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이야기 좀 해보려고 한다.
우린 고등학교때부터 친구였다.
친구는 어리버리하고 행동은 굼뜬 친구였다.
하지만 축구 하나만큼은 기가막히게 잘했고
그래서 별탈없이 무난하게
친구들과 잘 어울리던 친구였다.
호날두를 그렇게 좋아하던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날
평범하던 우리 학교에는 나쁜 유행이 돌기 시작했다.
요즘말로 일진인 친구들이 토토를 하기 시작했고
유행처럼 너도나도 번져가기 시작했다.
나는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건 나만 관심조차 없는거였다.
이미 반아이들은 중독이 되어있었다.
어느날 반장이 토토로 200만원을 벌었다며,
부모님을 제주도로 여행을 보내주고
남은 돈으로 반 전체에게 햄버거 세트를 쐈다.
신기했다.
우린 고작 고등학교 2학년이었으니까.
그 시절 김밥이 천원이었고
나는 천원에도 벌벌 떨었는데,
주변 친구들은 만원을 천원인거 마냥 사치를 부렸다.
더욱 신기한 것은 38명의 반 아이들 중
토토를 하는 인원이 30명이 넘어갔다.
이해가 안갔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홀짝 중 하나를 골라보라고 했다.
아무렇게 말한 내 한마디가 10만원이 되었고
친구는 나에게 5만원을 주었다.
그렇게 나도 30명 이상의 도박무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반 친구들은 대부분 알바를 시작했고,
월급날이 되면 토토로 전부 탕진을 했다.
물론 나 또한 알바로 토토에 탕진했고,
돈을 더 벌고자 고등학생인 나이에 술집 알바까지 했다.
질 안 좋은 형,누나들을 알게 되었고
술 담배는 기본이고
하지말아야할 짓은 전부 다 해가며 점점 중독이 되어갔다.
당시 우리반 분위기는 최악이였다.
조용한 친구, 힘이 쎈 친구, 공부 잘하는 친구, 가난한 친구
모두가 토토에 중독되어
너도 나도 도박 얘기만 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고작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내 통장은 4개가 되었다.
출금,입금 내용이 빼곡하게 적힌 도박의 증거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 친구가
온몸에 피멍이 든채로 학교에 왔다.
알고보니, 토토사이트가 경찰에게 잡혀
그 친구도 소환된 후
아버지에게 죽기직전까지 맞은거였다.
우린 웃으며 놀렸다.
그리고 그날 나에게도 전화가 왔다.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짜 경찰이 맞았다.
하굣길에 00경찰서로 오라고 하였고
무서워 주변을 둘러보니
나에게만 전화가 온것이 아니였다.
그렇게 경찰서에 갔고,
이상한 종이에 사건을 적은 뒤
담임선생님, 부모님이 소환 당했다.
나는 300만원 이하로 훈계처방을 받았다.
아마 그때 법이 그랬나보다.
그 후 아버지에게 죽기직전까지 맞았고,
어머니의 대성통곡과
10년 이상 금연하시던 아버지는 담배를 다시 태우셨다.
그렇게 우리반은 대부분 토토를 그만두었고
암묵적으로 도박 얘기는 금기어가 되었다.
한여름밤 꿈처럼, 학창시절의 추억처럼
현재 30살이 된 우리의 술안주처럼.
하지만 이건 내 큰 착각이었다.
고등학교 반친구들은
30살이 된 지금까지 대부분 토토중독에 벗어나지 못했다.
내 친구 또한 그랬다.
나의 친구는 대기업에 다닌다.
학벌도 좋고, 연봉도 꽤 쎄다.
우리가 선망하는 그런 기업을 다니는 친구였다.
몇년전만 해도 1억을 모으고,
2억을 모았다고 우리에게 자랑을 하며,
술이며 고기며 많이 베풀던 친구였다.
우린 그렇게 20대를 우정을 쌓으며 보냈다.
한달전, 새벽 2시.
친구가 동생이 사고를 쳤다며,
나에게 급하게 300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당장 돈이 필요한데
전세로 돈이 묶여 현금이 부족하다고 했다.
친구는 똑똑하며, 대기업을 다닌다.
그리고 우리의 우정은 찐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300만원을 송금했다.
친구는 다음달 월급날 준다며 고맙다고 했다.
일주일 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날은 태풍이 몰아치던 날이었다.
자신이 사실 토토중독이였고,
모은 돈을 다 날린 상태이며,
빚이 8천에 개인회생중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정지했다.
난 정말 눈치 채지도 못했었다.
친구는 울면서 말했다.
사채에도 손을 댄지 오래라고.
난 추심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친구는 추심이 시작되었고,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화를 한 거라며,
부모님과 동생을 좀 챙겨줄 수 있냐는 말을 했다.
나는 다급해졌다.
친구의 사채는 2천만원이 넘었다.
원금은 800만원이라고 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다 같이 돈을 모아서 사채는 갚을 수 있다고 했다.
친구는 말이 없었다.
다급하게 전화를 끊고
다른 친구들에게 허겁지겁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이미 친구들에게
적게는 100만원, 많게는 500만원까지 빌린 상태였다.
나는 이성을 잃었다.
친구에게 200만원을 송금했다.
일단 이자부터 갚고,
친구들과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친구는 고맙다며, 자기가 다시 일어나보겠다.
꼭 갚겠다. 라고 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 드라마나, 영화처럼
해피엔딩이길 바랬다.
고맙다는 말을 들은 후 이틀 뒤
내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뭐가 그렇게 두려웠을까
아니 부끄러웠을까.
친구들에게 부끄럼을 무릎쓰고 말했다면,
몇천은 그냥 모아졌을 것이다.
난 친구가 원망스럽다.
그렇게 장례식장을 갔다.
다른 친구들과 한없이 울었다.
친구의 동생과 부모님 얘기를 들어보니,
사채업자가 친구 직장 상사부터,
아버지의 직장, 동생의 직장까지 소문을 내었고,
친구는 권고사직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10년이 넘은 우리의 우정은 꺼졌다.
어제까지 나는 술에 빠져 살았다.
회사에 연차를 계속 사용했고,
짤리던 뭐든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왔다.
여자친구 또한 나에게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러던 오늘 아침
통장에 100만원이 입금이 되었다.
알고보니 친구의 동생이 보내준 돈이었다.
친구의 유서로는 친구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쪽팔리지만 자기를 도와줘서 고맙다고,
X신 같은 자기 때문에 슬피 울지말고,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비싼 양주 한잔으로 자기를 잊고 털어달라는 말이였다.
참 어이가 없고 희한하게 웃음이 나왔다.
나는 멍청하고, 배운것도 없고, 미련하다.
하지만 도박의 말로를 보았고,
내가 주식이라고 투자하고 있는 것이
도박과 다를바가 없어보인다.
나도 내 친구처럼
나도 모르게 중독되어 도박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날씨가 참 좋았다.
오랜만에 여자친구와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나이 30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웃으면서 집에 놀러오라고 하셨고
어머니는 반찬 다 떨어졌냐며 잔소리를 하셨다.
모르겠다.
이렇게 긴글을 적어본적도 살면서 처음인 것 같다.
그냥 주저리 익명을 빌려
신세한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