고

먹고사는거라고 말했다.

그말 듣고 너무 괴로웠다.

난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

부모님은 나 하나뿐이란 것도

장애 있는 부모 밑에서도 사지 멀쩡히 나와서

부모님이 악착같이 나 키워서 먹여살린 것도

나는 다 알고 있었는데

십수년간 사람구실도 못하고

부모 가슴에 못만 박아댔다.

다 알면서도 그랬었다.

왕따를 당하든 어쩌든

부모를 생각하면 이 악물고 살았어야 했는데

병.신새끼같이 살았다.

그래서 기흉 약처방만 받고

그때부터 알바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 알바구할때

31살이라하니까 사람취급 안하더라

처음 구한 일용직 닥트 설치는

부모님이 폐 망가진다고 안된다해서

편의점 알바 야간알바 구해서 했다.

웃으면서 인사해도 난 다 알고있다

다들 날 무시했고 깔봤다.

근데 부모님은 어딜가든 장애가 있어서

외적인 장애라 더더욱 심하게 무시받고

더 심하게 차별받고 더 힘들었을거 생각하니까

내가 힘들어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상한 분노가 생겨서

날 대놓고 깔보는 사람들한테

나도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말대답도 날카롭게 했다.

그리고 야간에 매장에 혼자있을때

혼자서 말하고 욕하고 하면서

말하는 연습도 엄청나게 해댔다.

그렇게 알바해서 부모님 돈 갖다줬는데

부모님은 절대 안 받겠다고 했다

그래서 스피치학원 다닐 수 있었다.

버스타고 40분거리에 있었는데

그래도 열심히 다녀서 진짜 많이 좋아졌다

남들 앞에서도 말할 수 있게 되었음

그렇게 같은 편의점에서 오래 일하면서

자신감도 좀 늘고 사람도 대하고

취객아저씨들도 대하고 하면서

3년정도 동안 많이 발전했다.

말도 조리있게는 아니지만

내가 생각한거 적당히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34살이 되고,

이번에 첫 직장으로 마트 주차팀에 들어갔다.

말이 많이 필요없고

간단한 안내만 하고

수신호랑 주차관리 배워서 일하고있다

알바 따로 계약직 따로 뽑았는데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월급 한달에 세금 빼고 180정도 받는다.

처음에 엄청 혼나고 어리버리 했는데,

일이 많이 어려운건 아니라서 익숙해졌다.

일하는 직원분들이랑 알바동생들이랑도

지금은 웃으면서 많이 친해졌다.

다행히 사람들이 착해서 운이 좋았다.

9월 입사해서 지금 3개월째 일하고있다

저번달에 첫직장 첫월급 들어온걸로

평소에 돈없어서 못먹던 배달음식도 시켜먹고

우리집 싱크대랑 여러가지 고장난곳 고쳤다.

그리고 맨날 같은 옷만 입고 다니다가

낡은옷 싹다 가져다가 버리고

탑텐이랑 이마트에서 새옷 예쁜걸로
거의 30만원 넘게 샀고

머리도 깔끔하게 했다.

진짜 자뻑 잘난척이 절대 아니고,

하도 낡은옷에 노ㅂ숙자머리 하고다니다가

머리 깔끔하게 자르고

옷만 제대로 입고 다니니까

얼굴 못생겼어도 진짜 보기에 한결 낫더라

직장 잡은 후로 월급 180중에

부모님한테 생활비 30만원 드리고

50만원으로 나 식비 교통비 폰비 등등 내고

옷이나 기흉천식 약값 낸다.

그리고 나머지 100만원 다 저축한다.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어서

쓸돈이 당장 없다

그래서 돈 모으기는 좋다.

지금 통장에 200만원 넘게있는데

100만원 단위 이상의 숫자가 있어본게

살면서 처음이라서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