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년이 되어가네요.
아이 없이 결혼생활을 오래 했고
난 참 행복하다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좋은 아파트, 좋은 직업, 다정한 남편,
주말이면 남편이 차려주는 브런치 받아먹으면서
올 여름휴가는 어디로 갈까
이런 생각이나 하면서 아무 걱정 없이 살았아요.
내가 열심히 살아서 얻어낸 행복이니
이것이 영원할거라 한치의 의심없이 믿었고요.
어느날 우연히 알게 된 남편 외도를 시작으로
문을 열고 저벅저벅 걸어들어온 불행은
순식간에 제 인생을 구석에 내동댕이 처버리더군요.
저에게 화 한번 낸 적 없던,
천사 같던 남편은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 되어
저를 괴물 취급하며 이혼을 요구해 오고,
이혼을 안해주니까 집을 나가더니 소식두절.
그때 마침 직장을 그만두고
투자한 사업이 잘못되어 가산탕진.
어느날 정신차려보니
외각에 작은 단칸방에서
벽보고 울고 있는 제가 보이더군요.
사십대에 접어들어 겪은 일이라 더 좌절했어요.
이 나이에 이혼했고,
이 나이에 전재산이라곤
탈탈 털어 한 칠백만원 될까.
이제 남은건 매일 늙어가는 나를 바라보면서
가난속에서 남편을 원망하고
저주하면서 사는 일 뿐이라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
첨부터 바꾼건 아니고
살면서 점점 바뀐거긴 하지만,
어쨌든 세월은 흐르는 거니까
울면서 무기력하게 살것인가,
힘내서 열심히 살것인가,
이것만큼은 재가 선택할 수 있다는걸 알았어요.
운명은 내 편이 아닌 것 같아 보였지만,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는
내가 선택할 수 있었죠.
다시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무엇보다 웃으면서 살았습니다.
내가 힘들수록 주위에 더 잘하려고 애도 썼고요.
나이많고 돈없는 이혼녀가
팔자주름까지 생기면 더 힘들 것 같아서
일부러 입꼬리 올리고 살다보니
내가 진짜 행복해서 웃는다고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도 웃어주고,
그러다보니 저도 또 진심으로 웃고..
그리 되더라고요.
그렇게 5년이 흘렀네요.
열심히 살다보니 일도 자리 잡히고,
경제적으로도 조금은 나아졌어요.
연하의 남자친구도 생겼어요.
지난 주말에 그 친구랑 우리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마침 새들이 집 앞 나무에 몰려와서
시끄럽게 막 떠들길래 제가 그랬어요.
“우리집 앞에 유난히 새들이 많이 날아와요.”
그러자 그 사람이 그러더군요.
“백설공주 동화책을 보면
백설공주 근처에 새들이 막 날고 있잖아요.
어깨에도 앉아있고”
뭔 소리를 하나 싶어서 제가 빤히 쳐다 봤더니
눈하나 깜박 않고 그러더군요.
“원래 공주님한테는 새들이 많이 찾아와요”
당시엔 어이가 없어서
남들 앞에선 이런 말 하지마라 하고
얼른 다른 주제로 대화를 넘겼는데
그날 밤에 자려고 누워서 혼자 웃었답니다.
법원에서 남편이 혹시 이혼서류 잘 못 내서
이혼 못하게 될까봐
저한테 사인 두장 받아 갈때만 해도
이런 생각은 못했거든요.
훗날 어느 봄날에 창가에 앉아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공주님 소리 듣게 될지를.
백설공주 계모랑
계모임 해야 할 이 나이에 말이죠.
물론 이런 날도 언젠가는 지나가겠죠.
저는 다시 혼자가 될 수도,
다시 벽보고 우는 날이 찾아올지도 모르죠.
그런데 저는 또 기대할 것 같아요.
다시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웃을 날이 올 거라고.
외도로 인해 받은 상처도 많이 희미해졌어요.
더 좋은 남자를 만나서가 아니라
더 좋은 내가 되어서겠죠.
아픔을 몰랐던 나보다
아픔을 아는 내가 더 마음에 듭니다.
어떤 것들은 영영 회복할 수 없지만,
그래도 회복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요.
그러니 힘을 내어 살아봅시다.
그래도 팔자주름 만큼은 회복하기 진짜 힘드니까
힘들어도 입꼬리를 한껏 올려주시길..
진짜 이것만큼은 꼭 지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