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꽃피는 2012년.
모 지방 공대에 다니던 나는
서른살이 넘어 술마신 다음날 면접을 보는 동아리 형과
학교앞 치킨집에서 파닭을 배달하는 과선배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아 학교를 때려치기로 했다.
피시방에 하루종일 박혀있던 나는 생각했다.
‘X발 나는 뭐 잘하는게 없네’
스무살 언저리의 남자는 보통 이럴때
피시방이나 당구장에서의 깊은 사색 끝에
‘군대부터 가자’는 결론을 내리곤 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군대를 가자.
그 시절 나는 도무지 잘 하는게 없었다.
(지금은 있냐고 묻지 마라)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체육시간은 양지바른 곳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어좁이 거북목 친구들과 게임얘기를 하거나,
인원수를 맞추기 위한 토템으로 끌려나와
어쩌다 공이 다가오면 좀비처럼 어기적 어기적 뛰어다니다
일진에게 쌍욕을 듣기 일쑤였다.
그런 내게 있어 해병대에 지원했다는 사실을
입대 1주일 전에 밝혀
할머니를 반쯤 쓰러지게 만들고,
울퉁불퉁 진한 내음의 사나이가 되어 돌아온 외삼촌은
캡틴 아메리카와 스페이스 마린 사이 어디쯤에 있는
테스토스테론의 정수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때문에 나는 중학생 시절부터 라이라이차차차를 부르며
구보뛰는 나를 꿈꿔왔고,
운좋게도 겨울기수라 지원자가 없었는지
면접장에서 마이클 잭슨처럼
뒷걸음질로 나온게 면접관의 눈물샘을 자극했는지
한번에 합격통지서를 받아 찬바람 불던 11월,
나는 포항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입대 후 7주간의 훈련병 생활은 정말 뒤지게 힘들었다.
‘육군갈걸 공군갈걸 해군갈걸 의경갈걸’로
가득찬 머리는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는게 불가능했고,
니들 그따위로 할꺼면
육군가서 만두나 쳐먹으라는 소대장의 일갈에
‘보내주세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곤 했다.
따뜻한 남쪽나라 포항의 버스마저
폭설로 끊기게 만든 그 지옥같은 겨울을 나게 해주었던 건
해병 전우들의 끈끈한 전우애 덕분이었다.
아무튼 훈련소에서
통신병 후반기 교육까지 다 끝나갈 무렵,
동기들의 최대 관심사는
더이상 PX 몽쉘통통 재고가 아닌 자대배치였다.
교관실에 문의하면 어디 배치인지 알려준다더란 말에
나는 동기 민석이와 함께 교관실 문을 두드렸다.
“어 민석이 너는 전차대대고,
뿅뿅이는 어디보자.. 수색대네?”
무슨 ㅈ같은 소리지? 몰카인가? 장난치는건가?
어이가 없는것도 당연하다.
해병대 수색대는 차출이 아니라 지원제이기 때문이다.
팔씨름으로 남자를 이겨본 적이 좀처럼 없는 나는
수색대가 탐낼만한 인재이기는 커녕
지원조차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벙벙해진 나는 되물을 생각도 못하고
총총 교관실을 나와 공중전화로 갔다.
“아빠 나 수색대 됐어! 재식이랑 같이 두명 간대!”
아버지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말이 없어지셨다.
“하.. 그래..? 하.. 진짜야? 하..”
손으로 등산로 쪽문을 잠궈둔 자물쇠를 뜯어내고,
십수kg짜리 캐리어를 끌고도
나보다 빨리 달리곤 했던 아버지에게 있어
내가 수색대에 간다는건
어지간히 걱정되는 일이었는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차출당했다 해도
모든 해병대의 꿈인 수색대.
남자중의 남자만 모이는 수색대에 대한 낭만에
나는 그저 싱글벙글이었다.
며칠 뒤, 훈련소를 완전히 떠날 날이 되었다.
연병장으로 각 부대 버스가 와서 동기들을 태워 떠나고,
가까운 사단 영내부대로
배치받은 동기들은 줄을 맞춰 걸어갔다.
하나하나 연병장이 비어갈 무렵,
웬 염산부은 레드스컬처럼 생긴 사내가
‘RECON’이 수놓아진 야구모자를 쓰고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니들이야? 니들 오늘, 강원도로 간다!”
그는 나와 동기를
앙증맞은 마티즈에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그렇게 레드스컬 아저씨의 마티즈에 탄
재식이와 나는 잔뜩 긴장해있었다.
훈련소에 있을땐 민간인과 육군이 그렇게 부럽더니,
둘만 남겨져 갑자기 수색대로 끌려가게 생기니
열댓명씩 사이좋게 자대로 떠나는 동기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얼마간 달렸을까,
수색대 영내에 들어간 레드스컬이 입을 열었다.
“야.”
“훈.. 이병 XXX!”
“우리는 뭐다?”
“해..해병입니다!” “수색대입니다!”
아저씨가 별안간 브레이크와
엑셀을 번갈아 쫙쫙 밟으며 소리쳤다.
“가족! 가족! 새끼들아!”
“예에에에 가족입니다아!!!” “마씀다! 가족입니다아아!”
덜컹거리는 마티즈 안에서
우리는 공포에 질려 아저씨와 가족이 되었다.
자대에 도착했지만
우리는 짐을 가지고 그대로 떠나야 했다.
