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때문에 3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져야만 하는 20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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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갑자기 배가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된다길래

그냥 뭐 잘못 먹었는갑다 했는데

며칠째 이상하다고 하길래

병원 갔다오라고 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시간이라 같이는 못가줬고

별일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병원 갔다오고 얼마 있다가 나보고 위암이라더라.

그 말 듣고 존나 어이가 없었다

얘가 평소에 술 담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식습관이 개판인 것도 아니고,

가족력이 있는 거도 아니고

그냥 진짜 평범한 여자앤데

어떻게 24살짜리 애가 이런 소식을 갖고오나 싶었다.

처음엔 당연히 안 믿겨서

이런 장난은 치는거 아니라고 했는데

여자친구 표정 보니까 진짜란걸 알겠더라

도대체 얘가 꾸준히 2년에 한 번 받았던

건강검진이란거는

이런것도 못잡아내면서 왜 있는건가 싶었다

병원에선 위의 80%를 덜어내고

항암치료를 8번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치료 받는 내내

몸에 핏줄 속에 유리가 막 들어가는 느낌이고

어지럽고, 메스껍다고 하는데

나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지만

한번 항암치료 받고 오면

사색이 돼서 돌아오는 여자친구 보면서

여자친구 없을 때 몰래 울고 그랬다

5번쯤 치료 받았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조금 쉬었다가, 그니까

세포가 다시 붙고나서 다시 치료해야 된다해서

거의 반년을 항상 붙어만 있다보니

여자친구랑 이전보다 더 돈독하게 지냈다.

근데 암이 난소로 전이 됐다더라

그래서 난소도 거의 다 떼어냈는데

다행히도 생리도 문제 없이 잘 되게끔 회복했고

남은 3번의 항암치료도 다 받고

또 한 1년간은 조심하면서 잘 지냈다.

그렇게 지내면서도 여자친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점점 하나하나 체감되기 시작하더라

병원 주변만 지나가도

그 고통이 생각나서 어지럼을 호소하고,

덤핑 증후군 때문에 탄산 좋아하고

국 없이는 밥도 못먹는 애가 탄산은 커녕

밥먹고 최소한 30분은 지나야 물을 마실 수 있고,

키 164에 57~8키로 하던 애가 12키로나 빠지고,

얼마나 아팠길래

아픈 걸 참아내려고 손을 꽉 쥐고 있어서

악력이 나랑 거의 맞먹을 정도가 됐더라

그래도 잘 견뎌내줘서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1년 정도 잘 지내다가

서울 대학병원으로 가서

몸 상태 어떤지 검사 받았는데

진짜 하늘이 노래지더라.

또 뭔가 이상한게 보인다고

CT, PET CT 둘 다 찍어봐야 아는데

적어도 3개월은 대기시간 걸린대서

동네 큰 병원가서 찍고 2주 정도 지나서 결과 보니까

이번에는 복막전이 됐다더라.

이땐 진짜 다른거 다 필요없고 그냥 화가 나더라

하늘도 걍 밉고

얘가 뭐 관리도 안하고

맨날 술 담배하고 그랬으면 몰라도

매일 같이 식단 조절하고

꾸준히 운동하고 하루에 잠도 9시간씩 자면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관리했는데

왜 뜬금없이 암이 생긴건지 모르겠고

진짜 욕 밖에 나오지가 않더라

여자친구랑 한참을 말 없이 있다가

여자친구가 먼저 말 꺼냈는데

나보고 앞으로는 항암치료 받을 때 오지 말라고 하더라고.

너무 고통스러워 하는 자기 모습 보여주기도 싫고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것도 싫고

항상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으니까

그 모습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던데

처음엔 어떻게 그러냐고,

그냥 곁에 있어주겠다고 했는데

여자친구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서

점점 나도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나도 고집 피우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여자친구 치료 받으러 갈때마다

초조해서 손톱 깨무는 버릇도 생기고

매번 미칠 것 같은 정신 참아냈는데

여자친구가 너무 힘든 나머지

나한테 그만 만나자고 하는데,

누가봐도 죽을거 같아서 힘들어 보이는 사람 두고

내가 어떻게 떠나냐고 하니깐,

내가 옆에 있는거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워 죽겠다고

여태껏 느끼하게 별명 불러댔던 것도

진짜 질색이었는데 티 안 냈다고

그러고, 자기는 나한테 마음 없고

내 상태를 보라고 누굴 만날 여유 조차 없다고

그러니까 혼자 알아서 할테니까

지 좀 제발 그만 냅두라고 하더라.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인데

그렇게 울면서 얘기하면 그게 먹히냐 모지리야ㅋ

라고 장난치면서 분위기 풀려고 얘기했는데

제발 부탁이라고 그만 보고 싶다고 그래서

알겠다고, 대신 꼭 버텨서 빨리 나으라고 하고

이해하고 떠나줬다.

그리고 그날 이후 3개월 쯤 지나고

걔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는데

그때가 명절 쯤이라

난 내심 안부 인사 하는건지 알고

고맙게 전화 받고 듣다가 말도 못하고

그냥 누가 보든말든 미친놈처럼 울었다

젊은 나이라서 세포 전이 속도가 너무 빠르고,

복막전이는 항암제로도 잡기 힘들어서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했다길래

일이고 뭐고 병원 뛰어가서 여자친구 봤는데

내가 알던 여자친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애가 너무 초췌해졌더라

그냥 미안하다고 계속 울기만 했던 것 같다

여자친구 장례식에는 어떤 정신으로 있었는지

기억도 흐릴 정도로 넋 나가있었던 것 같고.

사실 이 모든게 거짓말이고 꿈이였음 좋겠고

지금 눈 딱 뜨고 일어나면

여자친구랑 처음 만난 그날이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몰카였다고 해도

다 용서해줄 수 있을 정도로 아직도 힘들다

둘중 하나가 마음이 떠나서 헤어진 것도 아니고

서로 없으면 안되는거 뻔히 아는데

이런식으로 헤어지게 될줄은 진짜로 몰랐지.

알았으면 더 잘해줬지

내가 그래서 그냥 하늘이 밉다는 거다.

평범하게 이별했다면

술 취해서 전화라도 해볼 수 있지

나는 미칠듯이 보고싶은데 전화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