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대는 당시 신막사 도입 덕분에
꽤 괜찮은 시설을 갖고 있었기에
침대 생활관 및 나름 최신식 설비를 갖추고 있어서
생활환경에 큰 불만은 없었다.
(물론 여름에 에어컨이 없었다는 것 빼곤..)
조금 특이한건 취사장은 신막사가 아닌
이전까지 수 십년을 쓰다가 창고로 쓰이고 있는
구막사 앞에 있는 건물을 취사장으로 사용했었다.
가건물 같은 느낌의 허름하고 오래된 취사장의 위생은
당연하게도 상당히 좋지 못했는데
특히 ‘바퀴벌레’가 정말 많았다.
어느 정도냐하면 밥 먹으러가면
한 낮에도 심심치 않게 바퀴벌레가
테이블 위, 바닥, 벽 할 거 없이 샤샤샥 기어다닐 정도였는데..
처음에 들어오는 신병들은 기겁을 했지만
그래도 바퀴벌레들이 눈치는 있어서
사람 많을 땐 활개치거나 날아다니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다.
다만 이 바퀴벌레의 악명은
취사장에 붙어살아야 하는 취사병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았다.
취사장 안에 있는 취사병 휴게실은
당연하게도 바퀴벌레에게 테라포밍을 당한 상태였는데
어느 정도냐하면 취사병들이 자다가
몸이 간지러워서 눈을 떠보면
바퀴벌레가 팔다리를 타고 올라오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가끔 우리가 바퀴벌레로 호들갑을 떨면
취사병 선임은 피식 웃으며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을 하곤 했었다.
그러다 내가 일병을 이제 막 달았던 어느 날
그 심연을 보게 될 일이 생겼었다.
흔히 보일러병이라고 불리는 시설관리병 선임과 친해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등병 때 취사장 바퀴벌레보고 진짜 충격먹었었다고 말하자
시설관리병 선임은 “낮에 보는 건 진짜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 밤에 진짜를 보여주겠다”
라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남겼다.
그리고 그 날 밤 시설관리병 선임은
부사수 대신 나를 야간시설점검에 데려갔다.
부대 내 시설 전기, 가스 점검 같은 간단한 업무였는데
앞선 시설들을 쭉 돈 후에
취사장 앞에 다가서자 놀라지말라며 겁을 줬었다.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서 불을 키는 순간
갑자기 눈 앞에서 수 많은 무언가가
부리나케 사라지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보이는 취사장의 모습은 정말 끔찍했다.
조리도구부터 식탁, 벽, 바닥 어느 곳 할 것 없이
미처 긴 더듬이를 가진
갈색의 바퀴벌레들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미처 숨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숨을 이유를 못느낀 것인지
마치 우리를 쳐다보듯 마주하고 있었는데
그 크기와 압도적인 숫자 앞에서
공포감을 느껴 제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그 표정을 보고 시설관리병 선임은 웃으면서
“야, 말했지 낮에 보는거 아무 것도 아니라고” 라며
바퀴벌레가 포진한 취사장에서 태연하게 가스벨브를 확인했다.
이내 점검을 마치고 나갈 때 까지도
충격받은 나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한 선임은
“이래도 위생검열 나와서
한 번도 통과 못한 적이 없는게 더 웃기지 않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그로부터 얼마 후 나왔던 사단 위생검열에서도
식판, 식기 위생에 신경을 썼지
정작 바퀴벌레가 벽에 붙어다니고 있음에도
별 말 안하는 것을 보고
정말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행인건 바퀴벌레가 그렇게 많았음에도
그로 인한 식중독 같은 큰 문제가 발생한 적은 없었고
밥이나 반찬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는 일도 없어서
그냥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2편
때는 앞서 말한 사단위생검열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 날 중식은 군필이라면 다들 아는
짬밥 내의 맛도리 조합 중 하나인
꼬리곰탕 + 오징어젓갈이 메뉴였다.
짬밥에서 손꼽히는 맛도리 픽이니
평소에 결식을 자주하던 상병장들도 많이들 와있었는데
갑자기 취사장 중심의 배식대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아 O발!” 샤우팅을 내질렀다.
국통 앞에 서있던 병장이었다.
밥을 먹던 사람도,
기다리던 사람도 일 순간에 관심이 집중됐다.
병장은 이내 취사병 한 명을 불렀다.
“야 OO아 와봐 졷됐다 진짜”
그러자 취사병이 쪼르르 달려와
무슨 일이시냐고 물어보니 병장은 대뜸
“국에 바퀴벌레 들어갔다” 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다들 벙찐 표정을 짓자 병장은 말을 이어가며
방금 본 충격적인 광경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 부대는 메인 반찬을 제외하곤
대부분 자율배식이었고 국도 당연하게 자율배식이었다.
