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곧 26살 되는 직장인 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왕따를 당했습니다.
왕따의 시작은 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인기 많던 남자애가
저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다른 애들이 저를 공주병이라고 놀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길고 긴 따돌림이 시작됐습니다.
제 닌텐도를 가져가 며칠동안 돌려주지 않고
이동 수업이 있을 때는
저한테만 어딘지 말을 해주지 않으며
교실에서 돈이 없어진 사건이 생겼을 땐
절 제일 심하게 따돌리던
A라는 친구가 제가 범인이라 지목한 일도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기억 나는 건
리코더 수업이 있던 날인데,
리코더에서 침이 나오자
A라는 친구가 그걸 제 옷에 닦더라구요.
아무튼 따돌림은 중학교에 가면 끝날 줄 알았지만
중학교 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읍 단위 시골에 살았었다보니
초 중 고가 대부분 같았거든요.
중학교때는 수위가 더 심해졌습니다.
제가 화장실에 볼일을 보고 있으면
위에서 고개를 내밀어 저를 지켜보거나
우유곽을 던졌고,
그게 싫어 몰래 장애인용 화장실을 가다 들켜
그때부터 장애인이라는 별명도 새로 생겼었습니다.
뭐 얘기가 계속 길어지는데,
체육복 빌려가서 생리를 잔뜩 묻혀서 돌려주거나,
제 필통을 멀리 던지고 주워오라 시키거나,
저랑 같은 조가 되어 옆자리가 되면
그때 선생님의 난처하다는 듯
저를 쳐다보는 표정, 애들의 웃음 소리
그 모든게 아직까지도 기억나고 너무 싫습니다.
그 아이들과 같은 반만 아니면
괴롭힘은 끝이 날까 했었는데
어느 반 배정을 받던
저를 괴롭히는 애들은 매년 존재했었고
특히 이 글을 쓰는 이유인 A와 같은 반이 되면서
더 많이 힘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당시 부담임이었던 사회 선생님께서
저를 진심으로 챙겨주셨고
겨우 버텨서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타 지역 고등학교로
도망치듯이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친구를 제대로 사귀는 거라
다가가는 것도, 다가오는 친구들도
대하기 어려웠지만 잘 적응해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전교 부회장도 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원하는 대학 한곳에도 합격했고
대학에서도 좋은 친구들을 만나
무사히 마치고 원하는 곳에 취업까지 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저희 할아버지가 제가 초,중을 나왔던 지역에 있는
금융회사의 이사장으로 계십니다.
그런데 저를 제일 심하게 따돌렸던
A라는 애가 할아버지 회사로 입사를 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왕따 당한 걸 모르니
제 친구였겠다 싶어
저에게 너랑 동창인 OOO라는 애가 입사를 했다.
라고 말씀을 해주신 것 같은데,
제가 어떻게 그 이름을 잊고 살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바로 할아버지께
걔 때문에 죽고 싶었다.
학교 애들이 전부 나를 피하게 만들었고
5년 내내 지옥에서 살았다
정규직 전환 시켜주지 마라
당장 해고 시키면 안되냐.
라는 말들을 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일 일테고..
사실 가끔 궁금하긴 했습니다.
그 애들은 뭘 하고 지내는지,
날 기억하고 있는지,
요즘 학교 폭력이라는 것이
옛날이랑 다르게 크게 이슈가 되는데
관련된 뉴스들을 볼 때마다
자신들의 행동에 찔리고는 있을지
그때 일을 후회한 적은 있을지
나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하긴 한지.
지금은 어느정도 용서가 생겨서 그런지
그 애들이 만약 저를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할지,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합니다.
+추가
기억하시는 분 있을진 모르겠지만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쯤이었을 건데,
그때 흔녀에서 훈녀 만들기라는게 유행했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저는 그 A라는 친구가 주동해서
엎드려있던 저를 강제로 일어나게 해
패딩을 벗기고 흐트려놓은 다음에
사진을 찍고 저에게 화장을 해주는 척 하며
낙서를 하며 그걸 네이트판에 올린적이 있습니다.
‘우리학교 왕따’ 라는 문구와 함께요.
집에 와서 그 게시글에 달린
댓글을 확인해야 하는게 너무 두려웠습니다.
근데 댓글들 반응이 다르더라구요.
어느 학교냐 이건 심하지 않냐,
저 학생 괴롭히지 마라 라는 댓글이 많았었습니다.
아마 그 분들 눈에도 보였겠죠.
단순한 친구들끼리의 장난이 아니라는 걸요.
덕분에 제가 이상하거나
쓸모가 없는 사람이 아닌 걸 알게 됐고
이번에도 그 기억이 떠올라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여기에 글을 작성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댓글 달아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를 매번 살려주시네요.
다들 할아버지께 말씀 드리라는 내용이 많았는데
가족들은 제가 왕따를 당했는지도 모르십니다.
