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을 달려가고 있는 임신 5개월차 아지매다.
남편과는 모임에서 만났고,
짧다면 짧은 연애기간동안 너무 뜨거워서 였는지
사랑의 결실이 먼저 생겨버려서 결혼하게 되었다.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선임신 후 결혼하게 되는 친구들의 글을 어쩌다 아주 가끔씩 보는데,
갑자기 닥친 상황에 겁먹고 덜덜떨지 않길 바라며,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경험이나 좀 풀어보려고 한다.
재미삼아 읽어주길바라며, 멘탈 약한 임산부에게 심한 드립은 다매요..
1.당시 남친과 나는 각자의 사정으로
적당껏 나이가 찼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대한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던중 어쩌다 우연히 간 모임에서 불꽃이 튀어
연애를 시작했지만,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고 연애만 해왔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생리예정일이 지나버렸다.
내 경우 생리를 칼같이 정확한 날짜에 했기 때문에
이때 좀 예감을 했다.
물론 의심되는 날도 있었고..
바로 테스트기를 사서 검사를 해볼까 했지만
마음의 준비도 필요했고,
3일정도 더 기다렸다가 검사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는언니를 만나 소고기에 소주 3병씩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엔 숙취에 찌든 상태에서
또 다른 언니를 만나 육회에 소맥까지 말아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회도 한접시 먹을걸 싶다.
한참 숭어가 맛있을 시기였는데…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출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임신테스트기를 하나 샀다.
아침 소변으로 검사를 하는게 정확하다는 글을 읽어서,
출근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검사를 시작했다.
바로 두줄반응이 떴다.
제일 먼저 뱃속 아이에게 미안했다.
두줄반응이 뜨자마자 들었던 내 감정이
공포와 허무함 당황스러움 같은 것들뿐이라서였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아이에게 굉장히 미안했다.
게다가 임신사실을 알자마자 ‘좋았어 이 아이를 낳는거야!’라고
자신할만한 상황도 아니라 더더욱 그랬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이 낳을지 말지에 대한 선택을 해야했으니까.
이성을 잡고 오전 근무를 마치고,
조금 늦은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산부인과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tv에서 본것처럼 진료대에 누워 배에 젤바르고 초음파기로 문질러가며
‘호호호 산모님 여기 아기집이 있어요’
‘어머 꺄르르’ 같은 예쁜 그림으로 검사를 받는게 아니라
하의 속옷까지 다 벗고 병원에서 제공한 치마를 입은 다음
다리 벌리는 산부인과 의자에 눕듯이 앉는다.
그렇게 치욕스러운 자세로 앉아있다보면
의사가 들어와서 무슨 기구에 비닐같은걸 씌우고
젤 묻히고 쑥 집어넣는데
진짜 차갑고 아프고 기분이 아주 꽃 같았다.
두번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불쾌함이었지만,
난 그 불쾌함을 몇번 더 느껴야만했다.
임신 초기엔 그렇게 초음파검사를 한다카더라…ㅠㅠ
병원에서 초음파 사진을 받아들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남친에게 저녁에 할 이야기가 있으니
만나자 메시지를 보냈고,
남친은 그럼 저녁 차려놓고 기다릴테니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전화나 메시지로 먼저 이야길 할까 했는데
그랬다가는 이 인간이 잠수를 타버리거나
어디론가 튈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관뒀다.
물론 내가 만나면서 본 남친은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주위에 그런 경우를 겪은 지인의 사례도 있었고,
임신 사실을 안 순간부터
난 세상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걔가 내 자식이라는 증거라도 있어?’ 같은 소릴 지껄이면
목을 졸라버릴 생각까지 했던 것 같다.
온갖 최악의 상황들을 다 상상했다.
그래야 만에하나 내가 받게 될 상처가 조금이라도
약해질 것 같았으니까.
그날 하루종일 여러가지 상황에 대해
플랜 a, b, c까지 만들어가며 온갖 상상들을 다 했다.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남친의 반응이 낳는다 라면,
나는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결혼과 임신에 뜻이 있는가.
올해 하기로 했던 내 계획들을 포기할 자신이 있는가.
만약 낳지 않겠다면,
이 사람과 만남을 지속할 수 있겠는가
혼자서라도 아이를 키울 수 있겠는가
등등..
