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건 아닌데 누명쓰고 경찰서 불려갔다가 온 글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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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니긴 한데 조금 기묘한 사건이 나한테 일어났었다.

다행히 혐의를 벗은 것 같아 처음으로 글 써본다.

방학이라 고향에 내려와서 평화롭게 잉여생활 하던 중에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아침부터 전화가 한통 오더라.

요 며칠 심각하게 광고 전화가 걸려와서

아는 사람이면 알아서 문자라도 남기겠지 싶어 씹었다.

친구들이랑 같이 피방에서 롤하다 잠시 고기 구워 먹으러 나와있는데

저녁에 그 번호로 또 전화가 연속 2통 오는거다.

전부다 안 받으니 문자가 한통 왔는데

“경찰서 지능수사팀인데 조사 할게 있으니 전화 해주십쇼” 였다.

마침 술도 좀 마셨겠다

보이스피싱 역관광 할 생각에 설레서 전화 걸었다.

전화 걸자마자 어떤 남자가 바로 받더니

“000씨 맞으시죠?” 하더라.

대충 대화체로 써보면

경 : 000씨?

나 : 네. 맞아요.

경 : 지금 어디세요?

나 : 고향이요.

경 : 고향 어디신데.

나 : 충청도요.

경 : 아니 정확하게 어디냐고.

나 : 그건 아실거 없구요.

보이스 피싱에서 현재 소재 알아낸 다음에

사기 친다는 소리를 어디서 주워듣고 일단 방어했다.

경 : 아무튼 카드 사용하는거 있으시죠. 우리은행?

나 : 네. 우리은행 써요. (실제씀.)

경 : 얼마전에 000씨가 남의 카드 사용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조사중이에요.

나 : 아.. 네 ㅋㅋ

경 : 000씨 남의 카드로 가게에서 결재한적 없어?

나 : 아니 제가 왜 남의 카드를 써요. ㅋㅋ 그런적 없습니다.

경 : 웃지말고. 지금 신고 들어온 다음에 조사했고 cctv 증거도 다 확보해놨구만.

나 : (기분 갑자기 확 ㅈ같더라) 뭐요? cctv요? 남의 카드 사용 한적 없습니다~

경 : 하… 000씨가.. 5월 19일에

00편의점에서 남의 카드로 사용한 증거가 다~ 있어요.

지금 영장도 다 나와있고 cctv 물증 다 확보해 놨어요~

그 특유의

‘너 범인인거 이미 이미 알고 전화했어 ^^’ 식의 늘어짐

  • 반말 슬슬 섞는 형사 말투가 진짜 ㅈ같더라.

보이스 피싱 역관광 할 마음도 사라지고 걍 끊고 싶어 지더라고.

그래서 걍 최후의 방법인

경찰서에서 보자고 몰아 붙이고 끊으려고 했다.

나 : 그럼 긴말할거 없이 경찰서에서 보죠.

어디 경찰서에서 볼까요?

경 : 경기도 00 경찰서 지능수사팀으로 내일 모레 아침에 오세요.

?????????????????

진짜 형사였음.

사건은 이랬다.

학기 중인 5월 중순에

내가 남이 도난 신고한 카드를 가지고 편의점에서 결제했다는거.

무려 9,000원을…

보이스 피싱 의심을 풀은건 걍 다른 이야기 없이

신분증들고 경찰서 오란 소리 하나 하고 끊는거랑

cctv 확보했다는 가게가

내가 매일 담배사러 가는 편의점이 맞아서였음.

전화 끊고 대체 무슨 일인가 싶더라.

일단 2달 가까이 지난 과거라서 천천히 생각해봄.

내가 5월 19일에 뭘 했지..?

당연히 기억 안남.

유추 할 수 있는건 그날 하나뿐인 과목이 휴강인 날이라

집에 틀어박혀 있거나, 과제하거나,

퍼질러 자고 있었을거란거.

(당연히 내가 친구가 있을리 없잖아?)

근데 내가 남의 카드를 썼다고?

만약에 내가 남의 카드를 썼다면

술을 진탕 쳐먹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태로

바닥에 떨어진 카드가 내껀줄 알고

그걸들고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담배를 샀을 가능성 밖에 없음.

근데 5월에는 남이랑 술 마신 적도 5번 정도밖에 안되고

만취한 적도 없었다.

5월 19일은 일이 있어서 안 마셨을 가능성이 높은날이고…

더군다나 남의 카드로 결제 했더라도

그 다음날까지 내 카드인줄 알고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본적도 없고 기억도 없음.

고로 99.99% 누명이라고 스스로 결론 짓게 되더라.

