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올렸다가 사람들한테 욕만 얻어먹은 ‘무심한’ 남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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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6년차.

연애시절 아내는 정말 예뻤고, 착했고, 멋졌다.

내 인생에서 이런 여자는

절대 만날 수 없을 것 같았고

아내랑 연애한지 1년째에 미친듯이 매달려 결혼했다.

결혼에 골인한 뒤

매달리던 나는 없어지고 아내에게 무심하게 대했다.

아내는 항상 내 옆에 있어야 하는 사람,

다섯살 된 우리 아들 엄마이자 내 아내,

정말 이쁜 이름을 가진 아내였는데

그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난 아내를 내 사람이 아니라 내 옆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아내는 결혼하고도 직장을 다녔다.

4년동안 나에게 출퇴근이 일하는 것보다 힘들다고

매일매일 끙끙댔지만

“그만두기엔 아까운 회사잖아”

라는 말 한마디로 퉁치고

아내 말은 그냥 회사 여직원이 말하는 것처럼 흘러넘겼다.

며칠간 아내를 대신해 아내의 출근길을 따라 가봤다.

아내는 늘 그렇듯

여섯시에 나와 첫 번째 지하철을 타러 뛰었다.

그 시간에 사람이 뭐가 많냐고 했던 내가 민망할 정도로

지하철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내려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올라가고, 뛰어서야

세 번째 지하철에 오를 수 있었다.

회사 근처에 내리고 또 버스를 탔다.

일곱시 반까지 출근부를 찍기 위해 뛰어야했다.

한파가 밀려왔다는데 난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아내는 6년간 차로 20분 밖에 안 걸리는 내 편의를 위해서

내가 편하게 차 끌고 다니면서 춥다고 징징댈 때

이렇게 매일 뛰어다녔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집에만 돌아오면 몸도 못 가누는 아내가

밥은 잘 해먹는 걸 보고

다른 여자들은 피곤하면 식욕 떨어진다던데

하며 비교한 적이 있었다.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한 걸 아내는 들은 것처럼

어느날 내가 해준 저녁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난 무슨 투정이냐며

귀엽다는 듯 핀잔을 주고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시켜 들이밀었다.

남편 손길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 밥을 먹으면서도

아내는 오늘, 뭐가, 어땠는가, 조잘댔다.

난 너무 피곤해서 말 하지 말고 먹을까? 그랬다.

최대한 완곡하게 말했고

아내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너무 늦게서야 아내의 그 때 표정이 떠올랐다.

연애 땐 레시피를 벽에 붙여놓고

파스타도 만들고 했던 놈이

볶음밥 쪼가리나 들이밀고 입 다물라고 한 거다.

지금 가장 힘든 건 그 때 아내가

나에게 뭘 말하는지 들어둘걸 하는 후회

그때 과연 내 아내, 아니 우리 채현이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었을까

그 내용이 궁금해 미칠 것 같다.

결혼 6년동안 총 12번의 명절이 있었다.

단 한 번도 처갓댁에 먼저 간 적이 없었다.

아내는 맏며느리인 죄로

피 한방울 안 섞인 집 사람들을 위해

하루종일 주방에 있어야했다.

제수씨가 먼저 친정으로 떠날 때도

아내는 본가에 남아있었다.

아내는 내 팔을 두드렸는데

난 그걸 애교로 치부해 버리고 무시했다.

다섯살 된 아들내미가 말문이 터지고

자기 할머니한테

“왜 우리 엄만 집에 못가? 엄마 집에 보내줘”

라고 했던 이유를 그때서야 알았다.

아내가 내 팔을 만지작 거렸던 이유를.

어머니는 아내를 혼냈었다.

애한테 무슨 말을 시켰길래 애가 저러냐고 했다.

애가 우리 엄마한테 소리치지 말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니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주한테

한 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등을 돌리고 앉으셨다.

그게 참 속상했다.

힘들게 나를 키우셨는데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어머니가 속상했다.

