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기사가 차를 긁었습니다.
지인과 술자리 약속이 있어
청담동의 한 음식점에서 술 한잔을 하고
9시가 조금 넘어서 자리가 끝났는데
밥값은 제가 낸 상황이라
지인이 자기 회사에서 쓰는 법인 대리서비스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렇게 양복 입은 기사님이 오셔서 문도 열어주시고..
운전도 진짜 잘하시더라고요..
문제는 집이 변두리에 있는 단독주택이라
동네에 들어가면 좁은 골목이 하나 있습니다.
근데 주차장 들어가기 전에 갑자기
그으윽 하고 차가 긁히는 소리가 나더군요..
대리기사도 놀라고 저도 뭔가 싶어서 내려보니
진입구 구분을 위해 세워둔 스테인리스 기둥에
뒷문짝이 좀 긁혔더군요.
그쪽이 좀 낮고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미리 이야기를 해줬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거든요..
갑자기 걸려온 전화 때문에 통화하느라
미처 기사님께 말씀드리지 못해서..
좀 많이 아쉬운 상황이었습니다.
기사님은 어쩔 줄을 모르셔하고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안절부절 하길래
일단 진정시키고 주차 마무리 해달라고 했습니다.
주차하고 나서 대리기사님 얼굴이
하얗게 된 상태로 오시더니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보험처리 원하시면 해드리겠습니다..
라고 하시길래
일단 차고 불을 켜고 상태를 보니
판데기가 찌그러진 곳은 없었고
다행히 프라이머만 드러난 상태.
대충 문짝 하나 칠하면 많이 나와야 몇십 나오는 상황.
일단 담배하나 드리고, 진정하시라고 말씀드렸씁니다.
뭐 운전하다 차 긁는게 뭐 대수라고
그렇게 놀라십니까? 라고 말씀드렸죠
담배하나 피우고, 보험처리 하면
혹시 기사님 부담금이 얼마냐 여쭤보니
30만원 정도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알겠습니다 하고
대리비는 이미 지인이 지불한 상태였는데
지갑에서 5만원짜리 하나 꺼내서 드렸습니다.
기사님이 영문을 모르고 얼떨떨해 하길래
보험접수 하지 마시고
회사에도 사고났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는 괜찮으니 너무 심려하지 마시고 그냥 가세요.
차는 제가 알아서 고칠테니
5만원은 기사님..오늘 운전하지 마시고
집에 가시라고 드리는거구요..
놀라셨을테니 괜히 일 더 하시다가
큰 사고 나실까 싶어서 드리는 겁니다.
다음부터는 좀 더 주의깊게 운전하십시오.
라고 했더니
기사님이 상황이 전혀 파악이 안되는 듯
계속 얼떨떨 해 하시다가 몇 초 후에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괜찮다고
걱정마시고 조심해서 돌아가십시오 라고 말씀 드렸는데
제게 연거푸 머리숙여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기사님을 달래드리고
걸어내려가시는 거 보고 집으로 가려 하는데
대리기사가 갑자기 저를 불러세우더군요.
무슨일인가 하고 보니
저보고 내일 혹시 몇시에 출근하십니까?
라고 물어보길래 왜 물어보시냐 그랬더니
자기가 너무 고맙고 죄송해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단 생각이 든다고
차를 꼭 고쳐주고 싶다는 겁니다.
자기가 아는 업체가 있는데
아침에 제가 출근할 때 와서 저를 사무실에 데려다 주고
그 다음에 차를 받아서 그 업체에 맡겨 수리한 후
퇴근 때 차를 가져와서 저를 집에 데려다 주겠다는 겁니다.
수리비는 자기가 부담할테니
꼭 그렇게 해달라고 하시더군요.
뭐 그럴 필요 없다고 몇 번 더 거절하고
웃는 얼굴로 집에 보내드렸습니다.
피곤하실텐데 그러지 마시고 푹 쉬시고
내일부터 더 안전하게 운전하시라고 말씀 드리고
아침에 출근하고 점심시간 쯤 문자 하나를 보내셨더군요.
너무 고맙고 죄송하다고.
걱정마시고 건강하라고 문자 답변 드리고
후배놈이 운영하는 도색공장 와서
지금 도색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차는 인디오더가 아니라서
색상이 뭐 특별한 것도 아니고..
후배놈 술 한잔 사주고 퉁치는 걸로 협상했습니다.
보험처리 받는 것보다는
이게 더 마음이 뿌듯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덕분에 좋은 후배놈이랑
술 한잔 더 할 기회도 생겼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