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고 나서 시간이 지났으니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지 못한다고 해도
카톡 프로필이 결혼식때 사진인데
나의 결혼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고 소주한잔 하자면서
자주 가던 김치찌개집 이름과 날짜 시간을 적어놓았다.
아직은 신혼이다 보니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도 술 마시잔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
나 역시 내키지 않아서 술자린 늘 피했었다.
그런데 전 여자친구의 그 카톡은
뭔가 잊고 있던 설레임을 다시 기억하게 했다.
알겠다고 답장을 보내고
그 카톡방에서 나와 곧 집사람에게 카톡을 했다.
오늘 꼭 가야할 술자리가 있다고..
결혼하고 거의 술자리에 참석을 안했던터라
집사람은 아무말 없이 알겠노라고 했다.
그래.. 난 일이 마칠 때까지
굉장히 두근거리는 상태였고
솔직히 평소보다 많이 웃음이 나는 하루였다.
예전 여자친구를 만난다는건
나의 버릇을,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나보다 더 많이 기억하는 누군가를 만나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안주를 이미 시킨 뒤
벌써 몇잔을 마신 상태였고
내가 오자마자 계란말이를 추가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게 식은 계란말이라며?”
그녀는 술잔을 건넸고
난 잔을 가득 채워 한잔 마셨다.
그녀는 내 친구들의 근황을 물으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고 옛추억에 한껏 웃었다.
“정훈이랑 나랑 엘리베이터 키 없어가지고
엘리베이터 타지도 못하고 계단 막혀서
그 호텔 보안요원 오고 진짜 웃겼는데 ㅋㅋㅋ”
나 역시 오랜만에 생각나는 이야기라
한참을 웃다가 고개를 들어
쳐다본 그녀의 표정은 생각보다 쓸쓸한 표정이었다.
“언제 만났어?”
누구와의 만남을 묻는지 알고 있었지만
짐짓 모르는채 되물었다.
“누구?”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어려보이더라? 28? 29?”
“스물아홉이야. 우리랑 9살 차이나지”
그녀는 술잔을 마저 비우고
“그래 그래도 20대랑 결혼했네? 우리나라 여자로ㅋㅋㅋ”
하며 웃었고
나도 멋쩍게 같이 웃었다.
난 왜 이 술자리에 나온걸까?
전 여자친구와의 추억?
내 과거를 나보다 잘 아는 사람과의 과거팔이?
하지만 내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는
그녀와 잠자리였다.
난 이 여자와 자고 싶은건가?
아직 두근거리는 이 신혼에도 이런 생각이 드나?
대답은 그녀의 말한마디에 바로 나왔다.
“XX아 오늘 집에 들어가지마. 나랑 같이 있자”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입에서 안돼라는 말이 나왔다.
“장난하지마. 나 아직 신혼이야. 나 집사람 진짜 사랑하고..”
그녀는 당연히 그말이 나올지 알았다는듯 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그리고 술자리는 어색해지며
시간이 천천히 가면서 끈덕지게 이어졌다.
그녀의 내 과거팔이감도 다 떨어졌을 때
난 시계를 보고 일어서자고 했다.
“XX아 초상집이라고 하고 새벽에 들어가면 안돼?
오늘 진짜 니 생각 많이 나더라.
내가 미안한 것도 많고..”
“미안할거 없어. 어차피 끝난거니까.
나도 미안한거 많고 좋은 추억도 많잖아 그럼 된거지”
난 외투를 들었고
그녀는 다시 한번 매달렸다.
“아- 좀! 앉으라고 내 말 안 끝났다.
니랑 자겠다는게 아니라
그냥 옆에만 누워있어달라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
난 외투를 내려놓고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그렇게 해서 단 한번도 그냥 잔 적이 없으니까”
그녀는
“맞지 우리가 좀 뜨거웠지” 하며
내 손을 슬며시 잡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기분이 좋았다.
대부분의 연인이나 남녀사이에서의
남자의 역할을 그녀가 하고 있었다.
끈덕지게 나와 자보려고 애를 썼고
감정 조절이 안되는게 눈에 보였지만
자신은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녀와 만나며
단 한번도 있었던 적이 없던 특이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내가 20대 초반 시절에
오늘 같이 잘 수 있을거라 믿었고 있다가
기회를 날리는걸 보는 대학생처럼
처절하고 끈질기게 나에게 구애를 했다.
“XX야 오늘 같이 있어주라.
진짜 다시는 이런 부탁 안할게.
나도 니 마누라한테 미안할짓 또 하고 싶지는 않다.
XX아 진짜 오늘 같이 있어주면
내가 니 소원도 들어줄게 진짜야.”
진짜란 단어가 문장에서 여러번이면
그걸 진짜라고 믿음이 안 가는 법이다.
“난 너한테 빌 소원도 없고
니가 들어줄 수 있는 소원도 없다”
난 그렇게 외투를 들고 계산하러 나왔다.
그녀는 안 따라나올 것처럼 앉아
술 한잔을 더 비우더니
내가 나감을 확인하고는 벌떡 일어나 나를 쫓아왔다.
“야! XXX 진짜 이러지마라.
내가 무슨 발정나서 이러는 줄 알아?
난 진짜 너랑 오늘 같이 있고 싶을 뿐이라고
니가 원하는대로 뭐든 다 해서라도
난 지금 널 잡고 싶다고 제발”
여자가 남자에게 하룻밤을 애결하는 순간이
즐거웠다고 느낀것도 거기까지였다.
난 대답하지 않고 돌아섰다.
그녀는 입으로 뭔가를 웅얼거렸고
난 “다음부터는 연락 안해줬음 좋겠다.
집사람도 내 폰 가끔 볼때 있고
집사람 지문도 등록해놔서 불안하다”
그녀는 계속해서 웅얼거렸고
약간 우는 것 같기도 했다.
“무슨 말인지 안 들려. 니가 하는 소리.”
난 돌아섰고 몇발짝 걸어 나갔을때
그녀가 욕하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봤다.
“X발 야.”
난 놀래서 그녀를 뻔히 쳐다보았고
그녀는 다시 한번 소리쳤다.
“오늘 같이 자면 니가 맨날 말했던
그 뒤로 하는거 그것도 해주겠다고 X발”
그녀의 그 큰 외침이 주위를 멈추게 했고
난 폰을 꺼내 들었다.
“응 여보.. 오늘 나 새벽에나 되야 들어갈 수 있겠다.
자세한건 집에가서 설명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