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주5일짜리 회사 다니면서
무난하게 살고 있었던 사람인데,
친구 때문에 도박에 손 잘못 댔다가
모은 돈 다 잃고 빚만 천만원 넘게 생겼었다.
쥐꼬리만한 월급 170만원 받아서
이자 내고 방세 내니까 남는게 없더라.
결국 지인 소개로 숙식 제공되는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에 일하러 가게 됨..
거기서 얘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얘는 카운터, 나는 서빙.
친해지게 된 계기가 웃긴데,
얘가 가끔 일 끝나고 같이 숙소로 가는 길에
음료수도 사주고 과자도 사주고 하는데
나는 대출 빚 갚느라 지갑이 빈털털이여서
한번도 내가 사준적이 없었음..
근데 어느날 얘가 대놓고
“오빠는 너무 돈 안 쓰는거 아냐? 진심 짠돌이네 ㅋㅋㅋ”
돌직구 날리더라..
나도 왜 그랬는진 모르겠는데
당황해서 내 사정을 솔직히 말했다..
지금 인생 너무 꼬여서 음료수 살돈도 없고
여기 도피한거나 마찬가지라고.
근데 얘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눈 쳐다보면서 가만히 내 얘기를 듣고 있더라.
그리곤 자기도 머리 식힐겸 여기 왔다고
자기도 인생 골 때린다면서 얘기하는데
웃긴게 그날 새벽 둘이서 술도 안먹고
집앞 계단에서 세시간을 넘게 얘기했음..
뭐 그러다가 친해지게 되고..
얼마 안 지나서 술한잔 먹고 같이 자고..
뻔한 스토리였음..
숙소가 휴게소 내부에 있으니
쉬는날 영화 한편 보러 가기도 힘들었고
많이 갑갑한 곳이었는데
결국 톨게이트에서 제일 가까운 원룸을 얻어서
둘이 동거를 시작했음.
8개월쯤 거의 부부같이 생활했다.
아침에 같이 출근하고, 12시간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했다.
어차피 저녁 10시라 갈때도 없었지만..
그래도 얘가 내가 요구하는건 다 받아줬다
얘도 하루하루 낙이 없으니
궁합은 진짜 잘 맞았던 것 같음.
이때쯤 내가 빚을 다 갚았다.
그래서 나 빚 다 갚았다고 하니까
얘가 그럼 우리 휴식 좀 가지자고
이제 좀 쉬자고해서 둘이 동시에 그만둠..
그리고 처음으로 둘이 데이트다운 데이트도 했는데
서울도 놀러가고 맛집도 가보고..
근데 행복은 2주만에 끝나더라
둘다 통장에 100만원씩 밖에 안 남아서..
그 후부터는 그냥 피시방만 주구장창 다님ㅋㅋ
그러다 한달 지나니까 진짜 알거지 되더라.
근데 일하기는 너무너무 싫으니까
얘 명의로 대출 500 땡기고
이걸로 두달 더 놀고..
결국 얘가 말하길
우리 이제 그만 놀고 일해야 된다고
일단 자기가 먼저 돈 벌어올테니
나도 피시방 끊고 얼렁 취직하자고 하더라.
나한텐 그냥 바에서 일한다고 했는데
솔직히 보도 뛰러 가는거 알았고 알고도 보냈다.
어차피 예전 처음 계단에서 얘기할때
자기 깨끗하게 안 살아왔다고 돌려 말하며 오픈했고,
그 얘기 듣는 순간부터 선을 긋고 만난거라
사실 별 상관은 없었음.
그때부터 내 일상이 어땠냐면
얘가 밤에 출근하기 전에 반찬 해놓고 2만원씩 놓고 갔는데
나는 겜방에서 12시간씩 게임하다가
얘가 퇴근하기 전에 연락주면 집에 들어갔다.
퇴근했는데 집에 아무도 없는걸 극도로 싫어해서
시간 어기면 존나 싸우고 그랬음.
근데 싸우면 손해인게
다음날 돈을 안놓고 가니까^^;;
그때쯤 관계도 잘 안했던거 같음
1년쯤 동거하니까 슬슬 질려서..
근데 얘가 보도 출근하면서 치마도 짧게 입고
화장도 예쁘게 하니까 달라보이긴 했다.
근데 피시방도 혼자 다니니까 재미없더라..
얘랑 짝꿍처럼 같이 다닐때는
그래도 재밌고 다닐만 했는데..
그러다 얘 엄마가 아프다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가면서 월세 2달치 미리 내주고
30만원 주면서 이제 진짜로 일하라고 당부하고 떠나더라.
뭐 기댈곳이 없으니
나도 예전에 일하던 공장으로 되돌아갔지.
몇달 후에 난 운좋게 이직에 성공했고
연봉도 2800에 계약했는데
누구에겐 별거아닌 액수겠지만
앞으로 몇년 더 일하면 월급도 꾸준히 오르겠고
이때부터 결혼에 대해 생각이 들더라.
물론 얘랑은 관계없는 이야기고..
사실 처음엔 이 기쁜 소식을
그 애한테 제일 먼저 알리고 싶단 생각도 들었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한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니 평범한 여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내 연락은 뜸해지고
얘도 눈치를 본건지 모르겠지만
결국 같이 서로 연락이 뜸해지더라.
안그래도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인데
가뜩이나 나는 낮에 일하고 얘는 밤에 일하니까
활동시간도 달라서..
그나마 저녁 7-8시 사이에 나는 퇴근하고,
걔는 이제 막 콜 기다리는 시간대라
이게 유일한 접점대인데..
내가 게임에 여전히 미쳐있던 시기라
카톡도 씹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게임만 해버림..
내가 연락이 너무 안 되니까
얘가 자기 동네에 있는 피시방에 가서
1랩짜리 아이디 만들어서 귓말로 대화하거나
그냥 나 게임하는거 관전하면서 구경만 하더라..
가끔 얘는 무슨 생각이지?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음.
롤이 뭔지도 모르면서
무슨 재미로 관전을 하고 있냐 물어보니까
그냥 오빠 캐릭터 보고 있으면
오빠가 아장아장 걷는거 같아서 귀엽다라나..
그러다 나중에 헤어지잔 얘기를 못해서
그냥 번호 바꾸고 잠수탔는데..
SNS도 안했고 주변사람 겹치지도 않았으니
나한테 연락할 방법이 아예 없었을거임..
지금쯤 어디서 뭐하고 지낼려나
철은 좀 들었을지 진짜 너무 궁금하다.
돌이켜보면 휴게소에서도 맨날 커피 얻어먹고
나중에 원룸 살땐 용돈 받아쓰고..
신세 많이진 여자인데
취직하고나서 따뜻한 밥한끼 보답 못한게
계속 마음에 걸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