근데 경찰서 가기 전까지 이게 좃같은게

자꾸 쓸데없는 생각이 반복되면

왜곡된 생각이나 가정이 사실인 것처럼

스스로 느껴지게 될 때가 있다.

난 술취하면 편의점에서

해장거리랑 담배한갑 사서 가는 술버릇이 있는데

계속 반복해서 여러 가정을 해보다보니

진짜 내가 남의 카드를 주워 모르고 긁은 것처럼 느껴지고

쓸데 없이 똥줄타고 이게 진짜 좃같더라.

아무튼 전화를 받은 당일에는

황당함이 90%

이런일도 나에게 생기는구나 하는 웃긴게 10% 정도 였는데

다음날 일어나서 술깨고 나니까 좃같음만 100% 더라고.

그날 저녁 경찰서 가기위해 경기도로 올라왔다.

막상 내일 경찰서 간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쫄리고 심장 떨리더라.

밤에 잠도 잘 안와서 그냥 피시방에서 밤새고 아침에 경찰서 갔다.

막내처럼 보이는 어리버리한 의경이 안내해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얘는 내가 양아치 인줄 알았을거다.

정리안한 머리에 밤은 새서 눈은 충혈되고,

반바지 + 맨발에 슬리퍼 질질 끌고

경찰서 정문에서 택시 내리자마자

지능수사팀이 어디냐고 물어봤음 ㅋㅋ

지능 수사팀 들어가는데

존나 범인 반기듯이 형사들이 쳐다보더라..

그것도 남의카드 훔쳐서 9,000원 사용한

개찌질이 바라보는 눈빛으로 ㅠㅠ

왜 영화 같은거 보면 조서같은거 쓰잖아?

형사가 피의자랑 컴퓨터 하나 사이로 두고

이름~ 주소~ 하면서 타다닥 하면서 쓰는거.

근데 그 형사 앞에는 이미 한 50장쯤 되보이는 조사한 기록이랑

영장이 있음 ㅋㅋㅋㅋ

뭔지는 모르겠는데 첫장에 판사가 도장찍은 것 까지 있더라 ㅋㅋ

아니 이건 내가 범인이 99% 확실할때 해놓는거 아니냐?

진짜 그 순간 내가 5월 19일에

진짜 술먹고 기억안나는 상태에서 남의 카드를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캄캄하더라고

담당 형사는 원래 말투가 그런건지

아니면 내가 범인이라고 확신해서 그런건지

ㅈㄴ 압박하는 말투로 쏘아붙이더라.

내가 말로 범인 아니라고해도 씨알도 안 먹힘.

일단 cctv에 찍힌 사람 본인인지 보라고 하는데

딱봐도 나임.

옷부터 가방, 얼굴까지 100% 나.

그래서 본인 맞다고 했지.

22시 48분 경에 편의점 이용한 사람이 사람이 나밖에 없고

9,000원을 결재했는데

이게 담배 2갑 산거라고함.

말보로 골드 2갑. 이거 내가 피는거임.

화면에도 담배 2갑 사는게 사진으로 수십장 찍혀 있더라고.

와 진짜 막막하더라

이게 뭔일인가 싶더라고.

주머니에서 혹시나 해서 카드 꺼내보니까 내껀 맞더라.

우리은행에 전화해서 상담원 연결하니까

경찰서 팩스로 5월 19일 사용 내역 보내준다더라.

에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기다림.

몇분 뒤에 팩스 도착하고 그거 읽어보는데

5월 19일에 내가 편의점 2번 갔고 1,950원, 9,000원 썼었음.

이거보라고

내 카드로 9,000원 긁은거 보이냐고 존나 쏴댔음

근데 거기에 시간이 안나와 있다고

형사가 다시 전화해서 시간까지 나와있는거 본인이 요청한다더라.

자꾸 상담원 연결할 때

옆에서 내가 뭔짓하나 감시하는 것부터

중간에 지가 전화 뺏어가서

굳이

여기 경찰서인데 000씨가 5월 19일에 남의 카드를 도난했다.

그래서 사용내역 필요하다 라고

말하는거 진짜 좃같더라.

무슨 내가 범인 같이 느껴지고.. 기분 진짜 안 좋았음.

특히나

나랑 이야기 할 때 처음부터

이따금씩 기선제압하려고 사납게 노려보면서 눈 마주치는데

내가 그거 안 피하고 똑같이 ㅈ같게 쳐다보니까

다시 종이보고 그랬음.

암튼 다시한번 팩스 올때까지 기다리고 시간 찍힌거 확인했다.