그래서 취사장 중간에 이런 느낌의 배식대가 있었는데
저 위에 각파이프 같은 것 하나가 달려있어
거기에 음식 담는 국자를 걸어둘 수 있었다.
(시제품인지 아니면 만든 건지는 잘모르겠음..)
문제는 각파이프 같은 위 구조물의
양쪽 끝이 막혀있지 않고 뚫려있었고..
우리는 평소엔 몰랐지만
바퀴벌레가 그 안에 들어가서 살고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병장이 꼬리곰탕을 딱 푸려고 국자를 잡아든 순간..
각파이프 안쪽에 살던 바퀴벌레 하나가 튀어나와
그대로 뜨거운 꼬리곰탕 속으로 다이빙을 했고,
그걸 병장이 그대로 목격해버린 것이다.
그 설명이 취사장이 울릴정도로 쩌렁쩌렁하자
기다리던 상, 병장들은 물론
밥을 먹고 있던 상병장들도
“하 씹..” 소리를 내며 짬을 버리러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실 바깥이라면 바퀴벌레 한 마리가 그렇게 된 이상
전량 폐기를 해야하는게 상식적이지만
간부였는지, 취사병이였는지 누군가가 별로 먹지도 않은..
사실상 메인이라고 볼 수 있는 꼬리곰탕 한 솥을
모두 버리면 큰 일이다 싶었는지
국자를 들고 국통을 휘휘 저으며
바퀴벌레 사체를 건져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1~2분여가 지났을까
한참 꼬리곰탕을 휘젓던 취사병이 마침내
뜨거운 국물에 푹 익어 더듬이와
다리가 한껏 오므려진 바퀴벌레 사체를 인양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국통은 다시 제 자리에서 배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아까 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을 무렵
상, 병장들 상당 수는 PX로 떠났고
짬이 안되는 일, 이등병들만 남아 모두가 고민에 빠졌다.
‘먹을 것인가, 아니면 PX에 갈 것인가?’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PX에 간다해도
진지하게 뭐라 그럴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짬이 안되니 지레 겁을 먹고
대부분의 일, 이등병이 먹기를 선택했다.
물론 그 중엔 차마 그 꼴을 보고 국까지 먹을 순 없어
꼬리곰탕을 받지 않는 인원도 있었지만..
꼬리곰탕이 메인메뉴인데 꼬리곰탕을 빼면
먹을게 없어 그냥 받고 먹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나 역시도 그랬다.
뜨거운 국물에 알아서 세균은 사멸됐으리라 행복회로를 돌렸다.
상병장들이 먹지않아
그 날 꼬리곰탕의 고기 양은 유독 많았다.
비록 바퀴벌레가 목욕한 꼬리곰탕이었지만
맛은 뛰어났고, 먹고난 후에도 탈은 없었다.
그 날 취사장은 유독 적막한 분위기가 흘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사건이 발생한 후
그 날 취사장 청소를 담당했던 상병 중 하나는
도저히 이대론 안되겠다 생각했는지
큰 결심을 하나 하게 되는데..
3편
바퀴곰탕 사건 직후 취사장 청소를 담당했던 우리 소대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짬청소를 하고있었다.
그런데 한 상병 하나가 한숨을 푹 쉬며 말을 꺼냈다.
인간적으로 바퀴벌레가 너무 많고,
비위생적이라 참기가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이 바퀴를 좀 우리가 잡아보자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인간적으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다.
바퀴벌레 잡을 약은 커녕
있는거라곤 취사장 내에 파리가 너무 많아서
잡으라고 가져다 둔 고무파리채 몇 개가 끝이었다.
하지만 선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어떻게든 바퀴벌레 숫자를 좀 줄여보고 싶긴했다.
눈에 보이는 것들만 다 때려잡아도 그나마 조금 낫지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그 날부터
짬장 청소 로테이션이 도는 남은 일주일 간
바퀴벌레 소탕 작전에 돌입했다.
이, 일병들이 청소를 하며 한 손엔 고무파리채를 들고
눈에 보이는 바퀴벌레를 때려잡기 시작했다.
단 파리채의 목적은 파리를 때려잡는 것에 있었는지
체급이 큰 바퀴벌레는 한 방에 죽지않았다.
힘껏 휘두른 파리채를 맞고도
미친듯이 도망가는 것을 보며 혐오감은 더욱 커졌다.
그래도 중, 석식 시간에 눈에 보이는 애들을
어느 정도 때려잡으니 뭔가 개체수가 줄어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음 날 짬청소를 할 때 쯤이면
어제 죽인 개체수가 무색하게 바퀴벌레는 무한리필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나오던 곳에 또 나오고, 또 있고, 또 기어다녔다.
