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다리를 겨우 가리는 상에
놓인 라면을 하염없이 쳐다만 봤다.
라면은 이미 퉁퉁 불어버린 지 오래였다.
한껏 구불구불하던 면발이
이젠 거의 직선 모양이 다 됐다.
조그만 종지에 담긴 쉬어 빠진 김치에서는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엄마는 신 김치 못 먹는데.
엄마 대신 김치를 저 옆으로 밀어버리고 싶었으나
나는 그러질 못해 그냥 가만히 놔두었다.
한참 동안 맹하게 있던 엄마가
초점 없는 눈을 끔뻑댔다.
라면을 먹으려는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님 아직까지도 습관을 고치지 못한 건지
라면은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채였다.
나는 부디 그 이유가 후자가 아니길 바랐다.
옛날엔 입이 두 개라
코딱지만한 라면사리 하나도
우동처럼 퉁퉁 불려먹어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부터
입버릇처럼 분 라면이 좋다 했으나
그게 아니라는 건 멍청한 바보도 잘 알 거다.
몇 젓가락 딸한테 더 먹이겠다고
제 위를 줄이고 라면을 불리던 엄마가 생각나서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냄비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면발 사이사이로
언뜻 보이는 주황색 국물엔 기름만 떠다녔다.
라면 하면 떠오르는 건미역이며
토막 난 버섯, 바싹 말린 당근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나 때문일 거다.
언젠가 후레이크가 싫다며
기를 쓰고 바락바락 소리친 적이 있었기에.
가지런한 쇠젓가락 한 쌍을 만지작대기만 하던 엄마가
별안간 라면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걱정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냥 라면을 먹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냄비 양옆에 부착된 손잡이를
강하게 붙잡고 있는 엄마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곧 부러질 것처럼 가늘었다.
나는 먹는게 부실하니 그럴 수밖에 라고 생각하면서도
엄마가 측은해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는 무릎을 세워 앉아 있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에 힘이 잔뜩 빠진 듯
발걸음이 땅에 질질 끌렸다.
집이 원체 좁아
엄마는 다리를 얼마 움직이지 않아도
부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부엌이라고 할 것도 없고
그저 거실 한 편에 딸려 있던 공간에 가까웠으나
일단 명색은 부엌이었다.
엄마가 퀭한 눈두덩을 문지르며
구닥다리 밥솥을 내려다봤다.
눈가에 촘촘히 배겨 있는 속눈썹들은
금세 아래를 향했다.
현기증이 이는 것 마냥
엄마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밥솥을 열었다.
실로 힘겨워 보이는 몸짓이었다.
밥솥은 보온도 되고 있지 않았는지
속에서 밥알들이 한 덩이로 뭉쳐져
냉기를 풀풀 날리고 있었다.
그런 건 먹으면 안 되는데.
내 우려가 무색하게 엄마는 어느새
숟가락을 가져와 그 한 덩이를 접시에 퍼내고 있었다.
엄마가 누런 밥을 꾹꾹 눌러보다가 생수를 들이부었다.
예전에 자주 먹던 물밥을 해먹으려는 것 같았다.
저러니까 어지럽지.
나는 속으로 뱉은 숨을 내쉬며
엄마가 하는 행태를 쭉 지켜보았다.
조금 있다 엄마가 채 다풀어지지도 않은 밥알들을
마구잡이로 퍼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그건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해 하는 식사라기 보다는
속이 허해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는 식사에 가까웠다.
정신없이 움직이던 손이 점차 굼떠졌다.
간간이 끅끅대는 소리도 들렸다.
엄마는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어낼 생각도 못하고
계속 수저질만 했다.
울음을 꾹 참으려는 듯
엄마의 입술이 거푸 실룩거렸다.
엄마는 그렇게 싫어하던 신 김치를 삼키며
결국 어린 아이처럼 왕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엄마를 두고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됐다.
어떻게든 살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