할아버지께서도
그 회사에서 오랫동안 이사로 지내시다가
이사장이 되신 거라 회사에 애착도 크시고
한편으로는 불 같은 성격이시기도 하시고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시기도 하셔서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가
할아버지, 부모님께 큰 짐만 안겨드리는 게 아닐까
많이 고민하였지만
그래도 내일 말씀을 드려보려고 합니다.
다시 글 적으러 오겠습니다.
다시 한 번 댓글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추가
어제 밤부터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간접적으로 그 애한테 제가 손녀인걸 알릴지,
직접 말씀을 드릴지,
어떤 식으로 말씀 드려야 할지,
할아버지는 어떻게 반응하실지.
걱정이 됐습니다.
결국엔 직접 말씀 드렸구요..
오늘 있었던 일을 순서대로 말씀드리자면
오늘 아침 출근길에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
오늘 시간 괜찮으시냐 했더니
오늘 집에 계실 거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퇴근 후 찾아 뵙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긴장을 하고 신경을 쓴 탓인지
두통에, 속도 울렁거리면서
멀미가 나는 듯이 몸이 이상하더라구요.
그래서 2시쯤 조기 퇴근을 했고,
그냥 일찍 말씀드리는게 낫겠다 싶어
바로 할머니 댁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글과 댓글을 인쇄해 챙겨갔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무슨 말을 하려 왔냐고 먼저 물으셨고
전부 말씀을 드리려 했는데
어제 이 글을 쓸 때도, 과거를 돌아볼 때도
눈물을 흘린적이 없었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갑자기 눈물이 나서 결국 직접 말씀은 못 드렸고
어쩔 수 없이 챙겨간 종이만 보여드렸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아마 처음부터
제 이야기인걸 눈치 채신 것 같았습니다.
점점 얼굴이 빨개지면서
화가 난 것처럼 보였거든요..
할아버지가 다 읽어보시고
직원들끼리 찍은 사진을 보여주시며
이 애가 A라는 애가 확실히 맞냐며 물으셨고
저는 그 애가 맞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제 얘기가 맞는지,
엄마 아빠도 알고 있던건지,
단 하나의 거짓말도 보태지 않은 진실된 글인지,
할아버지께 이 글을 보여준 의도가 무엇인지
저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저에게 물으셨고
저는 제 이야기가 맞고,
부모님은 모르고 계시고,
모두 겪었던 일만 적은 진실된 글이며
할아버지가 최소한 제 친구로 오해해서
그 A에게 너그러워지지 않았으면 해서
이걸 보여드렸다고 했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그 아이가
좌절감을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후 할아버지가
한 20분은 그냥 가만히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괜히 쓸데없는 짓을 한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었구요.
그리고 20분쯤 후에 할아버지께서
이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져도 괜찮은지 물으셨고
제가 괜찮긴 하지만
그 애가 나중에 이 일로 안 좋은 상황에 놓였을때
제가 이 일에 끼어있었다는 건
몰랐으면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다시 생각을 해보시고
조금 뒤 직원 두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분은 전무님이신데,
30년 넘게 실무책임자라고 하셨고
한 분은 차장님이신데
인사,교육 담당이라고 하시더라구요.
두분 다 믿고 의지할 만한 직원분들이라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그 분들께
제가 드렸던 인쇄종이를 보여주었고,
이런 직원을 밑에 두고는
식구로 못 데려가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이후에 할아버지는 직원 분들이랑
따로 말씀을 더 나누신 뒤 끝이 났습니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올해 A를 포함해 2명이 함께 입사를 했다고 했고
처음 시작은 1년 계약직인데
그 기간을 앞당겨서 이번주 중에
그 두명을 정규직으로 발령 내기로
다른 직원 분들과 상의하려고 했다고 하시더라구요.
결론은 할아버지께서
이 일을 모르셨다면
정규직 전환을 시켜줬을 거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우선 이 일은 없었던 일로 하시겠다 했고,
이번주 중으로 노무사와 상의해
탈없이 할아버지 선에서
그 애에 관한 일을 해결해주시겠다 하셨습니다.
제가 그래도 괜찮은 거냐 했더니,
넌 할아버지를 얕게 보는 거냐는
든든한 농담도 해주셨고
저녁을 먹기 전까지 많은 위로도 해주셨습니다.
현재로서는 확실히 결정된 사항은 없지만
할아버지께서도 걱정하지 말고
믿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도 한번 뱉은 말은 지키시는 분이라
정말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오늘 있었던 일은 여기까지고
사실, 어제 밤까지만 해도
찜찜한 마음이 남을까 걱정했는데
아직까지는 후련함이 더 큰 것 같네요.
그리고 이 글은 나중에 삭제를 하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께서 같이 화내주시고
위로도 해주셔서
그 어느해보다 따뜻한 해를 보내는 것 같네요.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