바퀴벌레의 출처가 의심스러운 가운데 3일째 되는 날
한 일병이 갑자기 짬 청소를 하다말고 우리를 불러모았다.
그 일병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퀴벌레의 본진을 찾은 것 같다”
그러면서 일병이 지목한 곳은 취사장 입구 바로 앞에 위치한
식판 설거지 + 짬 버리는 구역이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 구역의 구석탱이, 벽이 맞물리는 모서리였다.
취사장은 일반적인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샌드위치 패널 소재로 만들어진 가건물에 가까웠는데
워낙 낡고 오래되다보니 패널과 패널이 맞물리는 사이에
접착제가 떨어진 것인지 틈이 생겨서
한눈에 보기에도 약간 벌어져있는 상태였다.
그 틈 사이로 자신이 쫓던 바퀴벌레가
들어가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모서리를 자세히 보기 시작한 우리는
정말 그 녀석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모서리 사이로 바퀴벌레의 긴 더듬이들이
삐죽삐죽 나와있던 것이다.
한 3~4마리 정도의 더듬이가 보였고,
그 더듬이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혐오스런 광경에 파리채를 들고 있던 일병 하나가
모서리 사이에 파리채의 머리부분을 구겨넣기 시작했다.
순간 외부의 침입에 놀란 바퀴벌레 몇 마리가
패널 밖으로 부리나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비위가 좋지 않은 몇 명은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지만
이내 용기 있는 일병이 몇 마리를 있는 힘껏 때려잡았다.
그러나 패널 사이에서 여전히 더듬이 몇 개가 보였고
파리채로는 한계가 있다 판단한 상병 한 명이
청소용 고무 김치통에 물을 가득히 부어왔고
패널 사이 공간에 있는 힘껏 물을 부어버렸다.
수공을 통해 한 방에 쓸어버릴 생각이었겠지만..
하지만 그건 절대 하지말아야 할 치명적인 실수였다.
틈 사이로 물이 들어가자마자 패널 사이를 비집고
족히 수 백 마리는 되는 바퀴벌레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갑작스러운 홍수에 크게 놀랐는지
정말 미친 속도도 쏟아져나오기 시작했고
나와서도 미친듯한 속도와 움직임을 보여줬다.
족히 한쪽 벽을 거의 적갈색으로 뒤덮을 정도의 개체수였다.
크기도 어찌나 다양한지
손가락 한마디 보다 더 큰 녀석들부터 시작해서
수박씨만한 크기, 과장 좀 더 보태서 후추만한 녀석들까지..
그야말로 바퀴가족 일가친척 전체를 다 마주친 수준이었다.
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경악스럽고 혐오스러운 모습에
근처에 있던 이병, 일병, 상병 할 것 없이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던 상병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김치통에 물을 잔뜩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 비키라면서
갈색 점들로 가득채운 벽에 다시 한 번 있는 힘껏 물을 뿌렸다.
벽에 물이 촤아악 튀기며 수 많은 갈색 덩어리들이 물살에 휘말리며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 위에서도 빠른 속도로
기어다니기 시작한 바퀴벌레는 너무나 혐오스러웠고
일병들이 청소용 스퀴지를 이용해서
연신 물과 함께 바퀴벌레들을 하수구로 밀어넣기 시작했다.
하수구로 이미 거의 빨려들어가는 상황에서도 발발 거리며
어떻게든 기어올라오려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연달아 물을 뿌리고 하수구로 밀어내길 수 차례,
드디어 벽면을 가득채웠던 바퀴벌레 무리의 상당수를 제거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다시 패널 사이에 물을 뿌리면 어김없이
잔여세력들이 기어나왔고,
처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엄청난 숫자였다.
그렇게 거의 1시간 가량을 물을 뿌리고,
기어나온걸 다시 하수구로 밀어내길 반복했다.
하지만 애초에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싸움은 아니었다.
그 틈에선 여전히 바퀴벌레가 나오고 있었고
앞으로 모서리는 3개가 더 있었고
어김없이 패널이 벌어져있었다.
그리고 반대쪽 파견부대가 사용하는 짬처리장도 상황은 똑같았다.
취사장에서 발생하는 짬을 먹으면서
무한하게 증식하는 존재였다.
그제서야 든 생각은 이미 패널 사이사이로 다 증식해서
취사장 건물 자체가
거대한 바퀴벌레의 도시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우린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인정할 수 뿐이 없었고
바퀴벌레 개체수를 줄여보겠다는 계획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념했다.
모든걸 내려놓고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돌아왔고
반강제적으로 바퀴벌레와의 공존을 인정할 수 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