근데 내 아들은 다섯살 때부터

그런 속상함을 느꼈을 거란 걸 이제서야 알았다.

그날 처갓댁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내는 아들을 끌어안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한 건 널 낳은 거라고

몇 번이고 말을 반복했다.

그게 듣기 싫어서 애 좀 재우라고 한소리 했다.

그 때 나는 아내와 아이에게 사과했어야 했다.

엄마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앞으로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고.

아들을 가졌을 때 아내는 입덧을 심하게 했다.

또, 하루 반이 지나서야 아들을 낳았다.

아내는 몇 달동안 토마토만 먹었다.

다른 걸 먹으면 전부 토해냈다.

나도 인간이라 양심은 있어서

아내에게 이것저것 해주려 노력했다.

방울토마토를 색색으로 사다 구비해놨고

아내가 못 먹고 버릴지언정 매일 음식을 사왔다.

아내는 두고두고 그걸 고마워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난 내 몸뚱이만 편하면 그만이었다.

방울토마토 한 팩으로 하루를 버티는 아내가

왕복 세시간이 넘는 출퇴근 길에서 치이는 동안

난 고작 뭘 사갈까 고민이나 했으니

그럴 시간에 난 왜 아내를 데리러 가지 못했을까

미친듯이 후회가 밀려온다.

아내가 육아휴직에 들어가고

아내는 밤낮이 바뀐 생활을 했다.

난 퇴근해서 밥 먹고 씻고 피곤하다며 잤다.

그래서 밤마다 아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몰랐다.

난 집에서 쉬고 있는 아내가

모든 걸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아내는 참 말라가고 있었다.

어깨가 솟고 손목엔 보호대를 하고

배에는 복대도 둘렀다.

그게 정말 아줌마 같아서 당신 아줌마 다 됐네 하면

아내는 그럼 당신도 아저씨 해야지! 핀잔주며

애 좀 안고 있어달라고

김치찌개가 너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럼 난 아이를 쇼파에 두고 축구를 봤다.

결국 아내는 다시 나와 애를 들쳐업고

싱크대에 서서 밥을 해먹었다.

참 보기 싫었다.

그토록 이쁘고 가녀렸던 여자가

저렇게 서서 허겁지겁 밥을 먹는 게 보기 싫었다.

남자인 내가 아이를 업는게 더 쉽고,

내가 아내보다 손목도 굵고,

팔도 굵고 밥도 많이 먹는데

그때 밥 먹는 아내가 왜 보기 싫었던 건지.

가끔 거실에 앉아 장모님이랑 통화하는 아내 곁으로 가서

등 한번 쓸어주고 정말 사랑한다고

고생한다고 했어야 했는데

그냥 모녀지간에 풀겠지 그러고 만게 한심스럽다.

아내는 항상 똑똑하고 이성적이었다.

기억력이 남다르고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들었다.

난 가끔 아내의 그 기억력이 무서울 때도 있었다.

어느날 아내는 갑자기 갈비찜을 잔뜩 했다.

무슨 날이냐 했더니

내가 며칠 전에 먹고 싶다고 했단다.

난 기억이 없다.

아내는 그 때의 시간 상황까지 전부 기억한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 그때의 내 표정,

아이가 처음 옹알이 한 순간,

아내는 나에 관한 건 모두 기억했다.

장모님에게 들어보니

아내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똘똘했다고 했다.

머리도 유달리 좋았다.

재미로 해봤던 아이큐 테스트에서

아내는 엄청난 점수를 받았고

우습게도 나는 자존심이 상했었다.

모든 걸 기억하고 모든 걸 해내는 아내가

어느 주말 나한테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이상했다.

분명히 그 얘기는 어제 끝난 얘기였고

예매까지 같이 했던 영화인데

아내는 그걸 기억하지 못했다.

어떤 날은 전날 하루가 통채로 지워진 적도 있었다.

