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나는 가슴이 크다.
꽤 크다.
큰 가슴으로 22년간 살아왔다.
이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은 이유는
바로 얼마 전,
가슴 사이에서 납작해져 죽어 있는 벌레를
발견했다는 충격적인 일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싫은건
이런 경험이 이번이 첫 경험이 아니라는 것.
골짜기 안에서 벌레가 죽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왜 가슴 사이에 벌레가 죽어있는지
깊은 고민에 빠져서 생각을 해보았지만
어떤 이유도 의미도 모르겠다.
예전에, 집을 나갈 때 착용한 목걸이를
낮에 어디선가 잃어버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목욕할 때 가슴 사이로
잃어버린 목걸이를 발견했을 땐 감동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에 끼어 죽은 벌레를 보고는
그런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블랙홀 처럼 강한 중력이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내 계곡에 끌려온 벌레나,
목걸이나, 남자들은,
이 부드러운 협곡의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고 싶었고,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내가 살아온 날들을 잘 생각해보니
가슴이 크지 않았다면
평생 경험하지 못했을 일들이 정말 많았다.
같은 디자인의 속옷이라도
C컵과 H컵은 가격이 다르기 때문에,
남들보다 속옷 가게의 좀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으며,
가족이나 친척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가슴을 어떻게든 숨기고 싶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넉넉한 옷을 고른다.
평소에 남들은 하지 않지만
나는 당연하게 하고 있는 행동,
내가 보는 광경,
남들이 나에게 대하는 행동.
그 모든 것은 가슴이 크기 때문이며,
이 지구는 가슴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이 세상의 진리를 깨닫고 말았다.
어쩌면 “가슴이 크다”는 것,
나는 그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사실, 나는 지금 가슴을 가장 큰 무기로 삼아
AV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하고 있다.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가슴이 큰 여자가 인생에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에
“언제부터 가슴이 컸어?”
라는 것이 존재한다.
나도 데뷔 당시의 인터뷰에서
몇 번이고 이런 질문을 받았다.
반대로 면접관 분으로부터
‘이 질문에는 이미 대답하는 것도 질리겠지만,
미안하지만 대답해줘야 해요’ 라고,
배려 같지도 않은 배려를 받은 일도 있었다.
이럴 때는 구체적인 시기를 말하는 편이 좋아서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부터 같아요.’
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조금 얘기가 다르다.
내 경우, 갑자기 그냥 이미 가슴이 컸다.
뭐 2차 성징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고
몸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단숨에 바뀐 것은
나도 진작 눈치를 채고 있었다.
동급생 아이들보다 발육도 빠른 편이고,
나와 가장 친한 여자 친구와도
명확히 몸의 윤곽이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 소녀였던 나에게는
그것이 조금 부끄러워서,
내 가슴을 자꾸만 모른척 했던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쑥쑥 성장하는 가슴을 곁눈질하며,
도저히 사이즈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귀여운 디자인의 속옷만 고집하는 버릇이 생겼었다.
그렇게 눈 아래의 펼쳐진 가슴을 보고
이 악물고 모른척 하고 있는 사이에
정신을 차렸을 땐 어디를 가도
“가슴이 큰 아이”로 취급 받고 있었다.
가슴이 크다..
그 사실을 먼저 깨달은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었다.
이 사실을 새삼 실감하는 사건이 있었다.
얼마 전에 고등학교 여자 친구 두 명과
몇 년 만에 만났는데,
오랜만에 재회해서 텐션이 올라간 우리는
신나서 네컷 사진을 찍기로 했다.
친구와 사진을 찍는건 고등학교 이후 처음이었고,
유행하는 포즈 같은 것도 잘 몰라서 당황했는데
한 친구가,
“아, 그럼 그거 하자” 라고 말하자마자
두 사람은 능글맞게 웃으며
내 가슴을 좌우로 힘차게 당겼다.
생각났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친한 반 친구들로부터 인사 수준으로
매일 가슴을 내줘야만 했다.
졸업할 학년이 될 무렵에는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왜 지금 얘가 내 가슴을 주물리고 있는가에 대해
일절 의문을 품지 않게 되고,
주물리는 사람도
왜 내 가슴을 주무르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거기에 니 가슴이 있으니까’
라는 철학적인 대답 대변을 하는,
그런 영역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웠다 이 감촉ㅋㅋ”
순식간에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가슴도, 그 시절 그 손들의 감촉을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들의 손은 섬세하고 매끄럽고,
의외로 가차없는.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지금도 나를 “가슴이 큰 아이”라는 캐릭터로
인식하고 놀아주었다.
그게 왠지 너무 반갑고 기뻐서,
그리고 아직도 조금 부끄러워서,
가슴 안쪽이 뭉클해지는 기분을 느꼈고
만져서 뭉클해진 것인지
마음이 뭉클해진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까지 내 가슴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AV데뷔에 있어서 갔던 면접 때조차,
내 장점이 가슴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았고,
결국, 나는 F컵이란걸 알았을 때도
내 가슴에 대해 무관심했다.
면접을 보는 사람에게
‘절대 F컵은 아니에요’ 라고 해서
속옷 사이즈를 재검토하기로 했는데,
‘남들보다 조금 큰 가슴을 본 것만으로도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기뻐하는걸까’
라고 생각했다.
내 몸과 인생의 중심에는
항상 큰 가슴이 있는 것이었다.
그게 너무 당연하고,
너무 부끄럽고, 너무 골칫거리고.
내 가슴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지,
내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아서,
계속 나는 그게 싫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가슴과 한몸이 되었고
현재는 이 가슴을 이용해서 돈을 벌고 살고 있다.
어떤 때는 일부러 강조해 보이거나,
어떤 때는 억지로 억누르거나.
나 나름대로의 화풀이를 했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나는 내 가슴을 사용해서
일을 하며 살아갈 거라 생각하고 있고,
큰 가슴이라는게 왜 인기가 있는가,
가슴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은 몇 퍼센트인가,
22년간 이 가슴과 살아오면서,
내 장점은 가슴이 크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큰 장점이란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예전부터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제는 나도 내 가슴을 좋아한다는 것.
나보다 큰 가슴도 무수히 존재하고,
작은 가슴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전부 모양도 색도 다르고,
가슴이 큰 인생을 포기해야 했던 사람도 있다.
나도 몇 번이나 ‘조금만 작으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하는 날도 있었다.
그렇기에 내 자식과도 같은 이 가슴을
나는 결국엔 싫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놓고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 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도
내 중심에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가슴이었다.
이 일을 하고 나서부터
나도 가슴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매일 목욕 후 마사지를 한다.
그때마다 ‘오늘도 나이스 가슴.’이라고
마음속으로 칭찬을 해준다.
내가 이 가슴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누구보다도 내 가슴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니까.
맛있는 빵을 만들려면
맛있는 빵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내 가슴.
큰 가슴.
앞으로도 많은 사람을 유혹하거나, 치유하거나,
방해하거나, 주거나 해서,
내가 가슴을 펴고 살아갈 수 있도록
내 중심에는 이 가슴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내 가슴을 주물러보고 싶다.
그 온기에 휩싸여, 편안한 잠을 자고 싶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나는 분명 그날 계곡 안에서 목숨을 잃은
벌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