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라노사우루스’를 좋아한다는 남자와 소개팅을 하게 된 여자의 빡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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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할 생각이 별로 없던 시절이라

회사에서 팀장님이 이상형이 누구냐,

소개팅 시켜줄테니 할 생각 없냐 할 때마다

귀찮아서 티라노사우루스가 이상형이라고 했는데

티라노사우루스 좋아하는 남자는 있는데

생각 있냐고 물어보더라

과거에 진 빚이 있어서 거절도 못하고

주말에 소개팅 잡고 만났음

막상 만났는데 생각보다 멀쩡해서 놀랐음

키도 크고 인상이 좀 무서운거 빼면 괜찮았고

약간 내 취향으로 생기긴 했는데 문제는

첫마디에 입 열자마자

“티라노사우루스 좋아하세요?”

ㅇㅈㄹ..

폰 케이스 티라노사우루스 인거 보고

이때부터 튀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 해서 카페에서

티라노사우루스 연대기 30분 넘게 듣기만 했음

근데 교수님 강의보다 유익해서

나도 좀 재밌게 들은건 함정

티라노 얘기만 듣다가 밥 먹고 헤어졌는데

다음날에 애프터 신청이 오더라

문제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만나는 거였음

난 세상에서 이딴 애프터 신청도 처음 봤고

갑자기 톡으로 자연사 박물관에

어린이날 기념 공룡 이벤트 한다고 말하길래

처음에 내가 거절했더니

공룡 좋아하는 마음 같은거 아녔냐고

같은 관심사인 줄 알았는데 서운하다고

장난반 진심반으로 나한테 화냄

그러더니 무작정 어린이날 자연사 박물관

몇시까지 오라고 톡 보내고 답장 없더라

결국 같이 자연사 박물관 갔는데

부모 손잡고 온 어린 애들 사이에서

데이트 하고 있는데 이게 맞나 싶었음..

심지어 소개팅남이랑 구경하고 있는데

모르는 남자 2명 오더니

우리 창현이 잘 좀 부탁한다고 인사하고

내 손에 소개팅남 손 쥐어주고 감.

내가 누구냐고 물어보니깐

자기 선밴데 선배도 티라노 좋아해서 구경하러 왔대.

다 큰 어른이 부모님도 아니고

선배가 자기 동생 잘 부탁한다고 하는 거 첨 봤음.

황당했는데

그날 소개팅남 옷 입은 꼴 보면 그럴만도 한게

티라노사우루스 모자에 티셔츠 입고 나왔었거든

우리 5살 조카도 이렇게는 안 입겠더라.

솔직히 여기서 연락 끊을랬음.

근데 며칠 뒤에 티라노 백악기 대탈출인가

그것도 보러가게 된 이유가

자연사 박물관에 이어서 티라노 팬이라면

이것도 꼭 봐야한다고

이번이 마지막 시리즈라면서

혼자 톡 30개 넘게 보내고 있는데 무시했더니

영화예매표 띡 보내놓고서는

극장에서 몇시까지 만나면서 또 사라짐.

어이없는데 주말에 할 것도 없어서

공짜 영화나 보러가자 라는 심정으로 또 갔음.

후반에는 엉엉 울기까지해서

옆에 꼬마애가 조용히 하라고 눈치까지 줬는데

휴지 없다고 내 옷 소매로 닦기까지 함.

황당해서 말리지도 못 하겠더라

그렇게 다 큰 성인 남성이 눈 팅팅 부어서

영화관 나와서는 하는 말이

재밌게 봤냐고도 아니고

“카라멜 팝콘 더 먹고 싶다” ㅇㅈㄹ.

솔직히 영화는 재밌었음

CG 너무 가짜 같은 거 빼면 명작이더라

내가 이 썰을 쓰는 이유는

내가 이 소개팅남이랑 결혼해서.

몇 개월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음..

나도 왜 계속 만난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영화 보고나서도 몇 번 데이트 했는데

소개팅 시켜준 팀장님도

어떻게 됐냐고 궁금하다고 물어보고

나도 이렇게 애매하게 계속 만나는 게 싫어서

사귈 거 아니면 그만 만나자 했더니

우리 이미 사귀는 사이 아니었냐고 물어보더라

자기는 박물관 갔을 때부터

이미 사귀는 사이인 줄 알았대.

그 말 듣고 존나 어이가 없었음.

그래서 관심사가 같다고 하더라도

소개팅 자리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질문을 하거나

일반적인 데이트를 해야 정상이지

우리는 티라노 말고 한게 뭐가 있냐

사귀는게 아니라 취미 동호회 아니냐 했는데

다 큰 성인 남성이 길 한복판에서 엉엉 울길래

그만 울라고 했더니

우리 헤어지는 거냐고 더 크게 움

속으로는 사귄 적 없다고 존나 얘기하고 싶었는데

달래주다가 어쩌다보니 사귀게 됨

몇 달을 만났는데

사귀고 나서도 애새끼 같아서

빡쳐서 내가 헤어지자고 했음.

나는 5살배기 조카보다도 못한 인간이랑 사귀기 싫고

결혼하기도 싫으니깐

각자 인생 가자고 하고 헤어졌음

그 뒤로도 몇번 연락 왔는데 다 씹었거든

근데 몇 개월만에 정장 입고 번듯하게 다시 나타나서는

진짜 달라질테니까 이정도면 다시 만날 수 있겠냐고

나랑 결혼하고 싶다고 냅다 고백함

그때 나한테 티라노남 소개해준 팀장님 말로는

주변 사람들 놀랄 정도로 고집도 안 부리고

너무 어른스러워져서 자기들도 놀랬대.

그러더니 나한테 프로포즈 한거라고 하더라.

근데 내가 프로포즈 거절했음.

그러더니 또 울려고 하길래

애새끼 같은 성격은 절대 안 변하네; 라고 했더니

눈물 꾹 참더라

그거 보고 나랑 진짜 결혼하고 싶으면

이런 걸로 울면 안된다

나는 애같은 남자 진짜 싫다

어른스러운 연애와 결혼을 하고 싶다 했더니

알았다고 노력하겠다고 그래서

결국 다시 만나게 됐고 1년정도 만나다가

정식으로 다시 프로포즈함

프로포즈 할 때 멘트가 골 때린게

티라노보다 내가 더 좋다고

손에 반지 덜덜 끼워주는 거 보고 승낙함

나도 왜 그랬는진 모르겠는데

그 멘트가 그렇게 설레더라

그래서 지금은 유부녀 됨

여전히 티라노 좋아하는데 내가 눈치 존나 줌

난 애초에 티라노 안 좋아니까

그때 그거 다 거짓말이었다고 했더니

사기결혼 아니냐고 가끔 나한테 따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