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얼굴 못 생긴게 컴플렉스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 글을 적는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조금 거친 남초 커뮤니티를 구경하다보면
흔히들 농담처럼
초등학교 짝꿍 얼굴로 울린 찐따 이야기가
한번씩 커뮤니티에서 나옵니다.
근데 댓글로 말로는 ‘내 이야긴가? 내 얘기네?’
하면서도 다들 웃어넘겨요.
사실 그 정도로 못 생기기도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걸 기어이 해낸,
남들 다 웃을 때 웃지 못하는 남자가 접니다.
초등학생때 두꺼비 닮아서
쟤랑 앉기 싫다는 이야기를
내심 좋아하던,
반에서 제일 이쁘던 애한테 듣고
그게 아직 치명상처럼 남아있습니다.
이후로 나름 나대는 성격이었던 저는
극도로 조용한 성격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소극적이고
말 수 적은 성격이 원인이 된걸까요.
중학생때는 그냥 얼굴이 찐따같이 생겼다고
진짜 왕따까지 당했습니다.
심지어 산전수전 다 겪은 뒤
말더듬는 버릇까지 생겼습니다.
‘에..에..음..어..에’
말하는 당사도 답답한데 듣는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래 그냥 말하지 말자.
가급적 입다물고 살자 하며
어느 순간부터 그냥 입을 다물고
사람 사귀는 행위 자체를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너무 준게 없어서 미안했는지,
이 찐따같은 저에게
책상앞에 엉덩이 붙이고 오래 앉아있는 끈기와
한번 들으면 그래도
웬만큼 알아들을 수 있는 지성은 주었네요.
‘아, 이게 내 살길이다. 공부하자.’
그 뒤로 죽어라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진짜로 목숨 걸고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다행히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공부 잘하고 조용한 저를
똑똑한 친구로 대해주고 기억해줬지
X신 찐따로 대하진 않았거든요.
그래도 여전히 사람 대하는게 무서웠습니다.
(지금도 고등학교때 친구들과
좀 더 진솔하게 친하게 지낼걸 하는 후회도 가끔 합니다.)
그렇게 어찌어찌 의대에 왔습니다.
의대에 오니 얼굴 못 생긴건 별 상관이 없는데,
심각한 말더듬이 기질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필기는 그럭저럭 넘어가는데,
실기(CPX 등등)가 시시때때로 발목을 잡아서
그냥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나마 다들 어른이 되어서 그런지,
서로의 사정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저는 찐따인 것은 들키지 않고
다행히 의사가 되는데 성공합니다.
(이것도 나름 우열곡절이 많으나 적진 않겠습니다.)
물론 인기과는 성적뿐만 아니라
교수님이나 윗년차들과 안면도 좀 터여하고,
말도 잘 하고 싹싹하고
일 잘하는 것까지 딸려있어야 하기 때문에
인기과는 못 갔지만,
교실 한구석 쭈구리 말더듬이 두꺼비 소년에서
이만큼 발전했다는 것 자체로도 만족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결혼을 원하셨습니다.
결혼..
사실 저는 비혼주의나 독신주의에
딱히 공감하지는 않습니다.
할수만 있다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려서 험한 세파 헤쳐나가고
둘 닮은 (저를 덜 닮은) 자식을 낳아서
무언가를 후세에 남기는 일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
초등학교 교실 한 구석에서 시작되어
제 등에 업혀있는 괴물이 속삭입니다.
‘근데 그래서 누가 널 사랑해줄 것 같냐?’
‘살면서 평생 여자랑 대화도 제대로 못한 놈이 결혼?’
‘정신차려 너 의사 딱지 떼면 그냥 말더듬이 두꺼비야’
아.. 그래도 노력으로 뭔가 이루어내면
이 괴물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미련하고
성실하게 일만 꾸역꾸역하는 남자를 좋게 봤는지,
지인 선생님이 여성분을 소개시켜주셨습니다.
평생 여자와 변변한 티키타카 대화 한번 해보지 않은 저에게
배후를 괴물에게 찔려가며 하는 소개팅은
저에겐 너무나도 험난했습니다.
최대한 좋은 인상을 주고싶어서
말을 더듬지 않으려고 머리속에서
수십번 대사를 지웠다가 새로 썼고
결국 침묵은 길어지고 자리는 어색해졌습니다.
예능이야기, 드라마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제가 아는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쪽에 화제와는 담쌓고 30년을 살아왔으니까요.
몇 안되는 취미인 혼자서 습작 단편소설 끄적이기와
공포영화 감상하기, 게임 이야기는
이럴 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뭘 꺼내도 눈앞에 여성분은
딱히 좋아하지 않을 것만 같았고
점점 손이 떨리고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
다시 자괴감에 빠지고 우울해졌습니다.
우울한 제 귓 속에
끊임없이 초등학교때부터 따라다니던
괴물이 저어게 속삭였습니다.
‘봐 X신ㅋㅋ 그러게 내 말 듣지 그랬어
누가 그런데 나가래?
넌 방구석에서 혼자 살다가 고독사 하는게 어울려
말더듬이 찐따 두꺼비야’
중언부언 이어져 온 제 이야기는 여기가 끝입니다.
제가 30년 살면서 변하지 않은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딱 하루만 나도 잘 생기고
말재주도 좋아서 인기있게 살아보고 싶은 소원이요.
매일 밤 잠들며 빌어도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겠지요.
PS.못생긴 남자와 소개팅 하셨던 여성분에게는
전혀 가책하실 필요가 없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좋은 분이셨고
저도 여성분과 살면서
처음으로 밥 먹어보는 경험이었습니다.
그저 제가 죄송할 따름입니다.
정말 하루만 잘 생겨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