시간보니까 22시 48분에

내 카드로 9,000원 결제 했다는게 밝혀졌다.

cctv 시간이랑 일치함.

겉으로는 좀 빡쳤지만 태연한척 했는데

속으로는 존나 다행스럽더라.

형사가 다른 종이랑 내 사용기록이랑 몇번이나 번갈아 가면서

“어?? 어?? 이거뭐야? 왜이래??” 이러더라 ㅋㅋ

동료가 뭔일이야? 하고 다가오니까

형사가 황당한 표정으로

“야.. 이새1끼 아닌데? 아니아니 이학생 아닌데?” 이러고 있음

그리고 갑자기 형사의 말투가

동네 아저씨처럼 힘이 빠지고 친절해짐.

속으로 ㅈㄴ 꼬시다 생각하고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고 있는데

나한테 지가 가지고있던 종이들 보여주더라.

형사일 하면서 이런적 처음이라고 하면서.

나도 보다가 좀 기묘하다 느낀게

일단 22시 48분에 편의점에서 9,000원을 긁은건 나밖에 없다.

아에 손님 자체가 48분에는 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근데 내 카드도 9,000원 긁혀있고

잃어버린 사람의 카드도 48분에 9,000원 긁혀있음.

똑같이 말보로 골드 2갑이다.

그리고 그 편의점에서 도난 카드를 사용한 적이 없다더라.

즉 잃어버린 카드가 갑자기 스스로 편의점에서 긁힌거임..

일단 나를 부른건 99% 용의자라고 판단하고 부른거 맞다더라.

그리고 초반에 전화했을때

소재 안 밝히고 자꾸 말돌려서 진짜 범인이라고 확신했대.

나도 관등성명도 안대고 영장 나왔다며

다짜고짜 경찰서 오라길래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고 맞불 놓음.

아무튼 누명이란게 밝혀지고 집에 가라더라.

그래서

“형사님 제발 쌩사람 잡지말고 저 다신 여기로 안오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하고 나온게 아니고.

억울해서 집에 갈돈 없다고함.

내 돈 내고 스스로 누명 씌워진거 벗겨 내는데

갑자기 해결되고 나니까 돈도 아깝더라.

그랬더니 “있어보세요” 하더니

형사들 타고다니는 그 봉고차..

그거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ㅋㅋ

형사도 괜히 미안한지

차안에서 돌아오는 5분동안

내 과가 뭐고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건지 ㅈㄴ 영양가 없는 소리 둘러대더라.

사건 종결되면 전화준다고 어떻게 해결된건지 알려준다 하고

도착해서 내림.

마음 같아서는 개찌질하게

9,000원에 신고 당한거

난 고향에서 올라와서 택시비에,

잠도 못와서 피시방에서 밤샌거에

고속버스비까지 전부다 10원단위로 찌질하게 청구하고 싶더라.

근데 무서워서 못 물어봄.

신고자 이름을 들어보니 여자같던데

그 여자애가 고소를 한거면 역고소각이 나올텐데

자기 도난된카드 사용한건 사실이니

경찰에 신고만 한 상황이었나봄.

우리 학교고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니

2학기에 돌아다니다보면 마주칠 수도 있겠지..

나중에 은행 측에 전화해서

이게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보니까 절대 안 알려주더라

편의점 알바가 범인이 아닐까 생각도 했는데

1.오만원 이하는 서명이 필요 없다.

2.누군가 담배를 2갑 살때 먼저 혹은 나중에

재빠르게 도난카드를 사용해서 다시 긁는다.

3.그리고 자연스럽게 말보로 담배 한보로를 뜯어

진열하는 기회를 틈타 2갑을 빼낸다.

이 시나리오라면 가능한데

이것도 사실 경찰이 조금만 신경쓰면

cctv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쓰고나니까 ㅈㄴ 별볼일 없는데 개 스압이네..

p.s. 내가 카드 사용내역 조회를 허락했던 것도 아닌데

경찰은 이미 내가 사용한 2개의 카드 내역을 모두 알고 있더라.

보통 결제 금액만 뜨는데

뭘 샀는지 까지 이미 알고 있더라고.

편의점에 가서 직접 물어본건지..

아니면 경찰은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사용한 카드는

영수증 형식으로 볼 수 있는건지..

못된 경찰이 맘만 먹으면 선량한 시민 정보 터는건 일도 아니겠더라.

시간 지났어도 연락 안 오는거 보니까

범인을 아직 못 잡은건지 귀찮아서 전화 안 주는건지..

암튼 다들 누명 조심해…

진짜 어버버 했으면 골로 갈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