부모로서의 나, 아내로서의 나를 생각했고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쌓아온 내 모든것 중
얼만큼을 결혼과 육아를 위해 놓을지도 계산했으며,
계획해둔 일들과 모처럼 잡은 기회들을 포기하기 위해
스스로를 설득하느라 애썼다.
남친의 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남친은 할 얘기가 무어냐 물어보았고,
난 조용히 초음파사진이 든 봉투를 주었다.
사진을 꺼내본 남친은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많이 놀라지않았냐,
몸 따뜻하게 해야한다 입덧은 없냐 등등의 말을 건네주는..
내가 원래 알고 있던 다정한 그 사람 그대로였다.
이사람과 함께 한다면,
내가 하고 싶었던 일 쯤 몇년 뒤로 미뤄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때 모든 긴장이 풀려서 남친한테 안긴채로 펑펑 울었다.
남친이 “아들이래 딸이래?” 라고 진지하게 물어볼 때까지.
2.그날 남친은 어머님에게도 사실을 알려야하니
초음파사진을 잠시 달라고 했다.
남친이 어머님을 직접만나 사진을 보여드리고,
여자친구가 임신을 했으니
결혼을 하겠다고 말을 하기전까지도
난 남친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내가 성격이 꼬이고 의심이 많아서 그런건지,
세상이 워낙 흉흉해서 그런건지..
내 남친이 갑자기 말 바꾸고 돌아설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것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매일매일 불안해했었다.
당연히 직장, 가족, 친구들에겐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회사에서도 남자직원들이 뻑뻑 피워대는 담배냄새를 피해 다녔으며,
회식이나 모임에도 장염이 낫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고
참석하지 않았다.
그렇게 임신 6주차가 되었고
병원에 다시 방문해서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저녁에 다시 남친집으로 찾아가 저녁을 먹고
어머님께 임신사실을 알린 이야길 전해들었다.
다행히도 어머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며 나를 얼른 만나보고 싶어하셨고,
또 한편으론 우리 가족에게 굉장히 미안해하셨다고 한다.
남친도 마찬가지로 우리집에 인사갈때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우리집에선
어떻게든 날 시집보내려고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에
오히려 당신을 용자님으로 모시려 할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켰다.
그리고 우린 현실로 돌아와 결혼식 준비에 대해 이야기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둘다 모아둔 돈이라곤 각자 살고있는 자취집 보증금뿐이었다.
연애하면서 할 수 없었던 그동안 살면서 겪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겪었던 일, 남친이 겪었던 힘들었던 일..
그 상황에 나쁜 선택하지 않고 잘 버텨내줘서 고맙다고 서로 토닥여주고,
앞으로 살면서 같이 하나씩 만들어가자고 약속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나는 그동안 갖고 있던 불안감을 떨치고
모처럼 편하게 잠이 들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가족 단톡방에 통보했다
나 : 나 결혼할래
오빠 : 올ㅋ 축하
나 : 오빠 삼촌됨
오빠 : 헐 미친
…엄마는 카톡확인을 안해서 전화로 통보했다.
크게 기뻐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고
“에흉 지랄하네” 라는 소감만 남겼다.
결혼비용은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신경쓰지 말라 이야기하고,
인사하러 내려가기로 한 날짜를 잡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직장에 임신 사실을 알려야했다.
과년한 처녀의 몸으로 결혼 소식이 아닌 임신소식을 먼저 알리려니 난감했다.
어떤식으로 누구에게 먼저 말을 꺼내야할지,
소식을 알린 후 내가 없는 자리에서 이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함부로 떠들어 댈지에 대해 상상하니,
그것도 꽤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래서 멘탈이 약한 나는 더 생각하다간
아이에게 안좋겠다 싶어,
우선 직속 상사에게 사실을 알렸다.
직원도 몇 없는 작은 회사에서
한 사람이 알면 전직원이 다 알게 될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사장은 나에게로 와서
“결혼한다매! 결혼 안 한다더니!! 드디어 니가 결혼하는걸 보는구나!!!”
라며 아주 큰소리로 축하의 말을 건냈다.
다음으로는 친한 친구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당연히 진심어린 축하를 받았고,
잘 살길 바란다는 응원도 함께 들었다.
남친도 친한 친구들에게 우선 소식을 알렸다.