때는 겨울인데,
그 시기 수색대는 강원도 횡성에 있는 겨울캠프에서
미군과 훈련을 하고 있어서
거기까지 가야 비로소 자대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여덟명 남짓한 후발대 선임들과 함께
고속버스에 몸을 실은 우리는
맨 뒤에서 두번째 자리,
그러니까 ‘찐따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중학교 시절 수학여행의 기시감을 느끼며
안전벨트를 하려는 찰나 재식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야, 안전벨트 하지 말자.
약해보이는거 싫어하시는거 같아.”
지금 생각하면 뭔 X신같은 생각이지만,
영문도 모른채 지원한 적도 없는 수색대도 모자라
해병대가 강원도 산골짜기로 간다는
전대미문의 상황앞에 판단력이 흐려진 나는
재식이의 논리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안전벨트를 풀었다.
낮 내내 달린 버스는 깜깜해진 후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우리는 존야 버그라도 걸린 듯
그동안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동상처럼 굳어있었다.
그러나 선임들은 칭찬한번 해주지 않고
무심하게 내려 우리를 또다시 닷지 뒷자리에 태웠고,
한참을 더 달려서야 ‘진짜 자대’에 도착했다.
닷지에서 내린 캠프는
지은 지 얼마 안되었는지 고등학교 건물 같았다.
정문으로 걸어나온 사람이 안경 낀 교장선생님이 아니라
선그라스 낀 상사라는 점을 빼면.
세상에, 야밤에 선글라스라니.
내가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그렇다.
‘존나 무섭다 X발..’
그가 우리에게 터벅터벅 다가와 말을 건냈다.
1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그 쇠긁는 목소리가 생생하다.
“지금, 이곳의 온도는 영하 15도.
체감기온은 영하 27도..
웰컴, 투, 헬.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아. 이걸 보고 웃는 당신들은
그때의 공포를 모를 것이다. 진심으로 무서웠다.
그날 밤 생활관에 들어간 나는
뜻밖에도 유쾌한 선임들의 환대에 어리둥절했다.
선임들은 새 장난감에 신이 났는지
내게 이것저것 묻고,
관품함의 빵이며 사과, 닭가슴살 캔을 쥐어줬다.
기합찬 환영식이 끝나고 취침 전,
나는 일기를 펼쳐 지금 이 상황에 대한 혼란스러움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실미도처럼 북한에 투입되는게 아닌가 하는
망상을 적어내려갔다.
다음날은 전입신고를 하고
막내가 하던 잡일들을 인계받으며 시간이 지나갔다.
저녁에 샤워하러 샤워실에 갔는데,
잘생긴 사람 한명이 날 보고 씩 웃으며
(알몸으로) 묻는게 아닌가.
“너가 아쎄이야?”
아아.. 그는 입대한 이래 날
‘아쎄이’라고 불러준 첫 해병이었다!
그는 몸을 돌려 등짝의 용문신을 보여주며
제 할일을 하러 갔고, 내 맞선임이 내게 말했다.
“너 저사람 누군지 알아?”
“알아보겠습니다.”
“오종혁이라고 알아?”
어쩐지 잘생겼다 싶었다.
그 뒤로는 비교적 평온한 날.. 이지는 못했다.
장기자랑 뭐 없냐는 질문에
골리앗, 드라군같은 각종 게임 캐릭터들을 흉내냈더니
전 대대를 돌며 생활관마다
네 발로 리시빙-을 해야 했고,
내 일기를 보던 선임들이
실미도 얘기를 보고 존나게 빵 터지기도 하고,
미군들과 신나게 뉴이어 파티도 해보고,
중대장(레슬링 선출)이 말하던 도중
토를 달았다고 내 맞선임 싸대기를 ‘펑’ 소리나게 날려
중대장이 바뀌기도 했고,
1시간동안 완전무장을 지고 올라간 진지에서
999k 배터리를 안가져온줄 알고 찾다가
내 엉덩이 밑에서 발견해 살자가 마렵기도 했다.
어찌저찌 훈련을 따라가려 했지만
근본이 비실이였던 나는
설피를 신고 행군하던 도중 결국 낙오했고,
통신관 눈에는 영 불안해보였는지
결국 재식이와 함께 한달만에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고 말았다.
“니가 지내기엔 거기가 더 편할끼다.”
전출을 가던 날,
통신관이 드디어 내게 그동안의 비밀을 알려줬다.
전산오류.
전산오류란다.
내가 지원하지도 않은 수색대에 온 것은,
내가 가진 특수능력도 실미도도 아닌 전산오류였다.
그 순간은 아직까지
‘내 인생 어이없는 순간 top’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옘병. 전산오류를 내도 사람을 수색대로 보내냐.
여하튼 그렇게 나는
한달간의 꿈같았던 수색대 생활을 끝내고
공병대대로 전출을 가게 되었다.
거기서도 내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그 유명한 ‘수색대’가 전출왔다는 소문에
너도나도 나를 보러 찾아왔다가
내 생김새를 보고 실망한 선임들은
다시 드라군 빙의한 나를 보며 웃음을 되찾았고,
나는 일병을 달고서도 4개 중대를 돌며
리시빙-을 선보여야 했다는 웃지 못할 뒷이야기가 있다.
이 뒤로도 우울증 걸린 선임이랑 싸우다 군기교육대 간 썰,
연못 금붕어 잡아서 중대 어항에 넣었다
주임원사한테 걸릴뻔한 썰,
밤마다 식당 부식창고 털어먹던 썰,
사무실에서 통신관 팔각모 쓰고 사진찍었다 걸린 썰
등이 있지만
그건 흔한 군생활 썰이라 굳이 쓰지는 않도록 하겠다.
아! 화려하고도 아련한 그 시절의 추억이여!
저 뒤에 딱봐도 이병처럼 생긴 게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