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대로 서른다섯까지 백수생활했다.
집이 딱히 부유하진 않았는데
그렇다고 빈곤하지도 않은 화목한 집에서 살면서
아무 걱정 없이 백수짓 했었다.
부모님은 따로 살고 있었고
누나랑 나만 같이 살면서 집세 식비는 다 내줬기 때문에
사실 문제가 없어서 계속 백수짓 했던 것 같다.
항상 거짓말로 상황 모면하고
적반하장으로 화내고 돈이 없으니까
한달 5~10만원 정도 누나가 불쌍하다고 쥐어진걸로 용돈했음
게임만 하는데 토렌트 같은걸로 받으면 무료니까.
돈도 안들었고 인방 같은거 보면서
시간 보내면 하루하루가 진짜 재밌더라.
물론 30대 들어오면서 부터는
재밌는게 있어서 웃더라도
금방 현타가 와서 정색하는 내 모습이 보였음.
또 가끔은 어머니 볼때마다
슬픈 웃음과 함께 조용한 흐느낌을 듣고
절망스러운 심정이 오더라도 그때뿐..
다음날 다시 여전히 게임하고 놀았다.
그러다 35살이 됐는데
30대 중반이 됐으니 정신차려야지 라는 생각은 안했고
그냥 자기혐오만 하고 남탓만 할뿐
항상 내일의 나에게 다 맡기고
이 짓을 반복하고 결국 계속 같은 생활만 반복했음
그러다 일을 하게 된 계기가 갑작스레 찾아왔다.
변화는 일상에 흔들림으로 부터 온다던데
가족 중 한명이 몸이 아프게 되면서
집안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게 됐다.
그 상활까지 오니까 더이상 눈치보는걸 떠나서
물리적으로 집에 있을 수가 없더라.
근데 35살까지 쭉 백수로 살았고
아무 경력도 없어서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닥치고 아무대나 이력서 넣다보니
와보라는 곳이 있긴 하더라고.
1~20대는 나름 인싸에 오지랖퍼였는데
인간관계 단절된지 10년만에 뭔가를 하려니까
식은땀도 나고 적응 진짜 안되더라.
말도 어버버하고 일도 잘 못하고 그러다보니
구박 받아서 한참 어린 선배들 앞에서 울기도 했음
당장이라도 때려치고
다시 백수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근데 이악물고 참고 계속 다녔다..
가족이 아픈건 사실 금방 (2~3달) 나아서 괜찮아졌는데
30대 중반에 처음으로 일하고 난 뒤부터
환한 어머니 미소보고 나니까
진짜 너무 힘든데도 진짜 내 얼굴에 싸대기치고
이 악물면서 계속 회사 다녔다.
그렇게 일한지 1년.
드디어 사람 구실 시작했다.
연락 끊긴지 꽤 오래 됐지만
나 백수인거 알면서도 챙겨줬었던 친구들한테
연락 돌리고 밥도 사면서 인간관계 복구하고
여기저기 신세 진거 싹다 갚으면서 돌아다녔다.
내 자신도 최소한의 옷이나 생필품들도 사고 하면서..
그러니까 유흥 안해도 남는 돈 진짜 한푼 없더라
일하고 2년.
나도 남들처럼 늙어서 국민연금 받고 싶길래
연금 전부 추납했다.
다 내면 2800만원이라길래 18개월 분할 납부했다.
여전히 친구 만나면 밥은 내가 다 샀지만
2년차부턴 친구들도 슬슬 같이 내주기 시작해서 부담 덜고
명절때 부모님 용돈도 50씩 드렸다.
당연하지만 유흥 따위 절대 안하고
밥값 차값 다 아껴도 남는돈은 없었다.
일하고 3년.
남들처럼 효도 한번 해보고 싶어서
부모님 집에 가전제품 싹 다 바꿔드리고
해외여행도 보내드렸다 (돈 없어서 동남아)
내가 사는곳 가전제품도 좀 바꾸고.
그러니까 통장에 돈 500만원 모았더라
일하고 4년차.
나이가 40이 다 되어가는데
수중에 돈 천만원이 없는게 쪽팔려서 돈을 모았다.
물론 모으면서 부모님 여전히 챙겼고
친구들한테도 많이 쏘면서 2천 정도 모이더라.
올해 5년차다.
너무 오랜 백수 생활을 해서 그런지
요 4년간 유흥 낭비 없는 생활을 했는데도
다른 사람 평균보다 한참 모자르지만
이젠 남 부끄럽지 않는 정도까진
어떻게든 꾸역꾸역 간신히는 왔구나
하고 가끔 안심하고 자찬한다.
대한민국에 백수가 백만명이 넘는다던데
혹시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너가 어떤 나이든 정신만 차리면
적어도 사람 구실 정도는 한다.
포기하지말자 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