나머지 사람들에겐 정확히 날짜 잡고
결혼이 어느정도 진행되었을때
청첩장 들고 찾아가 직접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본격적인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결혼준비 과정에 대한 글을 쓸까해서
지난 준비과정을 다시 돌이켜보았는데,
준비하는데 있어서 갈등도 없었고
남들과 별 다를거 없는 몹시 평범한 결혼식이었던 것 같다.
딱 한가지 결혼준비에 추가로 넣은 과정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부부상담.
우리 커플의 경우
만남과 연애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까지 1년 안되는 시간이 걸렸다.
서로에 대해 아는게 많지 않았던 상태에서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까지 했으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가장 큰 걱정은
아이 때문에 서로에게 발목 잡혀 결혼하는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남친은 갑작스런 임신 때문에
하던 공부를 중단해야하는 나에게 미안해했었고,
나도 마찬가지로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가장이 되어버린 남친에게
너무 큰 부담을 안겨주는 것 같아 미안했었다.
그러면서 아이 때문에 억지로
혹은 어쩔 수 없이 나와 결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상대방이 나를 배우자로 적합한 사람이라 생각하여
결혼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하니 우울하기도 했고,
먼훗날 남편과 불화가 생겼을때,
그 탓을 아이에게 돌리게 될까봐 두렵기도 했다.
술얘기에 대한 변명을 좀 하자면
물론 임신초기..그러니까
보통 우리가 임신을 인지한 시점인 5,6주 쯤부터
12, 3주 쯤까지는
당연히 먹는 것 움직이는 것 하나하나 다 특히 더 조심해야 하는게 맞다.
안정기가 아니니까.
하지만 임신을 인지하지 못하는 4주 정도까지는
산모가 먹는 음식은 태아에게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는걸 알고 있었다.
내 경우 의심되는 날짜로부터 계산했을때,
임신테스트 하기로 결심한 날이 딱 임신 5주로 넘어가는 시기였기 때문에
별 걱정없이 비장한 각오로 술을 마셔제낀거였다.
그 후 임신을 완전히 인지한 순간부터는
그렇게 좋아하는 맥주마저 한모금이라도 마시고 싶다는 생각조차 안 들더라.
오히려 남편이 풍기는 술냄새에 거부감을 느낄 정도?
술보다 더 걱정이 되었던건
시기상으론 임신 2~3주차 되었을 때 쯤
바이러스성 장염을 앓아서 먹었던 항생제였다.
그게 걱정되어서 초진하던날 의사에게 물어봤는데,
마찬가지로 그 시기엔 뭘 먹어도 아무 관계없으니 신경쓰지 말라더라.
만약 내가 잘못된 지식을 알고 있는거라면 알려주길 바란다.
다행히도 지금 아이는 아무 문제없이 잘 자라고 있지만,
만에 하나 나중에 둘째..가 생겼을때 조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임신 썰을 조금 풀자면, 초기엔 입덧은 없었다.
하지만 빈혈이 심해져서
(집안력으로 약하게 빈혈이 있던 상태였다)
간혹 호흡이 어려울 때가 가끔 있었다.
의사와 상담했을때
너무 힘들면 철분제를 먹어도 되지만,
너무 이른 시기에 철분제를 먹으면
몸에서 받지 않아 구역질을 심하게 할 수도 있다고 해서
철분제를 먹는 13주가 될때까지 참고
보건소에서 받아온 엽산만 먹으면서 버텼다.
그래도 지금은 철분제를 먹고 있어서 빈혈은 못느끼지만,
배가 불러서 여전히 파오후 파오후하고 숨쉬며 다니고 있다.
주위에 입덧이 너무 심해서 고생하고 있는 임산부가 있다면 수액 맞는걸 추천한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친구들이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썼는데,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지루한 글 읽어줘서 고맙다.
더 쓴 내용도 있었지만,
괜히 성별싸움만 조장하는 것 같아 고민끝에 지웠다.
그리고 해당 안되는 이야기라며 슬퍼하는 애들아…
늙은 나도 결혼했으니,
어린 너희들도 언젠간 결혼하겠지..
그때까지 너무 시무룩해있지말고
항상 즐겁고 행복하게들 살았음 좋겠다.
축하해주고 응원해줘서 정말 고맙다.
다음에 기회되면 썰보따리 들고 또 놀러올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