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에게 나는 늘 최선을 다했다.
그에게서 연락이 오면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컴퓨터가 고장 났다고 하면,
바로 휴가를 내고 그 먼 곳까지 가서 손을 봐주었다.
막상 가보면 별것 아닌 문제일 때가 많았다.
선이 빠져 있거나, Num Lock이 눌린 정도의
아주 사소한 문제들.
허무하기도 했지만 “얼굴 뵙고 좋네요”
라며 나는 너스레를 떨었고 그저 웃었다.
임대 아파트 청약을 넣어야 한다해서,
내가 알아본 뒤 본인인증 절차까지 대신 해주었다.
조건에 맞는지부터 확인하고
접수까지 끝낸 후에야 돌아서곤 했다.
그날도 휴가는 당연히 내가 냈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내가 일하는 병원에
장인어른 지인이 진료를 보고싶다 하면
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을 위해
진료 간호사들에게 진상 직원이 되기 일쑤였다.
혹 지인이 입원했다고 하면
매번 발걸음을 옮겼다.
매일 아침, 점심마다 올라가 인사를 드리고,
작은 간식을 건네며
혹 불편한 건 없는지 묻곤 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내와 결혼할 당시
본인의 아파트에서 신혼집을 하라고 했을때
나는 군소리 하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이 하루 5시간 걸려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기쁘게 다녔다.
전세금 5,500만원을 요구하셨을 때도
아무런 말 없이 기쁘게 드렸다.
그 신혼집에서 우리는 1년을 살았고,
이후 그 집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2024년 10월인 지금까지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2019년 어느날,
갑자기 만두국을 사준다고 하셨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갑자기 뭔가를 해주겠다고 할 때면,
언제나 뒤에는 부탁이 따라왔다.
역시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사업자금 보증금으로 4,000만 원이 필요한데
나에게 대출을 좀 받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아직 전세금도 받지 못했는데?”
아내에게 물었지만,
그는 땅을 팔아서 갚을테니 걱정말라고 했다.
나는 결국 신용대출로 대출을 한 뒤
4천만 원을 마련해 드렸다.
급하게 받아낸 대출은 만기가 1년짜리였고,
그는 충분히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 돈은 지금까지도 돌려받지 못했다.
심지어 이자조차 한 푼도 준 적이 없었다.
2019년에 대출을 해 2024년이 되었는데도
변한 건 전혀 없었다.
나는 은행에 매년 방문해
대출 연장을 신청해야만 했다.
팔기로한 땅에선 나는 그의 일을 도와주곤 했다.
어느날 문득 생각했다.
이 돈은 아마 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다.
“형편이 좋아지면 우리가 천천히 갚아 나가자.”
이제 더 이상 그 돈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일이 하나 터졌다.
그의 아버지,
즉 아내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례식장에서
운전을 못하는 나의 어머니는
인천에서 두 시간 반을 넘게
지하철과 도보로 조문을 오셨다.
그 자리에서 사돈에게
적절한 안부인사 조차 하지 않은 채,
그는 멀찍이 앉아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마음속으로는 엄마에게
“미안해”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내가 미안하다고 하면 엄마가 더 슬퍼할까봐.
참다 못해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뭘 그렇게 보고 계세요?”
그가 답했다.
“카카오톡으로 조의금 받는거 이것 좀 해줘봐바.”
그 순간, 무언가가 안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아버지가 살던 집의
보증금 4,000만 원을 받았다고 기뻐했다.
나도 순간 희망을 가졌다.
“아, 이제 2019년에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지만 그가 선택한 건
구형 S클래스 차량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를 무시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매년 은행에 가서 대출을 연장하며 기다렸다.
한 번도 그가 먼저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정신적 여유가 없던 이번달 대출만기가 다시 찾아왔다.
참다 못해 서운한 마음을 모두 털어놓았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나는 자존심이 센 사람이야.
강한 사람이야. 너, 돈 때문에 이러는 거야?
내가 그 돈 안 줄 것 같아?”
나도 처음으로 화를 내며 물었다.
“oo이에게 빌렸어도 이렇게 했겠어요?
제가 이번에 말하지 않았으면,
대출 만기인지도 모르셨잖아요?”
그는 한참동안 답이 없었고 끝내
“그래, 그래. 미안하다. 됐다.
너는 이제 그만 본다.”
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장인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만 보자는 말을 내가 먼저 했어야 했는데,
아쉬움만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