아내가 울면서 요즘 어제 뭐했는지 기억이 안난다는데

난 그냥 피곤한 것뿐이라고

비타민 약을 꺼내 내밀었다.

아내는 내 말을 믿고 열심히 비타민을 먹었는데

여전히 기억을 하지 못했다.

어느 날은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먹은 걸 다 토하고 속이 좋지 않다면서

짜고 매운 음식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난 그것마저도 해주지 않았다.

아내는 그날 하루종일 집에 누워있었다.

한 번도 볼일 없인 휴가를 내지 않던 아내가

그날 하루종일 아이를 유치원에 맡기고 집에 누워있었다.

퇴근길에 아이를 데려오면서 화가 났었다.

아이 엄마가 저렇게 의지가 없어서 되겠나

엄마가 아이를 내팽겨 치는게 말이 되나

그런 한심한 생각을 했다.

결국 나는 집에와서 한소리를 했고

아내는 토하느라 다 터진 입술로

아이에게 엄마가 미안해 라고 했다.

아이는 엄마 입술에 베이비로션을 발라 줬는데

남편이라는 놈은 그걸 보고도 모른 척 했다.

그 날 그 시간이 아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인을 위해 휴가를 쓴 날이었다.

아내는 한번도 나랑 눈을 마주친 적이 없다.

병원에선 아이와 함께 침대에 누웠고

링거를 끌고 다니면서도

아이는 품에서 놓질 않았다.

이제서야 난 아내가 정말 이쁜 사람이고 멋지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

나한테 어떤 존재였는지,

지금 어떤 존재인지 알았다.

길게 늘어졌던 아내와의 시간이 팽팽히 당겨졌다.

너무 빠르게 하루가 지나갔다.

아내는 회사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고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두통이 심했을 것이고

눈도 잘 보이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아내는 의사 앞에서 눈 앞에 잘 뿌얘졌다고 했다.

난 그때서야 알았다.

아내 옆에는 장모님이 항상 계셨고

아내가 나한테 한 마지막 말은

장모님 앞에선 자기를 끔찍히 위하는 척을 해달라는 거였다.

정말 하루하루 미칠 것 같고

아내가 혹시 떠날까봐 잠도 못자고 있는데

장모님은 그런 날 보고

집에 가서 자라고 등을 쓸어내리신다.

난 정말 지금 진심인데,

아내 눈에는 내 행동이 척으로 보이겠지만

그런게 중요하진 않았다.

난 정말 절박하고 아내가 간절하다.

요즘 아들은 유치원에서 뭘 자꾸 가져온다.

나보고 아빠건 없다고 한소리 하면서

휴지 뭉치를 꺼내는데

휴지 뭉치엔 귤 몇 조각, 딸기 하나, 땅콩,

어떤 날은 여우모양 소세지를 가져오고

어떤 날은 밥이 엉겨붙어 있었다.

밥에 김을 말아서 들고 왔는데,

아내는 음식을 다 토해내면서도

휴지에 붙은 밥알 하나하나까지도 다 떼 먹었다.

아이가 가져온 건 먹고 토한 적이 없었다.

아내는 며칠 전부터 버킷 리스트를 쓰기 시작했는데

전부 아들, 장모님 이야기 뿐이었다.

아이 봄 현장학습 따라가기

아이 학교 통지서 받기

아이 학교 입학식 가기

엄마랑 여행 가기

엄마랑 같이 자기

엄마 생신상 차리기

그런 정말 소소한 것들

아내랑 내가 남들처럼 살아간다면

그냥 다 했을 것들.

남들한텐 정말 별 일 아닌 것들.

아내에겐 그런 게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이 되었다.

미칠 것 같이 무섭고 두렵다.

아내가 내 옆에 없을 수도 있다는 게 미칠 것 같다.

아내 고생시켜가며 차 끌고 다니던 그 잘난 회사 그만두고

지금 아내 옆에만 붙어있는데

아내가 건강했을 때 이러지 못했을까

미친듯이 죽도록 후회가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